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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의 과제 : 대미관계를 중심으로
 

2005-01-10 

사랑방모임처럼 둘러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줄 알고  따로 발제문 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얘기 형식도 주제에 대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부연 설명하는 식으로 해보겠습니다.

 

한국미래학회 측에서 “요사이 비슷한 주제의 칼럼을 자주 쓰던데, 그 칼럼 에 쓰지 못한 뒷이야기가 있지 않겠나”며 그걸 말해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맡은 주제를 일단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쉬운 것을 오히려 어렵게 풀어 설명해서 듣는 분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경우가 자주 있습니다. 따라서 가능하면 논문 형식이 아닌 쉬운 방식으로 얘기를 시작 해보겠습니다. 그러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얘기의 끝이  굉장히 어렵게 돼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대충 이런 얘기입니다. 가끔 신문의 시론을 씁니다만, 최근 반년동안 똑같은 주제를 세 번 다룬 적이 있습니다. 비슷한 주제를 가지고 세 번씩이나 시론을 썼던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얘기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세 가지의 논란거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책담당자나 또는 국내에서 담론(談論)을 생산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국가적으로 엄청나게 중요한 일들을 지나치게 무감각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이 세 가지 논란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반년 사이에 같은 내용의 얘기를 세 번이나 한 중의 첫 번째는 지난해 12월 초에 “군사 한파를 대비하라”는 제목으로 쓴 시론입니다. 미국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발표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우리 사회에 보내는 조기경보라고 생각하고 썼었습니다. 지난 5월  미군 일부가 이라크로 떠나가면서 나타날 변화와 그와 연관된 의미를 우리가 제대로 읽고 있지 못한다는 생각에서 그걸 지적하는 글을 다시 한번 썼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최근에 주한 미군의 삼분의 일인 약 1만2천명이 예상보다 대단히 빠른 속도로 2005년까지는 빠져나갈 것이라는 공식 통보 조치가 이루어진 이후에 적은 글입니다. 세 번을 서로 연관지어 거의 같은 이야기를 반복했습니다.

 

최근 미국이 주한미군중에 1만 2천명이 떠난다고 발표한 날에 저는 어차피 예상된 수순(手順)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공식 통보가 있던 날 청와대 사이트를 들어 가보고는 굉장히 놀랐습니다. 청와대 사이트를 들어가니까 우리 NSC 사무처에서 작성한 공식적인 해설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정부 나름의  이런 해석이 들어있었습니다. 

 

내용의 핵심은 통보가 오긴 왔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념계획이다, 컨셉 플랜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한미간 협상에 따라서 철수 병력의 규모, 내용, 시기는 얼마든지 조정 가능한 것이니까 너무 불안해할 것 없다는 내용을 보고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당황한 이유는, 개인이 그렇게 생각하거나 또는 학자가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일단 일정 기간 ‘한국호’의 순탄한 항해를 위임받아 조종을 해야 할 입장에서 그렇게 판단하는 것을 보면, 우리가 겪어야 할 풍랑을 읽는 데에  중대한 착오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우리 주변에서 진행되는 사건들에 관한 언론, 방송, 텔레비전의 보도 내용들을 잘 믿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사태가 진행되는 실제 무대의 주인공 본인들의 직접적 언행 이외에는 별로 믿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천만 다행으로, 농담으로 들으실는지 모르지만, 외무부 장관이 나 같은 개인이 관악산 연구실에 앉아서 인터넷을 통해서 직접 접하게 되는 현장 내용보다 현장을 더 잘 알기가 어려운 것이 오늘의 현실입니다. 정보혁명 덕분으로 1인 NSC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우리는 미국 국방부나 국무부 또는 백악관 같은 사이트들을 하루에도 몇 번 씩 들어가 보게 됩니다.

 

