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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여 세계의 변화를 바로보자
 

2005-01-10 

21세기는 변환의 세기이다.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변화가 어제와 완전히 단절된 혁명은 아닐지라도, 더 이상 어제의 단순한 지속은 아니다. 21세기에 변화하는 것과 변화하지 않는 것이 절묘하게 어울려서 엮어내는 변환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스스로를 창조적으로 변환시킬 수 있는 정치세력은 역사의 주인공으로 활약하게 될 것이며, 그렇지 못한 세력은 무대에서 밀려나게 될 것이다.

 

21세기 세계무대의 변화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주인공, 무대, 연기의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 우선 주인공의 변화를 보자. 한반도가 위치하고 있는 동아시아 무대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천하질서를 주도해 온 중국과 그 질서 속에서 상대적 자율성을 지켜 온 세력들의 공연장 이였다. 한국을 비롯한 중국과 일본의 동아시아 3국은 19세기에 들어서서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을 맞이해야 했다. 근대유럽의 역사적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국, 러시아, 독일, 불란서와 같은 제국형 국민국가들이 지구차원에서 힘의 각축을 벌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동아시아는 20세기에 들어서서 한국이나 중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빠르고 쉽게 유럽의 부국강병국가 모형을 받아들인 일본 지역제국주의의 통치라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한국은 무대에서 완전히 쫓겨나는 역사적 수모를 당해야 했다.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세계무대는 미국과 소련을 주인공으로 하는 냉전의 막을 올렸다.  미국과 소련이라는 초강대국을 중심으로 정치, 군사, 경제, 이념적 대결을 벌렸던 20세기 후반 냉전질서는 소련의 해체(1991)와 함께 막을 내렸다.

 

21세기 세계의 주인공

 

