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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일기>6권
 

2003-01-22 

2000년 4월 세미나 기록

 

일시 : 2000년 4월 29일(土) 오후 3시-8시
장소 : 서울대 동원생활관 3층 2회의실
참석 : 하영선, 손열, 안인해, 장인성, 김용직, 김영호 
독회내용 : 윤치호일기 6권

 


 

주요토론내용

 

장인성 교수

6권도 국내정치 얘기가 많아서 사료와 상호 비교 검토가 필요함.

 

김용직 교수

p.56-7 하야시를 만나는 얘기가 있음. 윤치호가 하야시의 공박에 전혀 반박하지 못함. 또한 일진회를 일본이 교묘하게 이용하는 과정이 이 시기 일기에 잘 드러나 있음. 1904년 8월에는 이승만이 등장함. 고종이 보기에 러일전쟁이 끝나면 이기는 측이 조선을 차지하는 것이 확실함. 따라서 미국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영어를 잘하는 이승만을 풀어주고 겨울에 미국에 보냄.

 

장인성 교수

일본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중적 생각을 지니고 있음. 균형감각은 아직까지 유효한 것으로 보임. 유교에 대한 비판이 등장하기 시작함. p.33 8-10번, p.34등에서 '억압과 압제 등이 유교 때문이다. 전제정치는 유교에서 비롯된다. 결국 공자의 가르침은 관료가 되어서 봉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두가 관료가 되려는 것이 문제이다.'는 취지의 얘기가 있음.

 

김용직 교수

p.30-41 황무지 개간권에 대한 얘기가 있음. 그것은 합병이나 마찬가지라고 함.

 

하영선 교수

읽으면서 막연하게 가졌던 윤치호에 대한 가설이 조금씩은 분명해지는 느낌임. 끝까지 다 읽으면 제대로 파악될 것 같음. 이 시기 국제정치 부분에는 러일전쟁이 있음. 1년여간 상당히 치열한 싸움이 진행되었는데, 글 전체에는 그런 긴장감이 심각하게 드러나지는 않는 듯한 느낌임. 외무차관의 입장에서 을사보호조약도 목격하였음. 거기에 대한 반응은 김윤식이나 다른 지식인들보다는 균형감이 있는 듯함.

 

장인성 교수

5권에 나타난 러시아에 대한 반감보다는 상당히 약화된 것 같음.

 

하영선 교수

당시의 현안에서 약간은 떨어져 있는 느낌을 줌. 단, 인종주의 차원에서 보면 확실히 일본 쪽에 기울어져 있음. 공감대의 형성 때문에 아시아 편을 드는 것이라고 얘기함. 1905년 11월 을사조약 진행과정에서 일본이 조선의 독립을 빼앗는 과정에서 윤치호가 느끼는 감정이 드러남 (이전 5년은 지방으로 돌아다녔고, 러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외무부차관 위치로 컴백함). 자기는 철저히 소외되어 있었음을 강조함. 외무장관도 잘 모르는 일이 있을 정도로 고종이 혼자 다 하는 형편이었음. 조약 이후에 사표를 내고 나옴. 전반적인 톤은 아시아의 power로서의 러시아를 일본이 극복한 것에 대해서는 박수를 보냈지만,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는 것에 대해서는 분개함. 그러한 원인을 제공한 것은 고종을 비롯한 국내정치세력이라고 비난함. 또한 일본이 정치세력을 잡놈으로 짜는 것을 후원하고 있다고 함. 결국 국내정치세력을 거의 새롭게 바꿔야 한다고 함. 당시 내부세력의 단면은 잘 묘사하고 있음.

 

김용직 교수

윤치호가 정치인으로서 강력한 의지를 가졌다고 보기는 힘듦. 항상 정치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음. 중앙 정계에 커넥션이 없는 것 같음. 권력지향적인 면이 상대적으로 없었음.

 

하영선 교수

윤치호가 자는 줄 알고 한 민상호의 얘기로는 '매우 clever한데 主心(주관? 줏대?)이 없다'고 평가됨. 그것이 전형적인 평가인 듯함.

 

김용직 교수

다차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음. 일본의 개량된 서구화된 부분은 좋아하지만, 일본이 조선에 와서 야욕을 부리는 부분은 굉장히 비판함. 또한 국내정치세력에 대한 비판도 상당히 분석적임. 아시아 인종으로서 가지는 서양사람으로부터의 차별대우에 대한 느낌도 잘 표현하고 있음. 서양인들이 아주 예절을 잘 지키는 것 같지만, 자신에게는 예절을 안 지킨다고 표현함. 아주 예민한 사람인 듯함. 따라서 power struggle에의 참여는 불가능한 사람임.

 

장인성 교수

선량한 관료 수준의 위상을 지니는 사람 아닌가?

 

김용직 교수

어느 나라가 이기든지 희망이 없다고 얘기함. 따라서 우선적으로 실력을 양성하고 민족성을 개조해야 한다고 함.

 

장인성 교수

전쟁 자체에 대한 선악의 평가가 전혀 없는 것은 의아스러움. 기독교에 대한 믿음이 독실하다면 어느 정도 그런 관련선상에서 전쟁을 평가해야 할 것임.

 

김용직 교수

윤치호의 고민은 정치를 통해서는 되지 않는다는 것임.

 

장인성 교수

기본적으로 일본의 근대문명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했던 것 같음.

 

하영선 교수

이중 이미지 아닌가? 서양-아시아 구도에서는 일본을 평가하나, 일본의 대한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평가함.

 

장인성 교수

적어도 위정척사론자들의 반일감정과는 다른 것 같음.

 

하영선 교수

그렇다면 6권은 친일적이라 할 수 있나? 그렇지는 않은 것 같음. 이 시기의 압권은 가족사인 것 같음. 부인이 죽은 후에는 수호천사에게 보내는 식으로 일기를 씀. 감동적이었음. 따라서 정치가보다는 예술가가 되었으면 좋았을 것임. 그런 의미에서는 윤치호가 당시 국내정치를 아주 예민한 눈으로 보았음. 그런데, 하와이 이민 실태조사를 보면 하와이 목사 부인에게서 매력을 느낀다는 얘기가 나옴. 부인에 대한 감정과는 아주 대조적임.

 

장인성 교수

국제정치에 대한 긴장감은 없어지는 것 같음. 그것이 친일로 기울어지는 단초가 되는 느낌임. 이대로는 조선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인정함.

 

하영선 교수

혁명을 할 사람이 아닌데 그 당시 안목과 경험이 있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계속 그 중심에서 혼란스러워함. 개인적으로는 비극인 것 같음. 독립협회가 안 깨졌으면 무슨 기회가 있었을까? 국제적 변수가 너무 커져서 힘들었을 것으로 보임. 한편으로 서양적 일기의 전파로 윤치호일기를 평가할 수도 있음.

 

김영호 교수

손병희와 동학을 부정적으로 묘사함. 동학도 일본에 의해 이용되고 있다고 봄. 일본이 손병희를 보호하자 양반들이 손병희에 붙으려고 한다고 극렬하게 비판함.

 

하영선 교수

어쩌면 근대 사항의 시작도 이광수보다는 윤치호에게서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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