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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교사연구회 10월 정례모임
 

2016-10-29 


한국외교사연구회 2016 10월 정례모임

 

일시: 2016.10.29.() 3:30~6:00 pm

장소: 한국고등교육재단 지하 세미나실

참석자: 하영선, 김봉진, 김성배, 김수암, 전재성, 최진백, 이헌미, 노가연

 

1. 자료

[국문 논문]

구대열, “장수왕의 외교 정책: 고구려의 자주외교의 두 얼굴”, 국제정치논총 50(2), 2010.

임기환, “남북조기 한중 책봉·조공 관계의 성격”, 한국고대사연구 32, 2003.

최일례, “장수왕대 고구려의 대중외교와 그 동인”, 한국고대사연구 71, 2013.

김철민, “고구려 장수왕 대의 대송외교와 그 배경”, 한국사학보 63, 2016.

김한규, “동아시아 역사 논쟁과 고구려 역사 논쟁”, 서강인문논총 43, 2015.

김영천, “중국 학계의 고구려 대외관계 연구동향”, 사총 66, 2008.

[중문 논문]

, (남북조와 백제의 정치·문화 관계의 변화), 1996.

孙卫国, (동심원 이론에서 양극모델 이론으로: 미국 중국학계의 중국고대 조공제도 연구), 2013.

纯艳, (중국고대 조공체제 연구의 회고와 전망), 2013.

 

2. 발제 및 독회

*발제문은 개별 첨부파일 참조

- 노가연 발제: 구대열 논문

- 김성배 발제: 한승, 쑨웨이궈, 황춘옌, 임기환, 최일례, 김철민 논문

- 이헌미 발제: 김한규, 김영천 논문

- [공동연구 발제] 고구려의 대외관계, 김성배

 

3. 토론 내용 정리

 

n  페어뱅크-로사비, 니시지마-호리이와 다른 우리만의 시각을 어떻게 제시할 것인가?

-        1) 고구려 외교의 에센스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장수왕의 능수능란한외교 등 세력균형적 면이 주로 부각되어 왔는데, 책봉-조공 체제의 정치문화, 유교규범적 측면은 어떻게 조명할 것인가?

-        2) 남북조시기와 수당시기 고구려의 대외관계 또한 차별적임. 전자는 외교시대, 후자는 전쟁시대.

 

n  고구려사를 중국사로 소개하는 것이 정말 중국학계의 주류이론인가?

-        중국 정부가 주도한 중국변강사연구에서는 실제로 그러하나, 이에 참여한 학자들은 대부분 지방사 전문으로 2007년 동북공정 완료 후에는 민속사·고고학 등으로 흐름을 전환하였음. 실제로 중국 학자들도 중국의 책봉을 받은 모든 정치단위를 모두 국내정치로 보지는 않음. 당시 한중 간 외교문제로 비화되었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중앙정부에서도 논란거리를 피하는 경향. 우리는 특정 학자들과 싸우는 것 보다는 고대 동아시아 국제질서라는 담론차원에서 크게 접근해서 해결해야 함.

 

n  우리 스스로도 고구려·백제·신라 3국 관계를 국제정치적으로 어떻게 볼 것인지 정립이 필요함. 삼국통일 이전은 국제관계로 볼 것인가? 광개토대왕비에서는 고구려는 부여·백제·신라를 속민으로, 중원고구려비에서는 형제국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당대인들의 공동의 귀속감 또는 단일민족개념에 대해 우리 스스로 성찰이 필요함.

 

n  중국 입장에서는 동북3성 조선족의 정체성 문제와 관련. 심양역사박물관에서 청왕조가 자신들을 연원을 고구려로 설명한 사례 참조. 조번의 문제 뿐 아니라 역사계승의식의 문제와 연결.

 

n  책봉-조공체제를 세력균형과 전혀 다른 틀로 설명하는 것은 부족함이 있음. 책봉-조공체제도 이미 힘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으며 그 관계의 심도가 상대국에 대한 전략적 비중을 유교적 예의규범을 통하여 표현하고 있기 때문. 또한 이 역시 명 대에 와서 정교하게 시스템화 된 것으로, 그 이전 시대에 관해서는 역동성을 인지하고 양분화시켜 이해해서는 안 됨.

 

n  연구의 틀: 조공책봉체제 전파의 배후에 유교적 이념·규범의 전파를 드러내려면 입증은 어떻게 할 것인가? 문화의 역사사회학이라면 그 사례로 (문화의 수용에 더 적극적이었던) 백제보다 고구려가 적절할 것인가? 고구려가 전형적인 예가 아니기 때문에 갖는 의미는?


n  쑨웨이궈 논문 <동심원 이론에서 양극모델 이론으로>: 전자는 페어뱅크 모델, 후자는 바필드,로사비 모델로, 동심원적 모델이 정착되기 전 유목민족들과의 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줌. 고구려를 당시 국제질서를 따라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간 사례로 볼 수 있음.

 

n  위진남북조 시기는 기존의 중국과 다른 독특한 시기임. 진한 시대의 통일과 수당 시대의 통일은 의미가 다르며, 그 사이의 이 400년의 기간의 성격을 어떻게 선입관 없이 이해하고 모델링 할 것인가? 로사비의 모델을 1000년 앞으로 당겨올 수 있나?

 

n  통일적다민족국가란 현 중국의 중앙정부가 규정한 것으로, 우리가 위진남북조 시기 천하질서를 연구하는 데 있어서도 정면으로 도전할 수는 없음. 최근 자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오늘 읽은 논문의 저자인 韓昇이 쓴 단행본  <東亞世界形成史論> (2015 개정판)으로, 가장 최근에 나온 중국 버전의 동아시아질서론이며, 중앙정부에서 요구하는 통일적다민족국가 프레임 안에서도 조심스럽게 여러 질서가 공존하고 있었음을 제시함.

 

n  진한이 멸망하고 516국 시대가 되어 유교적 명분 체계가 약해진 상황에, 힘으로는 대등하거나 더 강한 고구려를 북위가 책봉한 행위는 어떤 의미인가? 위계질서적 성격이 어느 정도 무시되고, 관계수립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한화된 민족·정치체제들 끼리는 무력 뿐 아니라 책봉·조공이 유용하게 사용되는 모습을 볼 수 있음.

 

n  당시 중원왕조와 외교하기 위해서는 책봉조공의 틀이 당연한 선택이었는데, 오히려 이 시기 중원에서는 그 질서가 깨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고구려도 성장할 수 있었음. 서로가 요구·기대하는 조공-책봉 관념에 차이가 있었을 가능성.

 

n  중국 정부가 주장하는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을 중국사 전체에 적용하는 것도 왜곡이지만 기존 국내연구처럼 고구려사를 너무 일사불란하게 만드는 것도 당시 현실과 맞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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