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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dia H. Liu, The Clash of Empires
 

2006-07-10 
2005년 12월 14일 전파모임

장소: 경기도 수지 세계정치연구소
참석: 하영선, 최정운, 전재성, 김상배, 구대열, 양승태, 김봉진, 손열, 강상규
독회: Lydia H. Liu, The Clash of Empires

● 향후 전파모임 운영방안

1. 운영방안

(1) 기존의 원전 독서를 계속해 나가는 방안. 유길준 전집을 읽고, 이후 시대의 독서를 계속해 가는 방안.
(2) 연구서, 이론서 등 2차 문헌을 선별하여 읽어나가는 방안.
(3) 유길준 연구서 각 주제 담당자가 관련되는 자료를 선정하고, 책임발제하여 토의를 이끌어 가는 방안.
- 일단 1년 동안 (3)번 노선으로.
- 관련 주제의 연구자 재량으로 1차 원전의 적절한 안배를 통해 (1), (2)번 병행.
- 유길준이 읽었던 책들을 읽는 방안은?

2. 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오후 3시로 전파모임 고정.
- 다음 모임은 1월 27일(금) 3시, 발제는 하영선, 김봉진

● 유길준 연구서 내용 구성

하영선, 유길준의 국제정치학: 양절체제론
양승태. 유길준과 주자학적 정치사상의 종언
전재성, 유길준의 군사사상
김상배, 지식 개념의 수용: 유길준을 통해서 본 동아시아 지식질서의 구조 변동
문유미, 유길준의 국가, 정체 및 군권에 대한 관념과 그 변화
강상규, 고종과 유길준
최정운, 담론전략으로서의 유길준의 서유견문
구대열, 최초의 IR man
김봉진, 서유견문 각편 논문의 구성과 분류
손열, 유길준의 경제국가
(신욱희)

● 김봉진, “서유견문 각편 논문의 구성과 분류”

1. 저술과정

(1) 일본유학시절(1881.5-1882.여름): 신사유람단 시기의 기록은 남아 있는 것이 없으며, 이후 유학 시기에는 “견문을 수집하고 또는 서적을 참고하여 그 일부의 기록을 작성”했다고 서유견문 서에 남겨 놓았음. 기록 자체는 남아 있지 않지만, 이 때 ‘서적’=후쿠자와 유키치의 <서양사정>이 아닌가 함. 번역, 번안해서 상당 부분 서유견문에 반영했다고 추론해볼 수 있음. 이것을 저작(1)이라고 할 때, 이 원고는 분실되었음. 그러나 후쿠자와의 번역 부분은 복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음.
- 이러한 번역, 개작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번안, 편역. 췌역. 역술. 집술. 역해.

(2) 미국유학 시절(1883.9-1884.가을): 보빙사 민영익을 수행하여 시찰을 했는데, 시찰기록은 남아있지 않음. (서광범이 수행하였으므로 그가 가졌을 가능성 유) 생활견문기록은 본인이 쓴 것처럼 이야기하는데(서유견문 서,에서 “연회, 가무회, 혼례와 장례”를 견문, “학교 제도와 교육의 깊은 뜻”을 고찰, “농.공.상업의 사정과 군사.행정.법률. 세금의 각 규칙 등 미국 정치의 개요”를 시찰,했다고 함) 서유견문 17-18편의 각종 내용은 미국과 유럽에서의 견문이 뒤섞여 반영되었으리라 추정. “고금의 서적을 발췌. 번역하여 책 한권을 만들었으나 학업을 따라가기 바빴기 때문에 정리. 편집할 틈이 없었다.” 이것을 저작(2).  
- 연회, 가무회는 아마도 보빙사 시절 및 모스 집에 기거할 때 외무성에서 주최한 파티.

(3) 1885.가을-1889.늦봄, 서유견문 완성시: GDA 다닐 때의 노트, 유럽견문기, 저작(2) 등을 가지고 귀국했을 것. 그런데 2년 동안 한규설 집에 연금되었다가 1887년 가을 연금지를 옮긴 당시, 이 원고뭉치의 “반 이상이 유실”되었음을 알게 됨.

2. 구성

서유견문 3-9편, 13편이 <서양사정>의 번역/개작. 1-2편이 GDA노트로 추정됨. 19-20편은 유럽여행기. 15-18편=서양사정+미국 및 유럽 시찰 견문록. 10-12편은 유길준의 창작. 여기에 미국 시찰 경험이 투영되었으리라 추측. 14편은 유길준의 창작. 3편의 ‘방국의 권리’는 Denny의 <청한론>의 번역 개작.

- 뉴욕 헤럴드 트리뷴, 민영익 보빙사 사절단이 대통령에게 큰 절 하는 그림.

● 손열, “유길준의 경제국가”  

1. 전통에서 근대로: 절검에서 생산으로

- 서양근대(19세기 후반)에서 경제란 생산과 소비의 체계 혹은 주어진 자원의 효과적 활용/ 관리. 경제국가의 핵심은 산업 육성. 이것으로 transform하는 과정을 포착하는 것이 핵심.