첫 번째 놀랜 것은, 우리 정부가 아직 주한미군 변환 문제를 충분히 협상 가능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발표를 보고입니다.  미국의 통보 조치 배후에는 소위 해외 주둔 미군 재배치 검토( Global Defense Posture Review)가 이미 구체적으로 진행됐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이해의 혼란이 나타나자, 지난 6월 10일, 부시 행정부는 국내외언론 매체들 상대로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했었습니다. GPR  작업을 실제 맡고 있는  국무부, 국방부, NSC 당국자들이 직접 나와서 “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또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해서 굉장히 긴 배경 브리핑을 했습니다.  내용은 물론 미 국방부 인터넷에  떠 있습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우리 실무 당국자나 언론, 방송매체가 브리핑을 읽으면서도,  브리핑이 잘 보여주고 있는 주한미군의 미래를 제대로 못 읽는다는 것입니다. 미국 팀들이 하는 얘기를  잘 들어 보면, 자기네들이 지난 18개월 동안 인터에이전시 팀으로 GPR 작업을 해왔는데, 국무부는 조금 더 신중하게 정치 외교적인 고려를 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톤은 컨셉트 레벨이긴 하나 프린시플(principle)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영어의 프린시플을 번역하면 ‘원칙’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현실에서는 원래 원칙은 안 지켜지는 것이기 때문에, 원칙이  일단 세워 졌어도 그것은 변경되는 것이 원칙 아닙니까? 그런데 미국 팀들이 프린시플이라고 말하는 경우는, 특별한 사태의 변화가 없는 한,  그것은 지켜지는 행동의 지침입니다. 행동의 기본 가이드라인이 나왔을 때 “프린시플의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이죠. 또 미국 외교 정책사나 또는 대국의 외교사를 보면 대체로 원칙이 정해지면 그것에 따라서 항해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항해도도 없이 항해를 합니다만, 대국일수록 대체로 그것에 따라서 합니다. 그러면서 지난 해 12월 미 국방부 정책담당 부장관 더글러스 페이스가 밝혔던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의 다섯 가지 주요 원칙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재배치 계획의 첫 번째 원칙은 미국과 동맹 국가들의 이해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반(反)해서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원칙은 이처럼 새로운 검토를 하는 것이 냉전 시기는 주적(主敵) 개념이 명확했는데, 탈냉전, 더 나아가서는 9.11 이후는 불확실성이 주적 개념으로 등장해서, 대단히 불확실한 것과 싸워야하기 때문에, 냉전 시절의 주적 개념에 대응하는 병력․무기체계, 전략개념을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와 네 번째가 특히 우리의 이해가 부실한 부분입니다. 세 번째로 들고 있는 것이 공간 개념의 변화입니다, 조금 쉽게 말하면 지역이나 글로벌이라는 고착된 공간 개념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끊임없이 유동하는 공간개념을 사용하는 형태로 해외 주둔 배치군이 움직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속도(speed)에 대한 이해를 좀 더 해줬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시간적으로 과거 냉전 시기나 탈냉전 시기에 시간이란 개념이 갖고 있던 군사적인 의미와는 다른 의미로 동맹군을 운영하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 번째와 네 번째를 합치면 소위 시공간 개념의 변화라는 얘기가 됩니다. 다섯 번째 원칙은 숫자(number)가 아니라 능력(capability)이 관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군사력을 수로서 또는 양적으로 따질 일이 아니라, 능력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5대 원칙을 한마디로 요약 하면, 미 국방부 표현으로는 “ 더 이상 냉전이나 탈냉전적인 시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변환(transformation)의 시각에서 이루어지는 재조정입니다. 제가 최근 세 번에 걸쳐서 반복해서 미국의 새로운 언어 즉 변환의 의미를 하루 빨리 제대로 이해하고 21세기적 대응책을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만, 오늘 이 순간까지도 변환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한미 군사관계는 지금과 같은 문제의 혼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환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질문의 대답은 조금 뒤로 미루고, 미국이  5대 원칙에 따라서 움직이면 주한미군은 어떻게 된다는 것이냐 하는 문제를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6월 4일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싱가포르에서 개최한 연례회의에 미국 국방부장관인 럼스펠트가 참석해서 원탁회의(roundtable)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럼스펠트는  “주한 미군 중에 삼천 육백 명이 이라크로 가고 그것에 연관되어서 감축이 이루어질는지 모른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질문을 받습니다.

 

미국 국방 장관으로서 럼스펠트의 대답을 유심히 들어 볼 필요갸 있습니다. 럼스펠트는  실무 팀들이 지난 일년 반 동안 작업을 해서 마련한 5대 원칙을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럼스펠트는 5대 원칙을 다시 정리해서  자기가 생각하기에는 세 개의 원칙에 따라 운영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좀 찜찜한 것이 첫 번째 원칙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미군을 원하지(want)않는 지역에 미군을 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말부터 시작했습니다. 미군에 대해서 우호적이지 않은 지역에  해외 주둔 미군을 두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5대 원칙의 첫 번째 원칙을 실무 당국자들이 추상적으로 표현한 5대 원칙의 첫 번 째 원칙을, 럼스펠드는 조금 직설적으로 표현해서 요청하는 데에 둘 수밖에 없다는 것 입니다. 두 번째는 21세기 상황에서 병력을 대단히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usable)  곳에다 두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원칙으로 5대 원칙의 다섯 번째에 해당하는 능력(capability) 중심의 군사력으로 재구성하겠다고 대답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럼스펠트의 답변을 협상용으로 쉽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마는, 보다 조심스럽게 생각해야할 것입니다. 일단 미국의 의도를 읽는데는 대단히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3대 원칙을 염두에 두고 우리가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를 대응해 나가고, 협상하고 또 풀어 나가야 합니다. 

