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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미국의 선택] 여유얻은 부시, 북핵대처 '온건 속의 강경' 예상
 

조선일보 

2004-11-04 

하영선 서울대 외교학과 교수·문정인 연세대 정외과 교수 대담

정리=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사진=황정은기자 fortis@chosun.com


▲하영선=이번 미국 대선은 TV토론이나 분위기로 볼 때 기본적으로 전시(戰時) 선거이며, 반(反)테러전 선거다. 그렇게 보면 미국은 전쟁 중에 말을 바꾸지 않는 전통 때문에 부시 대통령이 낙승해야 하는데, 무척 힘들게 이겼다. 민주당은 이라크전 논쟁에서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정당성을 높이고, 명분을 쌓으려는 진지한 노력을 했어야 했다.


▲문정인=미 대선 결과는 미국이 아직 2001년 9·11테러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여줬다. 9·11쇼크가 도덕적 절대주의, 선제공격, 공세적 현실주의로 상징되는 부시독트린을 낳았다. 부시 독트린은 커다란 구상아래 나온 것이 아니라 충동적, 반사적으로 나온 것이다. 그만큼 실험적 성격이 강했다. 부시 2기는 이런 실험적 성격을 극복할 것이다. 더구나 케리 후보의 지적을 정책에 수용, 실용주의, 현실주의로 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9·11 테러에서는 1·2차 세계대전보다 훨씬 적은 사람이 죽었다. 그럼에도 미국에 미친 영향은 더 큰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문 교수와 생각이 비슷하다. 부시 2기는 케리 후보의 지적을 받아들인 정책이 될 것이다. 미국 일방주의에서 다른 나라와 함께 가는 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크고, 대(對)테러전도 선제공격보다는 다단계 전략을 구사할 것 같다.


현 미국의 대외정책을 ‘강경속의 강경’이라고 하면 앞으로는 ‘온건속의 강경’이 될 것 같다.


▲문=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테러 문제에 대해서 구조적 문제를 등한시했다. 왜 이슬람 테러리즘이 생겨났는지를 구조적으로 보고 그 문제를 제거했어야 했다. 부시 1기는 이를 못했다. 학습의 과정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일각에선 부시 대통령 재선에 우려를 표명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미국의 북한 선제공격론을 거론하고 하는데,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대북 선제공격은 이라크 전쟁 전에 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실기(失機)했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하=북핵 문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입장이 온건속의 강경이 될 경우, 낙관론은 대단히 위험하다. 미국과 북한은 타협하기 어려운 것을 상대방에 요구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에 자진해서 핵폐기를 택한 리비아 모델을 받아들이라고 하고 있다. 미국은 반테러전이 대외정책의 기본목표이기에 ‘폐기성 동결’ 정도로 타협할 수 없다. 북한은 미국이 핵폐기를 원한다면 대북 적대정책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불행하게도 두 개의 결정론적 시각이 충돌한다. 구조적인 불안정성을 안고 있는 것이다.


▲문=난 생각이 다르다. 부시 정부의 대북 강경론자들이 그대로 남겠지만, 돌출 변수가 있다. 이란 핵문제가 더 급해질 수 있다. 미국이 이라크에다 이란, 북한 등의 문제를 한꺼번에 다룰수 없다. 어쩌면 이 중에서 가장 쉬운 것이 북한이다. 미국이 적대정책을 포기하고, 북한 주권 인정하고, 내정 간섭 안 하면 핵을 폐기하겠다는 것이 북한이다. 제3차 6자회담에서 미국이 변화된 입장을 내놓은 만큼 이제야 겨우 실질적 협상이 시작됐다고 봐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협상을 기대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하=미국이 이라크에 발목 잡혀 있는 상황에서 또 북핵 문제를 크게 제기하겠느냐는 분석은 위험하다. 부시 정부는 대테러전 차원에서 북핵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라크전의 교훈으로 단독 플레이를 줄이려고 하는 움직임이 강화될 것이다. 특히 중국과의 협력을 중시할 것이다.


▲문=이번 미국 대선과정에서 남북한이 보여준 자제력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이 미국 대선을 앞두고 충격적 행동을 할 것이라는 10월의 충격(October’s Surprise)설이 나왔지만 실제 이런 사태는 없었다. 한국도 만약 북한과 남북정상회담을 하고 특사를 보냈다면 부시 후보에 부담이 됐을 것이나 그런 일도 하지 않았다. 부시 대통령이 이를 신뢰구축의 단초로 삼아야 한다.


