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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승혜, <동아시아 예술에 나타난 이상향-한중일 회화에 있어서 도연명의 수용과 변용> (08.10.25)
 

2008-11-01 
2008년 10월 25일 전파모임

참석: 하영선, 김봉진, 전재성, 구대열, 양승태, 강상규, 최진덕, 김준석

발표: 선승혜

주제: 동아시아의 예술에 나타난 이상향-한중일의 회화에 있어서 도연명의 수용과 변용

Ⅰ.선승혜 선생님 발표

1. 소개

- 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서울대 미학 학사, 석사, 도쿄대 미술사 박사수료: 동양미술 전공
하버드대학 옌칭연구소 초청펠로우 (2002), 도쿄국립박물관 외국인연구원 (2007)
- 현재 중앙박물관에서 11월 18일부터 전시를 시작하는 1930년대 이왕가(李王家) 미술관(덕수궁 석조전에 위치했음) 수집품 40여 점 전시를 기획하고 있음. 1945년 이후 공개되지 않은 작품들로서 일본이 수용한 서양화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임.

2. 발표 및 토론

제목: 동아시아의 예술에 나타난 이상향-한중일의 회화에 있어서 도연명의 수용과 변용

- 동아시아 이상세계에 대한 이미지와 세계관에 관심.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시에 나타난 도화원이 어떠한 방식으로 한, 중, 일 회화에 나타났는지 보고자 함. 도연명이 읊은 시가 후대에 정치가, 학자의 문학이나 미술 작품에 등장. 도연명의 시를 보면 오류(五柳)선성/음주(飮酒)/귀거래사(歸去來辭)/도화원기(桃花源記)/호계삼소(虎溪三笑)로 나눌 수 있는데, 오늘 볼 작품들은 유토피아를 찾아 나서는 도화원기를 표현한 회화 작품들.

- 도화원도(桃花源圖) 연구에 있어서 당시의 정치적 상황, 사람들의 이상세계에 대한 관념을 그림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즉 그림이 나타내고 있는 사회적 정치적 의미를 살펴야 한다고 봄. 도화원도 조사 과정에서 유럽, 미국, 동아시아에 퍼져 있는 도화원도를 포괄하고자 함. 회화연구 이전에 실제로 그림의 배경이 되는 곳을 찾아 호남성(湖南省) 동정호(洞庭湖) 옆에 있는 도화원 답사.

-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따르면, 중국 진나라 시기 한 어부가 물길을 따라가다가 길을 잃어 복숭아꽃이 만개한 곳에 도착, 숲이 끝나는 곳에 동굴이 있어 배를 그곳에 두고, 동굴을 지나니, 토지가 넓은데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 있었다. 입고 있는 의복으로 보아 요즘 사람 같지 않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았는데, 이들은 진나라 폭정을 피해 살던 사람들이었고, 지금 세상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어부가 떠날 때에 이들은 세상으로 돌아가서 이곳의 존재를 발설하지 말라 했으나, 어부는 이를 어겼는데, 다시 도화원을 찾으려 하자 길을 찾지 못했더라.
- 비록 지금으로부터 1500년 이전 사람이지만 지금까지도 동양에서 도연명의 도화원은 유토피아로서 인식되고 있음.

- 지명에 대하여: 도화원이라는 명칭 이전에 무릉도원의 무릉이라는 지역 명칭은 진나라 때에 이미 존재. 도명이라는 지명은 서한 때부터 존재가 확인됨. 그러나 이 두 지역은 거리가 많이 떨어져 있음. 청나라 이전부터 존재하던 호남성 도원현지(縣誌)를 보면, 실제의 지리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도연명의 무릉도원을 형상화한 그림이 수록되어 있음.

양승태: 도화원이라는 지역이 도연명이 시에서 사용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는가?
선승혜: 이미 도연명이 사용하기 이전에 존재했을 것. 다만 도연명이 지칭한 도화원을 현재의 도화원 지역과 일치시킨 것은 서한 대 들어와서임.

