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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 60년 : 평가와 과제
 

2008-11-27 

오늘 같은 덕담 행사에 보통은 잘 안 나오는 게으른 성미여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 지 잘 모르는 심정으로 여기 앉아 있다. 원래 홍 장관님의 주문은, 넓고 긴 시각에서 건국 60년, 한국 외교 60년에 대해 미래지향적인 덕담을 짧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었다. 


Ⅰ. 국(國)의 의미

 

교수라는 직업이 보통 덕담보다는 남을 비판하는 말에 익숙하지만, 한국 외교 60년을 맞아 덕담을 하라고 하니 우선 두 가지 생각이 머리에 떠오른다. 하나는 금년이 대한민국 환갑잔치의 해이고 건국 60주년인데 환갑을 맞이한 국(國)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신화까지 포함하면 고조선 이래 오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왜 건국 60년이라고 부르는가. 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國의 의미를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國은 단순한 ‘나라’라는 의미는 아니다. 바꿔서 말하면 19세기, 20세기, 또는 21세기를 살아가면서 독립적인 삶의 단위로서 활동할 수 있는 표준자격을 갖춘 정치단체로서 국(國)을 의미한다. 이런 노력을 해 온지 60년이 되었으니 우리가 미래지향적 의미에서 한번 되돌아보고 잔치를 하자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60년을 돌아보면서 박 대사님이나 정 사장님이 과거를 이미 세부적으로 검토하셨기 때문에 한국 외교 60년을 조금 더 긴 시각에서 크게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따라서 오늘 환갑잔치가 첫 번째 환갑잔치가 아니라 두 번째 환갑잔치이며 보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60년 후에 다가올 세 번째 환갑잔치라는 얘기를 하겠다.

 

Ⅱ. 세 번의 환갑

 

대한민국 정부가 처음 수립된 1948년은 처음 국(國)이 시작한 해가 아니라  첫 번째 환갑의 해였다. 2008년은 근대국가 건설을 위한 노력에서 보자면 두 번째 환갑이고, 2068년에 세 번째 환갑을 맞게 된다. 1948년의 첫 번째 환갑, 2008년의 두 번째 환갑, 그리고 아직 맞이하지는 않았지만 2068년 세 번째 환갑 얘기를 짤막하게 말씀드리고자 한다.

 

1. 근대적 국(國)의 시작 : 1888년

 

우리는 한국 근대외교사를 좀 더 긴 안목에서 볼 줄 알아야 한다. 1880년 말 변화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설치된 통리기무아문이 실제 외교통상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882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으로 개칭되었고 다시 청일전쟁을 치루면서 진행된 갑오개혁 때 바뀐 외무아문은 20~30명밖에 안 되는 소규모였지만 오늘날 외교통상부와 조직상 거의 비슷했다. 얘기를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이유는 건국의 국(國)을 단순한 나라라는 의미가 아니라 근대국가 건설의 국(國)으로 보기 때문이며, 그 몸부림의 시작은 1880년대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880년이 근대외교제도의 첫출발이라면 1888년은 근대외교정책의 첫 저술이 이루어진 해다. 한말 대표적 개화 지식 관료였던 유길준이 1년 반 미국 유학 후 돌아와서 가택연금 상태에서 한국 최초의 근대국제정치학 교과서인「서유견문(西遊見聞)」을 집필했던 해다. 이 책은 당시에 근대 국가를 건설하지 않고서는 19세기의 새로운 국제질서 속에서 살아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한국외교를 어떻게 해야 할가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글이다.

 

2. 1888~1948년 : 첫 번째 환갑

 

1948년 이전의 60년은 어떤 60년이었나? 말씀드린 대로 외교통상부의 역사가 사실은 128년 되었으나 결과적으로 첫 환갑은 다 아시다시피 처절한 실패였다. 그 당시 우리가 세워야 하는 국(國)은 19세기 서양이 만든 표준이었던 부강국가를 새롭게 건설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한국외교도 근대국가건설을 위한 외국세력들의 균세(均勢)가 핵심이었다. 자강(自强)과 균세에 실패했기 때문에 한국은 국제정치 무대에 적어도 35년 이상 서지 못하는 식민지 시기를 맞이했다. 따라서 1948년에 오늘 같은 행사를 했다면 대단히 회한 섞인 첫 환갑잔치였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앞으로 다가 올 2008년의 두 번째 환갑을 화려하게 맞이하고 싶어하는 꿈속에서 환갑잔치를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3. 1948~2008년 : 두 번째 환갑

