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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군사 한파를 대비하라
 

중앙일보 

2003-12-09 

날씨가 추워졌다. 그러나 국내정치 기상도는 특검 정국에 이은 총선 정국의 뜨거움을 예고하고 있다. 국내정치의 열기 속에서 걱정스러운 것은 국제 군사기상도가 전에 없는 한파의 내습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우리가 군사기상도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면서 제대로 월동 준비를 하지 못한 채 한파를 겪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짧지만 의미심장한 성명을 발표했다. 탈냉전 9.11 테러 이후 시대를 맞이해 미국은 새로운 군사변환(transformation) 전략을 추진하기 위해 해외 주둔 군사력 재검토 협의를 동맹국, 그리고 의회와 본격화한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 부장관 더글러스 페이스는 지난 3일 연설에서 이번 재검토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기본적이고 포괄적으로 추진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미국의 21세기 군사변환 전략

 

핵심 협의대상국인 한국은 비교적 조용하게 변환의 한파를 맞이하기 시작하고 있다. 충분한 월동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한파의 심각성을 미처 예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까.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은 군사한파가 현재의 체감온도보다 훨씬 매섭게 불어닥칠 것이라는 것이다.

 

우선 군사변환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한다. 변환은 단순한 변화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1997년 미국의 국가방위 패널 보고서가 제1차 4개년 방위 재검토(QDR)를 평가하면서 변환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 부시 행정부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주도 아래 군사변환을 21세기 국방전략의 핵심 골격으로 추진하고 있다. 군사변환의 핵심은 탈냉전 9.11 테러 이후 21세기 군사 질서가 산업화시대에서 정보화시대로의 변환을 겪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전쟁 무대에 산업화 시대의 주인공이었던 국가뿐 아니라 정보화 시대의 새로운 주인공들인 비국가 조직들이 지구 그물망화해 등장한 것이다. 동시에 산업혁명에 힘입은 대량살상무기보다 정보혁명에 힘입은 정보무기의 중요성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세계 안보환경의 변화에 직면해 부시 행정부는 본격적 군사변환을 시도하고 있다.

 

군사변환의 구체적 모습은 주둔군의 배치군으로의 전환이다. 미 국방부 고위 당국자들은 현재 유럽과 동북아에 있는 미국의 해외 주둔병력을 냉전의 역사적 유물로 보고 있다. 따라서 하루 빨리 유사시보다 광범한 지역에 신속하게 투입할 수 있는 배치군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보기술 혁명의 도움으로 동서남북에서 동시에 신출귀몰하는 21세기 홍길동군을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찬 구상이다. 따라서 최근의 주한미군 재배치 논의는 냉전시대의 논의와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동아시아 신속배치군으로의 전환은 시간문제다. 동시에 미국은 냉전시대 군사동맹 체제의 변환을 추진하고 있다. 냉전시대의 소련과 같은 확실한 가상 적이 사라지고, 대량살상무기 테러와 같은 불확실한 위협에 직면해 미국은 지구 그물망의 새로운 동맹질서를 모색하고 있다. 럼즈펠드 국방장관은 최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방장관회의에 참석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국제안보지원군과 같은 나토군의 새로운 변환을 높이 평가했다.

 

*** 주한미군도 신속배치군 불가피

 

다음으로 군사변환은 수가 아니라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산업화 시대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 병력이 동원돼 대량살상무기로 전면전을 수행했다면, 정보화 시대에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병력이 동원돼 첨단 정보무기로 정보전을 시작하고 있다. 최근 이라크전은 수의 우위가 아니라 첨단 정보기슬의 우위가 전쟁의 승패에 결정적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했다. 따라서 미국 해외 주둔병력의 감축은 예정된 길이며, 주한미군의 감축도 시간문제다.

 

미국의 21세기 안보를 위한 군사변환을 북한처럼 20세기 냉전의 시각이나, 우리 정부처럼 19세기 자주 국방의 시각에서 이해하고 대처하려 한다면 추운 동북아에 있는 한반도는 군사적으로 혹한을 겪게 될 것이다. 한반도에 평화의 봄을 맞이하려면 한반도 안보를 위한 21세기적 군사변환을 궁리하고 하루 빨리 실천에 옮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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