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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교사연구회 4월 정례모임
 

2014-04-19 

2014년 4월 세미나 기록

 

일시: 2014년 4월 19일(토)

 


1. 주 텍스트



일연, <삼국유사>  흥법-탑상-의해-신주-감통-피은-효선편 (발제자 : 김현철)


2. 발제(발제문은 첨부파일 참조)


3. 토론 내용 정리

 

 이헌미 코멘트


<삼국유사>를 보면, 4세기 불교가 전래되고 7세기 고대 국가의 형성과정에서 불교가 발흥하는 과정이 확인됨. 특히 동아시아 세계 전역에서 이와 같은 양상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음. 읽으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스님의 행적. 이들은 문자 보급이 일반적이지 않았던 당시의 상황에서 노래와 춤을 통해 전도를 하고자 함. 고대 사회의 문화 전파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음.


당대 불교의 중심지가 천축국과 중국으로 이원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음. 이들의 선진 불교 문명을 승려를 중심으로 한 유학생들이 고국으로 전파.


 김현철 코멘트


<삼국유사> 70-80%는 신라 이야기이며, 그 중 70-80%는 불교사. 이는 당대의 문명표준의 관점에서 독해해야 함. 특히 히 스님이 볼 때, 신라의 정통성은 불국을 일으켰다는 점에 있었을 가능성. 신라/고려의 교체에 대해서도 거부감이 적다는 인상.


 하영선 코멘트


우선 챕터 구분이 이상하다. 이 부분에 대한 선행 연구가 있나 궁금. 또 불토국을 강조하는 것이 당대 일연이 살았던 맥락에서 볼 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 대체로 오늘 읽은 부분은 중/신자/탑의 3중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여전히 그 분류법 자체가 의아함.


 이헌미 코멘트


<삼국유사>의 분류법은 당대 불교 서적의 일반적인 양식으로 알려져 있음.


 하영선 코멘트


탑 연구에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다. 국내 탑 연구의 대부분의 소스는 <삼국유사>로부터 오고 있는데, 오히려 일연이 왜 이렇게 탑을 강조했는가에 대한 답은 별로 없다.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탑이 당대 신라나, 고려에서 지니는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군사적으로 대응할 길이 없는 상황에서 영적인 힘을 모아주는, 일종의 영력이 구현된 존재일까? 탑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 특히 황룡사뿐만 아니라, 신라가 매우 열심.


또 이헌미 박사가 지적한 유학승의 사례도 흥미로움. 당대에 있어 유학이 어떤 의미인가? 불교 전래 이후 국내적으로 불교를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있은 후, 중국 불교에 대한 갈증이 생겨서 서서히 유학승이 등장. 원광이 이와 같은 승려 층을 대표하다면, 현장 법사 이후 승려들은 인도의 불교 원전을 기초로 하여, 불교사를 새로 쓰기 시작함. 특히 이들 세대는 중국의 여러 고승들과 비교했을 때도 실력이 밀리지 않았음.


고대사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불교사를 잘 알아야 겠다는 생각. 특히 하드 파워가 아닌 다른 힘의 양상이 존재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듬.


 최인호 코멘트


법흥왕, 진흥왕 모두 불교식 이름을 사용. 이런 점은 한국의 독특한 양상. 일반적으로 불교가 비정치적인 종교로 알려져 있는데, 한국에서는 호국불교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측면이 재미있음.


 전재성 코멘트


소승과 대승의 분리. 대승이 중국을 통해 도교와 결합하면서 한반도에 전파됨. 특히 육조 혜능에 이르면 중국 불교는 일정한 수준에 도달. 훗날 주희 역시 불교의 형이상학적 담론을 통해 유교를 철학적으로 해석한 측면을 주지해야. 탑이 지닌 상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됨.


 이헌미 코멘트


민족주의를 상징주의의 측면에서 탐구하는 연구들이 탑이라는 상징에 반영된 민족주의를 읽어낼 수 있어내는 데 유용한 방법론이라 생각됨.


김현철 코멘트

신라가 불교기술, 신라 출신 승의 실력 면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측면이 조선 시대 조선중화주의와 유사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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