 

2008년에 두 선생님께서 지난 60년 한국 외교를 구체적으로 회고 해 주셨고 큰 반론은 없다. 다만 이번 달에 들어서서 여러 행사를 치루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기분은 약간 착잡하다. 어쩌면 해방정국 3년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로 구태의연하게  좌냐 우냐, 뉴라이트냐 뉴레프트냐에 따라 나눠져서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아마도 공동으로 건국 60년을 축하하는 외교 60년의 축하마당을 마련하기도 굉장히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면 축복의 60년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왜 아직도 커다란 의미에서 자기 얘기를, 지난 60년 얘기의 큰 줄거리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를 제대로 마련하기는 어려운 것인가. 중요한 문제는 국(國)에 있다. 60년을 한쪽에서는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60년으로 생각하는데 비해서, 다른 한쪽에서는 분단된 한반도 60년이 꼭 그렇게 자랑스러운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 20세기 국가의 세 목표 : 안보, 번영, 민주

 

19세기부터 60년동안 우리가 부강국가 건설에 실패하였다면, 20세기 1948년부터 지난 60년의 시대적인 목표는, 한 번 실패했던 목표를 다시 시도하는 것이였다. 그 1차적인 목표는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이였다. 한 정치사회 구성원들의 삶을 보장해주는 국(國), 쉽게 표현하자면 안보국가의 건설이 최우선적 숙제였다.

 

두 번째는 죽지 않고 살되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굶음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제는 한반도의 남쪽에서는 이 문제를 더 이상 큰 문제로 생각하지 않지만, 한반도의 북쪽에서는 여전히 이 문제가 최대 문제로 남아있는 것이 현실이므로 흘러간 옛얘기가 아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먹고 살되, 그래도 주인답게 사람답게 떳떳하게 당당하게 사는 국가의 모습으로 삼박자를 갖추는 것이다. 바로 민주국가다. 안보, 산업, 민주국가 형태의 세 꼭짓점을 그런대로 갖추는 것이 20세기 중․후반에 국가들의 기본 목표였다. 여러 가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한국은 그런대로 초보적인 목표에 어느 정도 도달했던 것이 지난 60년이었다.

 

나. 건국 60년사에 대한 국내 평가    

 

한 두 가지를 지적하고 21세기 얘기로 넘어가겠다. 오늘 국내에서 나눠져 있는 지난 60년의 해석을 하나로 통일할 수 없는 것인가? 해석의 잣대를 들이대는 방식의 혼란이다.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안보에서 성공한 것인가 즉, 삶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것인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가, 또 나라의 주인이 되는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3대 과제 중에 한 가지 잣대만으로 지난 60년을 평가하게 되면 대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지난 60년을 되돌아보면 결과적으로 안보화․산업화, 민주화의 세 꼭짓점을 다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사란 묘해서 그것이 동시적으로 마련되는 것이 아니라, 비동시적인 단계를 거치면서 마련되는 것이 상례인데 우리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1948년부터 1960년까지는 집단적 삶과 죽음의 문제를 풀기 위한 안보국가의 건설이 절체절명의 숙제였다. 1961년부터 1987년, 88 올림픽 전까지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최대 관건이었고, 1988년부터 어제 오늘까지의 지난 20년은 살고, 먹고, 동시에 ‘민주’라는 또 하나의 목표를 동시에 향유하고 싶어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졌던 짐이었다. 지난 60년동안 많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그런대로 3대 숙제를 풀었기에 오늘 우리가 여기에 이렇게 앉아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1) 제1기 : 1948~1960년

 

한국전쟁을 치룬 첫 번째 기는 어쩔 수 없이 절체절명으로 삶과 죽음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승만 정부가 먹고 사는 문제 중에 사는 문제와 함께 먹는 문제를 동시에 풀려는 노력을 처음 12년에 보다 체계적으로 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크다. 동시에 초보적 민주화 문제도 숙제였다.