탈냉전질서는 미국이라는 단독주연의 일방적 무대에 그치지 않고, 주인공과 무대의 복합화라는 탈 탈냉전 질서의 새로운 변화를 겪기 시작했다. 국가가 여전히 주연이지만, 국가 밖의 지역조직, 세계조직 및 네트워크, 국가안의 시민사회조직, 개인을 포함한 새로운 연기자들이 무대에서 과거보다 중요한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대도 복합화 되기 시작했다. 근대무대의 중심인 군사와 경제는 국가이익뿐만 아니라 국가안과 밖의 이익을 함께 고려하는 안보와 번영으로 새로 꾸며지고 있다. 동시에, 지식, 환경, 문화, 조종외교의 새로운 무대가 빠르게 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의 와중에, 200여 년 전에 독립한 이래, 국내안보에 커다란 위협을 직접적으로 겪어보지 못했던 미국이 21세기에 들어서자마자, 3천명이상의 일반시민이 사망하는 9.11테러를 겪었다. 21세기 세계질서의 주인공논의는 훨씬 복잡해졌다. 논의는 크게 세 유형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우선, 미국 우세 론이다. 이 논의의 대표주자인 스태픈 부르크스(Stephen G. Brooks)와 윌리엄 볼포스(William C. Wohlforth)는 21세기 국력평가의 기준으로 군사, 경제, 기술력을 사용하여 미국우세의 장기 지속가능성을 예측하고 있다. 군사력을 보면, 미국은 군사비를 미국다음으로 군사비를 많이 쓰는  15-20개 국가들의 군사비 총합계보다 더 쓰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핵력, 재래식 군사력, 첨단 군사력의 모든 영역에서 압도적 우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경제력우위는 근대이래 자신의 제2차 세계대전직후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경제는 현재 세계2위의 일본경제보다 두 배가 훨씬 넘는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21세기 국력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부상하고 있는 기술력의 경우에도, 미국의 연구개발비가 미국다음의 7대 부국 연구개발비 총합계와 맞먹는다. 이들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역사상 미국만큼 국력의 모든 요소에서 우위를 점한 경우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 미국에 대항할만한 세력의 등장을 예상하기 어렵고, 반미 역량결집도 어렵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쇠퇴론이다. 세계체제론의 대부인 임마누엘 왈러슈타인(Immanuel Wallerstein)은 이라크전이 시작되기 전에 쓴 글에서  미국이란 독수리가 불시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군사, 경제, 이념적인 면에서 설명하고 있다. 우선, 군사적인 면에서,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1960년대의 월남전같이, 부시행정부는 이라크를 공격하거나, 신속하게 승리하거나, 우호적이고 안정적인 정권을 수립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다음으로, 경제적인 면에서, 1980년대에 경제 기적을 향유했던 일본이 오늘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처럼, 오늘의 미국 경제도 보장된 것이 아니다. 특히, 역사적으로 군사에 주력한 패권국들이 경제에 주력한 도전 국에 의해 교체됐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념적으로, 부시행정부의 오만한 강경론은 국내외적으로 설득력이 없고, 호응이 약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중론이다. 1980년대 미국의 상대적 쇠퇴론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던, 죠셉 나이(Joseph S. Nye Jr.)는 21세기 미국 우세론에 대해 조심스러운 신중론을 펴고 있다. 그는 21세기 세계질서를 복합 3차원 서양장기에 비유하고 있다. 맨 위의  군사 장기판에서는, 핵력과 재래식 군사력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는 미국이 단극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주간의 경제 장기판에서는, 미국이 유럽, 일본과 함께 세계생산의 2/3를 차지하면서, 다극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두 장기판만 들여다보면 세계는 단다극질서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세계는 훨씬 더 복잡해지고 있다.  맨 밑의 장기판에서는, 테러나 지구금융거래같이 정부통제밖에서  국경을 넘어서는 초국가관계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장기판에서는 힘이  단극이나 다극을 넘어서서 훨씬 넓게 퍼져 있다. 따라서  미국이 21세기 세계질서를 계속 주도하기 위해서는 세 개의 장기판을 동시에 잘 두어야 한다. 특히, 그는 군사력과 경제력에 못지않게 상대방이 자진해서 따르도록 만드는 부드러운 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군사와 경제 초강대국인 미국은 오만과 일방주의의 위험을 벗어나서, 상대방들의 도움과 존경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21세기 미국의 장래에 관한 논의들은 2003년의 이라크 전을 치르면서 희비의 엇갈림을 겪어야 했다. 쇠퇴론의 예상과 달리 미국은 악의 축의 대표 주자로 분류한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기 위한 군사전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 예상 밖의 신속한 승리를 얻었다. 결과적으로 신보수주의자들의 우세론의 득세와 비판 지식인들의 쇠퇴론의 약화 가능성이 커졌었다. 그러나 부시행정부는 전후 질서 구축에 예상을 넘어서는 어려움에 직면함에 따라, 우세론 대신에, 신중론이 21세기 미국의 미래에 관한 담론의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하고 있다. 신중론이 담론을 본격적으로 주도하기 위해서는 보다 깊이 있는 논의를 필요로 한다. 왜냐 하면, 미국의 21세기 세계질서 주도논쟁의 역사적 평가는 21세기 문명표준을 누가 보다 정확하게 읽어내고, 미국의 역량을 새로운 문명표준에 따라 얼마나 정확하게 측정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세계질서의 문명표준은 국민 부국강병국가에서 그물망복합국가로 변환하고 있다. 21세기 세계질서의 주도국이 되기 위해서는 안과 밖으로 그물망을 친 국가의 모습으로서 안보, 번영, 지식, 문화, 환경, 조종외교의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활약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복합론의 시각에서 보면, 미국은 21세기 세계질서의 조건부 주도국의 위치에 있다. 우선 근대 문명 주인공의 표준에서 보자면, 미국은 전 세계국가들 중에 당분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미래 문명 주인공의 표준에서 보자면, 미국이 현재의 주도적 위치를 유지하려면 무대위의 다른 연기자들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그물망 속에 엮어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동시에, 미래 문명 무대의 표준에서 보자면,  그물망국가로서 미국이 근대 문명 무대의 표준인 일국 중심의 부국강병 무대를 넘어서서, 복합 공생의 안보 번영 무대를 주도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지식, 문화, 환경, 조종외교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21세기 미국은 근대의 패권적 지배나 탈근대의 상호 협력을 넘어 서는 복합시대의 새로운 담론과 행동 양식을 필요로 하고 있다.

 