- 복숭아는 서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해졌는데, 그 루트가 곤륜산을 지나 들어오는데, 그 과정에서 서왕모(西王母)에 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면서 복숭아가 불교적인 상징성을 갖게 되었을 것. 그러나 이미 도원이라는 단어는 존재했었을 것으로 추측되며, 다만 도연명이 이 단어를 불교적 이상향이 아닌 일상적 삶에서의 이상향으로 바꿔 사용함. 특히 일상속의 평화로운 삶을 내포하고 있는 '도원'을 텍스트를 통해 전하는 전통이 도연명으로부터 시작했다는 데 의미가 있음. 그러나 후대 사람들은 도원의 의미를 이렇듯 일상적 의미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기도 함.

- 도연명의 도화원은 송대 소식(蘇軾)이 재평가 하면서 부각되기 시작하였으며, 도화원이 불사의 땅이 아니라 일상 속에 존재하는 것이라 봄. 도화원도는 송대 조백구(趙伯駒)가 처음 그렸으나 전하지 않으며, 현존하는 것 중에는 명대에 그린 그림이 가장 앞선 시대의 것임. 명대에는 이상세계를 소재로 한 그림의 수요가 많았음. 특히 명대 구영(仇英)의 도원도가 유명함.

- 도화원도는 이상향을 담은 구도와 내용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음.
· 서술적 이상향: 일상, 생활 속의 유토피아/在俗/중국 송대 이후, 직업화가/에도
· 선택적 이상향: 관습속의 유토피아/在俗과 脫俗 사이/중국 명대, 청대/조선 에도
· 상징적 이상향: 내 마음 속의 유토피아/脫俗/중국 원대 이후, 문인화가/조선 에도


① 서술적 이상향을 그린 도화원도
특징: 도연명의 도화원기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회화로 세세하게 표현, 그림의 길이가 길다.

- 도화원도의 소재
복숭아 꽃: 조선 지식인들이 좋아하던 그림이었음. 사실 문인들은 스스로 그릴 때에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표현한 사군자를 선호하였으나, 화공 등 타인에게 그림을 의뢰할 때에는 섬세하고 색이 다채로운 그림을 선호함.
동굴과 배: 통과, 통로의 상징적 의미.
청록산수(靑綠山水): 유토피아를 의미, 돈황을 거처 불교와 함께 색채가 있는 불교회화가 들어오게 되는데, 이때부터 색채를 넣은 것 산수는 이상 세계를 의미하게 됨. 지난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이를 표현하였음. 즉, 처음에는 사람들이 흰 종이에 먹으로 산을 그리는 장면, 그리고 실크로드를 표현한 장면 이후, 나중에 색색깔의 꼬마들이 나와 산에 색채를 입히는 장면을 보여줌.

양승태: 외국의 영향을 받아 청록산수 이미지로 그렸다는 이야기인가?
선승혜: 채색화가 들어오자, 기존의 수묵화로 표현한 산수가 평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그리고 청록으로 채색된 산수가 유토피아를 나타내는 것으로 변용된 것으로 추측.

구대열: 색깔이 동서남북 방향을 나타내기도 하고, 정권의 상징 빛깔이 되기도 하며, 황제나 직위에 따라 의복 색이 달랐던 것처럼 색이 갖는 상징성 또한 존재했을 것.
선승혜: 덧붙여, 당시 사람들은 유토피아를 동경하면서도, 그를 표현한 청록산수를 수묵화로 표현한 산보다 한 급 아래로 평가하는 경향이 존재했음. 이는 지식인이 정신세계를 반영한 문인화를 높이 쳤기 때문. 우리나라 청록산수의 대표적인 예는 왕 뒤편의 일월도(日月圖)를 들 수 있음.

