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특별대담] G2권력 재편 후 국제정세와 한반도과제
 

동아일보 

2012-11-09 

“美-中 싸워도 판은 안깰 것… 韓 세련된 ‘양다리 외교’ 펼쳐야”

 

 

《 “미중 관계를 핵으로 하는 새로운 세계질서가 등장할 것이다. 두 나라가 관계를 잘 설정해 나간다면 ‘산 하나에 호랑이 두 마리가 없다’는 중국 속담을 뒤집을 수도 있다.”(정종욱 동아대 석좌교수)

 

“한반도가 또 한 번의 거대한 실험을 할 수 있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한국이 미중을 상대로 이중적으로 움직이면서 적극적인 ‘양다리 외교’를 해도 좋을 때다.”(하영선 동아시아연구원 이사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부주석이 이끄는 ‘G2(주요 2개국) 시대’의 패권 충돌 가능성에 대해 두 국제정치학계 원로는 섣부른 부정도, 과도한 긍정도 금물이라고 지적했다. 두 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관계를 설정해 나가느냐에 따라 한국에 위기도, 기회도 될 수 있다며 철저한 외교적 준비와 대응을 주문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이어 중국이 차세대 지도부를 뽑는 공산당대회를 시작한 8일 정 교수와 하 이사장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그룹 회의실에서 얼굴을 맞댔다. 대담은 2시간가량 이어졌다. 》

 

▽정 교수=오바마가 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연임에 성공했다. 집권 2기에는 뭔가 해보려 할 것이고 달라질 것으로 본다. 과거 빌 클린턴 행정부도 1기보다 2기에서 대외 관계를 더 적극적으로 진행했다. 미국이 대외정책의 중심을 아시아로 옮기는 상황에서 역사적 족적을 남길 무대는 아시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오바마는 미중 관계에서도 새로운 변화를 보여 줄 것이다.

 

▽하 이사장=중국은 지속적인 고도성장의 후유증으로 복지나 분배 문제가 점점 커지고 사회적 갈등도 많아지고 있다. 국내적으로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중국이 일사불란한 컨센서스 속에서 동아시아 질서 창출에 나설 것이라고 전망하기에는 조금 조심스럽다.

 

▽정=시진핑 체제에서 중국의 우선순위는 경제성과 달성이 될 것이다. 따라서 시진핑은 집권 전반기 5년간은 다소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대외정책을 쓸 개연성이 크다. 지역이나 계층 격차, 소수민족 문제, 정치개혁에 대한 욕구 분출 등 다양한 내부 문제도 있어 이 시기를 낙관적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헨리 키신저가 “미국과 중국은 너무 커서 상대방을 지배할 수 없고, 또 서로 너무 필요해 외면하거나 고립시킬 수도 없다”고 했다. 이것이 적어도 양국에서 새 지도층이 출범하는 초기의 분위기가 아닐까.

 

▽하=요즘 미중 관계는 기성 대국과 신흥 대국 간 싸움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은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 정책을 펴면서 이 지역의 동맹도 강화하지만 동시에 중국과의 파트너십 강화도 모색하고 있다. 중국은 시진핑이 2월 ‘신형 대국 관계’라는 말을 처음 쓴 이후 그 표현의 사용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힘이 커지는 만큼 핵심 이익에 대한 목소리는 더 커질 것이다. 결국 중국도 미국처럼 두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 셈이다. 이 두 가지를 같이 봐야지 하나만 보면 잘못 보는 것이다. 현재는 낮은 수위의 패권 경쟁 국면이라고 본다. 미중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같아질 2021년쯤 되면 그때부터 위기 수위가 상승하지 않을까. 최소한 시진핑 초기 5년 안에 미중이 본격적으로 충돌한다는 시나리오는 헛스윙일 개연성이 높다.

 

▽정=지난 10년간 미중 간 경제 격차는 절반으로 줄었다. 시진핑 체제에서는 1 대 1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군사력은 향후 10년 뒤에도 여전히 엄청난 격차가 있을 것이다. 중국이 경제와는 달리 내부적으로 엄청난 취약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향후 양국 관계를 낙관적으로 본다. 투이불파(鬪而不破), 즉 ‘싸우기는 하지만 판은 깨지 않는다’는 중국 사람들의 말대로 갈 것이다.

 

▽하=오바마가 대선 유세 과정에서 “중국은 적이지만 규칙에 따른다면 잠재적 파트너가 될 수도 있다”라고 했다. 여기서 ‘규칙’은 누구의 규칙인가. 기성 대국이 자신의 룰에 따르라고 하면 신흥 대국이 받아들이기 어렵다. 중국이 이런 요구를 어디까지 받아들일지, 민주주의나 인권 같은 가치와 기준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봐야 한다. 양국이 군사적으로 직접 충돌하는 식의 문제보다 더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정=중요한 지적이다. 중국은 미국이 인권 같은 문제를 자꾸 언급하는 것을 자국의 약점을 잡아 자국의 굴기(굴起)를 억제하려는 술수로 보는 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계속 강요하면 양국 갈등의 수위가 대단히 높아질 수 있다.

