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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ançois Guizot, The History of Civilization in Europe (07.12.15)
 

2008-10-14 
2007년 12월 15일 전파모임

오후 3시 세계정치연구소

참석: 하영선, 최정운, 전재성, 김상배, 구대열, 양승태, 김봉진, 김석근, 손열, 마상윤, 오경환

독회: François-Pierre-Guillaume Guizot, The History of Civilization in Europe (New York: A. L. Burt, Publisher, 출판년도 확인)

I. 최정운 발제

François-Pierre-Guillaume Guizot. 1828. General History of Civilisation in Europe, From the Fall of the Roman Empire Till the French Revolution (Edinburgh: William and Robert Chambers, 1839)

1. Introduction

* 1787-1874.

* 南 France의 Protestant, Bourgeois 집안 출신.
        아버지 François-André는 변호사, 혁명에 가담.  1794년에 처형.
        어머니는 맏아들 교육을 위해 Geneva로, 어려서부터 재능.
        1807년 변호사가 되기 위해 Paris로.  곧 문학, 역사, 철학에 전념.
        1809에 문필활동을 시작. 1812년(Napoleon이 몰락하던 해)에 결혼하고, University of Paris, Sorbonne의 the chair in Modern History.
        Restoration 이후 활발한 정치 활동, 주요 관직, 주요 저서들. 한때정치 Pamphlet이 문제가 되어 강의 금지.  1830년까지 왕성한 집필 활동.
        주로 영국 역사와 문학에 대하여.

* 이 작품은 그의 강의금지가 해제된 1828년의 강의.  14 lectures.

* 1830년 7월 혁명 후 Louis Philippe 시대에 내무부 장관(Minister of the Home Department), 3개월 후 해임, 1832년 10월 교육부 장관(Minister of Public Instruction).  본격적 정치 활동.

* 정치적으로는 ‘the doctrinaire party’의 지도역.  보수적 자유주의.
1870년대 이전 유럽에는 대중정당이 없었으므로 이 정당도 소수의 살롱 성격 강했음.

2. 일반론, 이론

* 이론적, 개념적 접근을 거부하고 역사적으로 접근하겠다고. 문명의 1) origin, 2) progress, 3) objects, 4) character.
- 19세기 초반이므로 역사주의의 영향 느껴짐.

♠ 역사주의적 접근.  비교적 시각 즉 유럽 문명의 특수성에 관심.

* deductive definition 거부, 역사적 접근.  문명은 value-laden concept, against 'aristocratic republic', 'Hindoo type moral and intellectual, but immobility', 'liberal but violent'.한 속성은 유럽 civilization이 거부하는 가치들. 유럽 문명의 특수성을 우월한 것으로 설명하면서 유럽문명=문명으로 몰아감.

* 현상, 대상의 존재는 당연한 것으로.  유럽의 여러 나라 간에 identity가 존재.  그러나 not fully developed yet.  identity and diversity.  France has been the center.  시대에 따라서는 Italy, England 등도 시대에 따라 기여했으나 프랑스를 통하지 않은 것 없었다고 역설.

* 인정, 가시성을 서구 문명 존재의 근거이자 이유로 듦. perceptibility, perspicuity, sociability and sympathy. 모두가 있다고 인정하고, 가장 두드러지며  널리 받아들여져 왔다.
- 유럽문명이 주변부에서도 받아들여질 만한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

♠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있는가?  생떼?  객관성이 결여.  즉 Pride가 국제적으로, 지구적으로 인정된 것이 civilization. 특히 예술을 가시적인 요인으로 들고 있음. 국제사회적으로 규정.

* arbitrary한 것이 아님을 강조.  very difficult to describe and relate, but.… there is in fact a general destiny for humanity, a transmission of the store of civilization, and, as necessary consequence, a universal history of civilization to write.
- 유럽 문명은 인류의 운명을 대표하고 있음.

* 다시 한 번 규정... "a species of ocean forming a nation's wealth, and in the bosom of which all elements and sources of existence are united."
물질주의적 기준. 富를 초래하는 광범위한 요소들을 포괄해서 문명이라고 함.

