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전문가좌담]"北, 협박 -협상 양면카드 노린듯"
 

중앙일보 

2003-07-21 

[北 핵무기 보유 시인] 전문가 긴급좌담사회=길정우 중앙일보 논설위원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북.미.중 3자회담에서 북한이 핵 보유를 선언 하고 재처리 추진 사실을 밝힘으로써 한반도 위기가 증폭되고 있다.

 

북한의 발언 의도와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책, 이 파장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등을 짚어보기 위해 하영선 서울대 교수,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의 긴급 좌담회를 열었다. 사회는 본사 길정우 논설위원이 맡았다.

편집자

 

 

▶사회=북한 이근(李根)수석대표의 핵 보유 발언 의도는.

 

▶전현준=(CNN 보도가 사실이라면)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인정한 셈이다. 북한이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미국과의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가려는 전략으로 봐야 한다.

 

기본적으로 핵을 매개로 체제보장을 받으려는 계산이고, 만약 협상이 결렬되면 지금보다 더 많은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는 위협을 가하려는 속셈이 깔려 있다.

 

북한은 이번 기회에 핵 보유를 시인하고 협상하는 것이 미국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윤덕민=협박용과 협상용 두가지를 함께 노린 발언이다. 북한은 1993년 6월 북.미회담을 앞두고 노동미사일을 시험 발사했으며, 지난해 7월엔 미국의 켈리 국무부 차관보의 북한 방문을 며칠 앞두고 서해교전을 일으키는 등 협박과 협상을 적절히 구사했다.

 

이번 핵 보유 발언은 이에 따른 난관이 있더라도 파키스탄처럼 핵 보유가 기정사실화됨으로써 앞으로 미국에서 최대한의 반대급부를 얻어내려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그동안 핵 개발에 관한 NCND 정책만으로도 반대급부를 얻어냈으나, 이제는 미국에 '핵무기 보유'라는 카드를 구사해야만 궁극적 목표인 '체제유지의 담보'를 얻어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하영선=북한 대표의 발언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에서 어떤 표현으로 이루어진 것인지를 조심스럽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일방적으로 핵 보유 선언을 한 것이라면, 북한이 그동안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주장해 온 협상의 방법과 억제의 방법 중 억제의 방법을 강조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러한 북한의 태도는 결과적으로 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핵보유 발언을 한 후 언론매체를 통해 '새롭고 대담한' 제안을 한 측면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뭔가 미국의 구미를 당길 내용이 들어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사회=미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으로 보는가.

 

▶尹=북한은 지난해 말부터 정전협정 무력화, 미사일 발사 실험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카드를 사용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 준비에 몰두했던 미국은 이에 전혀 응하지 않았다. 미국이 오히려 북한보다 '벼랑 끝 외교 전술'을 펼쳤던 셈이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가급적 북한이 레드 라인을 넘지 않는 선에서 해결하려 했는데, 이번에 북한이 너무 앞질러 나간 것이다. 앞으로 미국은 당장 대북 제재를 취하기보다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명분 쌓기' 전략을 택할 것이다.

 

미국은 현재 겉으로는 '놀라지 않았다'고 하지만 이는 '너희가 그럴 줄 알았으며,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미국 정부 내에서 대북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고 북한에 단계적으로 강한 압박을 가할 것이다.

 

▶全=북한의 핵 보유가 사실이라면 미국은 이를 결과적으로 묵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국은 북한 핵이 테러단체의 손에 들어가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 않게 하는 데 최우선 과제를 둘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은 중국이 북한에 압박을 가하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河=북한의 '핵 보유 선언'이 사실이라면 미국 강경파에 다음 행동에 들어갈 수 있는 명분을 준 꼴이다. 이라크 전쟁 이후 강경파가 득세하고 있는 미국은 명분을 쌓은 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대북 경제제재에 들어갈 것이다. 지금은 9.11 이후 테러방지를 위해선 타국에 대한 선제공격론까지 나온 미국의 기본 전략을 이해할 때다.

 

▶사회=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全=북한 핵 보유 발언으로 한국 정부는 한.미 동맹이냐 남북 공조냐 하는 양자택일의 압박을 받고 있지만 한.미 동맹으로 갈 수밖에 없다. 북한이 이런 점을 고려해 핵 보유 선언과 재처리 추진 사실을 시인했다면, 북한도 남북관계가 깨지는 것에 연연해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북한이 현 상황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도록 우리 정부가 나서 북측을 설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27일부터 평양에서 열릴 제10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번 장관급 회담에서 우리 정부가 북측의 요구대로 쌀과 비료를 북한에 준다면, 정부로서는 여론의 역풍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함께 북.중.미 3자회담을 통해 핵 문제를 해결하도록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노력해야 하며, 가능하면 우리도 그 회담에 참석해야 한다.

 

▶尹=우리 정부로서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짓고 있는 경수로 문제를 어떻게 할지 걱정이다. 핵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경수로를 지어주는 것이므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이사회에서 경수로 건설을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마당에 한국이 경수로 건설을 고집한다면 국제사회는 한국이 북한 핵을 용인하는 것으로 오해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의 국가 신인도도 떨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과의 대화 채널은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보나, 국민 감정을 고려해 현재 추진 중인 대북사업은 재검토해야 한다.

 

▶河=핵은 군사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무기로서의 의미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의 국제정치사에서 핵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지만 국제질서를 변화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 남북관계가 불안정해진다. 설령 미국이 북한의 1~2개의 핵무기 보유를 묵인한다 하더라도, 우리로서는 매우 심각한 사태다.

 

핵은 그만큼 복잡한 의미를 담고 있다. 북한이 핵무기를 갖고 벼랑끝 전술로 나가면 우리로서도 매우 심각하게 대처해야 한다. 따라서 교류협력을 목적으로 한 대북 물자지원도 더 이상 계속될 수 없을 것이다.

 

정리=고수석 기자<sskom@joongang.co.kr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