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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호, <환재 박규수 연구>(09.08.29)
 

2010-07-23 
2009년 8월 29일 전파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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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석: 하영선, 강상규, 구대열, 김봉진, 김준석, 김현숙, 민병희, 양승태, 윤비, 전재성

발표: 김현숙, 서양인 여행기를 통해 본 '공존, 공생'의 조선 사회상

발제: 김준석
     김명호, <환재 박규수 연구> (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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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김현숙, 서양인 여행기를 통해 본 '공존, 공생'의 조선 사회상

강상규: 서양인 여행기 참조 목록은 어느 정도인지?

김현숙: 약 20권 정도를 참고로 하였음. 그러나 우리나라 사회상 경제상 등을 잘 말해줄 수 있는 사람들은 이들 여행자들이 아니라 한국에서 오래 거주한 선교사들이다. 여행기에서는 조선의 상황을 피상적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선교사들의 기록을 참고하여 사료를 더 보강해야 할 것.

양승태: 여행기, 선교사들의 눈으로 본 한국 사람들의 모습이 유럽 사람들에 비해 생태학적이었다는 평가인데, 하지만 외국인들만이 조선 사람들이 생태학적이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는 존재였는가? 생태학적 삶이 오로지 외국인들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인가? 이를테면 당시 조선 사람들 스스로 그렇게 느낄 수는 없었는가?

인류학의 출발이라는 것이 사실 여행객들에 의해서 소문이 나서 인식이 되는 과정이었음. 서양 사람들의 시각에 담겨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이들이 어떠한 배경에서 무슨 목적으로 그렇게 기록했는가 하는 측면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18세기 벌써 서양에서는 도시화, 자본주의화가 되었다. 그와 비교했을 때 조선에 대해 생태적이라는 평가를 하지 않았을까? 따라서 그들이 갖고 있었던 시각을 서술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보다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

김현숙: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으로 여행기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한국에 대해서 정치적이고 미개하고 야만적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많은데,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이 보다 객관적인 기준이 되기 위해서는 여행기에서 드러나는 다른 측면의 평가, 즉 공생, 공존의 기록을 추출해보자는 의도에서 이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를 하고 있는 여행기가 많지는 않다.

구대열: 고문관 연구라는 것이 서양 동양의 교류가 점차 확대되면서 상호 인식이 증대되어 이러한 견해가 나온 것일 수도 있다. 고문관들을 왜 어떻게 초대하게 되었는가? 그들의 출신 국가는 어디이며, 그 국가들은 어떤 의도가 있었는가?

김봉진:  첫째, 김현숙 선생님의 연구를 보면, 고문관 연구와 서양 여행기 연구 사이에는 비약, 혹은 전환이라고 부를 만한  갭이 존재하는 듯하다. 연구 방향이 달라진 계기가 있었는지? 둘째, 우리나라에서 생태 역사학이 어느 정도 진행이 되고 있는지? 본인의 용어인지? 셋째, 서양 여행기를 통해서 무슨 메시지를 던지고 싶은 것인지? 여행기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있다. 그 중 저는 하버드대에서 여행기 자료를 모두 보고 왔는데, 지금까지 이러한 여행기들을 심층적으로 읽어낸 사람이 없다. 오리엔탈리즘을 우리식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 것이 생태 역사학일 수도 있다. 그런데 생태 역사학이 무엇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인가? "so what?" 이라는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김현숙: 현재 박찬승 선생님이나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19세기-20세기 농촌의 토지제도 연구 프로젝트 진행하면서 추수기 토지대장을 통해서 지주-소작인 관계, 일상문화사 연구. 그 과정에서 마을연구를 하게 되었는데, 특히 구술연구 중심.
연구를 하면서 내가 배운 역사와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됨. 예를 들어 지주-소작인 관계를 계급 갈등론적 시각으로 접근하려고 했었으나, 실제 인터뷰를 하면 지주가 관행적으로 호혜를 베풀었다고 함. 그러면서 근대주의, 계급론에 입각한 역사론 보다 생태 역사학이 우리 역사를 더 잘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됨.
물론 공존, 공생의 논의가 지배계층의 수탈을 정당화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우리 연구의 목적은 그 동안 간과되어온 아래로부터의 공존, 공생의 측면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생태역사학으로 옮겨간 또 다른 이유는 학문적 수요 때문.
생태 인문학, 생태 역사학이라는 용어는 우리가 쓰고 있는 용어이다.

