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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치호일기>3권
 

2003-01-22 

99년 7월 세미나 기록

 

일시 : 1999년 7월 9일(金) 오후 3시-8시
장소 : 서울대 동원생활관 3층 2회의실
참석 : 하영선, 장인성, 김용직, 김영호, 손 열, 신욱희, 안인해
독회내용 : <윤치호일기> 3권

 


 

주요토론내용

 

식민지시대와 관련한 얘기

일본의 식민통치에 grand design이 있었는가? unintended outcome이 조금 더 우세하지 않을까? 당시 선도적인 그룹들의 회의록, 예를 들어 '제국경제회의' 등을 중요한 자료로 봐야 할 것임. 하용출 교수가 설명하는 colonial의 특징은 분야의 구분이 없어지고 모든 것이 정치의 다른 표현일 뿐임. 즉 순수하게 범주화할 수 없다는 것임. 중앙정보위원회는 총독의 사조직 비슷하게 활동함.

 

김용직 교수

에머리 시절의 내용 재미있음. 연령이나 여러 모로 대접을 받은 것 같음. 신학대학의 분위기를 많이 느낄 수 있었음. 남의 사적 일기를 공개적으로 연구하는 데 대해 겸연쩍은 느낌도 있음.

 

장인성 교수

공개할 생각이 없었을까? 없었다면 이렇게 많이 쓸 수가 없었을 것임.

 

김용직 교수

그 여부보다는 당시 일기를 쓴다는 행위가 어떤 의미였는가가 중요한 것 같음. 그 자신의 발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 같음. 기본 아이디어는 서재필과 좀 다른 느낌임. 정치적 활동은 좀 부정적으로 보는 듯한 느낌. 깊이 있는 신앙이 나타남. 성서에 대한 인식도 깊음. 당시 미국 도시의 풍모가 전도여행기간의 일기에서 잘 나타남. 8월 14일자 p.147-149에서 서재필을 만나는데, 그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음. p.148 하단에 서재필과 서광범을 비교함. 서재필을 인정하긴 하지만 비판적임. 라이벌 의식을 발견할 수 있음. 성격적으로도 윤치호와 유사한 점이 느껴짐. 예를 들어 내면적임. 다른 점은 서는 중인적인 현실적응력을 보여줌. 갑신정변 당시 군인에서 미국에서 의사로 성공하였음. p.168-169의 9월 24일자 시카고에서 범종교회의. 회의는 기독교가 다른 종교에 의해 공격받는 분위기였음. p.172에서 한국관리를 만나 정부의 학정 등을 묘사하고 한국관리의 대응을 일본관리에 비교하면서 편협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함. p.174에서는 미국을 민주주의의 모범으로 묘사함. 당시 미국을 갔던 이들의 공통적인 느낌으로 생각됨. p.178에서는 간디를 만난 얘기가 나옴. 이러한 얘기들이 report 형식으로 생생하게 쓰여졌음. p.190부터는 요코하마로 감. 후쿠자와, 박영효, 김옥균, 윤치호 등의 4자회담이 p.197부터 시작됨.

 

하영선 교수

두가지가 문제인 것 같음. 첫째는 일기 자체를 통해 official document에서 잘 드러나지 않던 부분을 보완하는 사료로서의 가치. 둘째는 윤치호 자신의 국제정치관, 국내관, 문명관 등임. 첫 번째와 관련해서, 일기를 통해 보면 91년부터 박영효, 김옥균은 만나지 않는 것 같음. 박영효는 김옥균을 믿지 않았다고 함. 이러한 지적은 fact상 재미있음. 박영효와 김옥균의 행적으로 재구성하는 데에 도움이 됨. 또한 김옥균의 암살 관련 얘기가 길게 설명되고 있음. 홍종우에 대한 설명도 있음. 홍종우는 유럽유학으로는 최초의 인물이고, 심청전과 춘향전도 불어로 번역하였음.

 

김용직 교수

일본에서 죽이기에는 부담이 크기 때문에 상해로 간다는 얘기에 반색을 하며 홍종우를 딸려보낸 구실까지 마련하였다는 분석이 있음. 김영작 선생은 이것을 무쓰의 작품이라고 밝히고 있음. 돈을 준 사람이 무쓰의 심복이라고 함.

 

