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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제12호] 김정일 후계체제 공식화와 한반도의 미래
 

동아시아연구원 

2010-10-12 
2008년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된 이후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아 온 김정일 후계체제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9월 28일 북한의 제3차 당대표자회에서 김정일의 3남인 김정은과 그를 보위하는 측근 후견세력이 급부상한 것이다. 북한의 후계체제 향방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것은 그것이 단지 북한 내부의 권력이동 문제로 끝나지 않고 한반도와 동북아의 미래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김정일 후계체제가 향후 어떤 정치적, 외교적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북한 자체의 미래는 물론 북핵문제, 남북관계, 그리고 동북아 국제질서가 결정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김정은은 대장의 호칭을 부여받고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직위를 차지함으로써 사실상 2인자의 지위에 올랐다. 김정은은 북한의 관영매체에서 4명의 정치국 상무위원들 다음으로 호명되고 그의 사진이 언론에 공개됨으로써 김정일 위원장의 후계자로 공식화 되었다. 예상보다 빠른 진행이다. 이는 김정일 위원장이 1974년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된 지 6년만에야 공개적 활동에 나선 것과도 비교된다. 27일 대장 호칭 부여, 28일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임명, 29일 사진 공개 등 고도로 치밀하게 연출된 김정은 띄우기에서는 북한의 조급성마저 엿보인다. 10월 10일 노동당 창당 65주년 기념 열병식장에 김정일과 김정은이 함께 등장하고 이를 외신기자들을 통해 생중계함으로써 김정은의 후계자 지명을 외부에 공식적으로 선포하였다.

 

현시점에서 김정은 후계체제의 성격을 규정하기는 이르지만 기존의 선군노선으로부터의 ‘단절’이나 ‘변환’으로 방향을 잡았다기 보다는 ‘지속’에 무게를 더 두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김정은이 당의 정치국이나 비서국이 아니라 군부를 지도하는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직위를 맡았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는 김정은을 선군노선의 충실한 계승자로서 자리매김하기 위한 포석이다. 김정은은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의 자격으로 통치이데올로기 해석권을 행사할 것이며 김정일의 선군노선을 김정일주의로 혁명 전통화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은 후견세력이 아버지의 사람들로 채워져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이번에 당과 군의 실세로 배치된 김경희(정치국 위원), 장성택(정치국 후보위원, 당중앙군사위원회 위원, 당중앙위원회 부장), 리영호(정치국 상무위원회, 당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등이 그들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겠지만 아직 김정은의 사람들이라고 할 만한 인물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의 유산 계승은 ‘반정’이 아니라 ‘세습’을 통해 권력을 이양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날 수밖에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선군에만 전적으로 의지할 수 없는 것이 김정은 후계체제의 딜레마이다. 사실상 업적이 전무하다시피 한 김정은은 후계자에 걸맞은 업적 쌓기를 바탕으로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진출해야만 최종적으로 후계자로 확정될 수 있다. 이 과정은 대략 북한이 강성대국 원년으로 제시하는 2012년 제7차 당대회를 통하여 마무리 되어야 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김정은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김정은은 강성대국의 3대 기둥 중에서 이미 달성되었다고 주장되는 ‘정치사상강국,’ ‘군사강국’에 더하여 ‘경제강국’ 건설에서 내세울만한 성과를 거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기존의 선군노선을 유지하는 한 자체적으로 경제회생의 길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김정은 후계체제 구축과정에서 증대된 중국의 영향력도 김정은의 선택을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이다. 김정일은 지난 5월과 8월, 3개월도 안 되는 기간 동안 두 차례의 방중을 통하여 “대를 이은 북중 우호관계”를 강조하면서 중국으로부터 김정일 후계체제에 대한 후원을 요청한 바 있다. 조공책봉 관계를 이용해 국내정치적 정통성을 보완하려고 했던 동아시아 전통 국제질서에서 나타난 전형적 왕조국가의 행태이다. 그러나 북한의 대중 의존도 증대는 선군노선에 대한 변경과 개혁개방의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5월에는 원자바오 총리가 김정일 위원장에게 “중국의 개혁개방 경험을 소개해 주고 싶다”고 언급했으며 8월의 북중정상회담에서는 김정일 위원장이 이례적으로 중국의 개혁개방을 높이 평가하는 언급이 나왔다. 후진타오 주석은 이번 당대표자회 축전에서도 “경제발전과 인민생활개선 등 분야에서 일련의 기뻐할만한 성과들을 이룩하였다”고 언급하였다. 김정일 후계체제의 공고화를 위해서는 외부적으로 중국의 후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이것이 국내적으로는 선군노선의 변경 압력으로 작용하는 모순적 구조인 것이다. 최근 들어 북한이 이산가족상봉, 군사실무자회담 등으로 대남접근이나 북미관계 개선에 적극성을 보이는 것도 경제난 극복을 위한 지원획득의 목적도 있지만 지나치게 일방적인 대중 의존이 초래할 개방 압력을 분산시키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군의 ‘계승’을 내세울 수밖에 없는 3대 세습의 태생적 한계와 경제회생을 위한 ‘변화’의 필요성이라는 구조적 압력이 공존하는 모순적 딜레마 속에서 김정은 후계체제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다. 물론, 북한으로서는 핵선군노선을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한국 등의 외부지원을 받아 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가장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주변국들의 입장을 고려할 때 북한의 이런 이중 전술은 더 이상 통하기 힘들다. 결국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변화의 압력을 무시하고 제2의 유훈통치를 통해 선군에 얽매여 또 한번 고난의 행군을 감수하는 길이다. 이 길을 택하면 일정기간 동안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궁극적으로 체제의 사활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외부지원 없이 북한 경제가 악화일로를 겪게 될 경우 정치적 정당성이 취약한 김정은은 정권을 유지하기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핵없는 평화체제를 기반으로 선경先經의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다. 선군을 고집하는 한 체제의 안정적 유지를 위한 국제환경의 조성은 불가능하고, 경제의 본격적 회생을 위한 외부자본의 유입도 기대하기 어렵다. 북한 내부적으로도 국방공업을 우선하는 선군의 지속은 재원의 부족을 야기할 뿐 아니라 재원사용의 비효율을 초래할 뿐이다. 결국 선경을 향한 개혁개방 없이는 발전은커녕 생존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권력 이양기의 특성상 당장 파격적인 변화를 추구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체제의 미래를 위해서는 조심스럽게 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실마리는 북핵문제에서 찾아야 한다. 김정일 후계체제의 공식화도 일단락된 만큼 조만간 중국의 주도로 6자회담의 재개가 적극적으로 추진될 것이다. 이 때 북한의 선택은 후계체제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북한은 더 이상 회담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는 김정일 후계체제 안착에 필요한 외부의 지원을 얻기 어렵다. 과거 김일성 주석 말기의 북핵협상 사례에 비추어 볼 때 향후 후계자 김정은에게 핵협상권이 주어질 가능성이 높다. 핵무기는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상속해 줄 최대의 유산임에는 틀림없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선용하는가이다. 김정은 정권은 북핵협상을 통하여 북한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체제안보와 경제회생을 동시에 해결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정성을 가지고 북핵협상에 임해야 한다. 당장 불능화에 이은 신고•검증 단계에서 좌초된 비핵화 과정을 마지막 폐기 단계로 이행하기 위한 확실한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김정은은 핵무기가 자신이 앞으로 걸어야 할 미래를 보장해 줄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을 토대로 비핵 복합평화체제의 구축을 통해 안보를 추구하는 전략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 평화체제를 북한의 단기적 이익을 위한 전술적 도구로 이용할 것이 아니라, 정권의 안전을 내외부에서 보장해줄 수 있는 발판으로 삼도록 스스로 인식을 변화시켜야 한다. 북한 스스로 한국, 중국, 미국을 복합적으로 엮는 삶의 그물망을 치는 것이 북한의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길이다.