21세기 역사의 주인공으로 미국에 이어 주목받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다. 그러나 21세기 중국을 전망하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우선, 낙관론의 시각에서 보자면, 중국의 21세기 주인공으로의 부상은 확실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쳐서 문화대혁명이라는 장기간의 고난의 행군을 겪은 중국이  1978년부터 개혁개방정책을 추진하여 지난 사반세기동안 지속적으로 연9%라는 고도성장을 이뤄왔다. 중국경제는 21세기에 들어서서 드디어 1인당 국민소득 천불, 전체 국민소득 1조3천억 불을 넘어서서 세계 제6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중국정부는 2020년까지 중국 국내 생산총액을 네 배로 늘려 중등 사회생활을 전면적으로 건설할 꿈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 꿈이 실현된다면, 중국은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세계 제2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더구나 두 나라 화폐의 실질적 구매력을 감안하면, 사실상 중국경제력이 미국경제력을 능가할 수 있다는 전망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론에 대해서는 만만치 않은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중국경제가 지난 사반세기 고도성장을 성공적으로 지속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당면하고 있는 빈부격차, 실업, 부패 등으로 불가피하게 조정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더구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중국경제가 중장기적으로 지속적 고도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공산당 일당독재를 넘어선 21세기형 중국 정치체제의 마련이라는 커다란 숙제를 풀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경제지표에만 의존한 21세기 중국의 미래전망은 보다 신중하게 해야 하며, 정치 개혁의 성패 여부에 따라서는 상당한 기간의 조정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낙관론과 비관론을 넘어서서 보다 21세기의 시각에서 중국의 미래 주인공을 점치는 경우에 우선 조심해야 할 것은 중국경제의 비약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의 필수 조건인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미국과 비교하면 커다란 열세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군사력의 경우에는 미국이 9.11 테러이후 반 대량살상무기 테러전의 수행과 함께 연군사비를 4천억불이상 지출함으로써 연 세계군사비총액의 50%를 육박하고 있다. 한편 중국도 군사비를 꾸준히 증가시켜왔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서 공식 발표로는 200억불, 비공식 추정으로는 400-600억불을 쓰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중국의 군사비 지출은 미국의 1/10 수준이다. 경제력의 경우에도, 중국의 총국민소득이 1조3천억불인 것에 비해서 미국은 10조불을 넘고 있다.  중국 경제는 미국 경제의 약 1/8정도 인 셈이다. 21세기의 주인공이 되기 위한 새로운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정보/지식력, 문화력, 환경력의 경우도 중국은 미국과 비교하면 경제력이나 군사력보다도  더 뒤늦게 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중국이 미국을 따라 잡기 위해서는 미국이 오만과 일방주의 때문에 21세기 제국운영에 결정적으로 실패해서 장기적인 침체기를 맞이하고, 반면에 중국은 지속적 고도성장을 거듭하면서 21세기의 새로운 주인공 조건까지를 갖춰 나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러한 극단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미국은 우여곡절 속에서도 여전히 21세기 역사의 주인공으로 활약할 것이다. 한편, 중국은 미국과 대등한 주연이 아닌 주연급 신인으로서 무대에 서게 될 것이다. 이와 함께, 일본과 유럽연합이 조연의 주인공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21세기에 들어서서 경제적으로는 4조불을 넘는 총국민생산으로 여전히 세계2위의 경제대국이며, 동시에 군사적으로도 연군사비지출이 400억불을 넘어섬으로써 세계2위 규모의 군사비지출국가로 부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국중심의 부국강병에는 익숙해도 21세기형 주인공의 자질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일본은 미국의 보조 동반자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 한편, 2004년  5월 1일에 동 유럽중심의 10개국을 더 받아들여서 25개국의 회원국으로 이루어 진 유럽연합은 인구 4억5천만 명에 국내총생산 11조불의 새로운 이중구조의 복합국가의 틀을 보다 구체화 해가고 있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21세기의 새로운 주역으로서  보다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의  실험기간을 거치게 될 것이다.

 

21세기 세계무대의 새로운 특징은 근대이래 지난 500년 동안 대표적 주인공의 형태였던 국가이외에 새로운 형태의 주인공들이 국가의 안과 밖에 나타난 것이다. 근대 국민국가의 지구적 확산이었던 19세기의 국제화와는 달리 사고와 행동이 국가를 넘어서서 지구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는 21세기의 지구화 추세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구체적 예로서는 전 세계에 6만개의 본사와 50만개의 지사를 자랑하는 초국가기업들과 9.11테러이후 세계적 각광을 받고 있는 초국가 테러조직을 대표적 예로 들 수 있다. 21세기 지역화의 구체적 표현인 유럽연합도 또 하나의 새로운 주인공이다. 국가 안에도 현안 문제에 따른 다양한 시민사회조직과 지방화에 따른 지방자치단체들이 새로운 주인공으로서 등장하고 있다. 과거에는 국가 안과 밖의 주인공들이 명실상부한 국가라는 주연에 종속되어 있었으나, 점차 상대적 자율성을 키워 가면서 단역에서 조역으로, 조역에서 주연으로 서서히 성장하고 있다. 따라서 21세기 역사의 진정한 주인공은 이러한 다양한 주인공들이 국가를 중심으로 안과 밖으로 입체적으로 그물망 화된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있다.


21세기 세계의 무대


21세기 세계의 무대도 바뀌고 있다. 오랜 역사동안 한국과 중국, 일본을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중심무대는 사대교린의 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는 예(禮)의 무대였다. 19세기 중반에 영국을 비롯한 구미열강들이 동아시아 무대에 새로운 주인공으로 등장함과 함께 중심 무대도 부국과 강병으로 바뀌었다. 부국과 강병무대에서 일국중심의 치열한 경쟁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 뒤를 이은 냉전의 비극을 가져 왔다. 한반도를 제외한 전 세계의 냉전이 막을 내리고 21세기를 맞이하면서 무대의 내용은 서서히 변환하고 있다.

