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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신안보전략과 미래세계질서
 

2002-09-11 

9.11테러가 발생한지 한해가 됐다. 9.11테러가 21세기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정말로 놀라운 것은 9.11테러가 미국민, 특히 부시행정부의 정책결정권자들에게 미친 영향은 비미국인들의 상상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결정분위기를 한마디로 보여주는 것은 미국무부 리차드 하스(Richard N. Haas) 정책기획국장의 "탈탈냉전론"이다. 그는 지난 4월 22일 "Defining U.S. Foreign Policy in a Post-Post-Cold War World" 의 연설에서부터 6월 26일의 "From Reluctant to Resolute: American Foreign Policy after September 11"의 연설에 이르기까지, 네 번의 흥미있는 연설을 통해서, 자신이 21세기의 죠지 케난(George Kennan)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9.11테러이후 현대외교정책을 냉전기, 탈냉전과도기, 탈탈냉전기로 구분하여 냉전기의 봉쇄 독트린이 탈냉전 과도기를 거쳐 전통적 도전과 초국가적 도전이 함께 하는 탈탈냉전기로 접어들면서 통합(integration)독트린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현대사를 냉전과 탈냉전으로 이분하는 대신에 냉전, 탈냉전과도기, 탈탈냉전기로 삼분하는 것은 9.11테러가 세계질서에 미친 영향을 소련의 붕괴와 같은 수준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시행정부는 9.11테러이후 외교와 군사영역에서 새로운 외교와 새로운 안보를 추진하고 있다.

 

근대 국제질서의 20세기적인 표현인 냉전질서에서는 미국과 소련이라는 대표적 행위자가 군사, 외교, 경제, 이데올로기라는 공간속에서 동과 서의 진영을 구축하여 치열한 각축을 보여 주었다. 20세기의 냉전질서가 탈냉전을 넘어서서 21세기 복합질서로 가는 속에서, 행위자의 경우에는 국가가 여전히 주인공이기는 하나, 국가 밖의 지역적인 행위주체나 세계적인 제도/네트워크, 국가안의 식민사회 조직, 심지어 개인까지를 포함한 단위체의 복합화가 진행되고 있다. 각 행위주체들이 활동하는 공간이나 목표 자체도 더 이상 군사, 외교, 경제 공간만이 아니라 기술/정보/지식, 환경, 문화 공간들의 복합화가 진행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하는 근대국제질서를 넘어서는 21세기 복합질서의 새로운 자기 모색이 지구공간에서 나타나는 상황의 변화속에서 9.11테러를 맞았다.

 

탈냉전과 탈탈냉전의 복합적 불확실성과 놀라움의 시기를 맞이하여, 부시행정부는 미국의 안보를 위해서는 대테러 전쟁의 승리와 군사력의 변형(transformation) 이라는 이중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하는 양극의 냉전안보질서는 9.11테러와 함께 제1단계로 테러조직과 지원세력 대 반테러국가와 지원국가의 테러안보질서로 변화하였다. 그리고, 알 카에다 조직이 상당한 피해를 입고, 탈리반 정권이 와해된 이후, 테러안보질서는 제2단계로 대량살상무기 테러조직과 지원국대 반대량 살상무기 테러국가와 지원국가를 악의 축대 선의 축으로 양분하여 대량살상무기 테러안보질서로 전개되고 있다. 국무부는 대표적 테러조직으로 알 카에다, 하즈볼라, 하마스 등을 비롯한 33개를 들고 있으며, 대량살상무기 테러지원국으로서는 이라크, 북한, 이란 리비아, 시리아, 쿠바를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반테러전의 지원국으로 80개국을 들고 있고, 그중에 20개국은 미국의 중부 사령부를 적극적으로 군사지원하고 있다.

 

미국의 대테러 안보전략은 악의 축 세력에 대해 군사전, 정치전, 외교전, 경제전, 법치전, 정보전의 6면전을 시도하고 있다. 군사전은 대량살상무기 테러세력과 지원국가에 대한 공격과 미국본토를 테러에서부터 보호하려는 국토방위전을 수행하고, 정치전은 대량살상무기 테러세력과 지원국가들의 정치주도세력의 변화를 추진한다. 한편, 외교전은 대테러전의 정보·병참·군사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국제협력을 도모하며, 경제전은 테러조직의 자산을 동결하고 테러리스트 재정지원 목록을 작성하며, 법치전은 테러용의자를 찾아내고 체포하며, 그리고 정보전은 테러의 단서들을 찾아내고 위협을 분석하고 있다.