♠ 한 꺼풀 한 꺼풀 벗기어져 깊이 들어가고 있는 것인가? 주변으로부터의 認定에서 富로 (물론 포괄적으로 추상적으로 이야기하겠지만).

* 다시 말하여, 핵심 가치는 progress and development. (Fortschritt, Entwicklung),  change of condition...  the perfection of civil life.
-Fortschritt는 18세기 말, Entwicklung은 19세기 말에 유행한  역사철학적 표어.
♠ 과연 유럽 근대 사상의 특징적 요소임에 분명...  그러나 어디로?  그러나 두 개념에 대한 철학적 논의는 없다.  오히려 'change of condition'이라고 하여 物質主義的 시각.  ‘perfection’이라는 말이 도움이 되는가?
progress, development를 지칭한 것은 그들의 진정한 가치여서인가?  이들이 근대유럽 특유의, 다른 사회와 구별되는 가치이기 때문인가?

* on the one hand, an increasing production of the means which secure strength and happiness to society; on the other, a more equitable distribution amongst individuals of the strength and happiness produced.
- 사회의 힘과 행복을 증진시킬 수단을 만들어내는 능력,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를 논함으로써 사회와 개인의 관계 논의

♠ 사회관계라 하지만 means to secure strength and happiness to society and a more equitable distribution.  
- strength and happiness. 결국 권력과 쾌락주의적 욕망 성취.

* 다시 인간의 본능은 Civilization에 "more extended and complex, something superior to the mere perfection of the social relations, or of social power and happiness".  무언가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언가 더욱 거룩한 것을 Civilization에 실어서.

♠ civilization을 인간 본능을 포괄한 목표와 연관.  정신적인 것까지 포함.  그러나 권력과 물질적인 것 외에는 구체적인 이야기가 없다.
사회를 판단하는 기준도 直觀的으로 本能的으로.  기준을 논하지 않는다.
prodigious moral and intellectual conquests.…  letters, sciences and arts, display their splendour.  결국은 great images, glorious to human nature…  treasure of those elevating gratifications.
결국은 팽창, 승리, 승자의 아름다움, 영웅주의 등이 아닌가?
- 정신적인 부분에 대한 논의가 소략하다는 특징은 끝까지 유지된다.

* 다시 또 내적 조건으로 규정을 시도.  두 가지 사실, the development of social activity and that of individual activity, the progress of society and the progress of humanity.
- 개인과 사회와 인류

* "Wherever the external condition of man progresses, is quickened and ameliorated, wherever the internal nature of man is exhibited with lustre and grandeur--upon these two signs, the human race applauds and proclaims civilisation, often even in spite of fundamental imperfections in the social state." 깊은 (역사철학적인) 낙관주의적 물질주의.

♠ 'Grandeur!' (유럽 문명이 모든 사람이 보기에 위대하지 않느냐고 했던) 처음의 가시성과 세계의 인식으로 다시 돌아온다.

* 여태까지 (학문적인 논의가 아니라) popular meaning of the term을 전개했다고 함.  자신의 이론화는 시도하지 않았다고.

♠ 당시에 일반 대중에게 또는 지식인들에게 일상적으로 널리 쓰이던 말인가?  남 탓!

* 처음에는 인간이 추구하고 다다르는 것으로 논하다가, 마지막에는 신의 뜻 Providence로 해석.  인간은 모른 채 신에 인도되는 것.

* 역사적으로 Roman empire의 몰락에서부터.  문명은 아직 유아기...  많은 결함...  많은
♠ 결코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끝없는 발전, 확대, 위대함.

* principles of civilization....  justice, legality, publicity, liberty.

♠ Whatever!

* 여타 고대 문명은 단일한 제도, 사상, 매너로 형성...  monotony, motionless and frozen.

* European civilization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a varied, and stormy scene; all the forms and principles of social organization are there co-existent.…  are mingled and pressing on each other; there are extreme degrees as to liberty, wealth and influence.'...   여러 나라들에서도 다르게 나타나고...  'they all a certain resemblance, a certain family aspect.'
        또한 그들의 세계관도... developed with the variety, richnes, and the activity of the great theatre of the universe.
        according to the intentions of God.  This is the rational solution to its superiority.

