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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이라크 추가 파병의 정치
 

중앙일보 

2003-09-16 


미국이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을 요청했다. 청와대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내년 봄 총선의 전초전에 이미 돌입한 여의도도 여야 할 것 없이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문제를 잘못 다루면, 시청 앞의 파병 반대와 찬성 소리만 커져가는 속에 정부는 대단히 어려운 결정의 시간을 맞게 될 것이다. 정부는 추가 파병의 국제정치와 국내정치의 의미를 정확히 읽고, 발 빠르게, 그리고 주도적으로 문제를 풀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목표 분명한 이라크 건설전쟁

 

추가 파병 논의의 우선 고려사항은 미국의 파병 요청의 국제정치적 의미다. 이라크와의 군사전을 예상보다 간단히 승리한 부시 행정부가 뒤늦게 한국을 비롯한 14국에 추가 파병 요청을 했다. 국내외 비판적 지식인들은 미국이 드디어 이라크에서 제2의 베트남전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편 미국의 미래를 위해 오만한 일방주의 대신 겸손한 다자주의를 주장하는 자유주의자들은 부시 행정부가 다자주의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의 지적 기반인 신보수주의 논객들은 기왕의 후세인 제거전은 다자적 일방주의로 치렀지만, 현재의 이라크 건설전은 내년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군사 및 경제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방적 다자주의로 치를 수밖에 없다고 믿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2주년을 맞이해 미 국민에게 행한 연설(9월 7일)에서 이라크 건설전의 목표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첫째, 테러리스트들을 제거하고, 둘째, 자유 이라크를 위해 다른 국가들의 지원을 받고, 셋째, 이라크인들이 자신의 방어와 미래를 책임지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후세인 제거전을 제1의 테러전으로 싸웠다면, 이라크 건설전을 제2의 테러전으로 싸우고 있다. 다만 제2의 테러전에서는 군사전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감소하고, 정치전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건설전을 중심으로 또 하나의 세계질서를 마련하고 있다. 제2 테러전의 협력, 주저, 비협력의 정도에 따라 미국은 전 세계 국가들과의 정치.군사.경제.지식.문화관계를 조종해 나갈 것이다. 한편 협력 국가들은 안보.경제를 비롯한 포괄적 국가 이익을 추진할 것이다.

 

다음 고려 사항은 이라크 건설전의 국제 참여다. 후세인 제거전은 형식상 다자주의였지만, 내용상 일방주의적 색채가 짙었다. 이라크 건설전은 약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유엔의 새로운 결의를 기반으로 미국 주도의 추가 다국적군 창설 작업에 바쁜 파월 미 국무장관은 후세인 제거전 당시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프랑스 드빌팽 외무장관과의 최근 논의에서 이라크 자치 정부수립 일정, 미국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주도권 문제에 여전히 이견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후세인 제거전의 경우와 달리 이라크 건설전에 관한 미국과 프랑스의 의견차는 수렴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추가 파병논의는 이라크 건설전의 본격적 국제 참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행해야 한다.

 

또 하나의 고려사항은 이라크의 국내 정세다. 30년 동안의 후세인 폭정은 일단 막을 내렸다. 폭정의 후유증 치료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 제2베트남 되기 어려운 까닭

 

미국 주도로 구성된 이라크 과도 통치위원회는 이라크 재건의 첫삽을 떴다. 그러나 갈 길은 멀다. 시행착오가 많을수록 이라크 국민의 반미 감정은 커질 것이다. 그러나 후세인 체제의 복귀를 원하지 않는 것은 명확하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는 현재 이라크 주둔 미군과 다국적군은 점령군이 아니라 해방군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라크가 제2의 베트남이 되기 어려운 것은 후세인의 폭정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추가 파병의 국내정치다. 전투 요원의 추가 파병 문제는 생명 손실의 위험성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대단히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최대한의 안전성을 확보하면서 총체적인 국익을 추구할 줄 알아야 한다. 어느 한 쪽만의 손익 계산 위에 진행되는 추가 파병 논의는 오히려 해롭다. 정부와 국회의 적극적 역할이 시급하다.

 

하영선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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