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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자유의 성전'과 한반도
 

중앙일보 

2005-01-22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2기 취임식이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미 국회의사당 앞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노트북 화면에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의 상원 외교위원회 인준 청문회의 모두 발언을 띄워 놓고, 시차 때문에 오전 2시에 CNN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부시 대통령의 취임사를 들으면서 나는 착잡한 기분으로 한반도의 4년을 머릿속에 그렸다.

 

부시 대통령 2기의 국정 방향을 요약하고 있는 취임사의 내용은 간단하고 선명했다. '9.11 테러의 교훈'과 '이라크전의 교훈'의 대결에서 신승한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테러와의 전쟁을 2기 동안에는 보다 국내외의 축복 속에 치르는 것이 급선무다. 취임사는 그 해답을 '자유'라는 화두에서 찾고 있다. 평화의 희망은 자유의 전 세계적 확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 부시 취임식서 '폭정 종식'강조

 

따라서 부시 대통령은 2기의 정책 기조를 세계의 폭정 종식이라는 목표를 위해 모든 국가와 문화의 민주주의 운동과 제도의 성장을 모색하고 지원하는 데 두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 탈법 정권들의 지배자들에게 링컨 대통령의 말을 전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막는 자들은 스스로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다. 정의로운 하느님의 다스림 아래, 그들은 오랫동안 자유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증진하기 위한 자유국가들의 통합된 노력은 폭정자들의 패배의 서곡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2005년 국정연설을 앞두고 있는 부시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폭정 종식을 위한 자유정책의 기본 원칙만 밝히고 있다. 보다 자세한 구상의 골격은 라이스 국무장관 지명자의 의회 발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라이스는 2기 행정부의 3대 외교 과제로 민주주의 공동체의 단결, 민주주의 공동체의 강화, 자유와 민주주의의 지구적 확산을 들고 있다. 이 말은 단순한 수사학적 표현이 아니다. 3개의 자유의 동심원을 그리겠다는 것이다.

 

첫째 동심원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할 수 있는 유럽과 동아시아의 동맹 국가들을 포함하고 있다. 둘째 동심원은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추진하는 국가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들의 노력이 열매를 맺도록 지원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폭정의 전초기지로서 쿠바.미얀마.북한.이란.벨로루시.짐바브웨의 6개국을 들고, 이 지역에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외교를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 2기의 '자유의 성전(聖戰)'과 김정일 수령 옹위체제의 선군주의의 만남은 북핵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고, 한반도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 1기의 '악의 축'과 2기의 '폭정의 전초기지'를 조심스럽게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6자회담을 통한 북한의 리비아 모델의 수용에서 일차적인 해결을 모색하는 데는 커다란 변화가 없다. 북한의 선군주의가 미국의 해결책을 거부하는 경우 1기에는 바로 정치.경제적 제재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의 본격적 가동을 모색했다면, 2기에는 우선 '자유의 성전'을 통해 북한을 '폭정의 전초기지'에서 둘째 동심원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이다.

 

*** 한국 애매한 입장에 빠질 우려

 

북핵 문제가 북한의 자유문제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악의 축'보다 '폭정의 전초기지'는 북한의 리더십 변화를 위한 국내외 명분을 보다 쉽게 획득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북한의 입장에서는 자유의 확산은 경제제재보다 훨씬 위험하다. 북한은 핵 폐기와 자유화라는 외롭고도 어려운 갈림길에 서서 불투명한 체제 변화의 미래를 심각하게 고민할 수밖에 없다.

 

부시 행정부 2기의 북.미관계 전개는 한.미 간에 '산티아고의 소강상태'가 지속되리라고 낙관하고 있는 우리 정부를 빠른 속도로 어렵게 만들 것이다. 6자회담의 난관 봉착에 따른 미국의 북한 자유화 정책을 북한 압살.적대시 정책이라고 정면으로 반대하기도 어렵고 지지하지도 못할 것이다. 역사의 회색국가로 남아 고민하는 동안 냉전 한반도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역사의 길을 걷게 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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