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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청소년역사강좌] 12강. 역사속의 젊은 그들
 

동아일보 

2004-12-20 

“근현대사 바로 보기는 곧 미래사 바로 준비하기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사 청산보다는 미래사 구상입니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 강당에서 열린 ‘2004 청소년 역사강좌’ 마지막 제12강에서 ‘역사 속의 젊은 그들: 19세기와 21세기’를 주제로 강연한 서울대 하영선 교수는 지금까지의 역사강좌를 종합 정리하며 이같이 강조했다. 하 교수는 김옥균과 박영효 등 19세기의 젊은 세대가 일으킨 갑신정변의 의미를 되돌아보고 그것이 갖는 21세기적 의미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강조해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역사적인 사실을 가르치기보다는 젊은 세대에게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강연이었다. 다음은 강연 요지.


●19세기 조선의 젊은 그들


개화파 청년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은 연암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의 사랑방에 모여 개화사상을 싹틔웠다. 당시 김옥균 34세, 홍영식 29세, 박영효 23세로 20, 30대에 지나지 않았던 이들은 새로운 조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를 고민했다. 이를 위해 1884년 12월 4일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일본과 연계해 청나라와 가까운 수구세력을 제거하고 근대적 개혁을 시도했다. 바로 갑신정변이었다. 하지만 이는 청나라의 군사 개입으로 3일천하로 끝나고 말았다. 비록 개혁을 위해 외세를 끌어들이긴 했지만 이들은 전통 천하질서 아래 예의국가인 조선을 근대 국제질서의 부강국가로 탈바꿈하려는 비전을 갖고 있었다.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강당에서 열린 역사강좌 마지막 강연을 듣기 위해 모인 청중들이 하영선 서울대 교수의 강연에 경청하고 있다. -박주일기자 
이들은 청나라의 주일 외교관이었던 황준헌이 ‘조선책략’에서 쓴 “스스로 강해야 한다”(자강·自强), “균형을 잡으면서 힘을 길러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외세를 활용해야 한다”(균세·均勢)는 등의 주장을 섭렵했다. 그러나 국내 역량이 결집되지 않아 실패했다. 갑신정변은 수구사대파와 개화자주파 간의 대립이었다.


이어 일어난 갑오개혁(1894년)에서는 외국 경험이 많은 정동파, 고종을 중심으로 한 근왕파, 대원군 세력 등이 서로 갈등을 빚어 힘을 결집하지 못했다. 이렇게 정신없이 싸우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일본에 외교권을 빼앗겨 사실상 국권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당시의 혼란은 현재 국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립보다 훨씬 더 심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개화파가 지금의 젊은 386세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비전의 유무라 할 수 있다. 386세대가 추구하고 있는 탈냉전과 탈권위주의만으로는 21세기에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21세기 한국적 세계화 세대


21세기에는 19세기에 버금가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변화하는 세계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유비쿼터스 네트워크(U-그물망) 국가를 구축해야 한다. 어느 시간, 어느 장소에나 존재하는 그물망이 필요하다. △한반도 △동아시아 △지구 △사이버 공간 △국내라는 5대 U-그물망을 짜야 한다. 남과 북을 연결하고 미국 일본과 그물망을 짜는 동시에 중국과도 연계하는 입체적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세계화와 반세계화의 이분법적 논쟁은 이제 의미가 없다. 한국적 세계화로 이를 소화해 내야 한다. 사이버 공간의 그물망 짜기는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를 잘 활용해야 한다.


무대의 종류도 다변화되고 있다. 예(禮)를 중심으로 한 19세기나, 부국강병을 목표로 했던 20세기와는 다른 종류의 국가가 나타나고 있다. 정보와 지식을 기반으로 한 국가, 매력 있는 세련된 문화국가, 환경적으로 균형을 이룬 생태균형 국가가 그것이다. 여기에 방어 개념의 안보국가, 경제적 번영과 복지가 상충되지 않게 경제가 활성화된 국가도 중요하다.


21세기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은 이런 복합무대에서 거미줄 치는 연기를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주인공인 젊은 세대는 혼자 다니는 늑대와, 거미줄을 치며 네트워크를 만들어 내는 거미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 내야 한다. 늑대, 거미가 돼야 하는 것이다.


21세기 한반도의 백년대계는 △삶의 공간 확대 및 복합화 △복합 무대의 효율적 활용 △386세대를 대체할 수 있는 21세기 신세대의 등장 등에 달려 있다.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에 둘러싸여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우리가 지구를 떠나기 전에는 빠져나오기 힘들다. 과거의 눈으로 미래를 재단하는 시대는 지났다. 22세기적 사고로 세계를 봐야 하고 변화를 읽지 못하면 낙오한다.


:하영선 교수는:

하영선(河英善·57·사진)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는 1971년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뒤 1979년 미국 워싱턴대에서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프린스턴대 국제문제연구소,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문제연구소, 일본 도쿄(東京)대 동양문화연구소 초청연구원을 지냈다. 서울대 사회과학대 국제문제연구소와 미국학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1989년), ‘한반도의 핵무기와 세계질서’(1991년)가 있으며 논문으로는 ‘신국제 군사질서와 무기 이전’, ‘폭력외교 연구-현대 외교에 있어서의 군사력의 역할’ 등이 있다.


▼제12강서 쏟아진 질문들▼


강연 후 하영선 교수의 ‘그물망 짜기’와 ‘늑대, 거미’에 대해 구체적 실행방법을 설명해 줄 것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질문이 이어졌다.

이유민 양(17·이화외국어고 2학년)은 “그물망을 짠다는 것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며 “그물망을 짜는 목적과 구체적 방법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물었다.

하 교수는 “국가 대 국가의 거미적 만남은 외줄치기가 아니라 전체 대 전체로 이뤄지는 것이다. 촘촘하게 엮이도록 거미줄을 쳐야 한다. 방어적 안보국가와 함께 경제를 발전시켜 부를 나누어 갖는 번영국가가 되어야 한다. 정보지식, 문화, 환경적 여건도 갖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개인은 모두 팔방미인이 돼야 한다. 전 국민의 배용준화(化)가 필요하다. 모든 것을 다 품으며 나름의 매력을 만들어 가란 뜻이다. 개인이 잘하면 국가도 모든 국가로부터 주목받고 매력 있는 파트너로 여겨진다”고 설명했다.

이경환 양(18·이화외국어고 2학년)은 “우리 같은 중고교생들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가”하고 실용적 질문을 던졌다.

하 교수는 “시공간에서 자유롭게 생각하는 지적 능력을 길러야 한다. 입시제도가 있기 때문에 힘들겠지만 한반도를 넘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20세기에는 너무 힘들게 살아서 발아래만 보고 통일 이상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 대학 신입생들도 1950∼80년대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생각을 자유롭게 하라고 권하고 싶다. 386세대의 닫힌 민족주의도 나쁘지만 맹목적인 열린 세계주의도 안 좋다. 우리 것을 지키면서 세계화를 받아들이는 한국적 세계주의로 나아가야 한다. 한국의 수천만 명이 세계의 수십 억 명을 상대하려면 1인 다역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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