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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케리가 당선돼도 北核폐기 안하면 용납않을 것
 

동아일보 

2004-10-29 


《미국 대통령선거(11월 2일)가 사흘 앞으로 다가왔다.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미 대선 이후 들어설 차기 행정부와 손발을 맞춰야 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역시 최대 현안은 북한핵 문제다. 6자회담은 정처없이 표류하고 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존 케리 민주당 후보는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동아일보는 주한 미대사관 초청으로 방한한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 담당 차관보와 서울대 외교학과 하영선(河英善) 교수가 미 대선 이후의 대북정책을 긴급 진단하는 좌담회를 28일 마련했다. 현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선임고문인 아인혼 전 차관보는 방한 기간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 반기문(潘基文) 외교통상부 장관, 이종석(李鍾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및 다수의 여야 의원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하영선 교수=먼저 북핵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아인혼 고문은 최근 기고문 등을 통해 미국 대선 이후 미국의 대북 정책 전개 방향을 두 개의 상반된 시나리오로 분석한 바 있다. 즉 강경파의 북한 압박 전략과 온건파의 대화를 통한 접근을 언급하면서 강경파의 정책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아인혼 고문이 말하는 온건한 접근 방법 역시 쉽게 성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인혼 고문=미국의 강경 노선은 성공적이지 못했다. 북한을 압박해 궁극적으로 붕괴시키는 데 대해 한국과 중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미국이 주변국들의 협조 속에 균형 있는 합리적 제안을 협상 테이블에 내놓는 것이다. 북한이 이마저도 거절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미국의 대북 정책을 ‘강경이냐 온건이냐’, 즉 ‘이것 아니면 저것(either or)’으로 보기보다는 ‘이것 다음엔 저것(one then the other)’의 형식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 교수=그렇지만 미국이 협상을 하겠다는 것은 결국 핵 폐기의 점진적인 실현을 궁극적인 목표로 한다는 얘기 아닌가. 이럴 경우 북한은 갖고 있는 카드(고농축 우라늄·HEU 보유 시인 문제 등)를 처음부터 다 내보여야만 한다. 하지만 북한이 이러한 제안을 수용할지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다. 따라서 존 케리 후보가 당선되면 북한과 양자 대화에 나서겠다고 말한 것 또한 국제사회에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명분 쌓기’용이라는 생각마저 드는데….

 

아인혼 고문=북한이 협상 테이블에서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들이 갖고 있는 카드를 보여 줘야 한다. 북한이 플루토늄 프로그램만 내놓은 뒤 HEU 문제를 끝까지 협상 의제에 포함시키지 않으려 한다면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되더라도 이를 용납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은 우선 HEU에 대해서만큼은 시인해야 한다.

 

하 교수=그렇다면 대선 이후의 북핵 문제는 바로 강경노선으로 직행하든지, 아니면 ‘명분 쌓기’용의 온건 제스처를 거쳐서 결과적으로는 강경노선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되면 미국과 북한은 일단 상호 위협의 위기국면을 거쳐 결국 버티는 힘이 약한 쪽이 타협을 시도하든지, 혹은 파국을 맞이하든지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요구대로 북한이 리비아 모델을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이다.

 

아인혼 고문=북한이 리비아 모델을 따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리비아와 달리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어 포기가 더 힘들고, 따라서 하 교수가 얘기한 대로 북한의 협박은 계속될 것이다. 미국이나 주변국들은 북한이 진정으로 핵을 포기할 때,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얻는 게 더 많을 것이라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그러나 현 미 행정부는 그러지 못했다. 이제는 북한에 대해 이전보다 ‘더 큰 당근, 그리고 더 큰 채찍’을 동시에 준비해야 할 때다. 그리고 북한과의 더욱 깊이 있는 협상을 통해 북한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하 교수=대선 이후 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든 나름의 정책 재검토 과정을 거치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선거의 승자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냐, 케리 후보냐에 상관없이 미 대외 정책의 중점이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테러와의 전쟁’으로 굳어질 가능성이 크지 않겠나.