 

▽하=미중 관계가 예상보다 나빠지면 한국은 운신의 폭이 매우 좁아질 수밖에 없다. 냉전시절처럼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외교정책을 짜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 나라가 군사적 충돌을 상정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전개되지 않을 것이다. 두 나라가 파트너십을 모색하는 상황이라면 더 세련된 외교정책을 짜야 한다. 미중 관계가 생각만큼 싸우지도, 생각만큼 화합하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정=이명박 정부에서 한미 관계는 굉장히 좋았지만 한중 관계는 나빠졌고 남북 관계는 더욱 안 좋았다. 한중 관계도 이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를 다시 균형 관계로 가져가려면 그 핵심 열쇠는 남북 관계다. 남북 관계가 좋아지면 한중 관계의 부담이 줄어든다. 새 정부는 적어도 지금 정부보다는 더 미래 지향적으로 남북 관계를 풀어 가야 한다. 중국도 이제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바라고 있을 것이다. 중국이 북한 때문에 지금까지 치러 온 비용이 너무 컸다. 북한의 후견자 역할을 하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처지를 경색시킨 측면도 있었다.

 

▽하=거듭 말하지만 한국은 미중 협력과 갈등의 이중구조 속에 놓여 있다. 따라서 한국이 양다리를 걸쳐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갈등구조에서는 가장 소극적으로 움직이고 협력구도에서는 최대한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식이다. 국면에 따라 취하는 방식도 이중적일 수밖에 없다.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다. 남북은 지난 5년간 하나의 판에서만 움직였다. 갈등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미중의 이중구조 속에서는 남북의 이중구조도 만들어 갈 수 있어야 한다. 북한이 군을 앞세운 ‘선군’에서 경제를 중시하는 ‘선경’ 정책으로 바꿀 수 있도록 한국이나 중국이 어떻게 지원할지 그 메커니즘을 고민해야 한다. 한국이 가장 먼저 그 고민을 해야 한다. 북한의 변화와 더불어 한국이나 중국, 미국도 공진(co-evolution)이 필요하다.

 

▽정=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미중 관계와 마찬가지로 호흡이 길다. 중국 권력 사이클이 최소 5년, 10년이니까. 반면 한국은 그렇지 못하니까 호흡의 차이로 인한 불균형이 있었다. 이제는 우리의 호흡 사이클도 중국에 맞출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면 어느 시점엔가 북핵 문제가 풀리지 않을까. 최근 한미중 3자회담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것이 북한을 배제하는 것이라면 중국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다. 6자회담 틀 내에서 변형을 줄 수 있는 방법들을 시도하면서 전략적 인내심을 갖고 나가야 한다.

 

▽하=우리는 기성 대국인 미국이나 신흥 대국인 중국을 상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외교 수단도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세련된 중견국 외교가 돼야 하는데, 가만히 보면 우리는 그런 국가와 일대일쯤 되는 걸로 착각하는 것 같다. 균형자론을 얘기하는가 하면 왜 치사하게 양다리를 걸치느냐는 식의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나. 리더도 착각하고 그 참모들도 착각하고…. 이런 수준으로는 아직 중견국 외교의 비전을 제시하기 어렵다. 중견국이 외부를 향해 가질 수 있는 최대한의 힘은 국내적, 초당적으로 단합된 외교다. 하지만 남북보다 남남이 더 분열돼 있는 상태에서 중견국 외교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 대선후보 모두 국내적으로 양분된 분열상을 모아 가는 대안을 못 보여 주고 있다. 합격점에 못 미친다. 세 후보 모두 ‘도토리 키 재기’ 수준으로 보인다.

 

▽정=그 밖의 다른 나라와의 외교도 중요하다.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외교 같은 분야에는 대국 외교에서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기후나 에너지, 환경 같은 분야를 다루는 외교의 판에서 대국 외교를 다룬다면 그 경직성도 완충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세 대선후보에게 그런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 게 아쉽다. 오바마-시진핑을 중심으로 새로운 외교의 장이 펼쳐지는데 거기에 대한 전략이나 비전은 없고 지엽적인 대북정책만 있다. 단편적 문제만 부각시키면 지금도 편린화돼 있는 내부 갈등을 부추기게 된다.

 

▽하=올해가 7·4 남북공동성명 40주년이다. 미국과 중국이 여는 새 시대가 이중구조로 얽힌 채 열리는 복합시대가 오고 있다. 우리에게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시기다. 지도자가 될 사람들은 더 큰 그림을 이야기해야 할 때다.

    http://news.donga.com/3/all/20121108/50723497/1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