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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갈림길에 놓인 북핵사태
 

중앙일보 

2005-02-12 

북한 당국이 핵무기 보유를 공식 언급함에 따라 국내외의 분위기가 벌집 쑤셔 놓은 것처럼 소란스럽다. 협상용 벼랑끝 전술일 테니까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는 낙관론부터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는 비관론까지 뒤얽혀 혼란스럽다. 관련 국가들의 당국자나 전문가도 벙어리 냉가슴 앓는 기분은 마찬가지인 듯싶다.

 

사태를 어떻게 보는 것이 바로 보는 것일까. 또 해결의 실마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지난번 노무현 대통령이 로스앤젤레스에서 내놓았던 해답은 결국 미국에 이어 북한도 공식적으로 외면함에 따라 대학 입시 문제에 중학생 수준의 해답을 시도한 모양이 돼 버렸다.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선 문제를 잘 읽어야 한다.

 

우리에게 던져진 문제지는 비교적 간단하다. 2월 10일의 북한 외무성 성명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어떤 안목에서 얼마나 깊이 있게 읽고 정답을 마련하는가는 우선 읽는 사람의 독해력에 크게 좌우된다. 성명을 얼른 읽어 보면 과거의 발언 내용과 비교해 크게 새로운 것이 없는 인상을 준다. 기왕의 북핵 문제에 관한 북한 당국의 공식 발언들은 비교적 간단한 논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선 북핵 문제의 원인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으로 북핵 문제의 해결에는 협상의 방도와 핵 억제력의 방도가 있으며 미국의 태도에 따라 적절한 방도를 선택하겠다는 것이다.

 

성명을 다시 한 번 꼼꼼히 들여다 보면 과거와는 다른 것들을 찾을 수 있다. 북한은 미국의 대통령 취임연설, 연두교서, 국무장관 의회 인준청문회 발언들을 검토한 뒤 미국이 핵 문제 해결의 근본 장애인 적대시 정책을 철회하라는 북한의 요구를 외면하고 북한을 적대시하다 못해 "폭압정권"이라고 전면 부정에 나선 조건에서 더 이상 6자회담에 참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건과 분위기가 충족될 때까지 6자회담 참가를 무기한 중단하고, 자위를 위해 생산한 핵무기고를 늘리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겠다는 것이다.

 

수령 옹위체제인 북한은 경제제재나 군사제재보다도 정치제재에 더 예민하다. 북한은 미국의 "내부분열 와해책동"을 각성해서 대응하지 않으면 공개적인 군사적 침략 못지않게 후환을 겪게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노동신문 2005년 1월 13일자). 따라서 외무성 성명은 북한과 같은 폭압정권에 대해 자유를 전파하겠다는 미국에 대해 보다 강한 형식과 어투로 핵 억제력의 방도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북한이 미국의 "내부분열 와해책동" 저지에 목숨을 걸고, 2기 부시 행정부도 "자유전파외교"를 대외정책의 기조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북한과 미국은 서로 물러날 공간이 많지 않다. 따라서 북한의 핵 억제력 강화 위협과 미국의 폭압 정권에 대한 자유 전파정책은 첨예한 대결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바뀐 것이고, 무엇이 바뀌지 않은 것인가. 우선 문제의 논리 구조는 새롭지 않다. 그러나 북한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안이 과거보다 한 단계 더 악화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문제가 사태로 발전하는 모양을 보여주고 있다.

 

6자회담을 재개하려면 북한은 미국의 "내부분열 와해책동" 포기를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책동의 구체적 내용도 이미 밝히고 있다. 북한 체제에 대한 허위 선전과 압력을 강화하고 반정부 세력을 지원해 내부분열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참가 조건은 쉽사리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우선 중요한 것은 미국이 동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체제에 대한 폭압정권이라는 비난을 쉽사리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핵 사태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북핵 사태의 역설은 사태가 긴박해질수록 돌파구를 찾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북한은 빠른 속도로 핵 폐기와 "내부분열 와해책동"의 갈림길에 접근하고 있다. 갈림길의 선택이 사태의 해결 또는 파국의 실마리를 마련하게 될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가를 신중하게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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