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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퇴임 하영선 서울대 교수가 말하는 ‘급변 동아시아에서의 한국의 전략’
 

동아일보 

2012-09-03 

“대통령 독도방문 당연… 中 의식한 日 과잉반응”

 

하영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과 일본의 과거사 문제 해결을 위해 양국이 장기적으로 30년 단위의 밑그림을 그릴 것을 주문했다. 이 과정에서 양국 신세대들의 긴밀한 교류를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21세기 동아시아 신질서 구축 과정에서는 한국이 미국 중국 모두와 동맹을 강화하는 연미연중(聯美聯中)을 제안했다. 김미옥 기자

“한일 과거사 문제는 양국 정상의 임기 내에 조속히 해결하기 어렵다. 양국이 장기적으로 향후 30년의 ‘손익계산서’를 짜야 한다.”

 

국제정치학계에 ‘복합(複合)’ ‘용미(用美)’ ‘공진(共進)’ 등 다양한 화두를 던져온 하영선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65·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가 최근 정년퇴임했다. 이에 맞춰 그가 편저자로 나선 ‘복합세계정치론’(한울)과 ‘제1기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 논문집’(전 3권·한울)이 잇따라 출간됐다. 하 교수는 20일부터 두 달간 연세대에서 ‘동아시아 질서의 역사적 변환과 한반도’를 주제로 8회에 걸쳐 특별강좌를 연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일본군 위안부 부정으로 한일 관계가 냉각된 가운데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을지로4가 동아시아연구원에서 그를 만나 급변하는 동아시아 국제정치 질서에서 한국이 택해야 할 전략에 대해 조언을 구했다.

 

―경색된 한일 관계를 어떻게 보나.

 

“독도 이슈는 한일 양국에서 국내정치화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독도가 우리 영토인 이상 한국 대통령은 당연히 독도에 갈 수 있다. 그런데 이를 너무 이슈화했다. 가뜩이나 중국의 부상으로 초조해진 일본이 과잉반응을 보인 것이다. 최근 일본이 한국에는 고자세, 중국에는 저자세로 나오는데 이는 일본의 전형적인 19세기 제국주의식 태도다. 군사력과 경제력이라는 현실적 힘을 가진 자에겐 저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그는 2008년 4월 열린 한일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바람직한 한일 관계 구축을 위해 2009년 2월 출범한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한국 측 공동위원장으로서 이끌었다. 양국에서 각각 13명의 학자로 짜인 공동연구팀이 수차례 양국을 오가며 회의했고, 2010년 10월 ‘한일 신시대를 위한 제언’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최근 양국에서 공동 발간된 ‘제1기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 논문집’은 이 프로젝트의 또 다른 결실이다.

 

“다음 달 서울에서 ‘한일 신시대 공동연구 프로젝트’ 제2기 모임을 하기로 했는데 예정대로 될지 모르겠다. 애초에 양국 정부의 합의로 시작한 만남이어서 민감할 수 있지만 상황이 어렵더라도 학자들 간의 대화 채널이라도 있는 게 좋다.

 

과거사와 독도 문제 해결을 위해 장기적으로 양국 신세대들이 19세기적 부국강병의 시각에서 벗어나도록 젊은이들의 교류를 늘리는 등 노력해야 한다. 한국 기성세대는 일본과의 싸움에서 맺힌 원혼을 풀기 어렵고, 일본 기성세대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사과를 할 DNA를 갖고 있지 않다. 30년이라는 세대 단위로 풀어야 할 숙제를 한국 대통령 임기(5년)나 일본 총리 재직 기간(근래 약 1년) 안에 풀려고 하니 쉽지 않다. 양국이 앞으로 30년간의 손익계산서를 작성해야 한다.

 

또 한일 문제를 동아시아 전체의 바둑판 안에서 크게 봐야 한다. 19세기의 작동원리는 개별 국가가 독자적으로 부국강병을 모색한 것이었다면, 21세기에는 공생을 위해 적절히 협력도 해야 한다. 각생과 공생을 적절히 구사해야 21세기 스타 국가가 된다. 국제정치는 불평등한 현실정치이기 때문에, 우리가 일본보다 앞선 경제선진국이 되고 군사적으로 세련되어지면 자연스럽게 상당 부분 해소될 문제다.”

 

―급변하는 21세기 국제정치질서에서 한국의 전략은….

 

“21세기 최대 이슈는 급변하는 동아시아 신질서의 건축 과정에서 한국이 얼마나 탄탄한 ‘건축학 개론’을 짜느냐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차기 최고지도자로 등장하더라도 지난 10년처럼 경제 우선 정책을 펼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되길 원치 않는다. 새로운 동아시아 건축 속에서 미국과 중국이 큰방을 차지할 텐데 한국과 일본이 서로 싸우기만 하면 적절한 공간을 확보하지 못 할 수 있다.

 

20세기가 한미동맹 중심이었다면 21세기는 미국 중국 모두와 동맹을 강화하는 연미연중(聯美聯中)으로 가야 한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복합세계정치론이다. 미국과 친하면서 동시에 중국과도 친할 수 있겠느냐고 회의를 품는 전통적 사고방식으로는 21세기 동아시아의 리더가 될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이 싸우면 동아시아는 망한다. 미국이 여전히 큰 목소리를 내면서도 중국을 왕따시키지 않고 적절한 위치를 설정해주는 것이 21세기 동아시아 건축의 최대 숙제다. 많은 일본 학자들은 중국이 커지니까 한일 양국이 협력해서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일본에는 장래가 없다. 중국을 품어 동아시아의 일원이 되도록 협력해야 한다.”

 

―김정은 체제로 바뀐 북한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지금이야말로 북한이 선군(先軍)정치를 벗어나 선경(先經·경제 우선)정치로 가도록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북한이 중환자실(선군)에서 일반병실(선경)로 옮기게 하려면 의료진이 생명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신뢰를 줘야 한다. 즉 북한이 핵을 중심으로 한 선군을 포기하고 서서히 경제를 개방하더라도 체제를 붕괴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시그널을 보내야 한다. 한국 미국 러시아 일본 중국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북한의 개혁 개방과 성장을 돕느냐가 숙제다. 그게 내가 주장하는 공진(共進·coevolution)이다. 반면 북한이 선경이 아닌 제2의 선군으로 갈 경우 중환자실에서 회복은커녕 식물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대선은 국내 이슈 위주로 치러지는 양상이다. 대선 후보로 나설 주요 인물들 중 아무도 남북관계나 국제정치에 대한 그림을 내놓는 사람이 없다.”

 

―퇴임 후 연구 계획은….

 

“나는 뒤를 돌아보는 마라토너를 좋아하지 않는다. 계속 뛰고 있는 마라토너에게 지난 33년을 돌아보라고 하면 당황스럽다. 그 대신 앞으로 뛸 코스는 설명할 수 있다. 지금까지 지난 250년간의 국제정치를 이야기했다면 이제부턴 천하(天下)를 연구하려 한다. 천하라는 말이 본격 사용된 중국 서주(西周)시대부터 시작해 3000년 역사의 세계를 아우르는 국제정치를 연구할 것이다. 무모한 실험이지만 사회과학계와 사학계의 단절을 극복하고 시공 전체를 꿰어 후학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

    http://news.donga.com/3/all/20120902/49065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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