민병희: 환경 역사학(environmental history)과는 어떠한 구별이 있는가?

김현숙: 환경역사학과 생태역사학의 구분은 환경과 생태의 정의와 연결되어 있음. 환경은 인간이 보호해야 할 하부적인 것. 생태는 인간까지 포함하는 개념. 환경과 생태는 큰 차이가 있다. 따라서 환경사에서는 환경과 인간의 구분에 초점을 맞추는데, 생태사에서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생태 안에서 파악하려고 함.

김봉진: 성신여대 최민자 교수 같은 분도 '생태정치론'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우리나라 정치학이나 경제학에서는 계급론적인 관점이 많이 투영되어 있는데, 그러한 의미에서 사회사, 문화사 쪽의 연구가 더 필요할 것. 조선시대 연구에 있어서도 당쟁 측면만 강조된다. 그러나 문화사도 모르고 정치사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김현숙: "so what?"에 대한 답변. 생태 역사학을 통해서 2분법적 역사관-즉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구분, 갈등과 투쟁-을 넘어서 같이 평화적으로 공존 공생했던 측면을 볼 수 있을 것.

김봉진: '현재의 눈으로 보는 역사'가 아닌 '당시의 눈으로 보는 역사'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인가?
우리는 전통을 비판하기에 급급했다. 우리는 오늘날 발전의 동력을 현재에 있었다고 보고,  과거를 모두 부정하고 있다. 전통의 재해석이라는 측면에서 생태 역사학은 중요한 의미가 있을 듯.

김현숙: 저희 연구가 어느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지금도 공존 공생이 존재하고 있으며, 당시 사회를 어떻게 보았는지를 보고자 함.

김봉진: 전에 최민자 선생님께 드린 말씀을 김현숙 선생님께도 드리고자 한다. 앞으로 더더욱 거듭나는 모습 보여주시길. 생태 역사학이란 학문은 매우 새롭다. 그러나 새로운 만큼 빈약한 부분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
외국인들의 여행기를 통해서 당시 조선의 생태학적 측면을 부각시키고자 한 것은 주목할 만하지만, 더 폭넓은 자료와 깊이 있는 해석이 필요하다.

양승태: 조선시대의 촌락 공동체가 얼마나 아름다웠는가, 하는 이야기는 좋은데, 그것이 사회 체계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였는지에 대한 설명이 더 필요할 듯. 예를 들어, 외국인들이 보기에 이토록 공존, 공영적인 공동체를 토대로 한 사회와 정치적으로는 세도정치와 어떻게 맞물리는지 설명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또는 조선시대 정치체제가 이와 같이 지방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해줄 수 있어야.
다시 말해서 사회구조적 체제를 떠나서 마을 공동체 자체만 묘사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역사의 연동 속에서 공동체 문화를 살펴야 한다. 마르크스가 계급 갈등을 이야기하는 것의 요체는 총체성(totality)이다. 그의 논의를 부분적으로 떼어서 보면 안된다. 그의 갈등론을 비판한다는 것은 일정 부분 그가 상정하는 사회나 국가 전체에 대한 다른 설명이 있다는 것인데, 그러한 측면에서 생태 역사학에서 말하는 공존, 공영의 공동체가 실제로 조선 사회, 정치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김현숙: 우선은 각 시대별로 상호 부조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보려 한다. 그리고 나서 시대별로 변화 속에서 연속성을 보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는 더 포괄적으로 거대하게 접근하고자한다.

양승태: 레비스트로스의 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그 이전에 많은 연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학문의 기틀을 잡아 주시길.

하영선: 들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생존의 문제 때문에 외교사에서 지방사로 바꿨다는 것. 국제사보다 지방사가 더 인기 있다는 말인가?
우리 역사를 과거에는 보통 민족사관 중심으로 보았다. 최근에는 제국주의 혹은 국제사가 아니라 천하질서로서 역사를 보려는 시도가 시작되고 있다. 모던과 포스트모던을 지나, 이제는 공동체사적 수준에서 지방, 국가, 세계를 조명하면서도 총체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Gemeinschaft에서 Gesellschaft로의 전개와 관련하여, 천하질서가 유리했다면 왜 서양 질서 체제에 맞서지 못했는가, 공동체가 잘 작동되었다면 왜 자본주의적 사회에 졌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따라서 게젤샤프트와 게마인샤프트의 통합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앞으로 더 의미 있을 것이다.
특정 사회 현상의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설명함에 있어, 예를 들어 두레 공동체사의 경우 기존의 연구에서는 한쪽 시각에서만 접근했다면, 사회경제사적 측면과 민족사적으로 양 측면을 비교하면서 살펴볼 수 있지 않을까? 두레와 생산성의 관계, 그리고 21세기적 의미를 함께 담아내야 한다.