하영선 교수

윤치호가 서재필을 차갑다고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윤치호도 참 냉정한 사람이라고 생각됨. 김옥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별다른 느낌이 없음. 미스터리는 의외로 한국 얘기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점. 언제 한국 얘기가 나오나 기대했지만, 거의 등장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5년 동안 미국에 있으면서 한국에 대한 생각이 전혀 없었는가 하는 생각이 듦. 청일전쟁 이후에는 어쩔 수 없이 한국 얘기가 등장함. 앞서 말한 두 번째 부분과 관련해서는 청일전쟁 이후 시기부터는 국제정치 부분이 중요하게 등장함. p.344 2번을 보면 당시 상해에는 온갖 루머가 돌아다니는 시기였음. 갑신정변 당시보다는 일본이 청국보다 훨씬 많이 들어온 상태. 조선의 주권을 위해 일본의 내정개혁안이 그런대로 괜찮다는 얘기를 함. [건건록]을 보자면, 전쟁을 치르는 외무상이 일기를 쓰는 것은 상당히 드문 일이었음. 따라서 비밀로 장기간 분류되었음. 그런데 무쓰도 우리의 목표는 내정개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훈령으로 발하고 있음. 그러나 윤치호도 그런 의도를 살피지 못하는 듯한 느낌임. 어느 정도 인정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을까?(유영익 선생 쪽) 윤치호는 주적 개념의 설정을 안과 밖의 setting 속에서 내정의 차원에서 고종을 상당히 negative하게 보기 시작하고 국내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외세를 잡을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흐르는 듯함. 단 청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은 분명히 하고 있음. 국내에 대해서는 과연 어떤 모델을 구상했을까? 입헌군주제(?). 이런 문제들이 청일전쟁 이후에는 서서히 본격적으로 중요성을 지니기 시작했음. 단 윤치호는 명백히 유교와 불교를 반대하고 기독교를 앞세웠음. 따라서 이제부터는 주의깊게 읽어나가야 할 듯함. 일본의 내정개혁안도 임오군란 이후의 청의 신탁통치 류의 내정간섭과 비슷한 식으로 나간다는 느낌을 윤치호도 받게 되는 시점이 될 것임. side story로 얘기하자면, 이 시기에 결혼을 함. 결혼하기 전까지는 굉장히 스토리가 많으나 결혼 후 아파서 친정으로 보낸 이후에는 별 얘기가 없음. 또한 어머니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헷갈리는 등 communication에 문제가 있었음이 나타남. 예를 들어 [매천야록]과 윤치호를 비교해서 분석하는 것도 재미있을 듯함. 그런 작업이 선행되면 공식 문건에 대한 재해석이 가능해질 것임.

 

김용직 교수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됨됨이를 판단하는 능력이 있었음. 요즘의 신문기자 이상의 감각을 보여주는 것 같음. 재회한 후 김옥균은 평가절하하고 박영효와 홍영식을 높이 평가함. 윤치호의 관심은 조선의 내부 개혁이었던 것 같음. 따라서 일본이 선의로 개혁을 한다면 인정할 수밖에 없고, 일본과 러시아가 빠져나가면 단지 원 상태로 돌아갈 것이라고 걱정함. 국제적인 감각은 보여주지 못함.

 

하영선 교수

p.378에서 자신의 내정개혁안을 공개함. 10가지로. 10번에 교육문제를 썼지만, 교육에 원래 관심이 많았음.

 

손   열 교수

오랜만에 서재필이나 김옥균을 만나도 인물평만 하지 한국에 대한 얘기나 논의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던 점이 다소 의아스럽게 생각됨.

 

김용직 교수

미국에서의 생활을 통해 미국과 기독교 사회의 위력에 감화되면서 정치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을 것임. 반면에 인종 문제에 대해서는 민감함. 미국을 택하지 않을 이뉴는 인종 편견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힘.

 

하영선 교수

따라서 정치적 야심은 없었을 수가 있음.

 

장인성 교수

말 잘 하는 재사의 느낌이지, 차분한 원칙론자는 아닌 듯함. 치밀한 국가구상은 없었을 것임. 김옥균과 같은 행동가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재사임.

 

손   열 교수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되면 국제정치관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가? 덜 현실주의적이 되는가?

 

김영호 교수

그것은 아닌 것 같음. 현실주의적 발언(예를 들어 전쟁을 긍정)이 나오기도 함(p.331) 즉 니버식의 크리스천 리얼리즘이 아닌가 함. 적자생존을 긍정함.

 

장인성 교수

문명개화를 이야기하려면 기독교를 인정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생각했을 것임.

 

김영호 교수

p.59에 그의 문명관이 드러남.

 

김용직 교수

윤치호에게 있어서는 종교가 하나의 축으로 국내 문제의 해결에 작용하고, 국제부분에서는 민족주의적 세계관이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변질되는 느낌임.

 

김영호 교수

p.55 2번에서 기독교를 중시하는 의미가 잘 드러남.

 

하영선 교수

내부 reform을 해야 하는데, 되지 않는 이유가 하나는 청, 하나는 고종 일족 때문이라고 생각함. 기독교국가화하는 전반적인 reform을 통해 적자생존을 해나가자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됨.

 

장인성 교수

윤치호의 경우는 내셔날리즘보다는 인종에 대한 집착이 있는 것 같음.

 

김용직 교수

윤치호의 경험(기독교)은 미국의 힘을 제대로 본 것이라고 생각함. 미국의 민주주의와 힘은 종교적 바탕 위에서 만들어졌을 것임.

 

하영선 교수

내부 개혁을 위해 기독교가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을 모색하는 점은 분명히 있으나, 국제정치 측면에서의 관련성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음.

 

장인성 교수

일본의 경우는 기독교인이 거의 국가에 종속되는 경우였음.

 

김용직 교수

당시의 사고에 보다 더 천착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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