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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제5호]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과 방한 : 성과와 과제
 

동아시아연구원 

2009-11-19 
미국의 지구적 리더십을 위협하는 안보, 경제, 그리고 매력의 삼중위기를 부시행정부에서 물려받은 오바마 대통령은 세계 각 지역을 순방하며, 위기 이후 미국의 리더십을 유지하기 위해 숨 가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유럽, 중동에 이어 아시아 순방을 마친 미국은 동아시아 지역전략과 개별국가 전략을 추진하는 한편, 동시에 지구 전략의 각 이슈들을 다루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이 과거와 같이 향후에도 중요한 아시아 세력으로 남을 것이며, 양자동맹, 강대국 관계, 다자주의 등의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안보, 경제, 환경, 문화 등의 주요 이슈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러한 의도는 순방일정과 형식에서도 잘 드러난다.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일본과 한국, 두 동맹국을 처음과 끝에 놓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의체 다자외교와 G2의 상대국인 대중국 외교를 중간에 배치하였다. 특히 중국 방문에 7박 8일의 일정 중 3박 4일을 할애함으로써, 대중국 외교가 동아시아뿐 아니라 지구 차원에서도 중요하며, 다양한 이슈 모두에서 대중국 협력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본 도쿄의 산토리 홀 연설에서 제로섬 게임을 넘어설 수 있는 동아시아, 한 국가의 부상과 발전이 다른 국가들의 발전에 해가 되지 않는 정합 게임의 동아시아를 비전으로 제시하였다. 미국은 동아시아에서 양자동맹, 다자협력, 대중국 강대국 협력을 통해 다양한 아시아 파트너십 추구를 명확히 하고자 노력하였다. 현재 동아시아 각 국가들은 21세기 급변하는 국제환경 속에서 각기 나름대로의 대외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중국은 조화외교를 통해 자국의 부상을 위한 우호적 환경 조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새롭게 등장한 일본의 민주당 정부는 기존의 대미 일변도 외교를 탈피함은 물론, 미국과의 동등한 관계, 그리고 아시아 공동체 구상을 강조하는 ‘우호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이명박 정부는 실용외교를 기치로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위상을 갖고자 노력하고 있다. 동북아 3개국의 외교 전략이 만나는 장소에서 미국이 현재까지 내세운 외교의 기치는 ‘균형’외교다. 그러나 그 구체적 내용이 이번 순방만으로 충분히 밝혀지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아시아의 주도적 세력으로 남아 균형 잡힌 파트너십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부상하는 중국과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일본, 핵으로 도전하는 북한과 함께 어떻게 동아시아를 운용해 나갈지 더 살펴볼 일이다.

 

7박 8일 아시아 순방의 마무리로 이뤄진 20시간의 한국 방문에서, 한미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조심스럽게 읽을 필요가 있다. 한국은 미국과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관계를 발전시키고 있으나,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이라는 형식 속에서 한미관계를 재조명하고, 향후 한국의 대미전략,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전략 및 지구 전략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한미 간의 양자 이슈는 한미 FTA, 북핵 및 북한 문제, 한미동맹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짧은 방한 기간 동안 실질적이고 구체적 논의를 한 이슈는 FTA다. 오바마대통령은 일본에서 한 연설에서 경제위기의 본질이 지구적 불균형, 특히 아시아 국가들과 미국 간의 불균형이라고 지적하고,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 간의 새로운 경제관계 설정을 강조했다. 미국 해외 수출의 25%를 차지하고 있는 대아시아 수출을 확대하기 위하여, 오바마 대통령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무역관계 개선에 많은 비중을 두었다. 한미정상회담 직후의 기자회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과의 보다 균형 있는 무역에 대한 기대를 표명하는 동시에, 한미 FTA의 향후 진전을 위해 긍정적인 자세를 보였다. 아시아 순방 중인 11월 18일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미 FTA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내년 상반기 혹은 하반기의 의회비준을 위해 노력할 것을 밝혔었다. 이번 방한 기간 중 두 정상은 미국 의회 비준에 필요한 방안을 논의했으며, 이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자동차 부문 등 추가 논의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아시아에 대한 적극적인 미국의 경제정책이 필요한 구조적 조건 속에서 향후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FTA의 전진을 위해 경제적, 전략적 관점에서 주의를 환기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북핵 문제에 관한 정상 간 대화에서 한국 측은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의 ‘그랜드 바겐’안에 대한 명시적인 찬성발언을 듣고 싶어 했다. 미국 측이 추진하는 ‘포괄적 패키지’안과 그랜드 바겐 안의 공통성을 확인하고, 대북 정책의 강한 공조를 확인하는 것이 한국 정부의 중요한 목적인 것은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과연 그랜드 바겐 혹은 포괄적 패키지 안이 북핵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는 대안인가 하는 점이다. 북핵을 생존의 문제로 보는 북한에게 적당한 수준의 “바겐”과 협상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생존에 대한 언어적 담보, 경제 지원, 외교관계 정상화 등이 핵포기의 충분 조건이 될 수 없음을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한국과 미국이 내놓고 있는 대안들에 대한 북한의 반응은 여전히 부정적이며, 12월 초로 예정된 보스워스 특사의 북미 양자회담이나 6자회담을 포함한 다자회담에 북한이 참가하더라도 핵포기의 전략적 결단은 여전히 내려지지 않은 상태다. 오바마 대통령이 강조한 것처럼, 지금의 상황에서 협상과 도발을 반복하며 양보 얻어내기에 주력하는 북한의 정책 패턴이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은 많지 않다.

