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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대사회과학개념형성3: 장인성,<균세와 세력균형>
 

2004-07-21 

2003년 10월 25일

 

장소 : 세계정치연구소
참가자 : 하영선, 구대열, 최정운, 김봉진, 김영호, 장인성, 전재성, 손열, 김상배 

 



“균세”와 세력균형
                                                      장 인 성 

- 균세는 세력균형에 비해 규범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세력균형과 차별성을 생각하여 인용부호를 붙임
- 유럽에서의 세력균형 의미 언급 필요

* 이후 발제문 참조


 

토론

 

김영호 

2페이지 국세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가? 경제력도 포함하는가?

 

장인성

기본적인 논의는 국가의 폭력성을 없애자는 것(일종의 세계정부론) 그러므로 국세의 주요내용은 각국의 군사력임.

 

김영호

國勢平衡이라고 해석한 것은 勢에는 동맹이라는 개념이 포함된 것이 아닐까?

 

장인성

당시 權力이라는 용어가 거의 사용되지 않았음. 勢를 쓴 이유는 기존의 權으로 이름 짓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보임. 지금은 權이라고 하는 것을 당시에는 勢라고 하는 것이 많음 .

 

장인성

어느 순간 均勢에서 勢力均衡으로 바뀐 것인지 알아봐야 함.

 

구대열

규범성이 강조되는 것이 조선만의 현상이라고 볼 수 있는가? 유럽에서도 규범성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는가? 약소국의 입장을 강조하다보니 규범성을 강조하게 된 것이 아닌가?

 

장인성

일본으로부터 위협이 온 이후 균세의 규범성을 강조하게 됨. 이전에도 균세 원리의 현실적 무력함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음. 그러나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규범성을 강조하게 됨

 

구대열

동아시아와 유럽의 차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순진하게 중립론도 편 것이 아닐까?

 

장인성

차이는 인식하고 있었던 듯, 실제로 일본도 균세를 별로 강조하지 않으며 강병을 추진함.

 

구대열

유럽의 대터키 정책과 대중국 정책이 상당히 유사성을 띠고 있음. 동아시아에서는 세력균형을 사악한 것으로 파악하는 면이 있었음. 즉, 강대국들끼리 싸우게 하고 자신들은 안일하게 지냄.

 

장인성

동아시아는 객관적 사실로서 세력균형이 형성되기는 어려운 판이었음. 이 것은 이홍장을 비롯한 당시 사람들도 인식. 그 이유를 서양세력의 약소국에 대한 사악성으로 파악함.

 

구대열

유럽의 동아시아에 대한 노하우는 ‘힘’이라는 이야기도 실제로 많음.

 

하영선

마무리에 해결되었으면 하는 궁금증.
 
첫 번째, 번역.
우리의 경우는 주로 일본의 번역을 따라왔음. 그러나 균세의 경우는 만국공법이 시작. Martin이란 개인의 복잡함에 대해 이해해 볼 필요가 있음. 均勢도 마틴이 간단히 번역하지는 않았을 것. 서양적 의미의 BOP를 알고 있으면서 이러한 번역을 한 이유? 
 
두 번째, 均勢개념 도입 시기의 문제(『萬國公法』도입 이전의 均勢개념)
누가 만국공법을 가져왔는지 모르더라도, 고종집정(1864년)부터 조일수호조규 전후까지 기간에서 책만 찾으려하지 말고 생각의 원형을 찾을 방법은 없는가? 조선책략에서 김홍집이 均勢에 대하여 ‘자는 보았지만 뜻을 모르겠다’고 말한 것처럼 <척사파 - 박규수/김홍집 - ․유길준>의 스팩트럼을 복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어느 시기에 均勢가 勢力均衡으로 바뀌는가? 90년대 독립신문에 세력균형이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렇다면 6․70년대, 80년대, 90년대를 세시기로 나누어 스펙트럼을 규명할 필요가 있음.

장인성: 첫 번째 문제-> 마틴이 왜 勢라는 말을 썼는가? 그것은 權力이라는 말이 없었기 때문. 마틴은 일본의 학자들에 비해 번역어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지 않았음. 결국은 기존에 있는 단어들 가운데에서 가장 가까운 용어를 사용한 것임. 만국공법이라는 말을 쓴 것도 국제라는 말이 없었기 때문. 더 중요한 것은 마틴의 의도보다 이미 텍스트가 유통되면 의도와 별개로 사용되게된다는 점임.
       