 

대테러 안보전략의 또 하나 특징은 하위국가 단위체로, 유연한 그물망 조직의 모습으로 활동하는 테러단체에 대해 억지나 봉쇄가 어렵게 때문에 필요한 경우에는 선제공격도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대테러 안보전략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대량살상무기 테러지원 여부에 따른 구분인 "악의 축"문제이다. 국무부 죤 볼턴(John R. Bolton)  군비통제 및 국제안보 차관은 지난 5월 6일 "Beyond the Axis of Evil: Additional Threats from Weapons of Mass Destruction" 연설에서 부시대통령의 "악의 축" 연설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미국 대외정책의 기본축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냉전의 축이 테러의 축으로 바뀐 것이다. 북한이 새로운 축의 중심국가로 이라크에 이어 분류되어 있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부시행정부는 악의 축 중심세력들을 현 단계로서는 미국본토를 직접적으로 위협하는 국내안보의 최대 적으로 평가하고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구체적 대응책으로서 진행되고 있는 "악의 축"과의 6면전은 부시행정부가 현재 고민하고 있는 이라크공격 여부에서도 기본적 사고와 행동의 틀로서 작동할 것이다. 그렇다면, 최종적으로 부시팀이 군사전을 선택할 것인가의 여부는 국제적 합의 기반을 얻기위한 외교전의 성패에 따라서, 정치전에 머무를 것인가 군사전을 치를 것인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군사전의 최종선택에서 동시에 주목해야 할 것은 대테러 안보전략이 냉전안보전략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선제공격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전쟁목표의 정당성에 대한 국내외적 합의 기반이 어느정도 성숙되면 보다 쉽고 신속하게 선제공격의 가능성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신안보전략의 핵심은 대테러안보전략과 변형안보전략으로 구성되어 있다. 21세기 안보환경은 단기적으로는 9.11테러로 극화되어 표현되어 있으나, 중장기적으로는 위협의 주체나 내용의 복합화가 불가피하므로 이에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변형안보전력의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변형안보전략의 주요한 특징은 우선 9.11테러에서도 극명하게 들어났지만, 미국 본토 방어의 최우선성이다. 이를 위해서, 최근의 "핵태세 재검토(Nuclear Posture Review)" 보고서에서 보듯이, 냉전기간의 핵정책인 대륙간탄도유도탄, 전략폭격기, 잠수함발사탄도유도탄의 삼중점체제(triad system)는 핵·비핵 공격능력, 미사일방어를 포함한 적극·소극 방어체제, 신속반응할 수 있는 방어 하부구조의 신삼중점체제로 변형이 추진되고 있다. 그리고, 9.11테러와 같은 공격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국방부가 국토 방위부를 군사적으로 지원한다.

 

두 번째 특징은 세계질서 주도국으로서의 미국은 전세계적으로 지정학적 이해를 가지고 있으므로, 유럽, 동북아, 아시아연안, 중동/서남아에 전진군사력을 배치하고, 동맹국들과의 밀접한 안보협력하에 전세계적으로 억지력을 유지·강화한다는 것이다. 특히, 변형안보전력은 동맹국들과의 안보협력강화와 가능한 소규모로서 최대한의 역동성을 갖춘 전진배치 군사력으로 억지력을 증가시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세 번째 특징은 위협기반접근(threat-based approach)에서 능력기반접근(capabilities- based approach)으로의 전환이다. 기존의 전투작전은 국가안보의 위협대상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전쟁가능성이 있는가를 분석해서 동북아와 서남아의 두 지역전쟁 중심으로 마련되었다. 새로운 안보전략은 불확실과 놀라움의 시기를 맞이해서,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능력을 분석해서, 이에 대한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변형안보전략은 기존의 두 지역전쟁을 최대한 유연성 있게 다루는 동시에, 안보에 위협이 될만한 모든 능력에 대처하는 방안을 강구하려하고 있다.

 

네 번째 특징은 국토방위, 전진억지, 능력기반접근에 따른 전투작전에 이어서 마지막으로 보다 소규모의 유사시 작전에 충분히 대응한다는 것이다.
 