양승태: 일반 문인화에서도 채색산수화가 존재하는가?
선승혜: 명대 동기창은 그림의 등급을 매길 때 색을 쓰는 화풍을 먹으로만 그리는 화풍보다 낮게 평가. 이는 색을 써서 그리는 북종화의 경우 많은 노력을 강조하는 데 반해, 먹으로 그리는 남종화는 순간의 깨달음을 강조하였는데, 동기창은 문인이 추구해야 할 것으로 노력 보다는 깨달음을 중시했기 때문. 그러나 착색 산수화의 경우 급은 낮게 평가하지만 직업 화가들에 의해 많이 그려졌으며, 왕실 내 모란병풍 등에서 볼 수 있음. 한편 이는 지식인의 딜레마라 볼 수 있는데, 내가 그리지 않는 그림은 채색화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임. 그러나 다른 도원도와 달리 몽유도원도는 색이 없음.

양승태: 송대 소식이 도연명을 재평가한 이후, 송대 조백구가 도원도를 그렸으나 지금 전하는 것이 없고, 명대의 것만 현존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왜 당대의 도원도는 없었나?
선승혜: 당대의 도화원은 불사적 의미가 담겼을 것이라 추측. 즉 서왕모가 사는 궁전과 청록 산수 일변도였을 것이며 어부나 동굴도 등장하지 않았을 것.

양승태: 조백구는 누구인가?
선승혜: 송대 왕실의 한 사람으로서 청록 산수를 즐겨 그림. 반면 명대 구영은 직업화가로서 송대 조백구의 그림을 모방하여 퍼뜨림. 명대에는 문인은 문인화만 그려한다는 관념 때문에 채색화의 경우 거의 직업화가에 의해서만 그려짐. 이들은 주문제작하는 방식을 취했으며, 구영의 그림은 한국, 일본에도 수입이 됨.

- 보스톤 미술관 소재 구영의 <도원도> :논과 밭 낮은 산 등, 초가집, 개, 소, 마을 사람들과 어부의 대화 장면에 대한 설명.
닭과 개: 닭과 개가 도원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음. 그 이유는 노자가 생각한 이상세계는 닭이나 개 짖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가까운 이웃마을에도 가지 않는 것이라 말했기 때문. 즉 한 곳에 정착하여 평화로이 사는 것을 도원도에서 반영하고 있음. 그러나 보스톤에 있는 도원도에는 닭이 없다. 이는 도연명이 도화원기에서 닭소리가 들리고 나서 닭을 잡아 대접했다고 기록한 부분을 철처하게 반영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듬. 닭과 개가 도화원도에서 중요한 소재이긴 하나, 닭의 유무로 도화원도 진본을 판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림. 한편 닭을 잡는 것을 과연 이상세계로 생각할 것인가 하는 비판도 제기된 적이 있음. 소동파의 비판은 현실이 바로 유토피아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으며, 이는 송대 유학자들의 견해를 담고 있음.
개는 털 짧고 꼬리 긴 백구. 에도시대까지 도원도에는 백구를 빠뜨리지 않음.
술잔: 붉은색 칠기
병풍: 파도 그림

양승태: 의상은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가?
선승혜: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따라 진나라 옷으로 그려야 했으나, 진나라 복장으로 보이지는 않음. 죽림칠현 때의 의복으로 추측됨. 명나라 의상은 아님. 술잔은 시대를 제대로 반영해 청동기로 그린 경우도 있다.

양승태: 초대받은 집은 기와집인데 마을 사람들의 초가집과 다르다? 이상사회를 평등한 사회로 그리지 않은 것?
선승혜: 초대하는 집은 마을에서 가장 좋은 집이어야 한다는 의식에서 기와집으로 그렸던 듯 하다. 도원도에 나타난 유토피아에는 평등에 대한 인식은 보이지 않는다.

- 도원도의 딜레마: 유토피아를 떠나야만 함. 묘사를 보면 선비와 도사와 같은 의복으로 옷이 바뀜.

양승태: 명대 구영은 얼마나 많은 작품을 남겼나? 수하에 도제들이 존재했나?
선승혜: 직업화가로서 본인이 직접 그림만 존재. 숫자 기록은 없음. 숫자를 기록을 하는 순간 그 수를 맞춰야 하는 문제가 있었을 것. 구영이 도원도를 그리는 방식은 두 가지로 나뉨, 처음부터 나가는 순간까지 서술적으로 그리는 경우와 선택적으로 그리는 방식.