♠ 결국 유럽 문명 외의 ‘문명’은 유럽 문명과 다르고 문명도 아니다...  유럽 문명은 유일한 문명이다.  비견될 문명은 없다.
- 유럽 문명에 대해 철학적인 단일한 규정을 할 수 없다. 그만큼 복잡다단한 요소를 가지고 있으며, 그러한 복잡함이 유럽 문명의 위대성이다. 그것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Providence의 모습이다.

3. 역사

* 로마 제국 몰락 이래 15세기 동안 발전해 왔음.  4개의 요소를 중심으로 1) 교회, 2) 봉건제, 3) 자치 주(시), 4) 왕권.


1) the Christian Church
- Roman civilization과 European civilization의 핵심적 구별 요소

* Rome은 municipality and empire.  the Christian church, and not of Christianity가  사회의 분해를 막고 야만족들에 대항.

* three essential blessings, the recognition of a moral influence, the upholding of a divine law, and the disjunction of temporal and spiritual power.
- 도덕적 영향력.  역사적으로 교회가 살아남기 위해서 정신과 물질을 분리시킴으로써 야만족과 공존 가능해졌음. 궁정은 세속권력을, 교회가 정신권력을 분점함.

2) 봉건제

* barbarians라는 용어를 수시로 사용.  발전, 변화 등을 강조하기 위해 출발점을 그렇게 규정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요소로 상정하여 내부에 잔존하는 異物로 설정.
- barbarian이 반드시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아님. 지금도 유럽 문명/사회 안의 중요한 요소로 내재해 있음. 그만큼 유럽 문명은 먼 길을 걸어왔다는 자긍심.

* Barbarians의 특성:  'the feeling of individual independence, the joy he experienced in casting himself, in the fullness of his strength and freedom, into the midst of worldly vicissitudes, the pleasure to him of activity without labour the charm of an adventurous career, full of uncertainty, inequality of fortune and danger'.
        그러나 individual independence는 높이 평가.
- 로마의 제도와 군대가 인간을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discipline을 중시했다면, 야만족은 individual warrior의 명예와 독자적 가치를 중시했음. 유럽 문명 고유의 liberty 개념은 여기에서 나왔음.

* liberty, 自由의 연원을 the German barbarian으로, unknown to the Roman society and to the Christian church.

* barbarian에서 유래된 또 하나의 독특한 문화는 tie between individuals as warriors...  정치권력에게 legitimacy의 개념, 즉 도덕성을 권력에게 같이 요구하는 것도 Barbarian 戰士의 獨立과 自由의 개념에서...

* Barbarian들은 문명과 이중적인 관계...  願했지만 능력이 없었고 그런만큼 싫어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Grandeur', 특히 Roman Empire의 영예를 알았다. 유럽 문명에 일정한 유산을 남김. 양가성.

* feudalism, the first offspring of barbarism.  civilization, hidden fact, esp. intellectual grandeur.
        feudal lords-- personality type, home life, domestic manners in castles, importance of women, hereditary spirit.
        feudal despotism. the power of one individual over another, not that of a god or a divine existence.  적대감, 증오, 저항, the notion of liberty의 연원.
        royal power.  publicity.
        complexity of feudalism, local autonomy, federationism.
- 봉건제는 문명의 숨겨진 요소. 유산, 계승. 봉건제의 전제권력은 매우 세속적인 것이었음.

* Church: clergy and priesthood.  spiritual power and temporal power... barbarianism으로부터의 방어.  monastic orders는 특히 야만인들에게 엄청난 영향력.


3) boroughs

* boroughs(자치구, 자치 도시 등).....  11th, 12th centuries.
        burghers/ bourgeois in the 18th.
        commercial needs even in feudal ages.  shelter in and around the church.  enfranchisement from the 11th.
        result of insurrections, 전쟁적 성격, peace between king and lords.
        ambition, social station, expansion and boldness in political thoght and desire… intervention in the affairs of politics
        full consciousness of the dignity of man of being and power.  fully modern.
        sovereignty to the municipal system...  double order and brutal administering power.
- 11, 12세기에 유럽에서 도시가 출현했고 그것이 18세기 부르주아 계급의 출현까지 이어짐. 도시의 발달은 shelter에서 출발, 도시는 장사꾼들의 반역의 공간. 왕과 귀족 간의 전쟁과 타협 와중에 정치사회적 제도로 형성.