아인혼 고문=케리 후보가 당선되면 우선적으로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가 재집권하면 결국 현재 상황처럼 강경파와 온건파간 분열이 지속될 것으로 본다.

 

하 교수=최근 한국에서는 대북 특사 파견과 정상회담 논의가 본격적으로 제기되고 있는데 미국 정부로서는 어떻게 받아들일 것 같은가. 한미간에 충분한 사전조율이 없이 이런 대안이 모색된다면, 미국으로서는 미국의 대북 정책에 상당한 혼란을 가져온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인혼 고문=북한과의 그런 ‘접촉’을 미국이 반대할 리 없다. 그러나 그 같은 접촉은 사전에 한미간 협조와 공감 속에 이뤄져야 한다. 즉 공통의 전략 차원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미국과 아무런 이야기 없이 진행될 경우다. 한국은 북한과의 주요 협상국이지만 유일한 협상국은 아니다. 개성공단 건설 등도 마찬가지 문제다. 북한이 핵 국가가 되기로 결정했는데도 남북한간 경제 교류가 계속된다면 한미 동맹의 마찰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하 교수=미국은 한국 대신 중국이 그 같은 역할을 해 주길 바라지 않겠는가. 남북 정상회담이나 특사 접촉 등은 결국 북한의 ‘시간 벌기용’ 수단으로 악용될 것으로 우려할 수도 있을 텐데….

 

아인혼 고문=어떤 방법이든 관련국들간의 상호 교감을 통해 공통의 전략만 세워져 있다면 그 방법이나 내용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 교수=북한은 미국과의 협상 전제 조건을 이야기하면서 북한에 대한 적대적 정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북한은 최근 발효된 미국의 북한 인권법안이 북한 정권 붕괴 수단이라는 주장인데 앞으로 이와 관련된 부정적 파장은 없을까.

 

아인혼 고문=미 의회가 북한 인권법안을 통과시킨 기본적인 취지를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이 법안을 통해 북한 정권의 붕괴를 꾀하려 했던 일부 강경 행정부 당국자들도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을 통과시킨 상하원 의원들 대다수는 북한의 인권에 대한 진정한 우려와 상황 개선을 위해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도 냉전 시절 옛 소련과 대화 채널을 갖는 동시에 옛 소련 국민의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 옛 소련도 이를 적대적인 행동이라고 화를 내기도 했지만 안보문제와 인권 문제를 미국은 동시에 다뤘고 결국은 긍정적인 결과를 냈다. 두 문제를 동시에 다루는 것은 가능하다.

 

하 교수=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북핵 문제는 기본적으로 구조적 안정 구도 속에 놓여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북핵 문제는 구조적 불안정 구도 속에 있는 것 같다. 이유는 바로 우리가 1990년대 상황과 비교해서 북한의 방침은 여전히 확고하고 미국은 9·11테러의 영향으로 더 강경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브레이크가 잘 안 듣는 두 고속전철이 마주 보고 달리는 셈이다. 양자가 타협점을 마련할 공간이 대단히 좁다는 현실을 충분히 인식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아인혼 고문=1990년대보다 더 낙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는다.

 

대담 말미에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을 시도했던 빌 클린턴 전 민주당 행정부의 ‘페리 프로세스’는 이미 실패한 정책이라는 목소리도 있다”라는 지적에 아인혼 고문은 이렇게 답했다.

 

“케리 후보가 당선되면 페리 프로세스의 기조 위에서 미국의 대북 정책은 시작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1994년으로 시간을 되돌린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 내용이나 검증 절차 등은 훨씬 더 강력할 것이다. 미국은 페리 프로세스를 통해 8년간 북한의 플루토늄을 동결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무엇보다 지금의 위기는 2002년 10월 북한이 HEU를 시인했을 때 부시 행정부가 HEU 문제만이 아니라 플루토늄까지 포함시키는 바람에 북한과의 대화가 전면 중단됐다는 데 있다.”

 

정리=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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