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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6자회담의 세가지 난관
 

중앙일보 

2003-08-26 

베이징 6자회담이 오늘부터 열린다. 지난 4월의 베이징 3자회담과는 달리 가시적 성과를 거두게 될까. 아니면, 다시 한번 좌절을 겪어야 할 것인가. 북한과의 회담은 예측하기 어렵다. 북한과의 협상판이 보이기 시작하면 국제정치의 프로 바둑에 비로소 입단한 것이다.

 

이번 회담은 지난 4월 회담에 비해 대국자의 수는 형식적으로 늘어났어도, 대국의 수순과 내용은 비교적 정석에 가깝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국자들이 본격적인 프로바둑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다.

 

*** 왜 北.美불가침조약에 매달릴까

 

우선 북한을 보자. 북한은 회담에 임하는 기본 자세를 이미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 8/12) 북한은 기왕에 주장해 온 핵문제 해결의 3원칙을 반복하고 있다.

 

첫째, 북핵문제의 원인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핵문제 해결의 기본열쇠는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의 전환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정책전환에는 협상의 방도와 핵 억지력의 방도가 있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조.미 사이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불가침조약이 체결되고 외교관계가 수립되며 미국이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들 사이의 경제협력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해질 때" 미국의 기존정책이 포기된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이러한 정석은 본인들의 주장과 달리 그리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과 미국이 북한 정석의 의미를 제대로 읽고 회담에 임하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판의 핵심은 북한이 요구하는 불가침조약의 의미다.

 

북한은 왜 그렇게도 믿지 못하는 '미 제국주의'에 일단 유사시에는 '휴지조각'에 불과한 불가침조약을 최우선적으로 요구하는 것일까.

만약 한.미 당국이 북한의 이러한 요구를 에너지.국제금융을 비롯한 경제지원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협상카드로 생각하고, 미국의 서면 안전보장이나 관련국의 집단 안전보장과 충분한 경제지원으로 북한의 핵 포기를 얻어내려고 한다면 오판이다.

 

개혁개방의 정치보다는 선군정치를 우선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북한은 불가침조약이라는 법적 담보를 주한미군 철수라는 군사적 담보와 한.미 공조의 해체라는 정치적 담보의 서곡으로 강조하고 있다.

 

다음으로 미국을 보자. 부시 행정부는 대북 핵정책을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의 핵확산금지정책이 아닌 반테러전의 일부로서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고 검증 가능한 북핵 폐기는 협상 의제가 아니라 미국 안보의 필수 전제조건이다.

 

그리고 전제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다자회담과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동시에 추진하고 다. 다자회담이 예상대로 어려움에 부딪치면 PSI는 빠른 속도로 구체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중국의 입장이 중요한 변수이기는 하지만 북한 경제는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며, PSI 회원국이 아닌 한국은 난처한 입장에 놓이게 될 것이다.

세번째 난관은 더 심각하다. 북한과 미국의 6자회담에 임하는 자세가 선명하면 할수록 6자회담은 현실적으로 해결책을 찾기 어렵다.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전환을 요구하는 북한과 북핵 폐기를 요구하는 미국이 팽팽하게 맞서 타협점을 찾지 못하면 북한의 핵억지력 방도와 미국의 PSI가 정면으로 대결하는 긴장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 북한 지도체체 변화 빨라질 수도

 

이러한 긴장국면이 94년의 제네바 기본합의서 체결과 같은 화해국면으로 전환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9.11 테러 이후의 부시 행정부는 90년대의 클린턴 행정부와 비교해 보다 강경한 자세를 취할 것은 명백하다.


따라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은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핵 억지력의 방도를 계속 추진해 정권교체의 위기에 직면하든가, 협상의 방도를 추진해 개혁개방의 정책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장기적으로 지도체제의 변화를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다.

우리 정부가 베이징 6자회담에서 제대로 주도적 역할의 일부를 담당하려면 북핵문제의 바둑판을 프로 바둑답게 읽을 줄 알아야 하며, 상대적으로 작은 힘으로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는 묘수를 터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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