* crusades.  유럽 문명의 중요한 특징은 다 성립된 상태....  Royalty...  12th, 13th centuries.-- up to the 16th.

* periodization...  1) to the 12th century, 2) up to the 16th, 3) and after.

* 2nd period.  trial, experiment and groping, the phenomenon of the crusades.
        universality, European occurrence, and national. the first era of ideas.  intellectualization by travels and trades. commerce and trades.  expansionism of the kings.
- 자치주는 첫 번째에서 두 번째 시기로 이행하면서 형성됨. 두 번째 시기는 유럽문명에 있어 시련과 모색의 시기. 십자군 전쟁으로 표출. 십자군 전쟁은 유럽적 보편성 내지 유럽적 정체성을 최초로 경험한 계기. 광역화된 공동체 의식. 여행과 상업이 대규모로 시작됨.

4) 왕권

* royalty.  결국은 government vs. people의 구도로.  sovereignty...  kings and God.

* the fusion of all these societies.  the government and the nation as a union.

* 100년 전쟁, Jeanne d'Arc와 프랑스 민족 형성.
        Cf: Ständestaat.
        Spanish Kingdom,  Aragon and Castile.
        England,  1485 the Tudor kings.

* 15th the European system of states.

* Greek and Roman minds restored.  classical schools...  Renaissance.
        the school of free-thinkers.

* the period of voyages,

- 15세기가 되면 절대주의 왕정이 나타나기 시작. 관료제, 상비군, 유럽 국제사회와 외교가 형성되는 시기. 항해의 시대. 르네상스.

5) 유럽 문명의 발달 과정

* Reformation.
        a great explosion for the liberty of the human understanding, and uncontrollable demand for its free exercise of thought and judgment, by its own powers alone.  a rebellion of the human understanding. revolutionary. considerable increase of liberty.
- 16세기 종교개혁을 매우 중요한 사건을 파악함. 종교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인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역사적 계기. 인간의 자주성, ego가 폭발.

* English Revolution,  Tudor absolute power.
        a demand for religious revolution and liberty
        a demand for political liberty amidst the pure monarchy then in progress.
- 17세기 중반 청교도 혁명. 튜더 왕조의 절대주의 정치에 저항한 정치+종교적 투쟁.  

* French Revolution.
        16, 17c. France led the European civilization.
        Louis XIV, French politics exclusively for national power, strength of the state...  administrative power.
        18c. the French society, separated from its government....  disappearance of the government....  The astonishing boldness of the human mind at the epoch.
- 프랑스 혁명이야말로 유럽 문명을 마무리짓는 사건. 프랑스가 이제까지 유럽 문명을 주도해 왔기 때문에 핵심적 희생자가 됨.

* government vs. nation. -- the key feature of modern European civilization.
- 프랑스 혁명에 의해 (거의) 완성된 유럽 문명의 핵심 요소. 국가 대 사회, 왕권 대 민족 간의 계속되는 갈등과 싸움.


4. 질문/ 회의/ 비판

* 복잡하고 나름대로 세련된 역사학자 특유의 논의 전개.
그러나 많은 문제점과 혼란이 엿보임. 문명에 대한 일반화가 아니라 유럽 문명의 특수성을 문명으로 규정하여 차별하여 역사적으로 설명. 자의적인 부분들, 궤변 등.
- 유럽 문명의 특수성을 논하면서 그것이야말로 보편적 문명이라고 말함.

* 주변의 인정→부→진보와 발전→힘과 욕망 달성→신의 의지 등 문명의 문명됨의 근거를  여러 단계로 접근. ‘위대성’(grandeur)으로 돌아올 뿐, 본질을 명확히 밝히지 않음.  

* 제국주의적 상황에서 지배자의 자기주장과 정당화 外에 무엇이?

* 그러나 지금도 여전히 ‘文明’ 개념, 특히 고고학의 대상으로서의 문명은 가시적 유물의 존재로 형성되는 것이 아닌가? 거대하고 가시적인 성과를 냈을 때, 비로소 그것을 문명이라고 부름.

