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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1904 vs 2004]<6>전문가 대담
 

동아일보 

2004-01-20 

[한반도 1904 vs 2004]<6·끝>전문가 대담

 

《1904년 러일전쟁은 대한제국의 몰락과 국권상실로 이어졌다. 100년 전을 교훈삼아 21세기 새로운 도전에 대한 응전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한반도 1904 vs 2004’ 시리즈를 마치며 서울대 하영선(河英善) 교수와 이화여대 구대열(具대列) 교수의 특별 대담을 마련했다.》

 

▽하 교수=러일전쟁은 만주-한반도 문제에 관한 일본과 구미 열강의 이해갈등이 군사적 형태로 촉발된 것이었습니다. 전쟁 직전까지도 고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도 중립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국주의 각축을 정확히 읽지 못했지요. 독립신문만 해도 국제정치를 잘 아는 사람들이 만든 것인데도 청일전쟁(1894) 후 시간이 좀 있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정부도 힘의 배분 상태를 정말 정확히 읽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구 교수=1903년 8, 9월 러일간 만한교환협상이 결렬된 뒤 이미 전쟁은 피할 수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하지만 대한제국 정부는 전쟁이 일어나면 미국이 우리를 보호해 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나중엔 경인지역만 중립화해 왕실만 안전하면 된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아요. 몽골 침입 때 고려 왕실이 강화도로 도망갔던 것과 마찬가지지요. 구한말 지도층은 국제정세에 그렇게 몽매했던 것입니다.


▽하 교수=당시 우리가 왜 망했는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른바 ‘광무개혁’을 통해 우리도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글로벌 스탠더드를 제대로 읽고 대응하지는 못한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지금 우리의 대응도 러일전쟁 당시의 수준이 아닌가 해서 답답합니다. 우리는 냉전에서 탈냉전의 변화를 굉장한 변화로 생각하고 21세기를 맞이하는데, 이미 국제정치엔 그것을 넘어서는 변화가 있거든요.


▽구 교수=고종은 위험을 느끼고 중립화를 고심하다가도 일본의 침략(분위기)이 약화되면 다시 ‘나 몰라라’하는 식이어서 정책의 일관성이 부족했습니다. 시스템의 부재가 지금과 너무나 유사한 것 같습니다.


▽하 교수=당시는 근대국제질서로 넘어가는 상황이어서 이해가 쉽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은 다시 복합국제질서로 이동하고 있고, 근대와 탈근대가 혼합된 상태인데 이를 냉전과 탈냉전으로 읽으면 당연히 한계가 있지요. 이것이 리더십의 문제로 이어지는 겁니다.


▽구 교수=일본이 제국이 될 수 있었던 요인의 하나는 메이지(明治)시대 초기 군부의 신중한 리얼리즘이었습니다. 일본 군부는 계속 승전해 하얼빈까지 올라갔지만 물적 인적 고갈을 느끼자 전쟁이 장기화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총사령관은 일본으로 돌아가 “군부가 이만큼 했으면 이제 외무성이 나서야 하지 않는가. 총을 쏠 때가 있으면 그칠 때도 있다. 일본은 외무성도 없느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정도면 이미 군부적인 사고가 아니지요. 최근 우리의 외교안보라인이 삐걱거리는 모습은 100년 전 일본의 군부나 외교관들과 비교해볼 대목이 있습니다.


▽하 교수=일본은 근대국제정치를 논하면서 힘을 키웠고, 구미도 군사적 기반 없이는 국제정치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1세기에도 협상만 한다고 평화국가를 유지할 수 없는 것은 똑같습니다. 군사기반을 중심으로 국제정치가 진행되는 상황에선 판을 어떻게 읽는가가 중요합니다.


▽구 교수=동맹도 국력인데 우리는 동맹관계를 이상하게 이해하고 삐걱거리게 합니다. 과연 국제관계를 풀어가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워요. 일본은 러일전쟁 전에 이미 교훈을 얻었어요. 랴오둥(遼東)반도를 다 차지했다가 러시아 프랑스 독일의 3국 간섭으로 빼앗기자 굳건한 뭐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영일동맹을 맺은 거죠. 또 태평양전쟁 뒤 체결한 미일동맹에 대해 일본 외교백서는 ‘일본 외교의 초석’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 교수=동맹은 국제정치력이죠. 요즘 ‘자주파’ ‘동맹파’라는 식의 논의를 보면 우리가 19세기에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21세기 동맹을 그런 식으로 보면 나라 망하기 쉽습니다. 자주라는 말은 섣불리 쓰지 말아야 합니다. 정치의 결과로 자주가 보장되어야 하지 그 결과가 종속이나 국망이라면 자주라는 말은 정치 현실에선 의미가 없습니다. 요즘 국제정치 역량을 발휘한다며 실리외교를 이야기하는데 지금처럼 경직된 분위기로 국제정치를 보면 안 돼요. 그쪽(미국)은 제국관리를 해본 사람들인데 우리는 타국을 관리해본 적이 없어요.