         

두 번째 문제-> 세력균형적인 발상은 그전에도 있었다. 박규수가 그 예이다. 그러나 왜 균세라는 말을 안 썼는가? 64-76년에 만국공법이 들어왔더라도 얼마나 이해했고 참고했을까? 80년대에 균세가 유행한 것은 미국과의 조약이라는 현실적인 필요성 때문이었음. 즉, 萬國公法을 6․70년대에는 원리, 80년대 전략, 그리고 정립에 와서야 체제로서 이해하게 된 것으로 보임

 

최정운

BOP는 상당히 정교한 것.(객관+주관) 균세와 자강을 나누어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제대로 이해 못한 것 아닌가? 자강이 있어야 세력균형도 가능한 것이 서양에서 BOP의 원리인데. 중립론에서 과연 서양식의 BOP를 이해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영선

당시의 입장에서 보면 처음 세력균형을 접했을 때, 활용론으로써 생각했을 것. 그래서 처음엔 ‘부회론’을 펴다가 다음에 ‘보편론’을 펴다가, 중립론 쯤 와서는 ‘양절’의 맹아가 보임.

 

김봉진: 중국에서는 ‘균세’라고 사용하다가 ‘勢均力敵’으로 바뀜. 역적은 현실주의적 느낌이 강함. 균세는 도의적인 의미(聖法)가 강함. 
       

<Question>
       

1) 세균역적과 균세공리의 관계?
2) 합종연횡과 균세의 관계?  두 개념에는 간격이 있다. 왜냐면 균세는 성법적 측면이 많지만 합종연횡은 부도덕 무질서의 춘추전국시대 이야기. 마틴이 균세를 말한 것은 서양이 무도덕한 합종연횡이 판치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 실제로 중국인들은 균세를 도의적으로 받아들임.
3) 균세와 중립의 관계?

세력균형이라는 용어를 언제 썼는가? 필시 일본이 먼저 썼을 것. 찾아보는 것도 큰 성과를 낳을 것임.
 
         

논문의 인상이 콘텍스트가 빠지고, 시계열적으로 정리가 안 된 느낌.

         

서양에서의 BOP 개념의 시작과 의미가 무엇이었는가? 현실적 의미 뿐 아니라 도의적 의미도 있었을 것. 서양의 BOP를 먼저 머리에 넣어야하는 것 아닌가?

 

최정운

세균역적으로 바뀐게 결국 이이제이로 가까워지는 것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BOP와는 상당히 다르다. 중국이 중심에 있는 것이므로.

 

하영선

부회론에서 춘추전국에 자꾸 비교하는 것을 보았을 때, 춘추전국의 정치단위체와 서구 정치단위체 사이의 차이는 무엇인가?

 

김봉진

당시 신문이나 언설을 보면 중국이 만국의 하나라는 인식이 확산되었음.

 

하영선

조선에는 그것이 좀더 빠르게 오지 않았는가?

 

최정운

김옥균이 일본이 아시아의 영국이 되니 우리는 아시아의 프랑스가 되어야한다고 주장한데는 BOP개념이 상당했었던 것 아닌가?

 

김영호

베스트파렌 조약에서 equilibrium과 peace가 같이 나옴. 서구에서 均이 peace와 연결되었다는 규범적인 면이 있었음. 그러므로 세력균형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강대국은 실제로 압도적인 힘을 쌓음. 그러므로 약소국이 세력균형을 할 수 있다고 당시 말한 것부터 어폐.

 

김봉진

이이제의는 원리라기보다는 하나의 術이었음. 합종연형은 무질서에서의 외교술임.

 

김영호

마틴이 균세를 太平之要術이라고 말한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을 것. 
     
하영선

일본이 갑작스럽게 만국공법의 붐을 탄 이유는?
       
장인성

스스로의 위협과 취약성을 알고, 만국공법을 방어의 기제로 인식함. 이것이 국제법으로 바뀌면서 적극적인 수단으로 변화하게 됨. 동시에 중화체제를 깨는 방안이었음.

 

하영선

중국에서는 활용론의 차원에서 번역이 이루어졌지 그것을 룰로 생각할 의도는 없었음. 그러나 일본은 이니 60년대에 그것을 룰로 인식한 것인가?

 

장인성

통상조약 때문에 현실적인 필요가 있었음.

 

하영선

우리는 양절의 딜레마가 있었는데 일본을 어떻게 그렇게 빨리 변했나?

 

장인성

일본은 중화질서 밖이었고, 현실적인 이유에 의해 쉽게 변함

 

구대열

일본과 대만의 문제에서 일본은 완전히 서양식 논리를 내세웠다. 중화질서를 깨기위한 의도가 있었는가?