* 앞으로의 연구에서 the moral and internal development of mankind를 밝히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재 연구는 social and political development에 한정되어 있음.
- 정치적 발전, 권력을 유럽 문명 발달의 핵심적 동인으로 파악.

* 서양 학문과 철학의 한계...  늘 정신적인 차원을 말한다고 하지만 늘 물질적 제도적 조건에 머물고 정신적인 문제는 후일로 약속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관심 밖의 일.

* 일부의 정신적 요소 또한 외부적 요인을 중심으로 설명...  봉건제의 경우 영주의 권력은 같은 인간으로서 靈魂과는 상관없는 순수하게 육체적, 세속적인 권력... 따라서 영혼이 자랄 수 있었다,는 논리 구성.
- Brilliant! 그러나 억지.

* 이 이론은 결국 France 혁명에 대한 일정한 정치적 시각을 갖고 출발한 것이 아닌가?  말하자면 Barbarian하다는 비판에 대한 反擊!
- 1815년 왕정복고와 7월 혁명 사이에서, 혁명을 일으켰던 자유주의자들을 옹호. 혁명이라는 복잡한 역설을 겪은, 지롱드 당 자식으로서 프랑스 자부심 회복의 기도.

* 역사를 주로 정치적인 요인들로 논의한다.

* 전쟁의 문제...  폭력의 문제는 간헐적으로 여러 요인에서...  그러나 체계적 분석이 결여.

* 일정한 기준을 세우지 않고 우월을 강조 -- 그러나 이러한 사회, 국가에 대한 가치 판단은 여전하지 않은가?  특히 Cultural discourse.  현재 우리는 어떤 기준에서 사회의 가치를 판단하는가?  여전한 Dilemma?
-남북한, 한국-일본, 미국-이라크의 우열을 논할 가치판단의 보편적/합리적 기준이 무엇인가? 복합적인 잣대를 혼란되게 자의적으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cultural discourse에서 나라와 나라 간 비교의 indicator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 이러한 혼란은, 기조 시대에 유래한 서양적 가치를 수용한 결과인가?

II.  김석근 발제

“François Guizot 저작의 소개와 번역: 일본의 경우”

1. 1828년 기조가 쓴 프랑스판의 최초 영역(역자 이름은 나와있지 않음)이 1837년 나옴. 이것의 제 2판(1838년)에 C. S. Henry의 각주를 붙여서 1842년 아메리카판이 나옴. 아메리카판의 제 9판(1870년)을 후쿠자와 유키치가 읽고 <文明論之槪略>(1875년)에서 논함. 특히 제 3장 ‘문명의 본지를 논함’, 제 8장 ‘서양 문명의 유래’.

하영선: 후쿠자와는 언제 최초로 기조의 책을 읽었을까? 자서전을 보면 기조책을 읽으면서 문명론지개략을 썼다고 하므로, 1874년 정도로 추측.

양승태: 기조 자체를 읽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외국 선생의 추천?

2. 1943-44년 나가타 세이이찌(中田精一)에 의해 불어판(원서 제 6판)의 직접 번역 일역판이 나옴. 1948년 야스시 마사오(安士正夫) 번역본이 정본으로 굳어짐.

3. 번역된 여타 기조 저작들.
- 불란서문명사
- 구주대의정체기원사
- 대의정체원론
- 영국혁명사

III. 토론

양승태: 우리가 읽은 판본의 번역자인 William Hazlitt은 누구인가? 영어가 화려함.

오경환: 1828년의 강의 해금이 프랑스 지성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해. 샤를르 10세 권위가 기울면서 자유의 바람. 빅터 쿠쟁한테 철학, 들러랭?한테 프랑스 문학사, 기조한테 역사 강의. 기조는 빅터 쿠쟁의 철학적 기반 위에서 역사를 논하고 있음. 기조-쿠쟁 간의 대화내용은 많이 남아 있음. 기조의 정치적 멘토가 doctrinaire party의 중심인물이었던 들러랭?

최정운: 프랑스 자유주의의 기본 입장은 민중에게 참정권 주면 안 되고 정치 엘리트가 주도권 잡아야 함. 7월 왕정의 공식 노선이기도 함.