 

국제정치 무대의 가장 중심을 이뤄왔던  전쟁과 평화의 무대는 탈냉전과 함께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다. 탈냉전의 기대는 일국중심의 생존극대화를 모색하는 군사무대가 초래하는 공멸이라는 안보의 자기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지구 및 지역의 안보와 사회 및 개인의 안보를 함께 고려하는 안보무대의 등장을 기다렸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세계안보질서를 주도하는 미국이 9.11테러를 겪게 됨에 따라 21세기 세계안보질서의 최우선적 성격을 반테러전 질서로 규정하고, 새로운 질서 구축에 나섰다. 미국은 지구적으로 그물망 화되고, 대량살상무기 사용의 위험성이 높은 21세기 테러조직과 싸우기 위해  테러조직을 파괴하고, 테러 지원 국을 제거하며, 테러 발생의 잠재적 조건들을 약화시키고, 마지막으로 국내외의 미국 사람과 미국의 이익을 방어한다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세계를 대량살상무기테러 조직과 지원국가라는 악의 축과 반대량살상무기 테러국가와 지원국가라는 선의 축으로 양분했다. 그리고 악의 축 세력에 대해,  군사전, 정치전, 외교전, 경제전, 법치전, 정보전의 6면전을 시도하고 있다. 군사전은 대량살상무기 테러세력과 지원국가에 대한 공격과 미국본토를 테러에서부터 보호하려는 국토방위전을 수행하고, 정치전은 대량살상무기 테러세력과 지원국가들의 정치세력들의 변화를 추진한다. 한편, 외교전은 반테러전의 정보, 병참, 군사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국제협력을 도모하며, 경제전은 테러조직의 자산을 동결하고, 테러리스트 재정지원 목록을 작성하며, 법치전은 테러용의자를 찾아내고 체포하며, 그리고 정보전은 테러의 단서들을 찾아내고, 위협을 분석하고 있다.


9.11테러이후의 미국은 세계안보질서의 재구축 노력을 동북아에서도 구체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우선 미국의 21세기 동북아 정책 중에 단기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반대량살상무기 테러전의 틀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북핵문제의 해결과 이라크 전을 위한 지원이다. 부시 행정부는 9.11 테러이후 지구 안보를 위한 핵확산금지정책의 시각에서 다루던 북핵문제를 반대량살상무기 테러전의 시각에서 새롭게 다루기 시작했다. 미국은 북한을 테러 조직에게 대량살상무기를 지원할  위험성이 있는 대표적 악의 축 국가로서 분류하고,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고 검증 가능한 북핵 폐기를 미국 안보의 필수 조건으로 삼고 있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미국은 6자회담의 외교적 수단과 경제 제재, 육상, 해상, 공중의 정지 및 나포, 군사적 선택으로 구성돼 있는 확산안보구상(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의 비외교적 수단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이러한 노력은 쉽사리 가시적 성과를 거두기 어렵다. 왜냐 하면, 북한은 북핵 문제의 원인을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에서 찾고 있다. 따라서 핵문제 해결의 기본 열쇠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전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 정책을 전환시키기 위해서는 협상의 방도와 핵 억지력의 방도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은 협상의 방도로서 동시행동원칙에 기초한 일괄 타결의 방법을 제안하고, 구체적 일괄 타결의 내용으로서는 군사적 위협을 완전무결하고, 검증 가능 하고, 되돌아 설 수 없게 제거하는 ‘서면안전담보’, 북미관계 수립, 북일, 남북경제협력 실현, 전력손실 보상 및 경수로 완성을 요구하고 이에 대해 핵무기 제조 포기와 사찰 허용, 핵시설의 궁극적 해체, 미사일 발사 보류와 수출 중지를 들고 있다. 그러나 미국주도의 6자회담과 북한의 평화적 방도가 가시적 성과를 마련하가는 쉽지 않다. 북한은 ‘동결과 보상’의 원칙 하에 포괄적 비핵화 아닌 동결에 대한 보상으로서 불가침의 실질적 담보와 경제 지원을 집요하게 요구할 것이며, 미국은 뿌리 깊은 북한 지도부에 대한 불신 때문에 포괄적 비핵화를 강하게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협상이 쉽사리 합의를 마련하지 못하면, 북한은 다시 핵 억제력의 공개 위협을 할 것이며, 미국은 확산안보구상을 보다 구체화시켜 나갈 것이다. 이러한 위기 국면이 궁극적으로 북핵 문제의 해결을 가져오게 하려고, 미국은 중국과의 긴밀한 협력아래 또 한번의 조종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반대량살상무기 테러전으로서 이라크 전을 수행하면서 동북아에서도 적극적인 지원 세력을 회득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은 냉전과 탈냉전 시대에 형성했던 동북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반테러전 시대와 함께 조심스럽게 조종하고 있다.  우선, 깨질 듯이 조심스러웠던 미중관계는 반테러전의 공동 이익에 힘입어 눈에 띄는 개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중등사회 건설을 최우선으로 하는 선경제주의의 기치아래 미국과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에서 후세인 제거에는 일단 성공하였으나 전후 질서 재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 냉전시대 이래 동맹 국가들인 한국과 일본의 군사 및 경제적 지원을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 동북아의 냉전 동맹질서가 반테러 동맹질서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에는, 국내정치적 요인으로 추가 파병에 상당한 진통을 겪고 있다.
 