김봉진: 이 연구는 자체로서 의미가 있다. 다만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던 이유는, 여행객들의 시각뿐 아니라 조선인들 자신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또한 포함해야 한다는 의미.

구대열: 지역 공동체 연구를 국가사와 연결시키는 작업은 매우 거대한 작업이다. 역사학, 사회학 뿐 아니라, 앞서 마르크스 이야기도 하셨지만 이러한 서양 철학사상을 모두 담아내야 한다.
덧붙여 지방사, 도시역사를 연구해야 전체 국가사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역사학에서는 거꾸로 국가사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고 있고, 실제 사회상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여행기 중 한국에 주거했던 외교관들의 여행기도 존재한다. 외교문서 속에도 그러한 여행기가 있다. 그 자료들이 이러한 인식을 더 잘 보여줄 것이다-물론 그들에게는 정책적인 목적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만.

양승태: 여행객의 지적 수준과 사회적 배경 또한 간과될 수 없다. 또한 그 여행객에게 영향을 미친 이전 여행자들의 기록 또한 살펴야 한다.

구대열: 총체성이라는 관점이 아니고서는 당시 사회를 이해 못한다. 아무리 계급투쟁을 하려고 해도 개별 공동체 사회가 안정되어 있고 그 집합체인 국가가 안정되어 있다면 불가능한 것이다. 모택동 전집에서, 농민 폐쇄성 때문에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 한 것도 같은 맥락.

하영선: 지방자치단체의 도움을 받아 지방사를 시작했으나, 그 처음 의도가 어떠했든 간에 연구자로서 앞으로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임. 그런 의미에서 전통 공동체에서 21세기 공동체로의 전환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기존의 경제사에서 하고 있는 것과 비슷해질 가능성이 많다. 결국 '총체적으로 본다'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할 것.

김현숙: 2000년 넘어서부터 지방사를 시작했음. 처음에는 계급적 관점에서 시작되었는데, 자료를 보면서 시각이 바뀌게 된 것.

김봉진: 제대로 모르면서 전통을 비판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간단한 작업이 아니지만, 지방사를 제대로 연구해주셨으면.

김현숙: 주로 지주-소작인 관계 연구를 해왔다. 지대수취 문제, 특히 양자관계에서 지대율이 어떻게 정해지는지 연구. 지대율이 정해지는 과정에서 지주와 소작인 사이에서 상호작용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살펴보고 있다.

양승태: 사회과학 이론을 역사학으로 그대로 옮겨온다는 것은 폭력적일 수 있다. 생생한 역사적 기록을 사장시키고 특정한 부분만 보게 될 소지가 있다.

민병희: 구술사 연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김현숙: 생존 인물들의 인터뷰 뿐 아니라 그 지역의 경관, 지형, 지명, 속담, 전설들에 관한 모든 자료를 모은다.

구대열: 역시 당시의 맥락에서에 이러한 것들이 존재하게 되었던 배경을 살펴야 한다.

민병희: 인민재판은 6.25, 여행기는 1880년대, 지주-소작인관계는 19세기 초반 등으로 시차가 많이 나는데, 이러한 시차가 섬세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김현숙: 오늘 발표한 글은 초고 단계이며, 앞으로 서양 여행기 이외에도 다른 자료 또한 참고할 계획. 다만 기존 연구에서 부각되지 않았던, 외국인들의 여행기에서 드러난 생태학적 시각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생각.
이 자리에서 선생님들께 여쭙고 싶은 것은, 이 연구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생태역사학 담론이 괜찮은지?

하영선: 그렇다면 1880년대 여행기들을 실제로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김현숙: 150년 정도는 문헌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그 이상은 힘들지만.

