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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담] 한반도는 국제정치학의 황금어장
 

중앙일보 

2003-11-06 

김용구:한국의 국제정치학은 지적 전통의 단절 속에 50년대 중반에 시작됐다. 조선시대 실학 전통의 단절을 우선 꼽을 수 있다. 한문으로 쓰인 문헌을 국제정치학자들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근대국가 건설이라는 19세기 과제가 여전히 우리에겐 숙제인 상태에서 21세기를 맞고 있다.

 

하영선:한반도에 국제정치학적 요소가 많다는 것은 역사를 1백년만 거슬러 올라가 보면 알 수 있다. 세계 국제정치학의 황금어장으로 연구의 중심이 될 수 있음에도 왜 한국 국제정치학의 빈곤을 얘기해야 하는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이혜정:이번에 펴낸 시리즈는 강단 학계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의미가 크다. 하지만 대중과의 만남이란 점에선 보완해야 할 점도 많다. 요즘 대학에선 학생들이 대안 강의를 마련해 예컨대 이라크 전쟁 얘기를 따로 듣기도 한다. 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시민 운동가들이 채워주는 것이다.

 

하영선: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중반까지를 한국 국제정치학의 1기, 80년 광주민주화운동까지를 2기, 그리고 90년대 탈냉전까지를 3기로 나눠볼 수 있다. 1기는 완제품 외국이론 수입기였고, 외국 유학자들이 대거 귀국한 2기는 수입대체기였으며, 3기엔 미국이 아닌 제3세계에도 눈길을 돌린 시기였다. 90년대 이후 오늘까지 우리 나름의 국제정치학이 없는가를 모색하는 분위기가 늘어나고 있다.

 

이혜정:모두 네권으로 된 시리즈를 보면 정책 연구가 빈약함을 느끼게 된다. 예컨대 한·미동맹의 틀에 대한 논문은 있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 정책 연구는 없다. 한국 국제정치학의 단골 소재가 남북관계인데 북한 자체에 대한 연구도 빠졌다.

 

하영선:단기 정책을 내는 것이 국제정치의 꽃이라는 생각도 있는 것 같은데, 중요한 것은 뿌리다. 이번 시리즈에 사상과 역사가 많이 포함된 것은 그 때문이다.

 

박수헌:학계와 외부와의 소통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학계 내부의 소통 문제를 먼저 지적해야 한다. 이번 시리즈가 성숙한 토론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본다.

 

김용구:지금 세계 국제정치학의 지형은 미국과 유럽을 대립각으로 해서 크게 변화하고 있다. 유럽은 20세기까지의 국제사회 규범을 고수하려는 반면, 미국은 9·11사태 이후 국제사회 규범을 바꾸려 하고 있다. 그 틈바구니에 우리의 고민이 있다.

 

박수헌: 강대국 이론의 맥락을 잘 알아야 하고, 이를 우리에게 적용할 때의 맥락도 고민해야 한다. 강대국 이론의 역사성과 우리의 역사성이 만나는 곳에서 비판과 수용이 모두 가능하다.

 

하영선:'한국적'국제정치학을 모색할 때'한국적'의 의미를 되새겨 봐야 한다. 국가와 민족개념이 형성된 19세기를 살펴보려면 한문 문헌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반미국적'을 '한국적'이라는 말로 포장하는 것은 아닌지도 경계해야 한다.

 

박수헌:연구자가 주요 강대국에 몰린 점도 생각해 봐야 한다. 예컨대 이라크 연구자가 얼마나 되는가. 내 전공인 러시아 지역연구만 해도 시장경제와 민주화 등 특정 주제에 쏠리는 경향도 문제다.

 

정리=배영대 기자

balance@joongang.co.kr


세계화 시대에 한국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국제정치학계의 원로인 김용구(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와 하영선(서울대)·박수헌(경희대)·이혜정(중앙대) 교수가 한자리에 모여 국제정치학의 역사와 철학을 이야기했다. 이들은 각각 1950년대·60년대·70년대·80년대에 학문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세대간 대화'이기도 하다.

 

힘의 논리가 극명하게 지배하는 국제정치 현실을 국제정치학이 고스란히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들은 먼저 자괴감을 토로했다. 하지만 국제정치학의 세계적 이슈가 한반도에 집중해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발견하기도 했다.

 

김용구·하영선 교수는 '역사'를 더 많이 알아야 한다면서 한문으로 쓰인 옛 문헌까지 읽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젊은 박수헌·이혜정 교수는 학계-대중 간의 소통과 시각의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시민사회 움직임 등으로 넓어진 국제정치의 지평에서 강단 학계가 당면한 고민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 좌담은 최근 출간된 주목할 만한 두 종의 책이 계기가 돼 마련됐다. 한 종은 '국제정치와 한국'을 주제로 52명의 연구자가 모두 네권으로 펴낸 시리즈물로서, 각 권의 제목은 『근대 국제질서와 한반도』 『동아시아 국제관계와 한국』『세계화와 한국』 『세계 지역의 정치』이다. 다른 한 종은 '국제정치학 교과서'로 꼽히는 『세계정치론』(스티브 스미스 외 지음)을 번역한 책이다. 두 종 모두 서울대 외교학과 출신 연구자들이 중심이 된 학술모임'국제관계연구회'에서 펴냈으며, 하교수는 이 모임의 좌장격이다. 다음은 좌담의 요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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