 

북한이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괄타결안이 없는 상황에서 한미 간의 현재 공조는 북한에 대한 압박을 지속하면서, 북한의 전략적 결단을 촉구하는 정도에서 별다른 진전을 얻어내기는 어렵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양국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했다기 보다는, 양국이 현재 공유하고 있는 내용을 확인하고 향후의 대안에 대해 더 많은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했다고 보인다.

 

21세기 전략동맹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숙제가 남아있다. 한미동맹이 동북아의 세력균형 변화 속에서 평화로운 지역을 위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지구적 차원의 협력을 어떠한 영역에서 진전시켜 나갈 수 있는지, 그리고 한미동맹을 비판적 눈으로 바라보는 중국을 어떻게 설득시켜 나갈지 등, 많은 문제들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아프가니스탄 지방재건팀 파견 문제 역시 한미동맹 구체화라는 측면뿐 아니라, 한국이 향후 지구적 안보환경에서 맡아야 할 중견국으로서의 지위를 고민하는 차원에서 더욱 심도 있게 다루어져야 할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파견지역, 비전투병 파병의 규모와 무장 수준, 미군과의 협조 가능성, 국내적 합의 도출의 필요성, 정부와 국민 간의 소통 문제 등을 고려해보아야 한다.

 

한미동맹의 발전 방향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한국과 미국이 동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어떻게 만들어 나가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연결된다. 한중일 삼국 간의 협력, 더 나아가 동아시아 공동체 등의 논의는 꿈과 현실이라는 이중적 현실 속에서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미국은 한중일의 새로운 협력 네트워크를 방해해서도 안 되며, 도와주되 한쪽으로 치우쳐서도 안 되는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동아시아는 현재 거대한 시스템 변환의 와중에 놓여있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중국의 지역패권국으로의 부상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중국이 팽창적인 대국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한국과 미국이 함께 노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동아시아 질서에서 주요 대국들 간 갈등 지향적 요소의 증가를 방지하고 조절할 수 있는 제도화 과정에서 한미 양국이 공조 속에서 생산적으로 협력할 수 있는 여지가 크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양자 간 이슈에 더해서 양 정상은 지구 차원의 문제를 협의했다. G-20을 통한 한미 협조 강화, 테러, 기후변화, 환경협약 등 인간안보 이슈에 대한 협력의 필요성 등을 언급하였다.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세계 질서 속에서 미국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미국 혼자서는 더 이상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글로벌 불균형, 기후환경, 테러 등의 현안 문제를 성공적으로 풀려면 서로가 서로를 도와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현재 미국은 문제를 직시하는 과정에 있으나, 실제 문제해결 단계에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한국은 2020년 온실가스 목표를 ‘배출전망치 대비 30% 감축’으로 정한 바 있고, 이는 향후 한국의 경제체질 개선과 지구적 환경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성공적이라면 미국에 신선한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향후 미국은 리더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면서도 나머지 국가들의 심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함께 노력하는 스마트 파워가 되어야 한다.

 

현재 세계 질서는 G8에서 G20으로 변화하고 있기 보다는 러시아 마트로시카 인형처럼 G20의 틀 속에 다양한 모습의 그룹을 함께 품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모습의 그룹들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해줄 국가가 필요하다. 한국은 한미공조 속에서 G20의 의장국으로서 가교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이며, 이는 장기적으로 미국의 국익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은 반세기라는 짧은 기간 동안 세계 최빈국권위주의국가에서 신흥 경제민주주의국가로 탈바꿈한 역사적 체험을 토대로 해서 향후 세계 표준이 되는 문명표준국으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위원장

하영선 (서울대학교)

 

위원

이숙종 (EAI 원장, 성균관대학교)

전재성 (서울대학교)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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