 

이야기를 구체화하기 위해서 두 번째 놀램과 연관시켜서 이야기를 좀 하겠습니다. 지금 말씀드린 다섯 개 원칙이 뭐 그렇게 새롭다는 것이냐, 또는 럼스펠드가 이야기한 세 개의 원칙이 도대체 우리한테 어떤 불안이나 위협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가령 1950년대에 애치슨라인이 가졌던 의미와는 어떤 연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과 연관해서 제가  좀 복잡하게  5원칙, 럼스펠드 3원칙을 말했습니다만, 한마디로 줄이면 변환 원칙에 따라서 해외주둔 미군을 재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변환의 의미를 못 읽는 것이 내가 느꼈던 두 번째 놀램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칼럼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지만 1880년에 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을 방문하여 주일 청국공사인 하여장(何如璋)을 만났을 때, 하여장이 김홍집에게 균세(均勢)를 아느냐고 묻습니다. 김홍집은 균세라고 하는 한자를 당시  청나라에 선교사로 와 있던 마틴에 의해서 번역된 만국공법(1864)에서 봤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균세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답변하고 있습니다. 지금 미국이 주한미군 재배치협상을 하면서 변환(transformation)의 의미를 아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그 단어는 봤는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어떻게 진행되는지 모르겠다고 답변한다면  100 여 년 전과 똑같은 수준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구체적인 놀람은 지난 연말쯤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안보문제나 군사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소들이 여럿 있습니다. 거기서 연구에 전념하는, 상대적으로 젊은 분들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마침 망년회를 하는데 와서 도움될 이야기를  짧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별 부담감 없이 갔습니다. 그때가 마침  부시 대통령이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계획을 공식으로 선언했음에도 우리가 그 의미를 충분히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 같아서  “군사 한파(寒波)를 대비하라”는 시론을 쓴 직후였습니다.

그래서 얘기를 시작하기 전에 “하나 물어봤으면 좋겠다. 했고, 그래서 뭘 물어봤냐 하면 미국 국방성(DOD) 웹사이트를 보면 OFT(Office of Force Transformation)라는 조그마한 오피스가 있는데, 그 사이트를 주의 깊게 분석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 사이트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는, 작은 놀램인지 큰 놀램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굉장히 당황했습니다. 이제까지 OFT를 자세히 검토하지 않았다면, 하루 빨리 작업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21세기 주한 미군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제대로 이해하려면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 사이트를 내가 개인적으로 왜 중요하다고 자꾸 강조하는가 하면, 변환의 철학과 전략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려면, OFT 문건에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관계자들은  그 사이트의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변환(Transformation)이라는 영어는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군사적인 의미에서 미국이 변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97년 무렵입니다. 소위 말해서 미국 군사 전반에 대한 것을 재검토하는 일련의 작업으로서 4개년 국방재검토(Quadrennial Defense Review)가 QDR 1(1997), QDR 2(2001)로 각각 나왔습니다.

 

