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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역사재단 인터뷰] 사학-국제정치학 학제 간 공동연구 지원이 필요해
 

동북아역사재단 

2017-04-12 

동북아역사재단 2017년 04월호 뉴스레터

 

 

국내는 물론이고 새 정부가 들어선 미국과 동아시아 정세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지금, 오랜 기간 국제정치와 외교를 연구해 온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에게 한·중, 한·일 외교 문제의 해법과 향후 한국의 외교 방향 및 재단에 관한 조언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_ 편집자 주

 

대담 : 김종학 한일관계연구소 연구위원

 

 

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 미국 워싱턴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미국 프린스턴대 국제문제연구소와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 초청연구원,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장, 미국학연구소장, 한국평화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과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위원, 통일준비위원회 민간위원을 맡고 있으며 저서 및 편저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2.0 : 악제·관여·신뢰의 복합추진》, 《2020 한국외교 10대 과제 : 복합과 공진》, 《하영선 국제정치 칼럼 1991-2011》 등이 있다.

 

Q1. 2012년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직을 퇴임하신 뒤 동아시아연구원(East Asia Institute, 이하 EAI) 이사장으로 재직하시면서 다양한 연구와 교육활동을 해오셨습니다. 대표적 국내 민간 연구기관인 EAI의 활동과 국제적 위상 등에 관해 간략히 말씀해 주십시오.

 

하영선 대외적으로 EAI 이사장직을 오래 맡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내 연구 생활에 중심을 이룰 정도는 아닙니다. 다만 내가 EAI를 돕는 데는 세 가지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21세기 중국의 부상과 관련해 우리가 제대로 된 동아시아 담론을 발신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국내에 정부나 기업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싱크탱크가 필요하다는 것, 마지막으로 기존의 싱크탱크와 다른 복합적 세계질서에서 요구되는 새로운 형태의 싱크탱크를 실험해보려는 시도로 지금까지 EAI에 몸담고 있습니다.

 

미국 펜실베니아대가 매년 전세계 약 7천여 개의 싱크탱크를 평가하는데 최근 5년간의 평가에서 100위 안에 드는 기관 중 국내에서 정부 혹은 재벌 산하가 아닌 연구기관으로는 EAI가 유일하게 선정되었습니다. 미국의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는 1년 예산 1천억 원에 직원도 700명이 넘지만 EAI는 1년 예산 20억 원과 12명의 직원으로 이 정도 성과를 내고 있으니 어느 정도 역할은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Q2. 2003년부터 ‘한국외교사 연구모임’을 꾸려 전통적 중화 질서와 천하(天下) 관념에 대해 연구하셨고, 특히 우리 선조들이 중국을 이해한 방식에 천착해 오셨습니다. 이러한 전통적 관념들이 오늘날 중국의 사고 패턴과 행동에 미치는 영향과 조선시대 연행사(燕行使)들이 중국을 읽었던 방식이 오늘날 우리의 대중(對中)정책에 주는 함의는 무엇일까요?

 

하영선 중국은 최근 국제정치를 ‘신형대국질서’와 ‘신형주변국질서’라는 두 개의 틀을 합쳐 ‘신형국제관계’로 사고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후자에 포함이 되겠죠. 신형주변국질서와 관련해서는 중국이 크게 세 가지 이야기를 하는데 하나는 친성혜용(親誠慧容) 혹은 운명공동체, 또 하나는 경제적 상호번영을 강조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마지막은 그럼에도 결국 주변국 외교에 있어 자국의 핵심 이익을 강하게 챙기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중국의 전통적 관념으로 해석하면 결국 의(義)-이(利)-세(勢)에 대한 이야기이고 실제 시진핑이나 왕이도 적절한 타이밍마다 자신들의 생각을 전통적 관념과 연계시켜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걸 제대로 받아들이고 해석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의 전통을 이해하는 사람과 현대 국제정치를 들여다보는 사람이 서로 자신의 분야만 보고 있기 때문이죠.