오경환: 로이어 꼴라르->기조-> 이후에 독트리내어 분위기가 달라지긴 하지만 1815-1820년 사이에 결성. restoration에도 반대, 나폴레옹에도 반대. state beauocracy와 decentralization이 첨예한 안건. 기조는 효율적인 관료국가를 만드자는 주장이지만, 후기 독트리내어는 그러면 너무 중앙집권화되므로 반대.

기조의 경우, 인간의 통합성을 믿지만, 당시 프랑스 민중에게 참정권을 줄 수 없다고 판단. 후에 문교부 장관 되면 매우 중앙집권적인 정치 펼침. 여전히 탈중앙집권에는 찬성. 1928년에는 자유주의자로 추앙받지만, 48년에는 보수주의자로 비판받음.

구대열: 영국, 네덜란드에서는 노동자들의 참정권이 점차 확정되는 모습을 보이는데, 프랑스가 그렇지 않았던 이유는?

오경환: 프랑스 자유주의는 이들과 다르다는 것이 통설. 1870년 이후 3공화국에도 보통선거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 논쟁이 계속됨. 독트리내어 자유주의 입장에서는 안 주는 게 맞음.

2제정에서는 제정을 타파하기 위해 예전의 자코뱅과 연합했기 때문에, 사실상 자유주의자인지, radical인지 republican, socialist인지 성격이 불분명해지면서 독트리내어가 단일한 노선의 정당을 결성할 수 없었음. 1948년에 기조는 추방되어 영국 갔다가 후에 노르망디로 가서, 파리에는 돌아오지 않음. 쥴(쥘) 시몽이 일정 부분 기조 계보이긴 하지만 연속성을 가지지 못함.

구대열: 1848년에도 파리에서는 좌/우파, royalist 등으로 구분했음. 그러나 하 수상한 시대였으며, 대중정당이 존재하지도 않았고, 개인적인 친분에 의해 이동이 잦았으므로 이 시기에는 일관성 있는 조직 구분이 어려움.

하영선: 우리에게 의미있는 질문은, 후쿠자와 유키치가 왜/어떻게 기조를 읽었는가? 후쿠자와는 기조 강의의 9-14장까지에 흥분한 것 아닌가 함. 일본은 권력자원의 기반이 하나로 모여지지 않는데, 유럽은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가? 프랑스 사회의 형성에서 문명의 핵심을 발견. 그리고 여기에는 진보(progress) 과정이 존재함. 유럽 사회 진보의 모습에 두 가지가 있음. 인민(people)과 중앙정부(central government)가 지닌 유럽적 균형을 일본이 배우려면, 권력의 편중 현상이 해체되어야 하며, 동시에 people이 마음대로 하지 않도록 일정한 통제를 할 수 있는 중앙 정부가 필요함.

김석근: 후쿠자와 <문명론지개략> 8장은 기조 책의 요약.

양승태: 그 요약이 정확한가?

하영선, 최정운: 핵심은 파악했다고 봄.

김석근: <문명론지개략> 9장에서는 일본에 종교가 없어서 생기는 문제들을 논하고 있음. 유럽문명에 있어 세속권력과 기독교회의 변증법에 대한 통찰.

하영선: 당시 일본 자체에 중세적 요소가 있었으므로, 후쿠자와가 일본의 국권 대 민권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기조식의 독트리내르 자유주의를 빌려온 것은 상당히 적절했음.

최정운: 후쿠자와의 <학문의 권유>를 보면, 각자 생업 능력을 가져야 사회가 전체적으로 발전한다고 주장. 부르주아문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후쿠자와가 liberty를 논하고 있지는 않지만, 기조가 왕권이나 자치주(민권), 이것과 경제력과의 관계를 논했을 때의 문제의식을 제대로 파악했다고 봄.

구대열: 5세기에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의 야만사회라는 것은, 유럽이 부흥하기까지 로마제국의 문명수준에도 여러면에서 못미쳤음. 16세기에야 비로소 이것을 극복하는데, 왜 굳이 로마멸망부터 유럽문명을 논하고 있는가. 첫째, 자신들의 극복기를 자랑스럽게 서술. 둘째, social norm으로서 정치적 자유를 지켜하고 만들어 온 것에 대한 논의?