1997년에 QDR 1이 처음 나왔을 때, 우리 현실과는 달리 QDR의 한계를 객관적으로 검토하기 위해서 국방패널(National Defense Panel)을 동시에 구성해서 운영했습니다. NDP는 QDR1이 조금 더 장기적으로 문제를 보고 문제를 검토할 필요가 있으며, 변환 (transformation)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부시는  대통령 선거유세에서 앞으로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변환을 중심 개념으로  병력이나 무기체계나 전략개념을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따라서 부시가 대통령이 되자마자 신임 국방장관인 럼스펠트는 변환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럼스펠트는 변환을 담당할 특별 기구를 만든 것이 조금 전에 말씀드린 OFT이고, 거기에 좌장으로 소위 ‘그물망 전쟁’(Network Centric War)이라는 전쟁개념으로 유명한 세브로스키 전(前) 해사(海士)교장을 임명했습니다. 이 팀이 지난 3년 동안 변환의 원칙에 따라서 미국의 전 군사 분야를 어떻게 조정하면 되는가하는 기초 작업을 해왔던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이런 것입니다. 냉전에서 탈냉전으로의 새로운 변화를 겪으면서, 미국 군부 내에는 큰 변화 없이 현상 유지를 원하는 쪽, 즉 새로운 주적 을  설정하고  지속성을 주장하는 쪽이 있었고, 또 한쪽으로는 군사 분야에서 아주 혁명적인 변화가 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래서 영어표현으로는 군사혁신(Revolution in Military Affairs)을 내세우는 주장이 형성되면서 군부 내에서는 치열한 싸움이 있었습니다. 소위 기득권 쪽에서 혁명적인 변화 대신에 지속성을 강조한 배경은 혁명적인 변화라고 하면 예산, 병력, 무기 체계, 인사 모든 것이 다 바뀌어야 하니까 그 문제점을 줄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와중에서 90년대 초반에 걸프전을 치렀고, 또 최근 9.11이후 아프가니스탄전, 이라크 전을 치렀습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지나친 현상유지도 안 되고, 지나치게 혁명적인 변화도 내부적 부작용을 낳으니까 그 중간 타협점을 찾은 것이 변한이었습니다. 이런 변환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OFT를 유심히 봐야 합니다.

 

우리 실무자들이 아직도 변환의 철학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지 못한데, 변환의 핵심은 두 마디로 요약 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능력(capability)을 강조합니다. 산업화 시대를 넘어선 정보화 시대에 대응하는 군사력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정보무기(information weapon)이나 정보력(information power)을 중심으로 한 능력을 상대적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혁명이 아니기 때문에 핵능력이라든지 재래식 무기체계를 완전히 없애고 다 정보부기(IT weapon)쪽으로 전면 개편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비중치가 급격하게 바뀌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걸프전하고 10년 후에 이라크 전을  비교 해봐도 그 비중치가 거의 10배 이상 증가 합니다.

정보와 연관된 무기체계나 병력이나 전략개념들의 변화에 대해서는 우리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할 수 있으나, 두 번째가 더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두 번째로 이 사람들이 변환에서 강조하는 것은  새로운 무기체계를 사용하는 방식이 종전하고는 달라졌기 때문에 ‘遍在性(ubiquity)’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아시다시피 컴퓨터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로서 “어느 시기(any time), 어느 곳(anywhere)”이라는 뜻입니다. 조금 다른 표현으로 하면,  유동성(fluidity)이란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유동성은 액체가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는 상태입니다. 더 이상 어느 한 곳에 고여 있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 개념입니다. 따라서 주한미군 철수와 관련해서 미국은 21세기 언어로 이야기하는데, 우리는 그것이 냉전 언어이건 탈냉전 언어이건 20세기 언어로 그 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주한 미군 철수’라 함은 의미 없는 표현이라는 이유도 아 미국이 새로운 병력, 무기 체계, 전략 개념을 새로운 형태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따라서 유동성과 정보기반 군사능력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는 우리는 대혼란에 봉착할 것입니다. 사태가 그렇게 되면 결국 어떤 현실에 직면하느냐 하는 것입니다.“병력이 1만2천 5백병이 나간다, 안나간다” 하는 데까지는 우리 정부가 이해하거나 우리 언론 방송매체가 이해하는 내용이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그것 자체는 큰 의미가 없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편재적(ubiquitous)으로, 또는 유동적(fluid)으로 움직이는 것이라면,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형태로 움직인다는 뜻이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몇 십만이 며칠 사이에 충원될 수도 있고, 경우에 따라서 순식간에 제로가 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따라서 그 면에서는 놀랠 것이 없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에,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위기 상황을 누가 어떻게 판단해서 군사력의 흐름을 그쪽으로 흐르도록 결정할 것인가, 군사력을 보냈다가 뺐다가 하는 결정하는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가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로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신용경제 사회와 유사한 ‘신용군사사회’가 드디어 등장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군사 무대도, 더 이상 현금기반(cash base)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신용기반(credit base)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소위 신(信)을 용(用)해야 되는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죠. 따라서 만약 안보 IMF가 올 경우 우리가 군사력을 빌리려 할 때에 어떻게 빌릴 수 있는 것이냐, 가지고 있는 크레디트 카드를 집어넣었을 때 현금이 나올 것이냐 안나올 것인가, 만약 신용불량자로 평가받고 있는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따라서 그렇게 되면 역설적으로 주한 미군 자체보다도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냉전시기보다 훨씬 더 중요해지게 됩니다. 우리의 지금 인식 수준이 “이렇게 갑자기 통보를 했으니까 앞으로 그런 일이 없게 사전 통보 체제를 마련하자”는 것을 집요하게 미국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체제를 만드는 것은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그 체제 속에서 상호간에 갖고 있는 ‘신(信)’의 수준이 지금 우리에겐 핵심적인 문제입니다.