 

장인성

있었다.

 

김봉진

분명히 있었다. 일본을 놀라울만큼 빠르게 만국공법을 인용함. 그것은 중화질서권 외에 있었던 것 외에도, 無利에 의해 질서를 유지해온 역사 덕분에 만국공법을 이해하는 속도가 빨랐다. 福澤有吉는 막번체제의 세력관계를 세력균형에 비교함. 동시에 일본은 이미 서양의 고문들을 읽어왔다는 것이 중요함.

 

장인성

개인적으로 만국공법의 균세를 대단하게 평가하지는 않음. 마틴의 텍스트는 계기로서의 의미가 강하고, 현실에서는 의미부여를 과장되게 하지 말아야 함. 
       
황성신문의 ‘勢釣力敵’도 맞는 말일 수 있을 것 같음. 
       
서양의 BOP -Haas의 8가지 분류. 자연적으로 나타난 BOP이지만 현실에서 사용될 때에 규범성이 들어갈 수 있음. 조선의 맥락에서 이러한 규범성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합종연횡과 세력균형; 전국시대와 유럽질서

 

김봉진

중국이 세력균형을 이해하는데 합종연횡이 수단으로 쓰임. 그러나 그 의미가 고정적으로 이해되었던 것은 아님.청일전쟁 이후에는 중국이 스스로를 중심으로 인식, 그러다 청일전쟁이후에는 7웅중 하나라도 되자고 생각, 러일전쟁 이후에는 7웅에도 못미침을 인식, 자강론으로 발전

 

구대열

조선책략이 김홍집에게 주기 이전에 이미 영어로 번역되어 있음. 그럼 이것이 누구의 생각이냐? 중국의 생각이냐 아니면 주북경 외교 서클들의 아이디어인가? 러시아 막자는 것이 결국 당시 서구와 중국의 합작품 아닌가? True Policy for Korea (1880. 9. 번역)

 

하영선

당시 상식화된 이야기가 조선책략이 된 것은 확실.

 

김봉진

조선책략 작성과정을 밝히는 문제가 남아있음. 합작? 스파이? 모종의 무엇이 있을 것. 당시 영국이 청국의 자문 내지는 동맹 역할을 함.

 

구대열

조미조약 이전 Anglo-Chinese Korean Policy라고 칭함. 영국이 조선에 들어오면 러시아가 반대급부를 요구할 것이므로 영국은 다 같이 들어가겠다는 의도가 있었음. 그래서 미국과의 조약을 먼저 추진하게 함. 그래서 미국과 조약 보름만에 조영조약 맺어지게 됨. 독일도 데려옴.

 

장인성

초기 균세의 규범성에 대해서는 평가를 높이하지 않음. 초기에도 균세의 현실적인 측면을 중요하게 생각함. 만국공법의 자연법적 성격에 대해서도 유길준이 유일하게 강조함. 규범성은 후기에 ‘정립’과 같이 스스로의 규범에 의해서 굳혀진 것임.

         

일본에서의 합종연횡과 조선의 합종연횡은 무사와 문사의 차이가 있음. 일본은 무엇보다도 자강을 중시, 조선에서는 (박규수) 조약을 동맹으로 여김.

 

김봉진

도의적인 의미에서의 동맹이지 현실적이지는 않지 않았나?
       

우리에게는 도의적인 측면이 개입될 수밖에 없음.

 

장인성

서양과 관계를 맺는 것은 현실적인 이유에서 일어난 것 아닌가?

 

김봉진

결국 도의와 현실의 Mix이지 현실적 의미에서의 동맹은 아님. 현실적인 측면을 강조하되 도의적인 측면을 간과하지 말 것.

 

장인성

도의는 명분. 김윤식이 제자로서의 코멘트에서 박규수의 동맹 이야기를 논함. 김윤식 자신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아니었나 의심됨. 김윤식은 매우 현실적으로 외교를 하고 있었고, 그런 관점에서 서양국가들과의 관계를 추진함. 박규수가 일본하고 조약을 맺을 때도 일본이 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이유에서 주장함. 김윤식도 비슷한 수준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김봉진

우리의 경우는 중국보다는 현실적인 측면이 강했다는 것은 분명. 급진개화파가 빨리 등장한 것도 이러한 현실적인 측면이 강했기 때문일 것.