 

(2) 제2기 : 1961~1987년

 

제2기에서는 여러 가지 우여곡절 속에서 그런대로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냉전에서 데탕트로, 다시 신 냉전의 과정이라는 국제정치적 어려움 속에서 안보국가를 유지하고 안보를 위한 경제적 삶의 기반을 가꾸기 위해서는 한일관계, 한미관계나 또는 제3국가의 관계를 경제외교로 몰아가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은 일정한 성과를 거두어, 삼각형의 산업화라는 한 꼭짓점을 확고히 만들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국내정치적인 합의 기반을 마련하지 못하고, 권위주의체제에서 생긴 인권 문제를 비롯한 민주화 문제는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서 오늘날까지도 부작용을 겪어야 하는 27년이었다.

 

(3) 제3기 : 1988~2008년

 

마지막으로 삼각형의 세 번째 꼭짓점인 민주화를 달성하기 위한  제3기는 당당하고 자랑할 것만이 있는 지난 20년, 또는 10년이었나? 역사는 공평해서 지난 40년동안 우리가 겪은 안보화와 산업화는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가져 왔다. 이 그림자를 지우기 위해서 지난 20년은 민주화의 문제가 상대적으로 안보와 번영의 문제를 압도했다. 그러다 보니 대단히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질서 속에서 당면한 안보와 번영의 문제를, 소박한 국내질서중심의 좌우 논리에 따라서 마음대로 재단하다 보니까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따라서 삼각형은 초보적으로 만들었지만 상당히 찌그러진 삼각형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동맹과 자주로 나뉘어져 싸운 것도 21세기에 바깥에서 보면 대단히 웃기는 얘기며 그 속에서 우리가 추구하려는 것이 미국이냐 중국이냐 하는 것도 21세기 지구 차원에서 보면 최소한 한 세기를 뒤떨어진 사고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논리가 국내적으로 상당히 설득력 있는 얘기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지난 20년이었다.


4. 2008~2068년 : 세 번째 환갑

 

2068년 세 번째 환갑을 맞이하면서 지난 60년은 그런대로 괜찮았다라고 평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 번째 환갑이나 두 번째 환갑보다 세 번째 환갑이 훨씬 더 어렵다. 외교통상부가 대오 각성하지 않으면 세 번째 환갑에 더 많은 비난을 받게 될 위험이 높은 앞으로의 60년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결국 살고있는 시대정신이나 시대 목표를 충족시키기 위한 대외적인 목표를 어떻게 추구하느냐 하는 것이 외교의 목표라고 하는 경우에, 21세기의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목표를 정확하게 잡는 것이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가. 21세기 국가의 목표 : 세계화, 정보 지식화

 

21세기 목표는 반드시 생소하지 않다. 구호로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으로 하나는 ‘세계화’이고, 또 하나는 ‘정보 지식화’이다. 그렇다면 왜 못하겠는가? 국가는 왜 못하고, 외교통상부는 왜 못하겠는가? 지난 20년 동안에 또는 최근 새 정부의 노력하는 모습에서도 이 목표는 구호로서만 이해되고 있지 체화된 모습으로 이해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체화하려면 어떤 식의 방향 설정과 행동지침이 마련되어야 하는가? 2008년이 60년을 마무리하는 해가 아니고 전혀 다른 새로운 60년의 시작하는 해이기 때문에 외교부는 이제 걸음마를 시작하는 것으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동안 60년 걸어오면서 익숙해진 사고와 행동지침으로 앞으로의 60년을 헤쳐 나간다면 우리 한국은 2068년에 드디어 세계에 우뚝 서지 않겠는가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착오에 빠질 위험이 높다.

 

나. 수단 I : 양적인 변화 - 외교 인력과 예산의 증대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서 국가들은 당연히 바깥과의 관계를 엄청나게 확대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경우, 공식 통계로 보면 약 2만 명의 외교관이 있고, 약 400억불 정도의 1년 예산을 투자하고, 일본의 외교관은 6,000명 가까이 되며, 60억불 정도 규모의 1년 예산을 투자한다. 우리 외교통상부는 모두 약 2,000명이며, 예산은 약 12억불 정도이다. 21세기의 세계화 추세는 대단히 빠른 속도로 강화되고 복잡해지고 있어서, 외교통상부의 부처 이기주의적 주장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혁명적인 인력과 예산의 증가를 하지 않고서는 세계 중앙무대에서 제대로 살아남기가 대단히 어렵다. 더구나 한국처럼 초강대국에 둘러싸여서 하드파워 게임에 못지않게 소프트파워 게임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경우에 점진적인 인력과 예산증가 정도만으로는 제대로 21세기 목표를 달성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이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새로 생각해야 될 시급한 문제라는 것이 첫 번째 지적이다.