 

신용이 있으면, 아까 말씀드린 대로, 어차피 병력이나 무기체계나 전략 개념 자체가 정보화 사회에서 새로운 형태로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과거와는 다르게 움직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미국이 이야기하듯이 정태적으로 여기에 병력을 두지 않고, 재고(stock) 대신에 유동(flow)개념으로 계속해서 돌리겠다고 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유동의 방향을 우리가 유사시에, 그것이 남북한 상황이건 또는 동아시아 상황이건, 우리방향으로 즉각적으로 돌릴 수 있도록  크레디트카드를 쓸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두 번째의 비중이 얼마나 커지고 있는 지에 대해, 우리의 이해가 크게 부족합니다. 세계를 보는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보수적인가, 세계는 그것보다는 얼마나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하는 얘기를 끊임없이 제기하고 있습니다만, 실상은 이해가 부족하고 그래서 21세기 미국이 강조하고 있는 변환의 의미를 전혀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두 번째 놀람입니다.

 

마지막으로 21세기의 주한미군 변환은 더 이상 1945년 이후 냉전 기간의  주한미군 철수와는 전혀 다른 변화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 문제에 대한 우리의 대응방식이 세 번째 놀램을 가져다줍니다. 이라크로 차출한 주한미군 3천6백 명은 한국으로 다시 안 돌아온다고 미국 국방부가 이미 공식적으로 발언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날 우리 국회에서는 돌아오느냐 안 돌아오느냐 가지고 하루 종일 싸웠습니다. 또 우리 언론도 세계화시대, 정보화시대라 말하지만, 단순히 미국의  언론, 방송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미국 국방부의 공식 사이트에서 담당관리가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무장관도 잘 모르겠다, NSC도 모르겠다니까 정말 모르겠다는 것이 우리의 수준입니다.

 

다음으로  칼럼을 쓰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도 걱정이지만, 더 걱정스러운 것은 새로운 상황 전개에 대해서 자주국방 또는 협력적 자주국방을 하겠다는 이야기는 대통령이 제발 안 했으면 좋겠다, 그건 서로 아귀가 안 맞는 이야기다,자주는 변환( transformation)의 대귀(對句)가 아니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그 칼럼을 썼던 그 날 오후에 노대통령은 정확하게 ”주한미군의 변환에 대해 대응하는 방법은 협력적 자주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NSC 수준의 소박한 발상이겠죠.이 걸 보면서 굉장히 난감한 것이 자주란 원래 좋은 의미의 말이지만 상대방이 변환을 추진하는  경우에 적절한 대응 방식이 아닙니다.  왜 우리가 자주나 협력적 자주라고 하는 발상으로만 이 문제를 극복하려 하는가가 문제입니다.

 

아까 비유적으로 말씀드리면, 현금과 신용카드의 비유로 되돌아가 보겠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자주만으로 해 보겠다는 것은 19세기식 위정척사(衛正斥邪)의 발상이고, ‘협력적 자주’라는 것은 탈냉전의, 자유주의적 안보개념 수준에서 하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미 상대방은 그 생각에서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어디로 가는지를 우리가 지금 모르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면 병력이 유동하기 시작하는 경우에 남북간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이 만약 아까처럼 한국과 미국이 유사시 판단을 완전히 동일하게 하고, 그것에 따라서 대단히 신속하게 대응해 나갈 경우는 그런 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거기에 차질이 있다 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유사시가 없으면 됩니다. 남북간에 유사시가 없고 동아시아의 유사시가 없으면 됩니다.

 

문제는 저희가  차타고 다니다가 자동차 사고가 나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인생살이보다도 국제정치 인생살이는 더 험악합니다. 오늘 환하게 웃던 관계가 내일 돌아서서 비수를 꽂아왔던 것들이 국제정치에서 되풀이 했던 역사입니다.