부시행정부는 단기적으로 최대 현안 문제인 대량살상무기 테러전의 위험을 지구적으로 조종해 가면서, 동시에 중-장기적으로 당면할 수 있는 불확실하고 다양한 위험들에 효과적으로 대비하기 위해 새로운 군사변환(transformation)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군사변환의 핵심은 탈냉전 9.11테러이후 21세기 군사질서가 산업화 시대에서 정보화 시대로의 변환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전쟁 무대에 산업화 시대의 주인공이었던 국가뿐 아니라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주인공들인 비국가 조직들이 지구 그물망화해 등장한 것이다. 동시에 산업혁명에 힘입은 대량살상무기보다 정보혁명에 힘입은 정보무기의 중요성이 빠르게 증가하게 증가하고 있다. 새로운 안보환경의 변화에 직면해 부시 행정부는 본격적 군사변환의  지구 조종을 시도하고 있다.

 

군사변환의 첫 번째 특징은 주둔군의 유동군으로의 전환이다. 미 국방부는 현재 유럽과 동북아의 해외 주둔 병력을 냉전의 역사적 유물로 보고, 유사시 보다 광범한 지역에 보다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는 유동군으로 바꾸려는 작업에 들어갔다. 정보기술 혁명의 도움으로 근대적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 서는 21세기 신출귀몰 군을 창설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냉전시대 군사동맹 체제의 변환을 추진하고 있다. 냉전시대의 소련과 같은 확실한 가상 적이 사라지고, 대량살상무기 테러, 지역 분쟁, 장기적 갈등등과 같은 불확실한 위협에 직면해서, 미국은 지구 그물망의 새로운 군사 동맹 질서를 짜나가고 있다. 미국은 새로운 동맹국들에게 최소한의 병력을 배치하고, 유사시 추가 배치를 위한 기반 시설과 물자를 마련한 다음, 위기 상황에 따라서 동맹국들과 함께 국제안보지원군을 동원하도록 계획하고 있다. 군사변환의 두 번째 특징은 수가 아니라 능력의 강조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 병력이 대량살상무기로 전면전을 수행했다면, 정보화 시대에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병력이 첨단 정보무기로 정보전을 시작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동아시아에서도 군사변환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서 한국과 일본에 있는  미국의 동북아 해외 주둔군은 위치, 규모, 임무에서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미국의 해외 주둔군이 유동군으로 변환하는 전반적 추세에 따라, 냉전의 대표적 상징인 한국 전쟁을 계기로 한국의 최전선에 장기적으로 주둔해 온 주한미군도 한강 이남으로 옮겨져서, 고도의 유동성을 갖춘  동아시아 신속 대응군으로서 새로운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동시에, 수가 아니라 능력을 강조하고 있는 군사변환의 추세에 따라, 37,000의 주한미군은 상대적으로 소수 정예의 첨단 정보군의 모습을 갖춰나가게 될 것이다.  새로운 변환을 겪고 있는 주한미군은 전통적인 한반도 안정의 임무를 넘어 서서 21세기 미국이 당면하게 될 단기, 중기, 장기의 위험과 전쟁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한 새로운 임무를 동아시아에서 동시에 수행해 나가게 된다.

 

21세기의 세계안보무대는 미국이 주도하는 반대량살상무기 테러전과 군사변환의 영향으로 커다란 변화를 겪고 있다. 한반도도 과거의 냉전과 탈냉전시기와는 전혀 성격이 다른 북핵문제,  주한미군 감축문제, 한국군 해외파병문제를 맞이하여 새로운 시각에서 해답을 찾아야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국제정치 무대 중에 강병의 군사무대 다음으로 주목을 받아온 부국의 경제무대도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일국중심의 번영극대화가 가져오는 공빈(共貧)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지구 및 지역의 번영과 국내 복지를 함께 추구하는 번영무대를 마련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 

 

연 국민 총생산량이 10조 억불을 넘어 서서 세계경제 규모의 1/3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은 세계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위한 투자, 세계 금융질서의 안정, 그리고 자유 무역의 확대를 필요로 하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경제 목표를 쌍무 협상, 다자적 접근,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세계은행(World Bank),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등과 같은 지구 조직들을 활용하여 추진하고 있다. 동시에, 세계경제의 성장을 위해서, 미국은 빈국들의 외자 유치, 금융 위기, 공정 무역 문제들을 복합적으로 조종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자본주의 경제 질서의 한 중심축을 이루고 있는 동북아 경제 질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경제가, 비록  ‘잃어버린 10년’의 아픔을 겪었지만, 단일 국가의 경제규모로서는 여전히 세계 제2위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주도하기 위해서 일본과의 협력은 불가피하다. 덩샤오핑의 과감한 개혁개방 정책을 밑거름으로 지난 25년간 10% 가까운 고도성장을 계속해 온 14억 인구의 중국 경제는 이미 세계 경제 규모의 4%를 넘어 섰다. 따라서 미중 경제관계는 동북아의 지역경제나 세계경제의 핵심적 구성 요소를 이루게 되었다. 다만, 현재의 중국경제가 당면하고 있는 정치 및 경제의 제약 요건들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고도성장을 지속할 수 있는가의 여부와, 중국 경제가 중국 정부의 장기 발전 계획처럼 20년 내에 현재 경제 규모의 네 배로 늘어나는 경우의 동북아 번영무대는 어떤 모습이 될 것인가가 커다란 숙제다.