 

다. 수단 II : 질적인 변화 - 네트워크(그물망) 복합사고의 체화

 

인력과 돈만 늘어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1948년에서 2008년과, 2008년에서 2068년은 전혀 다른 세계이다. 1888년에서 1948년의 60년과 1948년에서 2008년의 60년은 어떤 의미에서는 1, 2기로 나눌 정도의 유사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면, 우리가 앞으로 겪을 60년은 훨씬 단절적인 요소가 강한 부분이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양적으로 혁명적이라고 불릴만큼  인력을 늘리고 예산을 증액하는 동시에 질적으로 21세기를 선도할 수 있는 세계화의 전사들을 키워야 한다. 단순히 외교부 직원뿐만 아니라 20대, 30대의 한반도 젊은이들이 새로운 세계화와 지식화의 전사로 성장하지 않고서는 어렵다. 이들이 최소한 갖춰야 할 기본 덕목은 다음 두 가지이다.

 

(1) 그물망의 구축

 

우선 그 동안 기회 있을 때 마다 얘기했지만, 지난 두 번의 환갑동안 마련하느라고 힘썼던 근대적인 외교로부터 다시 한 번 네트워크 내지는 그물망 사고를 어떻게 빨리 체득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즉, 근대적 외교통상부가 그물망적 외교통상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동안 다자외교를 끊임없이 외쳐왔으며, 자주와 다자외교를 합치면 그것이 ‘그물망 외교’가 아니냐고 하는 주장이 바로 ‘비그물망적 사고’라고 생각한다. 옷감을 짜는 경우에 빈틈없이 촘촘히 짠 고급 옷감과 얼기설기 몇 개 실올로 엮은 천은 전혀 다르다. 하나는 물방울도 스며들 수 없을 만큼 짜진 명품 의상이라면 다른 하나는 최소한의 추위를 막기 위해 걸치는 다 해진 누더기라고 할 수 있다.
   
① 한미일/한중의 이중 그물망

 

그물망을 짜더라도 굉장히 복잡하게 짜야한다. 특히 한반도의 경우 그렇다. 시간이 별로 없으므로 간단히 나열만 해 보겠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새 정부가 친미반북정권이냐 아니냐 하는 정치 구호를 가지고 남북한이 싸우고 국내에서 오른쪽과 왼쪽이 싸우고 있다. 개인적으로 국내의 진보/보수는 21세기 문명사의 기준에서 보자면 다 보수라고 생각한다. 21세기 진보의 시각에서 보면 모두 뒤떨어진 생각이다. 따라서 친미냐 친중이냐 라는 냉전적 이중 잣대 수준으로 우리의 어려운 현실을 무리하게 재단할 겨를이 없다. 따라서 앞의 두 선생님들도 지적을 하셨지만 한미일을 한 축으로 하고 한중을 또 한 축으로 하는 이중 그물망을 현명하게 치는 새로운 복합사고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앞으로 다가오는 60년에 우리의 첫 번째 과제이다.

 

② 남과 북의 그물망

 

다음 과제로 남과 북의 그물망치기이다. 현재 남북한이 겪고 있는 핵문제를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있으나 솔직히 말씀드리면 21세기 남북한의 최대문제는 북핵문제이기보다는 북한선진화문제이다. 향후 60년 동안 한반도는 어떤 형태로든 얽혀질 수밖에 없는 세월로 들어갈 텐데, 그러면 남북한이 퍼주기냐 햇볕이냐 하는 소박한 싸움으로 세월을 보낼 것이 아니라 정말 북한의 21세기 선진화를 위한 국내외적 그물망을 짜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본격적으로 따지고 추진해야 한다. 냉전적 논의나 탈냉전적 논의가 모두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이미 역사적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친북이냐 반북이냐라는 구세대적인 논리의 싸움도 이제는 끝내야 한다.


