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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교사연구회 9월 정례모임
 

2013-09-14 

2013년 9월 세미나 기록

 

일시: 2013년 9월 14일(토)




 

1. 주 텍스트 



김부식, 권덕영 외, <삼국사기> 신라본기 (발제 : 최인호, 이헌미)


2. 보조 텍스트  (발제 : 이택선)


김태식, <삼국사기> 원전자료의 성격 (이강래, <삼국사기 전거론> 서평)

조인성, <삼국사기>의 사료적 성격에 대한 종합적 검토 (정구복 외, <삼국사기의 원전 검토> 서평)

이강래, <삼국사기> 원전론을 위하여 (고관민, <삼국사기의 원전적 연구> 서평)


3. 발제(발제문은 첨부파일 참조)


4. 토론 내용 정리


● 하영선 코멘트

중국이 한반도를 관리하는 모습을 개념화해보면, 정복 - 기미 - 회유 - 동화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을 것. 정복은 여전히 폭력이 사용되는 국면이고, 회유는 여전히 남을 꾀어야 하는 단계, 동화(예-사대자소)는 영국 국제사회론자들의 표현을 비리자면, 공동의 정체성이 형성된 정도라고도 볼 수 있을 것.  다들 이번 발제에서 '숙위 제도'가 재밌다고 하는데, 이것이 과연 이 네 가지 모습 중 어디에 속할 지는 의문.

● 김현철 코멘트

우선 삼국사기 신라본기 1-3권만 보면, 신라가 고구려에 일종의 인질(실성왕)을 보내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음. 신라는 고구려에게 인질을 보냄으로써, (백제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었던) 자국의 안보를 일정 부분 보장 받고, 주변의 소국들을 잠식해나가는 모습을 보임. 

● 이택선 코멘트

신라가 진흥왕 이전에는 상대적 약소국. 고구려나 백제에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임. 신라가 중국의 질서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것은 한강 유역 정복 이후. 숙위 제도는 인질이기도 하면서, 당나라의 매력외교의 결과물이기도 함. 

● 하영선 코멘트

중국이 다른 지역을 회유해왔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헤비야와 같은 신청사 학파가 이미 비판을 가함. 이들에 따르면, 중국의 이민족 관리 방식(주로 북방 이민족)은 폭력에 의거해 왔다는 것임. 그렇다면 우리가 중국의 질서에 편입되어 있었던 것은 과연 신청사류의 접근으로 설명이 되는가. '사대'와 '기미' 사이에서 좀 더 세밀한 분류가 필요하다고 생각됨. '기미'는 헤비야가 지적했듯이 상당히 강제적 의미가 있음. 

● 이헌미 코멘트

당 현종과 신라 성덕왕의 '허니문'이 재미있었다. 기록에서 그 친밀성이 드러날 정도이다.

● 이택선 코멘트

에밀레종에서 알 수 있듯이, 성덕왕 시기는 나라 안이 어지러운 시절. 아마 부족한 정당성을 외부에서 빌려오지 않았나 싶음.

● 김준석 코멘트

숙위 제도를 포함하여, 이와 같은 제도가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당나라의 코스모폴리탄적 성격도 영향을 주었을 듯.

● 하영선 코멘트

질서건축의 관점에서 볼 때, 동쪽의 문제는 어떤가? 이게 하나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는가? 북쪽은 헤비아 류의 해석, 동서남북을 다보자는 것이 결국 니시지마 사다오 이후 호리 도시카즈-가네코 슈이치의 이야기. 미일중의 학계와 싸울 수 있는 개념화가 가능한가. 현실주의로만 고대를 봐서도 안 되고, 단순히 예치의 관점에서 고대를 봐서도 안 됨. 이는 현재 미국과 중국이 신형대국관계를 두고 벌이는 논쟁과도 유사함. 그 사이의 복합성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함. 

● 김성배 코멘트

김윤식은 이 시기의 김춘추 설계두, 최치원 등을 평가하면서, 실제 중국에 가서 중국인들과 자유로이 대화를 나눈 인물들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민족주의적 논변과는 다르지만, 외신으로서 직접 중국에 간 신라인들을 높이 보고 있는 것.

● 이택선 코멘트

이 시기 신라소, 신라방이 존재한 것과 비교해 볼 때도, 조명관계의 모습과 이 시기의 모습은 다른 점이 많다. 숙위 제도를 두고 신라-발해가 서로 다투는 것 역시 재미있는 부분.

● 하영선 코멘트 

지금까지의 모습을 보면, 진-한 시대의 제국 모델, 철기 문화가 한반도의 여러 국가들(고조선-고구려 등)에게 영향을 주었음. 오히려 진-한 제국과 같은 체제가 오래 지속되었다면 한반도가 어찌 될 지 몰랐겠으나, 중국이 이후 위진남북조와 같은 분열기에 접어듦으로써, 한반도 국가는 숨 쉴 틈을 가지고 중국과 비슷한 모델의 국가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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