* 명 구영의 작품과 비슷한 것으로 일본 타니분초(谷文晁, 1763-1840)의 <도원도>
청록산수가 분명하게 드러남. 색채가 매우 중요하게 표현됨. 에도 시대 이미 난학의 영향을 받아 서양화의 원근법으로 그림, 그러나 전체적 스토리는 중국의 도원도와 똑같고, 의복도 중국식으로 표현.
추가된 부분 존재: 청동기 혹은 칠기 술잔이 아닌 작은 술잔으로 표현한 것은 중국 진나라 시대를 제대로 고증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보여짐.
달리 표현한 부분: 어부가 도원을 나오지 않고 다시 돌아가는 것으로 변형시켜 표현한 것은 일본 사람들의 유머로 생각됨.
타니분초는 조선통신사와 관련이 있으며, 후지산 그림이 조선에 유명했음. 도쿄를 대표하는 문인화가로서 여러 종류의 그림 그렸음. 특히 청록산수로 유명하였으며 또한 잘 그림. 청탁 받아서 그림. 조선의 경우 청탁을 받아 그리는 경우는 중인이 주를 이루었고 이들은 문인화가와 구별되었는데, 일본에서는 문인화를 직업적으로 주문 제작하는 사람들을 문인화가라 지칭.

* 고슌(吳春) (1752-1811)
봄의 몽환적 분위기만 전체 그림의 2/3 차지함. 에도시대 화가들이 이해하기에는 유토피아가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자기 나름대로 축약하여 그린 듯함.


② 선택적 이상향을 그린 도화원도
특징: 지금까지는 서술적 이상향에 대한 작품을 감상했다면, 다음으로 선택적 이상향의 모습을 그린 작품을 보기로 하겠음. 서술적 이상향은 도연명의 시를 모두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5미터 이상의 길이가 긴 그림이어야 하는 반면, 선택적 이상향의 모습은 동굴로 들어가는 장면, 도원의 사람들과 어부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만 선택적으로 그렸기 때문에 경제적임. 아울러 길게 두루마리가 아닌 화첩 형태로 유행.

* 송대 이당의 <도원도>
도원의 장면을 선택적으로 그렸으나, 하나만 보고도 열을 설명하는 그림. 즉 어부와 사람들이 이야기 나누는 장면만 봐도 도원도임이 드러남. 두루마리가 아닌 화첩 그림으로 유행하면서 가로로 긴 그림이 아닌 세로로 긴 그림으로 등장. 명나라 사신을 통해서 그의 그림이 유입됨.

* 池大雅 의 <도원도>
칠순 잔치를 기념하며 선물하였다는 문구가 발문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아, 유토피아가 장수를 뜻하는 것으로 의미의 변형이 일어난 것으로 볼 수 있음.

* 안중식(1861-1919) 의 <도원도>
역시 배와 동굴만 묘사한 그림으로 나머지 부분은 보는 이의 상상력에 맡김.

③ 상징적 이상향을 그린 도화원도
특징: 내 마음속의 이상향을 독창적으로 표현

* 안견의 몽유도원도
당시 조선 지식인들은 정신세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특히 당시 이상세계는 정치투쟁에서 만들어졌음을 보여줌. 안평대군 죽음을 예감한 상황에서 그 두려움을 꿈 이야기를 하면서 안견에게 도원도 그림을 부탁. 특이한 점은 일반적인 도원도 구도, 즉 우측의 세속-가운데 유토피아-좌측의 유토피아를 나오는 장면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니라, 우측에 도원-좌측에 세속적 현실을 그리고 있음. 또한 마을이 없고 사람들이 없음.
발문의 내용: 도원에 혼자 가는 어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유학자와 함께 가고 싶다는 내용. 정치적 문답을 묻는 그림으로서, 이 도원도를 들고 다니면서 한명씩 보여주면서 문종과 세조 사이에서 정치적 선택을 묻는 그림이었을 것.

