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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I 논평 제1호] 한미정상회담의 평가와 과제 : 북한 제재전략에서 “공진화”(coevolution) 전략으로
 

동아시아연구원 

2009-06-17 

냉전 초기에 만들어져 올해로 56세를 맞이하는 한미동맹은 지난 20년 동안 급변하는 탈냉전기의 변화를 겪어왔다. 그러나 한미 양국은 그 동안 냉전을 넘어선 전략적 공동 비전을 명시적으로 논의하지 못했다. 노무현 행정부는 한미동맹의 변환을 겪으면서 기지이전, 전시작전권 환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등 많은 이슈를 다루어 왔지만, 한미 간 전략적 비전을 공유하기보다는 상향식 문제 해결에 그치는 모습을 보였다. 이명박 행정부는 작년 부시 행정부와 함께 그간 소원했던 한미관계를 복원하고 향후 발전을 위한 많은 이슈들을 다루었지만, 본격적인 동맹 비전은 이명박-오마바 파트너십에 미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의 결과로 나온 동맹비전은 안보문제를 넘어 양국 공통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설정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공동비전은 군사 이슈를 넘어 가치와 체제, 경제와 환경, 인권 등의 포괄적 분야에서 양국 협력의 향후 방향을 보여주었다. 동맹의 지리적 범위 또한 한반도와 아태지역을 넘어 전 지구적으로 확장되었다.

 

한미동맹의 미래는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게도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외교전략은 더 이상 한반도에 갇혀 있을 수 없다. 동아시아와 지구 전체를 상대로 새로운 외교전략을 마련해야 할 만큼 국력이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이명박 행정부는 ‘글로벌 코리아’ (Global Korea)라는 국가전략의 구호를 내세웠지만 갈 길이 멀다. 보다 구체적인 정책 내용을 채워나가고, 국내의 강력한 컨센서스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미동맹의 미래비전은 한국의 전략적 도약을 위해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미국 역사 사상 유례 없는 경제위기와, 개전 후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는 아프간 사태, 약화된 리더십을 복원해야 하는 등 과도기적 문제들 속에서 한국과 같은 동맹국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장고 끝에 마련된 공동비전이 구체적 정책으로 현실화되는 앞으로의 과정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동맹의 장기적 공동비전을 만들어 내고, 이에 입각하여 북핵 문제, 동맹의 지구적 역할 규정, FTA 등 비군사 이슈를 포함한 주요 문제들을 다루는 포괄적 논의의 장이었다. 그러나 북핵 국면의 심각성 때문에 정상회담의 상당부분은 북핵 문제에 집중되었다. 북핵 문제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인식과 전략목적, 정책방향 등에서 상당한 일치점을 보여주었다. 우선 양 정상은 북핵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폐기라는 전략적 목적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핵 국가의 지위를 갖겠다는 북한의 선언에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회견 중 단호한 거부의 입장을 드러냈다. 북핵 폐기를 추진하는 구체적 정책에 대해서도 양 정상은 일치된 견해를 표명하였다. 6자회담의 틀 속에서 북한은 “도발하고 보상받는 패턴”을 반복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고질적 패턴을 끊고 일관되고 효과적인 경제제재를 통하여 북한의 근본적인 행동변화를 촉구하기로 한 것이다.

 

북핵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한미 양국이 목적과 추진방법에서 이번처럼 한 목소리를 낸 것은 새롭다. 북한의 행동이 유례없이 도발적이기도 하지만, 양국의 국가이익이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UN 제재결정 과정을 통하여 중국 등 주요국들이 동참하여 한미의 협력이 더 원활해진 것도 하나의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간 프라하, 카이로 등 여러 연설을 통하여 ‘핵 없는 세계’를 추구하면서 ‘폭력적 극단주의’를 징벌하겠다는 단호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이를 통해 강건한 외교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미국 내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는 정치적 행보를 보였다. 오바마 대통령의 인식 속에 북한은 이란, 이라크, 쿠바 등과는 달리, 적극적 외교의 대상국에서 벗어나 이제는 핵 없는 세계를 폭력적 극단주의로 위협하는 세력에 근접해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북핵의 완전한 폐기를 목적으로 내걸고 제재 국면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안보리 1874호 제재안의 효과적인 실행을 추구하는 동시에 북한 없는 5자회담의 구상을 내보였다.

 