탈냉전과 9.11테러라는 세계사의 중요한 변화에 대응하여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신안보전략은 21세기 세계질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우선 21세기 세계질서의 행위주체에 미치게 될 중요한 영향을 보면, 첫째, 9.11테러와 대테러전쟁과정에서 그물망(network)의 중요성이 급격하게 떠 오르고 있다. 9.11테러를 주도한 알 카에다 조직의 생각과 이해를 같이하는 조직들이 첨단기술을 활용하여 전세계적으로 작동하고, 이에 대응하여 대테러전의 6면전도 미국을 비롯한 국가들이 핵심을 이루지만 동시에 그물망을 짜나가야 하기 때문에, 국가와 함께 네트워크가 21세기 세계질서의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둘째, 클린턴 행정부와 비교하여 다자주의보다는 일방주의적 성향을 보여왔던 부시행정부는 9.11테러를 겪은 후, 지구적 협력하의 대테러전을 수행하기 위해서 다자주의의 중요성을 불가피하게 인정하고 있으나, 동시에 예상과는 달리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정권을 단기간에 붕괴시키고 알 카에다 조직의 1/3 내지는 1/4을 파괴함으로써 미국주도의 대테러전에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셋째, 부시행정부는 동과 서로 이분화되었던 냉전세계질서를 9.11테러이후 1단계는 테러조직 및 테러지원국 대 반테러전 국가 및 반테러전 지원국로 이분화하는 대테러전 세계질서로 이끌어 갔으며, 알 카에다조직의 약화 및 탈레반정권 붕괴 이후의 2단계는 "악의 축"과 "선의 축"의 이분법으로 대 대량살상무기 테러전 세계질서로 진행시켜 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넷째, 9.11테러와 대테러전을 "문명의 충돌"이라는 시각에서 해석하고 문명을 새로운 행위주체로 보려는 일부의 오해가 있다. 이러한 오해는 문명과 문화의 차이에 대한 초보적 구분을 하고 있지 못한데서 생긴다. 문명개념은 역사적으로 자기 집단의 진보성과 보편성의 자신감을 표현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며, 반면에 문화개념은 자기집단의 차별화를 위해 등장한 것이다. 따라서, 테러와 대테러전을 문명의 충돌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다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오사마 빈 라덴이나 부시대통령의 담론이 "악마"와 "천사",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성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9.11테러와 미국의 신안보전략은 장기적으로 세계정치 행위주체의 복합화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9.11테러와 미국의 신안보전략이 21세기 세계질서의 행위주체에 미치고 있는 영향에 이어서, 세계질서의 활동영역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검토해 보자.

 

9.11테러가 발생하고, 미국주도의 대테러 6면전이 진행되고, 미국의 신안보전략이 추진됨에 따라,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냉전질서의 해체과정과 함께 상대적으로 덜 활발했던 안보영역이 새롭게 재구성되고 있으며, 외교, 정보기술, 문화, 경제영역도 일정한 변화를 겪고 있다.

 

먼저, 군사영역의 중요한 변화는 냉전기간동안의 동·서 양극의 군사 동맹체제가 대테러전기간으로 들어서면서 대량살상무기테러의 지원여부를 기준으로 한 새로운 이분법의 대테러군사질서로 변화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의 변형안보전략은 세계군사질서의 복합화를 촉진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근대국가들의 군사적 경쟁이나 갈등가능성은 여전히 세계군사질서의 핵심적 기반의 일부를 이룰 것이다.

 

둘째, 부시행정부외교가 시도하고 있는 탈탈냉전기의 "선의 축"들의 통합은 이 독트린이 좁은 의미의 미국적 가치를 넘어서서 국제적 합의기반위에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할 때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부시행정부가 초강대국의 일방주의를 고집하는 경우에는, 미국은 미국나름의 고난의 행군을 외롭게 해야 할 위험성이 높다.

 

셋째,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 레바논의 히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같은 21세기의 테러조직은 조직운영, 정보수집 및 분석, 정보작전 등에서 첨단의 정보기술을 활용하고 있으며, 이에 대응하여 미국이 주도하는 대테러전도 첨단의 정보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의 변형안보전략도 첨단의 정보기술에 기반한 군사혁신이 핵심의 일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세계 기술/정보/지식공간의 활성화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넷째, 9.11테러와 대테러전쟁을 "문명의 충돌"로 설명하려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그러나, 9.11테러와 이에 따른 대테러전쟁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테러문화와 대테러문화의 담론과 행동양식이 대단히 유사하게 이분법적인 성전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적 갈등이 테러와 대테러전의 악순환을 보다 심화시킬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세계문화질서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성전이 아닌 국제적 합의기반위에선 정전론이라는 제3의 목소리가 강화돼야 한다.

 

다섯째, 9.11테러와 미국의 신안보전략이 세계경제질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현단계에서는 쉽게 판단하기는 어려우나, 미국군사비의 급격한 증가, 세계에너지수급의 혼란가능성, 세계경제환경의 불안정성 증가에 따른 기업 심리의 위축등과 같은 부정적 영향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9.11테러와 미국의 신안보전략은 21세기 세계질서의 행위주체와 활동공간에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부시행정부는 9.11테러의 세계사적 영향을 고려하여 현대사의 시기부분을 냉전기, 탈냉전간주기, 탈탈냉전기로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탈탈냉전기도 "악의 축" 이전과 이후의 군사와 외교공간의 변화를 생각하면 탈탈냉전기 1기와 2기로 세분해야 할 것이다.

 

세계질서의 이러한 변화속에서, 미국이 북한을 이라크에 버금가는 "악의 축" 중심국가로 분류하고 있기 때문에, 한반도는 1990년대이래 영변위기, 금창리위기, 대포동위기에 이은 제4의 위기를 맞을 위험성이 있다. 이를 현명하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은 북한이 변화한 미국을 고려하여 새로운 대미정책을 추진하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미국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문제를 미국의 국토방위문제로 일방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문제를 함께 고려하여, 당사국인 한국과 최대한 협의하여 해결책을 찾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중장기적으로는, 미국의 변형안보전략에 대응하여 한국은 21세기 한국형 변형안보전략을 추진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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