양승태: 몽유도원도는 세종대 그려진 것이 아닌가?
선승혜: 그림이 그려진 시기는 세종이 이미 기력이 다하여 왕위 계승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하였던 때이므로 안평대군이 위기감을 갖았을 것. 이에 대해 단종을 보위하는 것이 옳다는 답변, 혹은 반대의 답신이 함께 수록되어 있음.

* 중국 왕몽(王蒙, 1308-1385)의 도원도
도원의 아침 그림으로 배와 동굴을 그린 것에서 유토피아적 상징성이 드러남.

* 왕휘(王翬, 1632-1720)의 도원도
마을, 어부, 배도 없고 몽환적으로 표현함. 모던적 느낌. 이야기 또한 변형시켜 어부는 등장하지 않지만 어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그림.

* 일본 유사부손(1716-1784)의 도원도
유곽에서 그린 그림으로, 얼굴이 붉은 어부 표현. 서왕모 이야기에서 보이는 여성의 상징성을 복숭아에 담아냄. 시 또한 에로틱한 내용을 담고 있는 원대 양명학 좌파의 시를 적고 있음. 또 다른 버전의 도원도에는 사람들이 유쾌하게 웃는 것을 그리고 제발도 도연명의 시가 아닌 다른 것을 실음.

양승태: 당시 에로티시즘이 일본 회화에 유행이었나?
선승혜: 판화로서 유행하였으나 회화에서는 그렇지 않음.

* 일본 오카다한코(1782-1846)의 도원도
아들을 다시 본 것에 대한 기쁨으로 복숭아꽃을 심는다는 내용의 시를 표현한 작품. 내용이 많이 변형되어 있음.

- 결론
· 서술적 이상향: 일상생활 속의 유토피아/在俗/중국 송대 이후, 직업화가/에도
· 선택적 이상향: 관습속의 유토피아/在俗과 脫俗 사이/중국 명대, 청대/조선 에도
· 상징적 이상향: 내 마음 속의 유토피아/脫俗/중국 원대 이후, 문인화가/조선 에도

한중일 모두 도원도에 유토피아를 형상화하였으나, 그 방식에 있어서 도연명의 시를 드러내는 방식에는 차이를 보임. 서술적 이상향은 보다 일상생활 속의 유토피아로서 현실주의자의 면모를 보인다면, 선택적 이상향은 특정 장소나 사물이 불러일으키는 유토피아의 모습에 기대고 있으며, 상징적 이상향은 작가만의 고유한 의미를 담은 유토피아를 형상화하고 있음.

양승태: 완전히 다른 형식으로, 도원이 아니면서 이상향이 표현된 그림은 없나?
선승혜: 불화가 그러함.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의 정의가 불분명한 것처럼, 미술에서도 정확히 어떻게 그려낸 것이 유토피아를 표현한 것인가 논란이 될 수 있음.
구대열: 유토피아를 반드시 사회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에서도 별천지라고 이야기 하고 있으며, 불로장생이 바로 유토피아라는 의미로 쓰이는 것을 보았을 때 반드시 유토피아를 어떠한 사회로 국한시키지 않아도 될 듯.
선승혜: 구체적인 묘사 없이 배만 등장시켜 나머지는 상상에 맡기는 그림 또한 도원도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너머 존재하는 유토피아를 그리지 않았어도 유토피아를 그린 그림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가 불분명. 또한 남명 조식의 '두륜산 양단수를'에서도 무릉이 바로 여기다 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을 때, 일상적 의미의 유토피아를 그린 그림 또한 같은 류로 볼 수 있을 것.

하영선: 몽유도원도를 동양 3국 도원도중 제일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  평가기준은? 그림을 그리는 마음의 애절함의 깊이와 표현 기법의 뛰어남이라고 할 수 있나?
선승혜: 일단 시기적으로도 다른 도원도에 비해 이른 시기에 그려졌기 때문에 가치가 높다. 곽희 화풍 등 당시 중국의 화풍과 기법을 모두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음. 여기에 더하여 안평대군의 새로운 형식과 기법으로 도연명의 이야기를 승화시켜 자신의 이야기로 담아낸 것에 더욱 의미가 있음. 특히 정치적으로 지식인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을 했던 그림이라는 점에서 독특함.

