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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매력국가 건설하기
 

중앙일보 

2005-03-05 

상하이(上海)를 다녀왔다. 두 번째다. 상하이와의 첫 만남은 조금은 엉뚱하게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문이었다. 김 위원장이 2001년 1월 18년 만에 상하이를 방문해 변한 모습을 보고 천지개벽이라는 표현을 썼다. 무엇을 보고 천지개벽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같은 과의 동료 교수들과 함께 상하이행 비행기를 탔다.

 

황푸강 너머 중국의 21세기를 상징하는 푸둥지역을 바라다보면서 18년 전의 허허벌판을 생각했다면 천지개벽이란 표현이 지나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은 개벽이 아니라 복합이었다. 푸둥을 바라보는 눈길을 반대쪽으로 돌려 보면 바로 19세기 구미 제국들의 조계(租界)였던 와이탄 거리에 유럽풍의 석조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그리고 그 뒤에는 20세기 세계 자본주의의 표준형 상가를 방불케 하는 난징로가 자리잡고 있다. 내일의 푸둥은 어제의 와이탄과 오늘의 난징로 위에 건설되고 있다. 그리고 맨 밑바닥에는 오랜 세월의 구 상하이가 깔려 있다. 김 위원장이 21세기 상하이를 보면서 21세기 북한을 위해 정말로 깨달아야 했던 것은 푸둥의 천지개벽이 아니라 상하이의 복합성이었다.

 

상하이의 두 번째 나들이는 순전히 요즈음 쉽사리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매력국가론 때문이었다. 첫 만남에서 돌아온 뒤 나는 상대방을 좀 더 잘 알고 싶어 본격적인 상하이론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결과는 예상을 훨씬 넘어섰다. 구미와 일본의 많은 일급 지식인이 상하이의 매력에 빠져 있었다. 상하이에 '마도(魔都)'(1923)라는 별명을 붙여준 무라마쓰 쇼후(村松梢風)는 이 도시를 연인처럼 아꼈고, 30년대 상하이의 코즈모폴리터니즘을 '상하이 모던'(99)에서 완벽하게 재현한 하버드대의 중국문학 교수 레오 우-판 리도 이 도시에 깊은 애정을 보여주고 있다. 무엇이 이들을 사로잡은 것일까. 상하이를 다시 한번 보면서 매력의 정체를 밝히고 싶었다.

 

그 정체는 하늘을 찌르는 고층 건물도 아니고 유럽풍의 석조 건물도 아니었다. 19세기 아편전쟁 후 맺은 난징조약에 따라 1843년 개항한 상하이는 살아남기 위해 전통.근대.탈근대를, 그리고 동양.서양을 끊임없이 비벼서 새로운 도시로 태어나려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따라서 동양과 서양, 그리고 과거와 미래가 모두 상하이의 복합성 속에서 자신의 일부를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상하이의 매력을 궁금해하면서 정말 궁금한 것은 상하이보다 매력이라는 힘이다. 예(禮)의 명분력에 오랫동안 익숙했던 우리는 19세기 중반 이래 폭력과 금력이라는 현실적 힘을 뼈저리게 겪고 있다. 21세기를 맞이하면서 매력이라는 새로운 힘이 우리 앞에 등장하고 있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반테러전 수행 과정에서 군사전에서는 상대적으로 쉽게 승리하면서도 정치전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일방주의와 오만이 불러일으킨 지구적 반미 정서 때문이었다. 하버드대 국제정치학 교수인 조셉 나이는 반미 정서의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로서 힘 안 들이고 상대방을 끄는 매력을 적극 추천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지정학과 지경학을 고려하면 한반도는 군사력과 경제력만으로 주변 제국들을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쉽지 않다. 한반도는 미국보다 훨씬 더 21세기의 새로운 힘인 매력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고 있다.

 

매력은 죽은 사람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한자의 뜻대로 상대방을 홀리는 힘이다. 사람을 홀리는 데는 두 가지가 있다. 지력(智力)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홀리는 것과 심력(心力)으로 상대방의 느낌을 홀리는 것이다. 최근 관심을 끌기 시작한 동아시아의 '한류 현상'은 21세기 아시아적 공감(共感)을 선도하는 수준의 초보적 홀리기 단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홀리기를 보다 영구적이고 심층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공지(共知)와 공감의 세계적 기반 위에서 한반도가 동아시아와 세계적 문제를 선도적으로 풀어나가고 느끼도록 노력해야 한다. 따라서 이런 노력이 국가적 차원에서 마련되지 않는 한, 현재의 초보적 한국매력론은 한 번 지나쳐 가는 물거품에 그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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