- 동아시아의 전통적 관념에 대한 공부가 필요.

- 경제영역에서 근대의 추구란
(1) 욕망 혹은 ‘利’를 ‘理’로 정당하게 인정한 위에서
(2) 부국을 억제(절검, 검약)의 체제로부터 교환(=무역)의 체제로 전환
(3) 교환에서 생산(산업생산)의 체제로 전환: 금융은 산업 생산의 수단

2. 유길준

- 유길준에게 있어서 (1)은 완수되어 있다고 보임. (2)는 어느 정도 엿보임. (3)은 거의 언급 안 됨.
- 유길준에 있어서 ‘경제국가’의 위치. 정치경제 차원에서 유길준이 체계적 사상가라고 보기는 어려움. 15편 방국의 권리 앞에 14편 ‘商買의 大道’가 있고, 이 부분이 창작이라고 한다면 상당히 중요하게는 생각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산업생산 체제로의 전환까지는 생각할 수 없었는지.

최정운: 유길준에게는 경제, 라는 관념이 없었던 것 같은데, 박영효는 <건백서>를 보건대 경제 관념이 있었던 것 같다. 80년대 한성순보 등을 보면 부국강병론 꽤 나옴. 게다가 81년에는 돈 찍는 기계 들여와서 실패한 경위도 상기해야 함. 서유견문 앞부분 ‘세계의 물산’ 보면, 교역품을 논하고 있음. 따라서 유길준이 경제 문제를 어느 정도 이해했는가를 disparate하게 (1) (2) (3) 단계로 나누어 위치시키는 것은 성공하기 어려운 접근이 아닌가 싶음.

김봉진: <서유견문>의 관련 내용을 집중적으로 논하는 방략을 권함.

하영선: 1880년대 초 김옥균과 묄렌도르프의 싸움의 기본틀은, 외자를 도입하는 것 vs. 화폐를 더 많이 찍는 것. 외교학과 홍지연 양 석사 논문. 80년대에 화폐개혁을 시도하지만, 본격적인 근대적 화폐개혁의 사고는 부족했음. 일본측 충고는 본위제로 가야 한다, 제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것. 그런데 여기에 청 원세개가 개입해서 이를 말림. 그 결과, 돈을 찍어내는 것으로.

최정운: 전파라는 것이 순차적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뒤죽박죽.

하영선: 80년대 당시 국내에 청나라 돈, 일본 돈, 우리나라 돈이 섞여서 유통되니까, 고종이 이를 통일해야겠다고 생각. 그래서 청의 원세개 모르게 안경수 등을 일본에 밀파. 오사카에서 하는 말은, 돈만 바꾼다고 될 일이 아니라, 근대적 본위제를 아예 실시해야 한다는 것. 이 때는 원세개도 알아차림. 1891년 화폐개혁 무산. 갑오개혁 때 일본이 강제한 것-일본돈으로 통일-을 받게 됨.

최정운: 80년대 한성순보, 주보를 보면, 부국강병을 논하는데, 당장 나오는 이야기는 부국하기 위해서는 가렴주구가 없어야 한다는 것. 지방관을 줄이라. 재정문제를 해결하려면 검약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서양식 경제 개념과 동양 전통 이념 사이를 오락가락. 섞여 있음.

양승태: 사고도 혼란스러웠지만, 기존의 정치구조가 경제개혁을 허락지 않는 측면.

장인성: 理 vs. 利=욕망, 절검 vs. 생산, 교환 vs. 생산이 전통과 근대의 이분법 대당으로 적합하지 않을 수 있음. 백성의 생활을 보장해 주는 것은 정치의 기본.
양승태: 실학과의 관련성도 생각해야 함.

김봉진: 7-8편의 납세 관련 부분이 꽤 양적으로 많은데, 신사유람단 시절 유길준의 견문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

최정운: 19세기 말의 자원국수주의-“우리나라에는 무궁무진한 자원이 있다”는 식-담론 일변도로 가는 것도, 혼종되어 있는 경제관념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함.

● 구대열, “최초의 IR man”

- 이 당시 한국인들의 대외행태가 너무 이상한데, 왜 그랬을까? 한국적 대외행태의 기원. 국제정치의 윤리성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 서양 헤로도토스에서부터 우리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중국 사마천의 사기 등 몇 개를 참조해서 서론.
- 삼국-고려시대 초기 대외인식의 형성과 표현.
- 조선초기 태종/ 임진왜란 이후 대일관계가 개항까지 연결되고/ 유길준과 같은 대외인식이 출현.

● 전재성, Liu 책 발제 (발제문 참조)

1. 책의 주제

(1) 19세기 영국과 청의 충돌의 지점에서 벌어진 지식, 언어, 기호의 충돌을 통해 영국과 청이라는 두 개의 제국의 권력과 이익의 충돌의 본질을 살펴보는 것.
- 두 개의 문명의 충돌이라기보다는 각자 제국적 주권의 보편성을 내세우는 두 정치집단의 충돌로서 영국과 청의 충돌을 보아야 함.
- 그 가운데 나타난 문명과 문화의 충돌은 사실은 국제정치적 권력현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살피고 있음.