 

안보와 번영의 무대와 함께 21세기는 정보기술혁명에 힘입어서 새로운 무대로서 지식무대를 제공하고 있다. 19세기 산업혁명이 경제력의 비중을 기하급수적으로 높였다면, 21세기 정보기술혁명은 지식력의 중요성을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이고 있다.  따라서 지식무대의 경연은 전쟁을 방불케 하고 있다. 그리고 지식무대가 다른 무대들에 본격적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고 있다. 군사적으로 핵무기대신에 정보무기가 중요해지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사이버 경제의 중요성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지구 첨단기업이 되려면 지식경영은 필수적이다. 외교무대에서도 군사, 경제외교 못지않게 정보/지식 외교의 중요성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지식력의 기반 없는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외교력으로는 21세기를 살아남을 수 없다.

 

21세기 세계질서의 새로운 무대로서 동시에 주목해야 할 것은 문화무대다. 탈냉전과 함께 그동안 군사와 경제에 밀려 있었던 문화무대가 부상하기 시작했고, 9.11테러이후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다. 인간들이 자신의 행복한 삶을 위해 다른 집단과 차별되게 자연을 가꾸는 생각, 활동, 그리고 제도 형성의 무대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인간은 폭력과 금력의 영향으로 상대방을 따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문화력의 영향으로  머리와 가슴이 움직여서 상대방을 따르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21세기 세계문화무대에서 미국은  세계질서 운영비용을 상대적으로 줄이기 위해서 미국적 가치와 행동 양식을 전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부시행정부는 이라크 전에서 후세인 제거를 위한 군사전에서는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후 질서 재건 전에서는 예상치 못한 고전을 치루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테러전의 공격과 방어의 군사적 측면에 못지않게 사상적 측면을 강조하기 시작하고 있다. 미국은 테러리즘을 노에 제도, 해적 행위, 대량 학살등과 마찬가지로 보도록 만들 수 있는 사상전을 전개하면서, 모슬렘 세계를 비롯한 비구미 지역에 구미 유형의 근대 민주복지 제도를 전파하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은 장기적으로 구미 유형의 민주제도를 전 세계적으로 확대하기 위하여 개별, 다자, 그리고 지구적 노력들을 복합 조종하고 있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미국적 가치와 행동 양식의 전파를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시장민주주의를 동아시아 지역에서 어떻게 확대시키고 심화시키나 하는 문제다. 미국이 동아시아에서 당면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북한의 김정일 정권을 어떻게 미국이 생각하는 지구 문명 표준에 맞게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드냐 하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김정일 정권이 미국형 지구 문명 표준을 거부하는 경우에, 중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의 도움을 얻어서 북한에 새로운 지도력의 창출을 모색할 것이다. 다음으로 미국에게 중요한 것은 고도 경제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에 어떻게 시장민주주의를 깊이 뿌리내리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미중관계가 갈등 아닌 협력관계 중심으로 원만하게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양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이질성이 얼마나 빨리 동질화되어 가느냐에 크게 좌우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한국과 일본의 시장민주주의 의 심화  문제이다. 특히. 한국의 경우에,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나타나고 있는 반미주의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느냐 하는 것이 커다란 현안 문제로 대두해 있다.

 

21세기 세계정치 무대 중에 또 하나 중요한 새로운 무대는 환경무대이다. 환경무대는 인간과 자연을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근대인들이 경제 성장을 위해 무리하게 파괴한 자연환경이 역설적으로 인간을 파괴하기 시작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더구나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국가뿐만 아니라 국가 안과 밖의 다양한 주인공들이 함께 노력해야 하는 현실 때문에 뒤늦게 세계정치적으로도 주목을 받게 되었다.

 

지구적 차원에서 보면 1980년대의 오존층 보호를 위한 몬트리올의정서 체결이나, 1990년대의 기후변화협약의 교토의정서 체결 등이 대표적이다. 동아시아 지역 차원에서 보면, 산성비, 황사현상, 해양오염 등의 문제가 등장하고 있다. 환경 문제는 단순히 세대를 걸친 장기적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니라 현안 경제 문제로서 우리에게 다가와 있다.   