 

북한의 전략적 결단과 함께 한국과 관련 당사국들이 ‘공진화’(co-evolution)하여 함께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문제국가 북한의 존재가 이미 세계와 동북아의 안정과 번영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지만 북한이 통제불능의 실패국가로 전락할 경우 그 부담은 주변국 모두가 나누어 질 수밖에 없다. 북한의 붕괴는 한국이나 중국 등 어느 특정국가의 전략적 이득으로 귀결되지 않으며 동북아와 세계에 커다란 ‘구조적 공백’(structural hole)만을 초래할 뿐이다. 따라서 북한 후계체제가 죽음의 길이 아니라 삶의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함께 대북정책의 진화를 모색해야 한다. 김정일 후계체제가 기존의 선군노선을 변환시켜 비핵화와 개혁개방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등대지기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것은 김정은 후계체제가 핵 대신에 선택할 수 있는 평화체제를 제시하는 것이다. 남북평화협정과 북미평화협정을 중국이 보증하는 복합보장형태의 평화체제 논의가 필요하다. 김정은은 정권과 국가의 생존에 대한 안전감이 들지 않으면 생존의 마지막 보루라고 여기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주변국은 북한이 핵없는 평화, 주변국에게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는 평화를 추구한다면 북한 정권이 생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로 접어들어 발전할 수 있도록 함께 지원할 것임을 확인시켜 주어야 할 것이다. 주변국이 동북아 미래의 청사진 속에 북한의 자리를 함께 설계하고, 정상화된 국가로서 북한이 추구할 수 있는 대안을 함께 고민하는 모습을 보일 때, 북한은 이를 생존보장에 필요한 시그널로 받아들일 것이다. 결국 북한이 핵과 수령체제와 경제발전 세 가지를 함께 가질 수 없음을 확인시키고, 인센티브와 압박수단 모두를 강화하는 노력도 동시에 기울여야 한다.

 

김정일 후계체제 구축과 관련한 한중간의 전략적 협력도 중요하다. 천안함 외교 과정에서 나타난 한중 간의 미묘한 경쟁과 갈등이 김정일 후계체제에 대한 대응에서 재현되어서는 안 된다. 북한의 미래 상태에 대해 한중간의 전략적 합의가 없을 때 모든 급변사태는 갈등을 야기하고 한중간 공동대응을 어렵게 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한중의 영향력 경쟁이 지속되면 김정일 후계체제는 이를 활용하여 기존의 선군노선을 유지하기가 더욱 용이해질 것이며, 이는 한중 양국 모두에게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이다. 한중은 북한의 바람직한 미래에 대한 전략적 합의를 바탕으로 북한의 외부지원 수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북한의 내부적 변화를 촉진시켜 나가는 공동전략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위원장

하영선 (서울대학교)

 

위원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전재성 (서울대학교)

조동호 (이화여자대학교)

 

동아시아연구원(EAI)은 미국 맥아더 재단의 ‘아시아안보이니셔티브’(Asia Security Initiative) 프로그램 핵심 연구기관으로 선정되어 재정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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