 

내가 가끔 내로라하는 국내 중국 전문가들에게 《열하일기》를 읽어본 적 있냐고 묻는데 국문학자나 사학자 아닌 사람들 중 제대로 읽었다는 사람을 본 적이 거의 없어요. 나는 중국 현안 문제를 분석할 때도 홍대용이나 박지원의 글에서 출발할 때가 많습니다. 특히 《열하일기》는 건륭제의 칠순잔치에 나타난 조선, 몽골, 티벳 사신과 만주족이면서 청나라의 황제가 된 사람들 간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연암이 대단히 날카롭게 분석해서 쓴 글이거든요. 지금 시진핑의 사드 외교를 과연 그 정도의 스펙트럼으로 바라보는 국내외적 안목이 있나 싶습니다. 사드 문제는 사실 남·북 문제인 동시에 한 . 미 . 일 간의 문제, 중국과의 문제이면서 국내 정치의 문제인데 전체적으로 어떤 균형감을 갖고 이 문제를 풀어갈 지에 대한 우리의 안목이 연암에 한참 못 미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3. 대북정책과 관련해 이른바 햇볕정책 vs 제재정책의 대안으로 북한과 남한 및 주변 세력들이 동시에 변화하는 ‘공진전략(Coevolutionary Strategy)’을 제안하셨습니다.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셨으며, 또 북한의 태도 전향을 이끌어내기 위해 우리나라와 관련국들이 ‘진화’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하영선 대선을 전후해서 북핵 문제가 다시 최대 이슈로 등장할 것 같은데 사실 그간 햇볕정책과 제재정책 모두 우리가 기대했던 해답을 주지 못했죠. 그렇다면 북한을 비롯한 핵심 당사국들이 공동으로 변화하는 방법을 모색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간 EAI에서 ‘북한이 선진화 되는 길’이라는 연구도 했지만, 북한은 결국 ‘핵-경제’를 병진시키는 전략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북한 내 ‘자조론(自助論)’이 싹트게 해서 스스로 변화를 모색하도록 하고, 우리는 북한의 자구적 노력을 도울 수 있는 외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 과정에서 주변국의 경제적 제재나 군사적 억제는 북한으로 하여금 ‘핵-경제’의 길로 나아가는 선택지를 줄여주기 때문에 지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협상의 경우 현재 북한과 한·미·일, 중국 간 협상 조건이 맞지 않아 진척이 없는 상태인데 각 조건 간 편차를 줄이며 대화를 해나갈 수는 있겠으나 협상의 최종 목표 또한 북한 스스로 새로운 정책 구상이나 리더십을 통해 ‘비핵-경제’ 노선으로 돌아서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Q4. 오래 전부터 21세기 국제정치는 국제정치의 행위자와 무대 그리고 행동양식이 변화하는 ‘복합화’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하셨는데 최근 동아시아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득세하는 ‘근대’ 혹은 ‘전근대’로 회귀한 느낌입니다. 한·일 관계도 ‘평화의 소녀상’ 설치 문제로 일본 대사가 2개월 넘게 귀임하지 않고 있는데 한·일 외교 경색은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요?

 