 

최정운

결국 개념이 퇴보하는 역사가 된 것 아닌가? 현실주의가 빠진 세력균형은 의미가 없고, 균세와 자강을 나눈 것 자체가 관념상 퇴보의 상징임.

 

하영선

나름으로 현실주의적으로 이해했지만 결국 현실만큼 나가질 못했다. 무엇이 문제였는가? Power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와 Balance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 부족. 삼국이 나름으로 규범과 현실사이에서 세력균형을 이해했지만 실제 삼국에 다가온 power가 달랐다. 
 
오늘의 친미․반미론은 어떤가? 21세기 global power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친미, 반미론이 논의되고 있음. 그럼 세력균형의 경우는 어떤가? 21세기 세계 및 동아시아 힘의 배분상태를 주, 객관적으로 치밀하게 계산하고 있는가? 미국이 미워서 중국으로 간다거나 중국이 위험하니 미국을 붙잡겠다는 논리는 19세기에서 하나 전진한 게 없는 발상이다.

 

최정운

power가 BOP의 전제조건. 널뛰기할 때도 자기 체중이 있어야지, 그게 없으면 결국 널뜀을 당하는 것. 그러므로 19세기 후반으로 갈수록 세력균형은 퇴보. 밖의 시선으로 판단하려는 노력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도 퇴보의 예.

 

장인성

오히려 반대일 수 있는 것이 결국 스스로의 힘을 위해 밖을 의식하는 것 아닌가?

 

최정운

상황의 논리는 그런데 실존의 문제에서는 주체성이 없어지는 것.

 

장인성

쇄국의 시대에는 그런 타자조차 없었다.
아이디어사에서는 BOP가 있지만 외교정책사에서 찾으라면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할 것으로 보임.

 

최정운

서양에서도 BOP는 매우 어렵고, 복잡한 개념

 

구대열

서론에서 서양에서는 그리스 시대부터 BOP에 대한 역사적인 논의를 몇 가지 추가하는 것이 어떠한가? 중국의 합종연횡을 논하려면 더더욱 그래야하지 않는가.

 

최정운

실제로 BOP를 이해하고 정치하는 사람은 아닌 사람과 판이한데, 현실적으로 있는지?

 

하영선

우리 NSC는 21세기 BOP를 제대로 계산하고 있지 못하다.

 

구대열

일본이 실제로 세력균형을 얼마나 생각하고 팽창을 한 것인지?

 

장인성

Global하게는 있음. 80년대에 서양을 경계하기 위한 아시아의 오월동주를 주장함. 그 이후에는 스스로 힘이 있으므로 이러한 제한이 필요 없었음.

 

김봉진

세력균형과 중립의 관계? BOP의 변형인가 대안인가?

 

최정운

서양사람들이 알려준 개념아닌가?

 

장인성

세력균형론의 일종의 변형임. 동북아에서는 권력의 편차가 심하여 내부적인 세력균형이 불가능하므로.

 

하영선

힘없는 자의 세력균형 아닌가?

 

김봉진

주관에 의해 변형도 되겠고, 대안도 되겠다.

 

구대열

일본이 영일동맹을 맺을 때 세력균형이라고 생각했을까?

 

최정운

영국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 일본은 의문.

 

김봉진

근본적으로 삼국이 세력균형을 외교전략으로 사용했을까?

 

최정운

천진조약 전까지는 조선에도 세력균형의 여지가 있었다.

 

김봉진

지금의 우리가 세력균형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19세기 우리도 개념을 도입하는데는 노력을 많이 했는데, 실제로 얼마나 사용하려고 노력했는가?

 

하영선

우리도 85년 거문도 사건 이후 세력균형을 실천하려고 하였음.

 

구대열

서양에서는 균형이라는 말이 수시로 등장. 그러나 삼국 특히 선두에 있었던 일본의 경우 균형을 사용하는 것이 미미함

 

김봉진

현상을 유지(status quo)하려는 측이 세력균형을 사용하게 됨.
일본의 경우 현상을 타파하려는 세력이었음. 그러므로 세력균형을 주장할 입장이 아니었음.

 

최정운

김옥균이 일본이 영국이 되려고 한다는 것은 balancer가 되고 싶다는 것을 후쿠자와 등에게 듣고 왔던 게 아닌가?

 

김봉진

물론 청일전쟁 이전에는 일본에서 연대론도 있었고, 중립론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힘의 논리로 상황이 전개되지 않았는가?

 

구대열

영국의 입장에서는 아시아에서 러시아를 막기 위한 세력균형의 일부로 영일동맹을 맺은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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