윤비: 역사학에서도-EU 통합과 세계화 관련해서-타자를 알기 위해서 여행기를 연구해왔음.
그렇다면 생태 역사학적 접근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가?
오리엔탈리즘 논의에서는 동양을 서양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부정적인 것으로 비추어 지는데, 사실 자본주의, 낭만주의를 비판하면서 나타난 오리엔탈리즘, 거기에는 상당히 긍정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독일 르네상스 시기 중세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중세가 암흑기였으나 한편 상호부조적이고 조화로운 세계였다는 평가 존재. 그러한 점에서 보면 서양인들이 바라본 조선 또한 이와 같이-상호부조적이고 조화로운 세계-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덧붙여 방법론에 있어서 니콜라스 루만(Niklas Luhmann)을 참조하시면 좋을 듯. 루만은 생태학과 사회과학을 다루고 있음.

구대열: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가 말하는 원만한 사회를 이루게 하는 요소인 것이다

양승태: 고문관 연구 관련. 우리나라에서 서양 고문관을 초빙했던 의도는? 왜? 그리고 어느 나라에서?

김현숙: 각 부서별, 나라별 케이스 스터디가 진행중이다.

강상규: 고문관 연구에 있어서 손열 선생님과 김현숙 선생님 두 분의 연구가 유일하다. 고문관 연구는 당시 조선, 일본을 동시에 보는 작업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특히 묄렌도르프 (Mollendorff. P.G.von)와 김옥균 관련하여.

김봉진: 비교연구는 물론 어려우나, 일본은 고문관이 매우 많았다. 사전으로까지 나와있을 정도. 중국도 숫자는 적지만 지방까지 합하면 100명이 넘다. 이들 하나하나가 국제정치와 연결되어 있다. 묄렌도르프, 데니(Owen N. Denny), 러젠드르(C. W. Legendre) 등.


II. 김준석: 김명호, 환재 박규수 연구 (창비,2008)

양승태: 박규수가 처음 의복 개혁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인가? 의복 개혁문제가 제기된 이유는?

강상규: 원나라 복식과 유사하게 입으면 안된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던 송시열에서부터 시작함. 복식의 변화가 당시 이념과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그러한 조선 복식사를 당시 박규수가 정리하고 있다.

양승태: 단순히 중국의 것을 바꾸자는 것인지? 왜 고대 중국의 복제를 이상적으로 보았는가?

김준석: 당시 당파를 넘어서 모두가 의관개혁을 추구하고 있었다. 단순한 유행의 문제는 아니었다.

강상규: 현종대 의복논쟁 등을 통해 볼 때 권력문제, 군신공치 등이 모두 얽혀 있는 문제였다. 삼국시대 당의 복식을 신라가 받아들인 것을 생각한다면, 우암 송시열이 말했던바 '고대로 돌아가자'는 의미를 다시 음미해보아야 한다.

구대열: 청의 변발과 복식에 문제 제기했던 것처럼, 원의 영향을 비판하기 위해 나타났던 것이었지 않았나?

김봉진: 주나라 때의 고대 복식에 근접해야겠다는 논의는 꾸준히 이어져 왔었다.

구대열: 당시 명의 복장도 본래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중화주의를 내세웠던 것이다.

양승태: 원래 동도서기의 시초라고 불리는 사람은 누구인가?

강상규: 농정신편 서문을 쓴 신기선으로 보고 있음.

하영선: 박규수를 개화 쪽에 가까운 인물로 연결시키는 것에 대해서 역사학계에서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김준석: 이 책에서도 박규수의 개화사상에 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음.

구대열: 그렇다면 박규수가 세계사적 격변에 대처하기 위한 시무책을 강구하는 데 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평가는 사후적 해석일 듯.

강상규: 박규수 생애 후반시기를 다룰 예정인 저자의 다음 저서를 기대. 박규수에게 전환기가 될지.

김준석: 박규수에게 있어 조부였던 박지원의 영향이 컸을 것.

하영선: 동방강이 추사가 신학문을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조선의 제일이라고 칭찬했는데, 이를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했을 것. 이후로도 네트워크가 지속된다. 추사는 외국의 경향에 민감했던 당시 인물들 중에서도 최고를 달림. 세한도를 그리는 계기가 된 것도, 이상적이 황조경세문편(皇朝經世文編) 등을 구해 보내주었던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였다. 추사는 제자들이나 역관들로부터 당대 중국의 최신 서적을 조달받고 있었다.

양승태: 남병철을 몰랐던 것인가?

김준석: 남병철이 서추보속해후(書推步續解後)를 쓰기 전까지만 해도 서학중원설(西學中原說)을 비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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