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시평] 不可侵이 단순 불가침인가
 

중앙일보 

2003-10-28 

노무현 대통령 재신임 논란에 이어 여야 대선자금 수사가 본격화하고 있다. 그러나 하루 하루를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무명의 사람들이 정말 힘들어 하는 것은 풀릴 줄 모르는 경제 현실이다. 재신임이나 대선자금 수사가 경제난을 해소하지는 못한다. 따라서 정치권은 현재의 혼미한 정국을 하루빨리 정리하고 경제난 해소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정치권이 현실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정치권을 개혁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변화의 선행 지표로서 청년 실업 문제가 청년들로 하여금 현실을 보다 현실적으로 보게 만들고 있다.

 

*** 우방궈 北방문 앞두고 새 국면

 

경제난 해소의 관건은 안으로는 노사 문제이고, 밖으로는 북핵 문제다. 노사 문제가 쉽사리 선진형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속에 북핵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지난 25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이 제안한 '다자틀 내 서면안전보장 방안'을 '서면 불가침담보'라고 표현하면서 고려할 용의가 있다고 발표했다. 대변인은 발표문에서 "우리의 요구는 단순하며 명백하다. 우리는 조.미가 서로 총부리를 내리우고 정상적인 국가관계를 수립함으로써 평화적으로 공존하자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북한은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우방궈(吳邦國)상무위원장의 방북을 앞두고 전혀 새로운 핵 협상 전략을 마련한 것일까. 성급한 판단을 내리기 전에 지난달 29일 북한 외무성 대변인의 '미국은 쌍무적인 불가침조약을 채택하는 데로 나와야 한다'라는 담화를 조심스럽게 읽어 볼 필요가 있다. 대변인은 미국이 불가침조약을 반대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미국은 조.미 사이에 불가침조약이 체결되면 우리를 '주적'으로 하는 남조선.미국 호상방위조약이 무용지물로 되고 말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남조선.미국 호상방위조약의 무효화는 그대로 남조선 주둔 미군 철수와 이어지게 된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북한이 설명하고 있는 미국의 입장은 바로 북한의 입장이라는 것이다. 구체적 증거를 들자면, 대변인이 담화를 끝내면서 "미국이 시대착오적인 조약에 매달려 미국의 남조선 주둔을 영구화하는 데 집착하면 할수록 조선반도와 지역의 평화와 안전 문제의 해결 전망은 더욱 묘연하게 될 것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한달 사이에 바뀐 것은 무엇이고 바뀌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우선 바뀌지 않은 것은 미국이 안전보장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으나 북한은 불가침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불가침은 단순한 불가침이 아니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무효와 주한미군 철수를 동시에 담보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북핵 능력 제거 요구에 대한 북한의 비장의 협상 카드인 셈이다. 바뀐 것은 북한이 '쌍무적인'과 '조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변인이 " 6자회담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북한이 사용하고 있는 표현의 절제는 이미 6자회담의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제2차 6자회담의 앞길은 험난하다. 북한은 여전히 동시행동 원칙에 기반한 일괄타결안의 핵심으로 '불가침'의 실질적 담보를 요구할 것이며, 미국은 뿌리깊은 북한 지도부에 대한 불신 때문에 북핵 능력의 우선 제거를 강하게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 2차 6자회담 문은 열려있지만

 

협상이 난관에 봉착하게 되면 북한은 다시 핵 억제력의 공개 위협을 할 것이며, 미국은 확산안보구상(PSI)을 보다 가속화할 것이다. 이러한 위기 국면이 궁극적으로 21세기 베이징(北京) 핵합의를 가져오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조심스러운 검토가 필요하다.

미국과 북한의 새로운 응수 타진에도 불구하고 북핵 문제의 해결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우리 경제난의 국제 정치적 여건 개선이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풀 수 있는 노사 문제라도 새로운 21세기형 표준을 마련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한가하게 재신임과 대선 자금으로 싸움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의 모든 정치인들은 삶의 어려움에 힘들어 하는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문제 야기가 아니라 문제 해결에 팔걷고 나서야 한다.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