▽구 교수=미국에서 전문가들에게 한국이 나갈 최선의 길이 뭐냐고 물으면 현 상태(status quo)를 견지하고 경제를 확장시켜 세계의 주목을 받도록 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하 교수=우리 잣대로 10년, 20년 해보겠다는 것은 위험합니다. 2010년, 2020년까지 다 같이 놀면 모를까, 러시아도 이미 바닥을 쳤고 미국은 안 망할 것 같은데 만일 남북이 함께 손을 놓고 있으면 2050년쯤엔 국제무대에서 우리가 엑스트라 1, 2, 3 중 하나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상태로 20년을 놀면 분명히 가시화될 것으로 생각돼 초조합니다.


▽구 교수=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사이에 우리가 잃어버린 10년을 기억해야 합니다. 당시 조선은 개혁의 기회가 있었지만 아무 것도 개혁하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몇 년째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에 있는 것도 그런 것 아닐까요. 새롭게 세계를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을 두고 우리는 석유를 얻기 위해서였다고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영국은 ‘세계질서가 유리하게 재편이 되면 자연히 (석유 같은 것은) 따라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질서에 얼마나 능동적으로 참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라크 파병도 마지못해 끌려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문제입니다.


▽하 교수=구한말 우리는 실패했고 솔직히 현재도 실패하고 있는 중입니다. 정치는 원래 싸우는 것이지만 지금은 너무 심해요. 거의 군사적 전쟁 수준이거든요. 시민사회도 엄청난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제는 참여냐 아니냐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이른바 숙의민주주의(deliberate democracy)에 기여하는가, 지식기반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사회의 지(智)를 총체적으로 높이는 데 기여하는가를 기준으로 나아갈 바를 판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구 교수=1901년 빅토리아 여왕이 서거했을 때 유럽 왕실이 다 모였습니다. 대영제국의 정점이었죠. 그런데 불과 50여년 뒤 수에즈운하사건으로 영국은 역사무대의 톱3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앞으로 50년 뒤 미국 주도의 역사 질서가 어찌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 변화를 읽으려면 역사를 보는 안목, 인문학적 성찰이 리더십의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하 교수=돈과 기득권에 대한 것 이상으로 지식싸움에서 이겨야 합니다. 국가지(國家智)를 극대화해야 합니다. 요즘 이야기하는 ‘코드정치’는 1980년대 수준이에요. 21세기에는 코드 운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참 답답해서….


▽구 교수=자주국방을 이야기하지만 우리가 무슨 돈이 있어 자주국방을 합니까. 일본이 왜 핵무장을 안 하는가를 생각해보세요. 돈을 안 쓰고 나라를 지킬 수 있다면 그게 최선 아닌가요. 결국 독일 일본이 떠오르고 영국 프랑스가 지고 있어요.


▽하 교수=일본 주재 청국외교관 황준헌(黃遵憲)이 조선수신사 김홍집(金弘集)에게 균세(均勢)라는 말을 알고 있느냐고 묻자 김홍집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라고 답했습니다. 지금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부 장관이 ‘재편(transformation)’을 언급하면 우리도 ‘어디서 본 것은 같은데’라고 이야기할 듯합니다. 그쪽이 톱니를 돌리면 이쪽도 톱니를 돌리면서 맞춰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요.


▽구 교수=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보세요. 영국은 해군을, 독일은 지상군을 담당하면서 큰 틀에서 (지역방위시스템을) 맞춰가잖아요.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일본과 한국도 맞춰주길 바랄 거예요. 그런 시스템 내에는 북한의 남침 저지가 기본적 목표로 들어가 있겠죠.


▽하 교수=미군이 뒤로 가니까 자주국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순박합니다. 미군이 뒤로 나가더라도 유사시엔 ‘21세기 홍길동군(軍)’의 형태로 커버하겠다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인계철선이 없어진다는 식의 탈냉전과 냉전적 사고로 바라보고 있어요. 미국의 의도는 아시아지역 분쟁군으로 나가겠다, 이중으로 뛰겠다는 것인데 우리는 이를 (용산 미군기지의) 평수(坪數) 문제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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