최정운: No. 기조는 희랍 자유를 한번도 논하고 있지 않음. 희랍의 자유가 citizen으로서의 자유였다면, 이 때 유럽의 자유는 저항의 자유. 게르만 야만 전사의 자유.

하영선: 프랑스 혁명의 자유이되, 어느 정도 통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 메이지유신 일본에 매우 들어맞음.

최정운: 이중적 자유. 민주적이면서, 행정력을 통한 통제. 반란을 통제하는 국가의 행정력에 대한 정당화.

하영선: 기조가 후쿠자와에 끼친 영향에 대한 일본어 논문이 한편밖에 없다는 것이 수수께끼.

오경환: 프랑스 사학사에서 역사학자로서 기조는 완전히 잊혀진 인물. 정치인으로 기억됨. 기조의 유럽문명사를 지금 읽는 사람 있다면, 1830년대에 프랑스혁명을 어떻게 보았을까, 가 궁금할 뿐 그 자체가 관심 아님. 피에르 로잔발롱?의 프랑소아 기조 연구가 최근에 나온 유일한 책. 그나마....  
프랑스 역사학 주류가 되는 알베르 마띠에즈가 1870년대에 나오면서 가장 비판했던 인물이 기조. 부르주아 리버랄의 승리로서 프랑스혁명을 파악하는 문명적 접근방식은 이후 철저히 말살됨.

최정운: 20세기 전반까지는 서양에서도 기조 유럽문명사가 많이 읽혔으리라 생각. (토인비 등이 유행했던 걸 돌이켜보면)

하영선: 1-8장은 꽤나 시시콜콜 지루한데, 1828년 기조의 강연에 그토록 흥분했던 이유가 무엇일까?

오경환: 기조가 돌아왔다, 는 것이 가장 큰 흥분의 이유. 프랑스에 꾸르 전통이 있음. 오귀스트 꽁트, 생시몽의 꾸르 등은 퍼블릭 렉춰 형태로 노동자들이 와서 들었음. 이러한 강의에 열광하는 사회적 분위기 있었음.

김석근: 기조의 다른 책에 대한 평가는 어떠한지?

오경환: 다른 책들에 대해서도 역사학자로서는 가치평가가 낮음. 기조 자신은 워낙 영국에 관심이 많아서 영국혁명사 등 저술. 기조의 철학적 기반을 이해하려면 그의 멘토인 빅터 쿠쟁을 읽는 편이 나음. 기조가 문교부장관하면서 쿠쟁의 강의를 교과서로 지정, 출간. 빅터 쿠쟁은 꽁디악, 로크 등 영국적 sentimental epistemology에 반대. (이 때문에 혁명이 폭력화되었다고 판단) well-tempered되어 있고, barbarian의 속성 중에서 independence만 받아들이고 나머지 부분은 잘 길들여진(civilized된) 주체를 만들려 함. 매우 부르주아적인 self 만들기 프로젝트.

구대열: 유럽 문명은 (중국과 비교해서) 누구든 들어올 수 있는 open theater의 성격이 강함.

최정운: 유럽에서 nation vs. government의 투쟁은 계속됨.

구대열: 십자군 전쟁은 지역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도시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의 성격이 강하다는 인상을 받음. 그렇다면, 자치구(borough)라는 개념이 십사군 전쟁 시대의 도시 개념가 일치하는 것인가?

최정운: 십자군 전쟁은 기존에 존재하던 자치구들을 보편화하면서 유럽이라는 전체를 드러냄.

양승태: 오경환 박사 지도교수인 Goldstein이 기조에 대해 한 주장의 새로운 점이 무엇인지?

오경환: 마르크스도 기조를 읽고 공산당선언을 썼다는 설이 있을만큼, 기조가 역사의 동인을 매우 물질적인 것으로 본 것은 사실. Goldstein의 주장은 기조에게 역사 발전의 동인이 하나 더 있었다는 것. 물적 조건을 움직이는 인간의 psychic power로서  sentiment 상티망과 personality 실제로 쿠쟁은 psychic technique으로서 meditation을 제시함. 자아가 형성되어 가는 과정이 civilization이고, 이것이 물적 조건과 맞아떨어졌을 때 프랑스 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음.

