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연행록연구회 3월 정례모임
 

2012-03-24 

2012년 3월 세미나 기록

 

일시: 2012년 3월 24일(토)

발표: 정연, “중국 연행록 연구 소개”




주요 토론내용


1. 정연, “중국 연행록 연구 소개”


(1) 중국에서 왜 연행록에 관심이 있는가?


1957년 박지원 탄생 220주년 행사, 베이징대와 사회과학원에서 북한과 함께 회의. 주제는 "조선 역사 속의 중국 자료: 이조실록 속의 중국사료” 중간에 이 작업이 중단되었다가, 1980,90년대에 다시 진행됨. 목록 중 1번 진상승, 청사공정의 조선 집필 담당 거론된 중요연구자. 조선 왕조 대청, 대명의식. 중국에서는 조공관계, 종번관계 연구자들이 조공무역 관련해서 연행록 연구. 2번 류위. 9번 서동일, 10번 양우뢰 신진학자도 이 계열.


(2) 와중에 혜성같이 나타난 갈조광. 2000년대.


-동아시아 담론의 확대 속에 ‘동아시아’라는 것은 무엇인가? 중국사상사 내부자료만으로는 부족해서 외부의 자료로 눈을 돌림. 유럽과 같은 지역 공동체가 전통 속에 동아시아가 있었고 미래에 있으려고 한다면?


-구미 중심의 중국 연구에 회의를 느끼고, ‘이역(異域: 주변)’의 시선으로 바라본 중국사 재구성에 관심. 연행록에 묘사되고 있는 중국, 특히 저자들이 관심갖고 있었던 중국의 풍속에 대한 기록.


-진상승, 손위국 등은 초기에 조공 문제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 사학사, 사상사 쪽으로 연구가 진행됨. 최근에는 주로 비교문학적 연구가 주류. 베이징 대 1998년 박사학위논문 전미자, “18세기 연행록을 통해 바라본 중국 형상”. 갈조광과 같은 사상사적 접근은 드물다.


(3) 차혜원, “청대 초.중기 정치문화사의 쟁점 분석: ‘청조체제론’과 ‘연행록’ 연구동향을 중심으로” (동북아역사재단)


● 하영선 코멘트


베이징회의를 가기 전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연행록 연구에 대한 중국 관심의 이유. (1) 중국: 연행사들이 쓴 중국 기록에 대한 관심? 타자의 시선을 통해 본 자기상 (2) 천하: 중조관계라기보다는 중국의 사대질서 운용의 한 케이스로서의 관심. 이는 다시 둘로 나뉘어서, 중국이 조선을 어떻게 다루었는가?(페어뱅크 모델, 헤비아 모델, 우리 연행팀의 제 3의 모델) 그렇다면 중국 연행록 연구자들은 어떤 모델을 가지고 있겠는가? (3) 한국: 변방인 조선에 대한 관심 (우리측 연구는 주로 여기에 쏠려있음)


현재까지의 연구사는 이 세 가지 중 어디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가? 연변대 박사 받은 9번 서동일은 어떤 내용?


● 정연 답변


비교문학적 접근. 사신제도 정리. 만주족에 대한 조선사신들의 인상을 다룸.


● 하영선 코멘트


중국측 연구자들도 그렇고, 국문학, 한문학계의 국내 연행록 연구도 그렇고, 연행록의 정치적 독해가 낯설고 위험할 우려가 있음.


● 정연 답변


연행록 연구 초반에는 관계사에 중점. 그런데 최근에 연행록이 유행되면서 중국적 삶의 모습들을 인증하고 보완하는 작업이 주류.


● 김수암 코멘트 


9번 서동일 연구는 사료를 주로 연행록을 썼는가?


● 김성배 코멘트


연행록에 대한 국제정치학적 접근은 국내 학계에도 별로 없지 않은가?


● 하영선 코멘트


연행록 독해에 있어 천하질서에 대한 중국적 3가지 접근이 가능하다면, 조선에도 3가지 태도가 있을 수 있음. 그리고 이것이 서로 복합됨. 전통 중국=제국이라는 신청사적 시각은 페어뱅크적 시각의 교정을 요함. 서양 제국보다는 명분적/ 규범적 요소가 강함. 그러므로 제 3의 시각이 필요함. 조선 입장에서도 동주 선생의 사대에 대한 명분/실리 연구, 정치학계에서도 <정치외교사논총>에 연암의 국제정치학적 접근 이런 논문 등 몇 편이 있지만, 복합적 제 3 시각(책을 내서 영어로 세일즈한다면, “페어뱅크와 헤비아를 넘어서”)에서 깊이 들어간 경우 거의 없음. 일단 연구작업을 낸다면 경쟁력 있음.


현대 구성주의 중국국제정치학자인 진야청 같은 경우 3분류하기 시작. 자기와 옌쉐통, 사회과학원 쟈오팅양. 이들에게 우리가 역사적 지식과 해석을 바탕으로 3분류법을 들이댄다면. 이제 싸움은 이미 현실주의냐 구성주의냐가 아니라, 구성의 내용으로 넘어갔음. 동주-신일철 대담의 경우 명분론을 강하게 들이댄 것은 그 당시 현실주의적 시각이 너무 팽배했던 데 대한 교정적 입장.


궁금한 것은 갈조광 선생의 포지션.


● 정연 답변


갈조광 선생이 조선사에 상당히 해박. 논문 6번. 연행사들이 북경의 천주교회당에 가서 역법이나 그림 등을 구경했을 때에는 청황제가 허락했지만, 일단 다산의 친척이 조선에서 포교를 시작하자, 다시 온 연행사들은 천주당에 갈 수 없었음.


● 하영선 코멘트


우연히 길림성 신문에서, 열하일기 판첸라마 방문했던 행사에 대한 기사(게다가 티벳기록을 가지고)가 나왔음(열하일기 판첸라마 교차검색). 서동일 씨(연변대 박사)가 쓴 것이 아닐지? 그 기사에 따르면, 당시 판첸라마가 건륭제의 환대 방식에 매우 기뻐했다는 티벳측 기록이 있음. 청조의 티벳 회유책을 논하는 우리 논문의 내용을 알면 중국이 오히려 발표를 권장해야 하지 않는가?


● 이헌미 코멘트


현재 중국의 티벳 정책이 그때에 비하면 훨씬 강경하기 때문에 도둑이 제발 저리는 격?


● 정연 코멘트


후마 스스무의 논지는 주변국가들이 중국에 대해 그다지 존명적이지/사대적이지 않았다는 것인데, 중국측 연행록 연구자들은 이러한 논쟁에 참여하지 않는 경향. 하선생님 말씀대로 주변의 눈을 통해 본 중국 자체에 대한 관심이 주. 주변의 중국에 대한 태도에는 무관심.


* <대동한문학> 34집, 2011년 연행록 특별호. 논문들 읽어볼 것.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