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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시론] ‘美 제국’을 활용하라
 

조선일보 

2004-04-16 

▲ 하영선 서울대 교수 

 

선거가 끝났다.


17대 국회의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 새 국회의 첫걸음은 경제 살리기를 위한 안과 밖 가꾸기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경제가 되살아나지 않고서는 21세기 세계무대에 설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여의도는 하루 빨리 시대착오적인 민주와 반민주, 통일과 반통일, 그리고 보수와 진보라는 소모전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회가 한반도의 21세기 진보를 주도하기 위해서는 여야 모두 커다란 발상의 전환 없이는 불가능하다. 경제를 살리기 위한 바깥 가꾸기의 경우도 이제까지의 싸움을 4년만 더 계속하면 우리는 더 이상 회복할 수 없는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날 것이다. 그렇다면 17대 국회가 앞장서야 할 일은 무엇인가. 21세기 우리 삶의 바깥 그물망 짜기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을 활용하려는 국민적 합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다.

 

21세기 미국은 자기 바깥의 세계에 압도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제국이다. 따라서 한·미 관계는 단순한 국가와 국가의 만남이 아니라 비제국과 제국의 만남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미 제국이 21세기 세계 그물망 짜기를 주도하는 한, 한국은 미 제국을 활용하여 좋은 의미의 제국적 발상과 능력을 갖추어야 새로운 한·미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 친(親)제국은 종속의 부작용을 효율적으로 극복하기 어려우며, 반(反)제국은 생존의 대안을 쉽사리 찾기 어렵다.

 

새 국회는 6자회담, 주한미군, 중국, 이라크 파병, 경제 세계화를 냉전과 탈냉전의 구시대적 발상을 넘어서서, 21세기 한반도를 위한 미 제국 활용론의 시각에서 새롭게 이해하고 새로운 정책 마련에 앞장서야 한다. 지난 2월의 6자회담 이후 북한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이 제 할 바를 한다면 우리도 미국의 소원을 풀어 줄 용의가 있다”(3월 10일)고 기존 입장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미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인 미셀 라이스는 변환하는 북한과만 변환된 관계를 맺을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확산안보구상(PSI)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3월 12일). 이러한 현실 위에서 현실적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주한미군 재배치 및 감축도 과거와는 다른 시각에서 봐야 한다. 미 제국은 정보혁명에 기반을 둔 군사변환 정책에 따라 해외주둔군을 유동군화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보의 협력적 자주국방의 발상을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이 시급하다.

 

중국의 급부상 문제도 동북아 경제중심 추구 정도의 발상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 러시아라는 네 제국 사이에서 비제국으로서 어떻게 평화와 번영을 추구할 수 있는가 하는 19세기 이래의 고전적 숙제를 미 제국 활용론의 시각에서 다시 한 번 검토해야 한다.

 

이라크 파병문제도 국가이익론과 침략전쟁론의 소박한 발상을 넘어서야 한다. 이라크 국민의 대다수는 후세인 시대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군이 점령군이 아닌 해방군으로 환영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전쟁의 목적과 수단의 정당화를 고려하는 정전론의 시각이 중요하다. 이라크 파병 문제도 정전론적 현실주의의 세련된 시각으로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경제 세계화 논의도 더 이상 세계화의 찬반 논의라는 보수적 시각을 넘어서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자율성을 높일 수 있는 세계화의 길을 찾는 것이다.

 

새 국회가 전 국민의 경제살리기 노력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는 바깥 문제들을 미 제국의 활용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풀어나갈 수 있다면, 17대 국회는 희망의 국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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