③ 동아시아 그물망

 

세 번째 문제는 동아시아를 어떻게 엮어내야 할 것인가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아프리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모두 훨씬 센 주변 4국들에 둘러싸여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균형의 중심역할을 하기 어렵다. 동아시아를 향후 60년 동안에 제대로 엮지 못한 채 만약 미중의 긴장관계 속에서 한반도가 놓이게 된다면 우리는 다음 환갑을 19세기에 못지않은 어려움 속에서 맞이하게 될지 모른다. 동아시아 특수성 때문에 동아시아 공동체나 동아시아 국제사회 건설이 어려운 현실적 한계 속에서 동아시아 네트워크 복합체건설을 위한 국내 및 동아시아의 합의기반 창출이 대단히 중요하다.

 

④ 지구적 그물망

 

네 번째로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유럽을 포함한 지구 전체의 그물망의 구축이 대단히 중요하다. 전 세계에서 더 이상 세계화/반세계화 논쟁을 하는 선진국은 없다. 21세기에는 자기 나름의 세계화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이미 지구적인 합의기반이다. 한국도 하루 빨리 한국형 지구 그물망을 전 세계로 던져야 한다.

 

⑤ 사이버 공간의 그물망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인터넷 왕국인 한국이 추진해야 할 미래지향적 노력은 사이버 공간의 효율적 활용이다. 주변국가들에 비해 물리적인 공간이 상대적으로 좁은 한국은 21세기의 새로운 공간인 사이버 공간을 최대한 확보해서 전세계가 모범으로 삼을 수 있는 21세기의 복합 공간을 구축해야 한다.

 

⑥ 국내적 그물망

 

마지막 관건은 국내적인 그물망 문제이다. 앞에서 지적하셨듯이 우리 외교가 이제는 국내적 합의기반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 내교(內交) 없이 외교(外交)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외교가 국내 눈치만 보고 있을 수도 없고, 지금 이야기하는 21세기적인 안목으로 외교통상부가 방향을 잡고 사안에 따라서 민(民)을 끌고 가려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태까지 외교통상부가 이끌어 온  언론, 학계, 대민관계는 전면적으로 새로 추진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그 관계가 대개 사후적, 계몽적, 홍보적으로 이루어 졌다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를 포함한 민(民)과 학계와 언론들의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서 정책방향을 짜 나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특히 학계와의 관계도 정책홍보 단계가 아니라 정책입안 과정에서 외교부가 어떻게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할 것인가 하는 사고의 전환이 있어야 정책의 지적 네트워크가 마련될 것이다.

 

(2) 3층 복합무대 구축

 

①  4대 중심무대 : 안보, 번영, 환경, 문화

 

다음으로 말씀 드리려는 것은 21세기 네트워크를 짜나가는 새로운 무대 자체가 19세기에서 20세기의 안보와 경제 중심무대에서 훨씬 복잡해지는, 소위 말하는 ‘복합상영관’ 형태로 설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안보, 번영, 환경, 문화라는 4대 무대는 21세기 주인공들이 필수적으로 연기해야 할 중심무대이다. 과거의 군사, 경제 무대는 21세기에 들어서서 편협한 일국중심주의를 넘어서서 국가의 안과 밖 이해를 충분히 고려하는 안보와 번영 무대로 재건축되고 있다. 동시에 일국중심주의적 부강무대의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환경과 문화무대가 새롭게 신축되고 있다.

 

② 무대의 기반 : 정보와 지식  

 

21세기 무대구축에서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대 기반이 19세기에는 ‘경제’였다고 한다면 21세기에는 ‘정보’와 ‘지식’이다. 외교통상부의 정보지식화라는 의미는 아직도 숙지되어 있지 않다. 지금 미국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변환외교(Transformational Diplomacy)를 우리도 보다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 외교부의 정보지식화는 단순한 하드웨어적인 의미에서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다.

 

③ 삼층 다보탑 복합무대의 정치적 조종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삼중탑을 조종하는 정치무대를 복합화의 21세기에 국내․국제정치적으로 어떻게 운영하느냐 하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 외교도 삼층 다보탑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발현시킬 수 있게 짜지 않으면 2068년에 되돌아 본 지난 60년은 오늘 날씨처럼 굉장히 무덥고 지루한 60년이라는 느낌을 줄 수밖에 없다.

 

한국 외교의 두 번째 환갑잔치를 맞이하면서, 오늘 세미나 발제를 맡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하지만, 60년 후에 닥쳐 올 제3의 환갑을 보다 더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려면 오늘의 외교통상부가 정말 미래지향적으로 환골탈태해서 전력투구할 것을 다시 한 번 당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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