 

21세기 세계정치 무대 중에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무대는 군사, 경제, 정보/지식, 문화, 환경 무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이해 갈등을 성공적으로 조종하기 위한 외교 무대다. 동아시아의 전통외교가 예를 기반으로 한 사대교린 외교였다고 하면, 구미 주도의 근대외교는 일국중심의 부국강병을 기반으로 한 국가이익 추구 외교였다. 21세기 외교는 그물망국가들이 복합무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이해의 갈등을 복합적으로 조종하기 시작하고 있다. 21세기 외교무대에서도 여전히 주연을 맡고 있는 미국은 일차적으로 반대량살상무기 테러 외교를 진행하고 있다. 동과 서의 이분법이었던 냉전외교가 반테러 적극 동참세력, 비동참세력, 동참 주저세력의 삼분법에 기반을 둔 반테러외교로 바뀐 것이다. 다음으로는 21세기 세계질서의 정치적 주도권을 유지 강화하기위한 지정학 외교를 벌이고 있다. 유럽에서는 나토가 21세기 미국의 변환에 걸맞게 새로운 모습을 갖추고, 미국과 공동보조를 취해 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 한계 내에서, 유럽연합과의 협력 관계를 모색하고 있다. 동아시아에서는 일본을 중심으로 해서 한국, 오스트랠리아, 동남아 국가들과 전통적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21세기의 새로운 변화를 유연하게 공동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려고 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잠재적 강대국인 러시아, 인도, 중국과의 관계를 건설적으로 구축해 나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은 세계자본주의 질서의 지속 성장을 위해 유럽경제권과 아시아경제권을 선도해 가려는 지경학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21세기 세계의 연기

 

주인공과 무대의 변환과 함께 연기의 내용도 바뀌고 있다.  21세기에도 여전히 주역의 위치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과거와는 달리 안과 밖의 다양한 주인공들을 그물망으로 입체적으로 엮은 그물망국가의 모습으로 과거의 예(禮)의 무대나, 부국강병의 무대보다 훨씬 복잡해진 안보, 번영, 지식, 문화, 환경, 조종외교의 복합무대에서 변환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21세기 변환 연기의 핵심은 국가 활동과 그물망 활동의 복합적 성격이다. 그물망활동의 특징은 거미의 움직임을 유심히 관찰하면 쉽게 알 수 있다. 거미는 무중심내지는 다중심으로 수많은 그물코들을 입체적으로 연결하여 그물망을 만든 다음에,  그물망을 흐르는 물처럼 끊임없이 유동하면서, 그물망 모든 곳에 거의 동시에 존재하는 모습으로 움직이려고 노력한다. 21세기 정보기술혁명은 현실적으로 시간과 공간의 엄청난 축약을 가져다줌으로써, 무대의 주인공이 거의 완벽한 거미 연기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한편 명실상부한 세계정부가 없는 지구공간의 국가 활동은 여전히 늑대의 움직임을 크게 벗어나기 어렵다. 국가는 일국중심으로 생존과 번영을 추구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고도 부족하면 외세를 다양하게 활용하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21세기 변환 연기는 늑대와 거미의 움직임을 동시에 품고 있다

 

따라서 21세기 세계역사 무대의 주인공들이 보여주고 있는 가장 대표적 연기인 세계화도 이러한 양면성을 잘 보여 주고 있다. 21세기 인간의 삶의 공간이 화대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지구화론자는 인간의 삶의 기반이 비로소 국가중심에서 지구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편, 반지구화론자는 인간의 삶의 기반은 여전히 국가이며, 19세기의 국제화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공간확대 현상은 단순히 국가 활동의 지구적 확대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또 하나의 반지구화론자는 인간의 삶의 기반은 계급이며, 현재의 지구화론은 세계자본주의체제의 명분론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같이 보이는 지구는 사실상 계급으로 나눠져 있다는 것이다.

 

지구화론과 반지구화론의 이분법적 경직성을 극복할 것을 주장하는 복합론자는 21세기 인간의 삶의 공간을 전통적인 국가, 계급과 미래적인 지구의 복합공간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정말 중요한 것은 국가냐 지구냐, 또는 계급이냐 지구냐가 아니라, 국가, 계급, 지구가  어떤 모습으로 다양한 무대에서 복합화되는가를 밝히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늑대냐 거미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늑대와 거미를 복합화한 ‘늑대거미’의 연기 원칙을 찾아내는 것이다.