문제는 제재 이후의 국면에서 부딪히게 될 북핵을 넘어선 북한 문제 전반이다. 대북 제재가 성공할 경우, 혹은 기대만큼 성과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 북핵 해결의 새로운 출발점은 어디인가? 제재를 견디지 못한 북한이 회담장으로 돌아올 경우, 북핵 문제는 물론 북한 문제를 포괄적으로 해결할 한미 간의 새로운 대응책이 마련되어 있는가? 더욱이 강성대국 건설과 후계구도를 놓고 선군 논리를 강화하는 북한이 이미 두 번째 맞이하는 경제제재에 물러서지 않을 경우, 한미 양국은 어떠한 대안을 가질 수 있는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를 다루는 원칙에 관해 양국 정상이 원칙적 의견 일치를 보인 것은 평가될 만하나, 앞으로의 문제를 보다 유연하고, 신중하게 해결해 나가는 과정은 지금보다 더 어려울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할 경우 맞이하게 될 ‘다른 길’(another path)을 강조하였다. 북한이 주목할 만큼 선명한 모습의 길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북한의 체제와 정권의 미래에 대한 한미 양국의 명확하고, 신뢰할 만한 논의를 확신하지 못한다면, 북한은 ‘다른 길’보다는 현재의 선군의 길에 명운을 걸 것이다. 중국 등 주변국 역시, 제재공조를 넘어선 비전이 마련되지 않으면 한국이 초청하는 5자회담에 참가하기를 주저할 것이다. 5자회담은 난관을 겪고 있는 6자회담보다 몇 배 어려운 회담이다. 무엇보다도 ‘북한의 소외’를 걱정할 중국이 5자회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게 만들려면 6자회담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5자회담에서 비핵화 북한이 21세기 국제사회에서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으로 부상하도록 돕는 방안을 새롭게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5자회담이 의미있게 추진되려면 한국은 이제부터 국민적 합의와 국가적 지혜에 기반해서 ‘다른 길’에서 펼쳐질 수 있는 새로운 ‘패턴’을 구상하고 동시에 국제적 합의를 위해 주변국의 협조를 이끌 수 있어야 한다. 이 작업은 백년에 유례 없는 글로벌 금융위기, 끝이 보이지 않는 테러와의 전쟁에 발목이 잡혀 한반도 문제를 우선적으로 다룰 수 없는 오바마 행정부보다 이명박 정부가 주도할 수밖에 없다. 제재와 함께 ‘출구 전략’을 구상하기 시작해야 할 시점에 당면해 있는 것이다. 새로운 북한 선진화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스스로 비핵화와 번영의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북한의 변화와 더불어 21세기적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만들어가는 주변국의 변화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기존의 햇볕정책과 제재정책을 넘어서는, 제3의 전략, 북한과 주변의 “공진화”(coevolution) 전략이다.

 

북핵 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논란이 예상되었던 아프가니스탄 파병 문제는 본격적으로 표면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21세기 한미동맹은 북핵을 넘어서 세계적 차원의 많은 문제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한미동맹의 미래를 놓고 미국이 무엇보다 원하는 바도 한국의 세계적 역할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한국의 군사적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지는 않았다. 그러나 공동비전에서 언급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지구적 차원의 안보문제를 둘러싸고 향후 양국 정부는 남북한 안보관계, 한국/미국 내 국민여론과 정치상황, 중국 등 주변국가의 이해관계를 저울질하면서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협력의 길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이번 아프간 사태를 둘러싸고 한국과 미국은 장기적 협력을 염두에 두고 서로의 입장을 양해하는 가운데 비교적 신중한 접근방법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앞으로 무수히 생겨날 많은 지구적 이슈들이다.

 

한국은 미국의 주니어 파트너로 지구안보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인질사태나 해적사태를 생각해 보면 한국의 지구적 지위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우리의 지구 전략과 병행되는 한미동맹의 전략을 구체화해 놓아야 한다. 사실 한국군은 이미 글로벌 포스로서 세계평화와 지역안정을 지키는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역할은 북한 핵 위기가 악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 더욱더 중요해지고 있다. 또한 아프간 사태와 관련해서는 민간 차원의 기여에 중점을 두는 것이 한미동맹의 역할분담에 도움이 된다는 것에 양국이 합의하는 과정에 있다고 생각된다. 한국이 한반도를 넘어선 국제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은 무엇보다도 평화건설을 위해 중요성이 늘어나고 있는 지역재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역할분담이 한미동맹과 미국의 국익, 그리고 국제평화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 오바마 정부와 확실한 공감대를 마련해야 한다.

 

한미 간에, 그리고 양국 내에 한미관계의 미래를 놓고 벌어지는 많은 논쟁은 불가피하고 또 바람직하기도 하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싼 한미 양국의 견해차를 인정하면서도 협력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FTA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적절한 추진방법을 찾고자 하는 견해를 표명하였다. 한미 FTA 자체를 비판하면서 재협상을 논의했던 과거보다 진일보한 입장이다. 쉽지 않을 비준을 앞두고 FTA 불씨를 지켜나가는 데 합의한 것은 실업대란에 처한 미국, 대선 때 한미 FTA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오바마의 선거전략 등을 감안할 때 평가할 만한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역시 미국과의 FTA를 눈앞의 경제적, 전략적 이득을 극대화하는 수단이란 인식을 넘어 지구 경제위기 속에서 보호주의 움직임에 제동을 걸고 부상하는 동아시아 경제네트워크와 세계 최대 경제국을 연결함으로써 세계경제에 활력을 제공하는 지구적 역할을 수행한다는 대승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

 

향후 한미관계를 둘러싼 국내의 논쟁 또한 상호 차이를 인정하면서 합리적 타협점을 찾는 성숙한 민주주의에 바탕을 두어야 할 것이다. 북핵 문제, 한미동맹, FTA 등의 문제에 대해 진보 대 보수의 이념적 대립을 극복하고 진정한 국가이익을 둘러싼 합리적이고 지속적인 논쟁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정부 역시 이러한 논쟁에 귀를 기울이고 보다 장기적인 정책 개발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향후 사태 전개의 핵심은 이명박 정부가 국민과의 소통을 통해 정책에 대한 국민적 컨센서스를 구축하고 상생의 여야관계를 만드는 데 성공하느냐에 있다. 외치는 내치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과제부터 우선 풀어야 한다.■

 


 

위원장

하영선 (서울대학교)

 

위원

김성호 (연세대학교)

손 열 (연세대학교)

이숙종 (EAI 원장, 성균관대학교)

전재성 (서울대학교)

 

[EAI 논평]은 국내외 주요 현안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통해 깊이 있는 분석과 적실성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AI 논평]을 인용하실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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