(2) 저자는 인문학적 방법론, 특히 언어학, 기호학, 문헌비평학적 방법론을 사용하여 19세기의 국제정치, 외교, 문학, 법학, 철학, 언어학의 저자들에 관한 비판과 텍스트 분석을 통해 언어와 기호, 개념 속에 숨어있는 제국충돌의 내용을 밝히고자 함.
- 제국충돌이란 결국 sovereign의 개념을 둘러싼 충돌이며, 양 제국이 자국의 권력배경과 전통에 맞추어 sovereign thinking을 하는데 있어서 빚어지는 갈등을 밝히는 것임.
- 본서에서는 오랑캐의 개념, 국제법의 개념, 중국과 서양의 문법의 개념을 둘러싼 갈등 내용을 밝힘으로써 제국의 충돌의 모습을 보이고자 함.
- semiotic turn of IR이라는 방법론, hetero-cultural, hetero-lingual approach의 방법론을 채택함.

II. 오랑캐와 야만의 혼합기호(supersign)


하영선: 어려운 책 좋은 발제 감사한데, "The Invention of China in Modern World Making"이라는 부제를 좀더 부각시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음. invention of china. 맨 뒷부분에서 Last Emperor의 의자, 계속 남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의자의 이야기. empire의 semiotic에 의해 만들어지는 empire.

Martin의 만국공법 번역과정을 소상히 밝힌 것도 이 책의 original한 기여. Wheaton의 책이 우연히 입수된 것이 아니라, 미국이 용의주도하게 건네주었다는 부분도.

문명이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이 충돌하는 속에 문명의 만남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19세기를 섬세하게 들여다보았음. 헌팅턴보다 세련됨.

구대열: 마건충 재미있는 것이, 1898년에 유럽언어의 문법구조가 선진적인 것이 아니라고 할 정도면, 매우 선진적. (오늘날에는 보편어로서의 불어, 영어 믿지 않음. 도구일 따름이므로, 지방에 따라 다양한 악센트 인정.) 한편, 한문의 우수성을 논한다는 점에서 중국적인 우월성 주장.

장인성: 1898년 청일전쟁 끝나고 나서 내셔널리즘의 발흥 속에서 내셔널 랭귀지에 대한 다른 논의들이 있었을텐데, 마건충 사례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또, ‘오랑캐’라는 개념. 야만은 문명화 대상인데, 화-이의 夷는 반드시 그것이 아님. 그런데 영국은 그것을 야만으로 이해. 그 자체가 야만성 함의한 것이 아니라 화-이의 관계 문제.

최정운: 이, 가 바바리안보다 복잡한 개념. 융-적-만과의 관계.

하영선: 51조(발제문 3페이지)를 통해 이,를 못 쓰게 한 영국. 그런데, 조선 경우도 그렇고 이, 보다 더 나쁜 표현(ex. 금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최정운: 서양에서 비기독교 국가의 지위는 국제법상 무주지.

김봉진: Liu가 하고 싶은 말은, 이, 라는 말을 중국에서 사용할 때는 중립적으로 foreigner 정도로 사용했는데, 오히려 서양인들이 문명-야만(바바리안)의 이분법을 덧씌웠다는 것. 그리하여 중국을 이적으로 만듦. 서양 근대라는 것이 문명-야만이라는 심상 지리로 세계를 이분했다는 비판.    

구대열: 이 책과 마틴 와이트의 Three traditions 함께 보면 상당히 이해가 깊어질 듯. 바바리안에 대해서는 와이트 책에서도 상세히 설명되어 있음.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충돌이 일어났고 비극적 귀결로 이어진 것이 두 가지. 대체 ‘속방’과 ‘조공’이 무엇인가?를 유럽이 이해하지 못함.

최정운: 로마가 훈족에게 쳐들어오지 말라고 돈을 준 사례. 유럽에서도 평화를 지키기 위해 나라들끼리 돈을 지불한 사례가 꽤 된다고 알고 있음.

구대열: 통일 독일 내의 바바리아와 조선의 지위가 비슷하지 않느냐, 라는 결론. 유럽적 tributary와 한중 관계는 또 다름. 로마의 경우 주권은 로마황제의 임명. 그러나 조선은 그렇지도 않았음.

김봉진: 오카모토 <자주와 속국 사이>와 관련됨. 다음 번에 부분적으로 발제하겠음.
    
장인성: 夷는 문화적, 이념적, 지리적 개념. 위정척사파나 존황양이파의 경우 이, 는 문화/이념적 개념. 19세기 말엽에 이러한 이념성을 띠게 됨. 따라서 바바리안이라는 외부적 개념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이, 개념 스스로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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