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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마의 4각관계
 

중앙일보 

2005-08-01 

베이징 6자회담이 두 주째로 접어들고 있다. 회담의 장래를 제대로 전망하기 위해서는 지난 한 주를 조심스럽게 중간 평가해야 한다. 회담 당사국들은 지난 수요일 기조연설을 했다. 낙관론보다는 비관론의 승리였다. 지난번 칼럼 '미리 보는 6자회담'(본지 7월 11일자)에서 예상했던 입장의 차이를 회담의 주역인 북한과 미국은 충실하게 연기했다. 북한은 '북핵 문제'나 '한반도 비핵화'가 아닌 '조선반도 비핵화'를 강조하며 미국의 핵 위협이 제거되고 북.미 관계가 정상화되면 핵을 버릴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보다 구체적으로 우선 '말 대 말'로 합의하고 다음으로 일괄 합의한 북의 핵 폐기, 미국의 핵 위협 제거, 북.미의 평화공존, 비핵화에 따른 경제적 손실의 보장 등을 '행동 대 행동'의 원칙에 따라 순차 이행하자는 것이다.

 

미국은 '북핵 문제'를 다자협의에 의해 평화적으로 해결할 것을 재확인했다. 그리고 이번 회담에서 우선 기본 원칙을 한 바스켓에 담아 합의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현재의 모든 핵무기와 핵 계획을 검증 가능하게 폐기할 것을 약속하고, 다른 당사국들은 북한의 안전을 보장하고 무역과 투자를 포함하는 경제협력을 실시하며,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 정상화에 착수한다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 내용은 회담의 실무그룹이 순서에 유의해 실천계획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한편 한국은 북한의 검증 가능한 핵 폐기, 북.미 관계 정상화, 북한의 안전 보장, 전력 공급을 포함한 경제협력을 약속하는 합의문서 채택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딱딱한 기조연설 내용들을 장황하게 재구성한 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웬만큼 남북관계와 국제정치를 아는 사람들의 눈에도 기조연설문의 내용들은 얼른 보면 대동소이해 보이고 입장의 차이를 줄일 수 없을 만큼 비관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가 복잡하다. 북핵 폐기, 북한의 안전 보장, 북.미 관계 정상화, 경제지원은 쉽사리 풀리지 않는 '마(魔)의 사각관계'다. 협상 담당자들조차 핵심 4개 용어를 자신들이 얼마나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아직까지도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4각 중에 정말 중요한 각이 어느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다르며, 4각관계의 우선순위에 대해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회담은 비관론의 예상처럼 지난주에 별다른 성과 없이 막을 내렸어야 한다. 그러나 회담은 계속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북.미 양자접촉을 활용하면서 향후 회담 진행의 원칙에 관한 공동합의문 마련에 분주하다. 6자회담의 장래에 관한 조심스러운 낙관론도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섣부른 낙관론은 금물이다.'마의 사각관계' 수수께끼를 협상으로 푸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전략적 선택이 없는 한 사각관계 수수께끼를 푸는 실마리는 보이는, 또는 보이지 않는 힘을 통해서 비로소 풀리기 시작한다는 비극을 주목해야 한다.

 

수수께끼의 비밀은 6자회담 당사국들이 동상이몽하고 있는 중대문제의 차이에 숨어 있다. 북한의 최대 중대문제는 김정일 수령옹위체제의 옹위다. 에너지를 비롯한 경제난 극복은 그 다음으로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전력 공급과 같은 중대제안으로 최대 중대문제의 결단을 기대하는 것은 배불리 먹여주는 대신 목숨을 내놓으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동시에 구속력 없는 말과 조약의 다자 안전 보장과 관계 정상화를 약속하면서 수령옹위체제의 마지막 보루인 핵을 우선 폐기하라는 것은 북한에는 신뢰도가 불확실한 담보를 믿고 체제 붕괴의 위험을 감수하라는 요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수령옹위체제는 협상의 대상이 되기 어렵다.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에서도 북한에 대한 경제 지원 대가로 북핵 문제를 일단 푼 줄 알았으나, 안전보장과 관계 정상화의 불확실 속에서 북한은 새로운 핵 프로그램을 찾아 나섰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수령옹위체제의 확실한 담보는 미국이 협상의 대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주한미군과 한.미 군사동맹의 변화 없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전략적 결단이 없는 현재의 구도에서는 6자회담이 기본 원칙에 합의하더라도 수수께끼를 풀 수는 없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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