 

21세기 한반도의 백년대계

 

21세기 세계의 주인공, 무대, 연기가 커다랗게 바뀌고 있다. 그렇다면 한반도에서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내일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먼저 21세기 세계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삶의 공간을 확대하고 복합화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한반도 통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19세기의 닫힌 통일이 아니라 21세기의 안과 밖으로 열린 통일이라야 한다. 두 번째 걸음은 주변열강의 활용이다. 친미, 반미나 친중, 반중의 이분법적 사고로 더 이상 21세기를 살아갈 수는 없다. 21세기 세계와 동아시아 세력분포 변화를 정확하게 읽고, 외세를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세 번째 걸음은 동아시아의 그물망 짜기다. 한반도의 닫힌 동북아 중심구상은 구시대적이다. 21세기 한반도는 여린 동아시아의 그물망짜기에 앞장서야 한다. 네 번째 걸음은 지구의 그물망 짜기다. 세계화론과 반세계화론 논쟁은 시대착오적이다. 21세기를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지구의 힘(力)과 기(氣)를 모두 모을 줄 알아야 한다. 다섯 번째 걸음은 사이버공간의 활용이다. 현실공간과 사이버공간은 상호 보완적이다. 21세기 세계질서의 주연은 두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주인공에게 맡겨 질 것이다. 마지막 걸음으로 국내 공간의 확대와 복합화다. 국내의 다양한 정치, 사회세력과 개인까지도 그물망을 짜서, 서로 다른 이해들을 정책결정 이후가 아니라 이전에 조종함으로써, 갈등을 해소하고 결집시켜야 한다. 이러한 걸음을 제대로 걸어야, 한반도는 21세기의 그물망 국가로 성장해서 우리 나름의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1세기 세계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두 번째 노력은 복합무대의 효율적 활용이다. 우선, 한국은 21세기 한반도,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질서에 걸맞은 안보번영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한반도가 통일의 숙제를 풀더라도 21세기 동아시아와 세계질서속에서 죽음이 아닌 삶을 확실하게 확보하가 위해서는 소박한 군사국가나 평화국가를 넘어 선 방어적 안보국가를 구축해야 한다. 그러나 21세기 안보국가 건설은 19세기형 자주국방이나 20세기형 협력적 자주국방의 발상으로는  불가능하다. 21세기에도 최소한의 지기보존 능력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빠른 속도로 신용 사회화되고 있는 세계군사무대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21세기 한미군사동맹도 이러한 새로운 안목에서 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동시에 21세기 안보국가는 지구 및 지역안보와 개인 및 사회 안보를 동시에 품어야 한다. 이러한 탄탄한 안보국가위에 지구번영과 국내복지와 상충되지 않게 국민경제를 향상시킬 수 있는 번영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특히, 국민소득을 1만 불에서 2만 불로 늘리려면, 현재의 노사관계와 국제경쟁력을 전면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한반도 복합국가는 안보번영 국가인 동시에, 지식문화환경 국가여야 한다. 그 중에도 지식국가의 본격적 구축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첨단 정보기술의 전사회적 기반 구축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기반위에서, 정부, 학계, 기업이 삼위일체가 되어 세계지식질서의 첨단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주도해 보려는 지식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동시에 국내의 다양한 사회지식을 종합해서, 지구 경쟁력이 있는 국가지식을 형성해야 한다. 이 전쟁의 성패가 21세기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다음으로, 문화국가 건설이다. 지구문화와 전통문화를 성공적으로 복합하고,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한 한반도 특유의 생각과 행동을 창조해서, 남들이 표준을 삼을 수밖에 없는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속적 경제성장속에서도 21세기 환경보존 표준을 모범적으로 지키는 환경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21세기 한반도 복합국가는 조종외교국가여야 한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라는 제국에 둘러싸인 비제국으로서의 분단 한국은 상대적으로 열세인 물리력을 극복하고 자신의 생존번영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조종외교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냉전시대의 유물인 친외세나 반외세와 같은 구시대적 발상을 하루 빨리 청산하고, 외세의 21세기 활용방안을 하루 빨리 개발해야 한다.

 

한국적 그물망 복합국가 구상이 한반도에서 구체적으로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구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러한 구상을 현실화 하려는 정치 주도세력이 등장하여, 국내정치, 사회역량를 결집하고, 국외역량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구상을 현실의 풍토위에 뿌리 내리게 할 때, 21세기 한반도 백년대계는 풍성한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근대화시기에 성장한 기성세대들은 더 이상 오늘의 변화를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나 새롭게 떠 오른 386 세대도 마찬가지다. 이들도 1980년대의 냉전과 권위주의와의 투쟁분위기 속에서 22세기는 물론이고 21세기도 준비하지 못한 세대다. 탈냉전과 반권위주의는 1980년대의 투쟁구호일 수 있지만, 21세기와 22세기의 한반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푸는 데에는 냉전과 권위주의만큼이나 쓸 모가 없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역사에는 지름길이 없다. 새로운 세대를 새로운 안목으로 하루 빨리 키워야 한다. 밖으로는 한국적 이익과 지구적 이익을 동시에 품을 줄 아는 한국적 세계인으로서 지구적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안으로는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해 갈등을 투쟁 아닌 조종으로서 풀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22세기 한반도의 미래는 오늘 이 땅의 젊은이들이 세계의 변화를 제대로 읽고, 열린 한반도의 백년대계를 제대로 구상해서, 386세대의 과도기를 얼마나 빨리 대체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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