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서평] 대조적 한반도 발전 전략서 나와
 

조선일보 

2004-04-01 

21세기 한국의 진로는 ‘안보·번영의 지식국가’냐 ‘생명지속적 발전의 중형 국가’냐. 한민족의 발전 전략을 전혀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는 책이 각각 나왔다. ‘21세기 한반도 백년대계’(하영선 엮음·풀빛)와 ‘21세기의 한반도 구상’(백낙청 외 지음·창비)은 지식인 사회 양대 흐름인 민족주의 우파와 민족주의 좌파의 시각을 대변하고 있다. ‘구상’은 민족주의 좌파 진영이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출범 등 정치 역학의 변화에 따라 대안적(代案的) 발전 정책을 제시하고 나선 책. 민족주의 우파가 산업화를 높이 평가하며 세계화·정보화 등에 따른 발전을 모색하는 데 비해, 민족주의 좌파는 개발독재와 세계화가 초래한 부정적 측면을 강조하며 ‘새로운 사회’를 구상한다.

 

◆ 국가의 기본 목표

 

‘백년대계’의 대표 필자인 하영선 서울대교수와 ‘구상’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각각 ‘안보번영·지식 국가’와 ‘생명지속적 발전·중형 국가’를 21세기 한국의 모델로 제시한다. 두 모델은 미국 주도의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서 차이가 난다. 전자가 현재의 세계체제 속에서 중심 국가로의 도약을 지향하는 데 비해, 후자는 장기적으로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를 넘어서는 대안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하 교수는 “세계 지식 질서의 첨단을 주도해 보려는 지식전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며 이 전쟁의 성패가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반면 백 교수는 ‘생명과 환경을 보호하며 증진하는 발전’을 주장하며 ‘너무 잘살지도 너무 가난하지도 않은 나라(중형국가)’를 목표로 제시한다.

 

◆ ‘발전’ 개념

 

‘백년대계’에서 유석진 서강대교수는 ‘국가 발전’이 여전히 중요하다고 본다. 즉 “생존과 번영은 앞으로도 계속 추구돼야 하며 다만 ‘부국강병’의 발전 형태인 ‘민주적 부민(富民) 번영’을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정보 통신 강국이 되는 데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갖출 것을 역설한다. 반면 ‘구상’에서 박명규 서울대교수는 “경제 성장이나 국가의 위세 강화가 아니라 평화, 분쟁 해결, 환경 보존, 이질적인 것과 공존 등을 발전의 핵심 내용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며 ‘사회 발전’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 20세기 한국사에 대한 인식

 

‘백년대계’에서 박지향 서울대교수는 “식민지 근대성의 중층적이고 다원적 구조와 효과를 인정할 때 역사란 저항과 협상, 모방과 도전, 변화와 재창조의 복잡한 과정이란 것을 이해하게 될 것”이라며 ‘굴절된’ 한국 근현대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을 주장한다. 반면 ‘구상’에서 박명규 서울대교수는 20세기 후반 한국의 발전을 “미국 중심의 냉전 체제에 적극 가담하여 종속적 안보와 종속적 성장을 달성하려는 ‘종속적 발전 전략’이었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 동북아 협력체에 대한 견해

 

‘구상’에서 이수훈 경남대교수는 미국 중심 세계체제를 벗어나는 방안으로 동북아 협력체의 건설을 역설한다. 즉 “동북아에 중심과 주변이 없는 민주화되고 균형잡힌 세계를 건설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역내의 대국주의를 거부하고 강고한 수평적 네트워크를 지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년대계’에서 하영선 서울대교수는 “아직까지 근대의 청춘기를 겪고 있는 동아시아는 상당한 기간 동안 협력과 함께 갈등의 만남을 벗어나기 어렵다”며 “닫힌 동아시아 중심보다는 열린 동아시아 그물망짜기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 최근 사회 흐름에 대한 평가

 

‘구상’은 시민운동의 활성화를 높이 평가한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개혁 문화를 만들어가는 시민사회의 활력으로 말하면 한국이 서양의 많은 선진국에 비해도 손색이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백년대계’는 이에 유보적인 입장을 보인다. 유석진 서강대교수는 ‘사이버 민중주의(Cyber Populism)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우리 사회의 과제들은 ‘동원된’ 군중에 의한 물리적 해결이 아니라 ‘영리한’ 군중에 의한 지식국가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하영선 서울대교수는 “386세대가 내세우는 탈(脫)냉전과 반(反)권위주의는 21세기 한반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푸는 데는 냉전과 권위주의만큼이나 쓸모가 없다”며 “새로운 안목을 가진 세대를 길러야 한다”고 역설한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