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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한미정상회담 성공하려면
 

중앙일보 

2005-05-28 

한.미 정상회담이 6월 10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다. 청와대는 회담 의제로 한.미동맹, 동북아 협력 문제, 북한 핵 문제를 들고 있다. 한편 백악관은 의제를 한.미동맹 문제들과 북한에 관한 향후 방도라고 요약하고 있다. 문제의 어려움 때문에 정상회담이 제대로 된 해답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단기적 미봉책 마련에 머무를 위험성이 높다. 정상회담이 장기적 해결책을 찾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우선 북한 핵 문제부터 보기로 하자. 5월 22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지난 13일 미 국무부 대표가 뉴욕 주재 북한 유엔대표부에 북한의 주권국가 인정과 불침 의사를 공식 전달한 것을 평가하면서도 동시에 미 행정부 고위 관리들의 위협 발언이 계속되고 있어 혼란스럽다고 불평하고 있다. 그리고 6자회담이 개최될 수 있는 조건과 분위기 마련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지난 13일의 전달 내용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확인하면 일단 북한이 주장하는 조건과 명분을 충족시켜 4차 6자회담 개최 가능성을 높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한.미 정상 간에 4차 6자회담 개최 이후의 사태 진전에 대한 원칙적 합의 기반 마련이다. 3월 31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이제는 6자회담에서 동결과 보상 같은 주고받기식의 문제를 논할 시기는 지나갔다. 우리가 당당히 핵무기 보유국이 된 지금에 와서 6자회담은 마땅히 참가국들이 평등한 자세에서 문제를 푸는 군축회담이 되어야 한다'는 담화를 발표했다. 4차 6자회담에서 북한이 내놓을 기조발언 내용의 예고편이다. 한편 미국은 3차 6자회담에서 제시했던 선 폐기, 후 지원의 리비아 모델을 크게 수정하지 않고 4차 6자회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4차 6자회담이 베이징 기본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난관에 봉착할 확률은 대단히 크다. 다시 한번 북.미 간의 긴장 수위는 높아지게 될 것이며 무대의 주인공들은 마지막 선택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북한은 핵 억제력 정책을 양파 껍질 벗기듯 벗겨 나갈 것이며, 미국은 자유 확산전을 강화하면서 확산 안보구상의 틀 속에서 정치 및 경제제재를 추진하게 될 것이다. 한국은 더 이상 회색지대에서 서성거릴 수 없게 될 것이다.

 

한.미동맹 문제도 쉽지 않다. 노무현 대통령은 4월 17일 터키 공식방문 중 현지 동포와의 간담회에서 "한.미동맹은 아무 문제없다.… 미국 사람보다 더 친미적 사고방식을 갖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 게 내게는 제일 힘들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동맹 문제의 핵심은 한국의 19세기 동맹관과 미국의 21세기 동맹관의 갈등이다. 그 구체적 표현이 전략적 유연성 논쟁이고 균형자 논쟁이다.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전략적 유연성은 과거와 달리 무소부재의 21세기 홍길동군같이 지구 공간을 거의 동시에 날아다니겠다는 것이다. 용미(用美)적 사고에서 보자면 미국의 변환 전략 자체를 비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다만 휴전선을 경계로 거의 200만 가까운 병력이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나 근대적 긴장 관계를 졸업하지 못한 동북아에서는 미국의 전략적 유연성을 보다 조심스럽게 전개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의 병력과 병참의 한반도 넘나들기에 대한 보다 철저한 사전 협의, 기본 가이드 라인 합의, 지속적 신뢰 강화책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더 중요하다.

 

노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무리하게 동북아 균형자론을 설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국가안전보장회의가 정리한 수준의 균형자론은 여전히 21세기적 설득력이 약하다. 더구나 최근 미 국무부 동아시아 태평양 담당 부차관보인 에번스 리비어의 연설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처럼 미 정부는 한국 정부의 주장이 나오게 된 역사를 이해하며, 동시에 한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한 균형자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공식입장을 이미 밝히고 있다. 따라서 쓸데없이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한국과 미국이 작게는 동아시아, 크게는 전 세계의 자유.평화.번영.지식.문화.환경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21세기 신동맹을 굳게 약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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