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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짝짓기와 매력외교
 

중앙일보 

2005-10-31 

10·26 재선거 결과로 여당은 커다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인지 모른다. 만약 이번 선거가 대통령선거였다면 여당은 정권 재창출의 실패라는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다. 10.26의 악몽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여당은 재선거 결과의 책임론을 넘어서 국정 전반에 관한 재검토로 민심회복의 길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

 

시급하게 재검토가 필요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안으로는 경제문제고 밖으로는 외교문제다. 그중에도 외교문제에 대한 여야의 평가는 극단의 양극화 현상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우리 외교를 기대 이상이라고 만족하고 있는데 야당은 혹평하고 있다. 이런 괴리 현상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에서 외교문제는 태풍의 눈으로 등장할 위험성이 높다.

 

외교문제를 제대로 재검토하기 위해서는 우선 주변 열강들의 머릿속과 가슴속을 정확하게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제국의 역사적 경험이 없는 한국은 여야를 불문하고 주변 제국들의 세련되고 노회한 언행의 의미를 순진하게 받아들이고 아전인수로 해석하는 악순환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동안에 동아시아의 21세기 짝짓기가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다.

 

우선 미국을 보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9월 말 프린스턴대에서 미국 외교정책의 기조로서 변환시대의 자유민주주의의 행진을 재강조했다. 이 원칙에 따라서 국무부는 미국.일본.호주의 삼자 안보대화의 중요성을 눈에 띄게 언급하고 있다. 실세 국무부 부장관인 졸릭은 최근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설명하면서 19세기의 세력균형모델이나 20세기 냉전모델을 넘어선 21세기 그물망모델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 동시에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장 바깥 동심원에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핵문제를 해결한 다음 광범위한 경제, 정치개혁과 함께 반세기의 한반도 휴전체제를 종식하자고 얘기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한국을 자유의 동심원 어디에 놓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한편 리자오싱(李肇星) 외교부장은 지난 8월 신시대의 중국 외교 방향으로 중국 사회주의와 전면적 소강사회(小康社會) 건설을 위한 평화.발전.협력을 얘기했다. 따라서 현재 중국은 미국과 조심스러운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장기적인 세계 다극화를 위해 러시아와 함께 6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상하이협력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의 안정과 번영문제에 대해서는 적극적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예상대로 2020년의 경제성장 목표를 달성해서 소강사회를 넘어선 대동(大同)아시아론을 펼치게 된다면 현재의 소극적인 유소작위(有所作爲)에서 적극적인 무소불위(無所不爲)로의 전개 가능성을 주목해야 한다.

 

중국의 빠른 부상에 부담을 느끼고 있는 일본은 21세기 짝짓기로 일찌감치 미국을 선택했다. 지난주 열렸던 양국 외교.국방장관의 미.일 안보협의회는 지난 2월 회의나 마찬가지로 마치 두 나라가 아니라 한 나라 같은 협력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의 긴밀도에 비해 한국.중국과는 쉽사리 풀리지 않는 갈등관계를 유지하면서 정치 구호 차원의 동아시아 공동체론을 조심스럽게 얘기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21세기 짝짓기가 본격화하고 있다. 우리 외교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협력적 자주와 균형자 역할은 19세기의 세력균형모델과 20세기의 탈냉전모델의 발상이다. 그것만으로는 21세기의 짝짓기에 성공하기 어렵다. 세계의 변화는 빠르다. 새로운 사고와 행동이 필요하다. 그 해답은 다중심의 그물망외교로 동아시아 무대의 주인공 모두를 홀릴 수 있는 매력외교를 함께 펼쳐야 할 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미국과 중국을 비롯한 주변 제국들이 이미 큰 그물망을 촘촘하게 치고 있는 속에서 한국형 작은 그물망을 어떻게 쳐야 외교의 한류현상이 발생하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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