▲하=신뢰의 문제다. 북한은 미 대선 과정에서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미국의 인권법안 발효도 북한 목조르기의 서곡으로 이해하고 있다. 미국이 계속 몰아치면 북한은 죽기살기로 받아칠 것이다. 이 경우 북한은 바둑에서 쓰는 패를 이용할 수도 있다. 첫째 패는 중국에 매달리는 것이고, 둘째 패는 남북정상회담이나 특사 교환을 통한 남북 간 협상이다. 이 경우 우리가 미국과의 협력관계 속에서 신중히 대처할 필요가 있다.


▲문=그 부분에선 미국이 진정한 중재자가 되고 북한이 핵 폐기할 의사가 있다고 밝힌 후, 한국과 미국이 구체적인 포괄적 대북 지원을 해 주는 과정에서 남북정상이 만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시나리오다.


▲하=북한이 기술적으로 폐기성 동결에 합의하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이 있으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폐기성 동결’을 위해서는 리스트가 있어야 한다. 고농축우라늄(HEU) 핵 계획, 영변의 플루토늄 핵 시설이 모두 거론돼야 하는데,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합의가 어려울 것이다.


▲문=우선 핵 확산을 막기 위해서는 플루토늄 핵 시설 자체를 검증가능하게 사찰하는 데 중점을 두면서 신뢰를 쌓아야 한다. HEU 핵 계획과 플루토늄 핵 시설 문제를 동시에 처리하는 것은 힘들다.


▲하=부시 2기의 한·미 동맹은 미국의 군사변환(Military Transformation)과 직결돼 있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물러난다고 해도 군사변환의 위력은 여전히 다가올 것이다. 이는 미군의 편재적 그물망(어느 곳이든 모두 커버한다는 의미)으로 번역되는 유비쿼터스 네트워크(Ubiquitous Network)가 핵심이다. 이에 대응하는 것이 우리 정부의 ‘협력적 자주국방’ 개념이다. 자주는 1차원적인 점(点)이고, 협력적 방어는 2차원적인 선(線)이다.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는 3차원적인 것을 하겠다는 것이다. 자칫 동북아에서 유비쿼터스 네트워크와 남한의 협력적 자주국방, 북한의 주체가 만나 어떤 그림이 짜여지느냐에 따라 어려움에 봉착할 수도 있다. 19세기에 처음 체제 동맹의 고민을 한 것처럼, 앞으로 어떤 동맹을 모색하느냐가 우리의 숙제다.


▲문=참여정부의 고민은 어떻게 한·미 동맹을 유지하면서 신냉전구도를 막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우리와 미국이 다른 것은 다르다. 미국은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전장(戰場)관리를 하는 입장이다. 우리는 단기적으로 대북 군사력을 관리하고, 동북아에서 중국, 미국, 일본이 화해롭게 조화하는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 협력적 자주국방은 홀로서기 전략이 아니다. 이는 미국으로부터의 심리적 예속, 전력구조 의존에서 벗어나고, 군사주권을 확보한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하=미국의 군사정책이 완전히 유비쿼터스 네트워크로 가면 주한미군이 있을 필요가 없다. 미국은 궁극적으로 한국군도 함께 한반도를 들락날락하자고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유비쿼터스 네트워크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검토가 미진하다. 북한, 중국의 문제도 걸려 있다. 양측이 가이드라인을 설정할 때 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문=한·미 간에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차이점을 인정하고, 그 거리를 좁혀나가면 된다. 앞으로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신뢰구축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미국도 분명히 우리나라에 이해관계가 있다.


▲하=9·11테러의 충격을 당한 미국과, 민주화 신세대가 보다 전면에 나선 한국 사이엔 오해와 갈등의 여지가 적지 않다. 북핵이나 주한미군의 문제는 이제 새로운 차원에서 이야기할 때가 됐다. 21세기적 사고로 양국이 다시 만나 더 바람직한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상당히 꼬일 수 있다.


▲문=양국관계는 결국 정상이 풀어가야 한다. 양국 정상이 뜨거운 가슴보다는 차가운 머리로 긴밀히 협의해가면서 극복해야 한다. 두 정상이 한 차원 높은 외교를 활성화해 한·미 간에 건강한 동맹을 구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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