하영선 최근 아베나 트럼프, 영국의 브렉시트 등을 보며 국제정치가 ‘복합화’로 가는 길에 브레이크가 걸렸거나 회귀하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는데, 나는 문명사적 대변환의 맥락에서 ‘복합화’를 이야기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트럼프나 아베가 지금의 정책으로 인해 앞으로 상당한 비용을 지불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한·일의 경우는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위안부’ 문제 등으로 외교 관계가 경색되었지만 여전히 양국 간에 상호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경제·첨단과학기술·환경·에너지 등 서로 윈윈(win- win)할 수 있는 공간이 명확히 존재하죠. 때문에 이러한 공간을 확보하려는 집요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개인적으로 지금 한·일이 갈등을 겪는 이른바 의(義)의 문제들은 적어도 100년 이상의 시간이 흘러야 합의에 이를 수 있을 거라 보는데 그렇다면 양국의 리더십이 보다 솔직하게 이를 인정하고 이(利)는 최대한 추구하되 의(義)는 백년대계로 봐야 합니다. 또 국내·국제 정치에서 정치·군사 파트인 세(勢)가 이(利)를 주도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비록 지금의 리더들이 이 이야기를 경청하지 않는다 해도 결국 역사와의 싸움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끊임없이 이러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5. 2013년부터 ‘EAI 사랑방’이라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매년 소수의 대학생과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오셨는데 장래 한국 외교를 담당할 동량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하영선 ‘사랑방’이라는 명칭은 1874년 환재(瓛齋) 박규수(朴珪壽)가 우의정을 사직한 후 자신의 사랑방에서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등 젊은 양반들에게 개화사상을 교육한 고사에서 빌려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이 칠십이 넘은 대학자가 반 세기 이상이나 나이 차가 나는 청년들과 고전과 서양 문헌을 함께 읽었다는 자체가 재미있는 발상이죠. 박규수는 젊은 양반들에게 고전(古典)과 시무(時務)를 동시에 훈련시키고 싶었을 거예요. EAI 사랑방도 학생들에게 동서고금(東西古今)을 한 번은 훑고 갈 수 있도록 훈련시키려 하는데 요즘 학생들은 서(西)와 금(今)에 비해 동(東)과 고(古)를 많이들 어려워합니다. 그래도 왜 20대를 가르치려 하냐고 묻는다면, 40~50대의 경우 이미 사고의 유연성을 상실했다고 보기 때문에 보다 폭넓고 깊이 있는 사고를 하는 젊은 리더를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Q6. 재단의 지원으로 국내 소장학자 10명과 《대한민국 외교사》(가제)를 집필 중이신데 국내에서 발간되는 첫 한국외교사 교재라는 점에서 기대와 관심이 큽니다. 집필하면서 느끼신 소회나 특별히 주안점을 두신 부분은요?

 

하영선 나는 초보적인 교과서 제작보다 1945~1990년대 말까지 한국 현대 외교사에서 중요한 30개 정도의 사건을 선별해서 그 사례 연구를 하기 위해 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현대 외교를 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된 사례 연구가 안 되어 있기 때문에 교과서 논쟁 등이 벌어진다고 판단했거든요.

집필 과정에서 신경 쓰는 부분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이념적 스펙트럼 때문에 서술이 달라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1차 사료를 근간으로 외교사를 서술한다는 것, 또 하나는 그동안 국내외에서 관련 사료들을 어떻게 읽어냈는가에 대해 간략한 자기반성을 하고 사례연구를 진행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집필에 참여하는 학자들도 가능하면 사학계와 국제정치학계가 서로 대화할 수 있는 형태로 조합한 뒤, 대학원처럼 매달 모여 세미나를 하자고 했죠. 그 결과 1차년도를 마무리한 지금 비교적 만족스러운 진척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사료를 읽어내는 국내 학계의 방식이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제4기 냉전연구가 활발한 상황인데 우리는 아직 2.5기 정도의 냉전연구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따라서 내부 논쟁을 통해 연구자가 자기 성찰할 기회를 만들어야겠다는 목표로 진행하는데 한 3차년도쯤 되면 한국사 전공자들과 국제정치학 전공자들이 부분적으로나마 상대의 의견을 수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무쪼록 《대한민국 시기 한국외교사》가 국립외교원에서 외교관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는 책이 되고, 그 바탕 위에서 대한민국 역사교과서의 현대사 집필도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Q7. 마지막으로 재단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하영선 우선 재단이 고대사부터 현대사까지를 다루는데 어떤 안목으로 사료를 정리하고 서술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을 겁니다. 중국의 경우 정부에서 다민족통일국가 방식으로 25사를 정리하고, 일본은 19~20세기의 역사적 안목으로 문제들을 정리하고 있죠. 그렇다면 우리는 사학계와 사회과학 간의 솔직한 대화와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국제정치학 연구자들은 역사 공부를 하고, 국사학·국문학계 연구자들은 국제정치학 공부를 해야겠죠. 재단에서 학제 간 공동 연구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들도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아시아 역사 연구는 영미권과 중국, 일본의 3파전이 벌어지고 있는데, 한국도 국내외의 1차 사료를 바탕으로 국제적으로 참신하고 설득력있는 담론을 생산해서 전 세계로 발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연장선상에서 최종적으로는 재단이 하는 모든 업무가 국제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http://www.nahf.or.kr/webzine/view.do?cid=57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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