김봉진: 기조가 후쿠자와에 어필할 수 있었던 이유를 몇 가지 찾아보면, <문명론지개략>에서, 유럽문명을 상대화하다가, 뒤에 가서는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유럽문명이 최선, 이라면서 다시 절대화함. 유럽문명에서 세속권력과 종교권력의 분리를 유럽문명의 특성으로 지적한 것에서, 후쿠자와는 천황 중심의 권위와 쇼군 중심의 권력이 이분화되어 있었다, 따라서 일본에서 문명이 발전하기 더 좋았다고 주장함. 기조-후쿠자와 비교연구가 희소한 이유는, 후쿠자와가 기조 논의를 요약해서 사용했기 때문에 영향관계를 실증하기 어렵기 때문이라 짐작함. 그런데 후쿠자와가 기조 논의에서 고의적으로 탈락시킨 부분도 있었다고 생각. christianity나 christian church, borough, French revolution에 대한 논의. 후쿠자와는 1860년, 1902년?에 미국에 감. 그 사이에 유럽 방문. 가면 책을 구매. 체임버스 형제가 낸 교양시리즈물을 대략 사가지고 온 듯. 거기에 기조, 버클 등이 섞여 있었다고 봄. 1870년 판본은 후에 따로 부탁해서 구한 것이 아닌가 함.

하영선: 김봉진 박사 생각에 기본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음. 마루야마 마사오가 지적했듯, <문명론지개략> 8-9장은 기조 논의가 대본이 됨. 또한 후쿠자와가 기조의 논의를 비교적 정확히 이해했다고 봄. 기조가 9-14장에서 했던 주장을 일본의 경우에 적용한 것. 권력의 편중을 깨기 위해 자유가 주어져야 하는데, 이것은 천황 시스템에 의해 문명화된 자유여야 함.

양승태: 후쿠자와가 일본 근대에 기독교가 미칠 영향을 우려해서 기조의 기독교 논의를 생략했다고 했는데, 기조 논의에서 기독교가 가지는 의미와, 후쿠자와의 기독교 혐오는 서로 다른 차원의 논의.

김봉진: 후쿠자와 자신이 문명화의 한 현상이자 수단으로서 기독교나 선교사 활동은 긍정함. 그러나 그와 별개로, 기독교에 대적할 일본의 국가종교가 필요하다는 인식 있었음.
최선생님 발제에서 정신적인 문제를 도외시하는 서양학문과 철학의 한계를 지적하시는데, 설명 더 해 주시기 바람.

최정운: 중세 영주의 권력이 철저하게 육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정신이 속박되지 않고 오히려 자유롭게 저항할 수 있었다고 함. 즉 서양식 자유의 정신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으면서 물적인 조건에 대해서는 치밀하게 논구함. 중세와 근대 사이 틈바구니에 있는 borough에서 그러한 유럽문명적 자유가 이미 발현되고 있었음.

유럽 근대에 이미 종교와 세속이 갈라지므로, 신의 뜻의 내용에 관해서는 신학자들의 손에 맡겨두고, 권력에 저항하는 정신이 유럽문명의 정수라고만 말함.

김봉진: 그러한 행태는 일본 근대에 매우 들어맞음. 천황제 자체에 대한 비판 없는 일본근대화론이나 정치론에는 철학적 논의가 들어설 여지없음.

최정운: 서양에서 문명을 논하는 기본적 틀은 여전히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음. 고고학적 인류발달 다큐멘터리를 보아도, 도구발달에 지성발달을 투사할 뿐, 정신의 진보를 직접 다루지 않음.

양승태: 기조와 마르크스의 관계는?
오경환: 기조가 나중에 경찰국가를 만듦.
김봉진: 보수주의의 본산.
최정운: 유럽문명사에서 이미, 자치도시에서 populist들을 엄혹하게 다스렸음을 부각시킴.

최정운: 토크빌과 기조는 둘다 귀족적 자유주의자.
오경환: 토크빌이 실제 1928년 기조 강의에 가서 들었음.

*** 다음 전파: 2월 마지막 주 (2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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