양승태: 몽유도원도에서 현실과 이상향의 방향성이 다른 것은, 즉 유토피아적 과거에서 현실로의 방향성을 표현한 것은, 유토피아는 오로지 과거 속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건설하자는 의미가 아닌가?
선승혜: 맞습니다.

김봉진: 몽유도원도는 어떻게 일본으로 갔는가?
선승혜: 일제시기 이전 19세기말 일본에 소재한 기록있음. 지금은 표구가 되어 있었는데, 제발 순서가 신숙주가 젤 먼저 나온 것으로 볼 때, 몽유도원도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일본사람이 했을 것. 어떻게 보존이 되었을까? 제발을 쓴 문인들이 자신의 문집에 그 글을 그대로 실으면서 몽유도원도의 존재가 확인되었을 것이나 그림 자체를 봤다는 기록은 없다. 따라서 비전되었을 것.
김봉진: 일본이 그 것을 추적하여 발견한 것도 대단하다.

양승태: 안견의 다른 종류의 그림은 어떠한가? 화풍이나 기법면에서? 다른 사람이 그린 도원도는 어떠한가?
선승혜: 안견은 도화가이기 때문에  다른 그림도 많이 존재. 유명한 것으로 소상팔경도가 있는데 화풍은 비슷. 도원도는 다른 사람이 그린 도원도도 많이 존재함.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도원도기 보다는 귀거래사를 더 좋아했던 듯 보인다.

구대열: 소식이 도연명을 재발견한 것은 사실이나, 소식이 가장 높이 친 것은 '초막을 치고 인가 근처에 살아도 수레와 말의 시끄러움을 모르겠네, 속세에서 마음 머니 사는 곳도 외지다네, 동쪽 울타리 밑 국화를 따다가 여유로이 남산을 바라다보니, 산 빛은 해질녑에 더 아름답고 날던 새들도 무리 지어 돌아오네, 여기에 자연의 참 뜻이 있으니 말하려 하다 말을 잊었네.' 하는 시이다.


선승혜: 귀거래사를 그린 작품에는 천편일률적으로 배만 나온다. 송대는 내레이션을 좋아해서 서술적 이상향으로써 그리는 첫 번째 류가 많다.
인간의 행복을 유토피아로 표현한다면 세 단계로 나눌 수 있겠다. 그 첫째는, 내 마음속의 행복인데, 形影神 사이의 대화에서 드러나듯, 개인적인 행복에 대한 질문. 둘째는 사회에서 은퇴를 할 것인가 하는 문제. 셋째는 유토피아적 사회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

김봉진: 청록산수를 낮게 평가했던 동기창은 명나라의 우파였지 않나?
선승혜: 맞습니다.

구대열: 존 밀턴의 실낙원을 보고, 실제로 밀턴의 유토피아의 배경이 된 곳에 가보면 밀턴의 묘사와 차이가 있음을 느낌. 영국식 정원임.

하영선: 천리대학이 몽유도원도를 소장하게 된 배경은?
선승혜: 몽유도원도를 천리대학에서 구입하기 전에 한국에 들어왔었으나, 당시 우리가 값을 치를 수 있는 능력이 되지 못했다. 현재 환수 희망 미술품 첫 번째 후보임. 동주 선생님은 일본에 와서 보셨음. 지금은 공개하지 않고 있으며, 국립박물관과  호암 미술관에서 특별 전시한 적이 있음.

선승혜: 몽유도원도의 발문을 활자화하여 번역 출판한 책이 있음. 그러나 발문과 제문의 한문은 대단히 힘듬. 당대의 대표적 지식인들이 함축적으로 쓴 것이라 해석이 어렵다. 정치학 전공 선생님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몽유도원도의 정치적 의미를 해석한 글을 써 주셨으면. 제발을 쓴 사람들은 총 21명인데, 이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선의 정치적 상황과 배경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함. 아울러 영어로 출판하여 외국에서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을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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