 

적어도 바로 전쟁이 나지 않는다 해도 군사력을 갖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평화의 시대가 가까이 오고 있다 하면서도 왜 남북한은 아직도 군사력을 축소하지 못하고 있고, 일본은 왜 자위대에서 평화군으로 가지 않고 오히려 전쟁군의 형태로 바꾸려고 합니까. 중국은 소강사회(小康社會)를 2020년까지 건설하기 위해 모든 것을 ‘화평불기(和平崛起)’로 곧 평화롭게 대국으로 나아가겠다고 공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국이 군사력을 끊임없이 증가시키고 있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이런 의미에서  미․중․일․러의 제국에 둘러 쌓여 있는 분단 한국으로서 군사보험이나 군사은행의 신용 없이 자주(自主)하겠다는 것은 현금으로만  한평생의 생활을 운영하겠다는 것입니다. 생활의 기복은  국내외의 경제 기복에 따라서  쉽게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물확실성을 개인이 보유하고 있는 현금으로만 대비하려 한다면, 현실적으로 비효율성의 극치를 겪게 될 것입니다. 결국은 북이 선택한 선군주의(先軍主義)처럼 가장 후퇴된 형태의 사회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예상됩니다.  

 

그러면 유사시의 대비로  최소한의 현금을 가지고 나머지는 신용 카드로 운영하려는 경우에 신용 카드를 쓸 수 있는 은행들과 신용거래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중에 가장 큰 은행에서  신불자(信不者)로 분류된 경우는 나머지 은행에서도 당연히 신불자로 분류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생각한다면 미국이 변환의 형태로, 주한미군을 새로운 정보사회에 맞는 유동적 정보기반 군사능력의 형태로 재조정하는 모습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어 그래, 네가 나가? 그러면 우리는 자주국방으로 해보겠다” 하는 경우에 거의 북쪽 모델에 가까워지는 사태가 발생할 것입니다. 기회비용의 면에서 나머지 것의 상당한 피해를 감수하면서 우리도 군사력을, 선군(先軍)의 비중을 굉장히 높여야하는 딜레마에 빠집니다.

 

저는 그것이 21세기 현명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한쪽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나하면, 가령 이 기회를 이용해서 남북한 관계를 전면적으로 개선하고, 중국관계를 전면적으로 확대하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유사시가 생기지 않아서, 신용거래를 할 필요가 없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가시화되기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또 적어도 그 과정에서 은행이나 보험회사를 활용하지 않고서는 그런 과정을 밟아나가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완전히 현금만으로는 안되겠다, 그러면 결과적으로는 신(信)을 이용해야겠는데 그런 경우에 우리가 신을 얻어내는 방식은 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IMF를 겪었습니다만  IMF가 제시하는 조건들을 일방적으로 다 수용하느냐, 아니면 한도 내에서 조정하느냐 하는 것 입니다.

 

바꿔서 얘기하자면 우리 경우에도 적절한 의미에서 변환이 필요합니다. 자주국방 또는 협력적 자주의 기반에서 우리 군사문제를 전면적으로 재조정하겠다, 이렇게 발상(發想)하는 한 아마 신을 용하는 형태로 관계를 설정하는데, 또는 앞으로 일련의 조정과정에서 굉장히 난항을 거듭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21세기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가 군사문제의 과부하를 겪게 되는 경우에는 엄청난 후퇴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주 좋은 예로  중국의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소위 대국의 지혜겠습니다만, 중국은 적어도 2020년까지는 소강상태를 제일의 목표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걸 위해서는 치사하고 아니꼽고 더럽더라도 미국하고 원칙적으로 안 싸운다는 것입니다. 중국이 2020년이 돼서  경제적으로 충분히 강력해지면 그때 가서 미․중관계를 새로운 단계에서 재조정하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경우도  최대의 관건이 경제라 한다면 경제를 최대의 우선 목표로 삼고  군사안보나 남북관계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경제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풀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자면 자주나 또는 협력적 자주를 넘어선 형태에서 최소한의 경비로 최대한의 안보를 획득하기 위해서 국제 신용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것을 고민해야 될 시점이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지금 현재 우리 사회의 정서나 정책 실무자의 정서에서는 “미국으로부터 당당해져야 된다” 하는 보이지 않는 정서 때문에, 그것이 문제의 핵심임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제가 마지막으로 말한 세 번째 놀람입니다.

따라서 이런 세 가지 놀람 때문에 아마도 ‘한국호’가 앞으로 나아가는 방향에서 의외로 많은 암초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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