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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9·11테러가 남긴 것
 

중앙일보 

2002-09-10 

9.11 테러를 겪은 지 한해가 흘렀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던 현장의 악몽도 어느덧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다.
그러나 한 해를 넘기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9.11 테러가 지난 한해 동안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으며, 또 무엇을 남길 것인가 하는 점이다.


*** 脫脫냉전 구도 새로 형성


9.11 테러는 지구상의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에 다양한 영향을 미쳤다. 그 중에서 세계 질서의 변화라는 면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 결정권자들의 변화다.


미국 외교의 중장기 정책을 대변하고 있는 하스 정책기획국장은 지난 4월 연설에서 21세기 미국 외교정책의 방향을 설명하면서 '탈탈냉전'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는 9.11 테러를 겪은 현대사를 과거와 같은 냉전과 탈냉전의 이분법 대신에 냉전, 탈냉전과도기, 탈탈냉전의 삼분법으로 시대 구분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 주장은 9.11 테러의 역사적 중요성을 사회주의 해체와 같은 수준에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과 소련을 중심 축으로 한 동.서 양진영의 냉전질서는 소련의 붕괴에 따른 사회주의 해체와 함께 탈냉전 과도기를 맞이했으나 9.11 테러를 겪으면서 다시 한번 테러와 반테러의 두 진영으로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9.11 테러가 첫째로 남긴 것은 미국이 국내외의 단단한 합의기반에 주도한 대테러전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부시 행정부는 두달 만에 오사마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조직에 커다란 타격을 주고,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켰다.


부시 대통령은 앞으로 예상되는 테러를 대량살상무기 테러로 상정하고 지원 위험국인 이라크.북한.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대테러전 제2단계의 주적을 테러 그물망과 지원세력에서부터 대랑살상무기 공급세력으로 확대했다.


따라서 대량살상무기 문제가 과거와 달리 대테러전 제2단계의 대상이 됨으로써 미국 국내 안보의 최우선 과제로 확실하게 자리잡게 됐다.


부시 행정부는 '악의 축'과의 전쟁을 군사전.정치전.외교전.경제전.법치전.정보전의 6면전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 첫째 대상이 '악의 축'의 핵심국인 이라크다.


구체적인 6면전의 내용은 이라크 군사공격에 대한 국내외의 합의기반을 제대로 얻어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 결과에 따라 미국은 정권 교체의 정치전에 전력을 기울일지, 아니면 군사전을 수행할 것인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9.11 테러의 주범 및 지원세력에 대한 대테러전은 비교적 쉽게 국내외의 동의를 얻어 성공적으로 군사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라크에 대한 대테러전 제2단계에서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대한 경고와 비난의 목소리가 국내외에서 커져가고 있어 부시 행정부는 군사전의 합의기반 창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리하게 일방주의를 고집하는 경우 미국은 21세기 미국판 고난의 행군을 해야 할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9.11 테러의 태풍이 이라크를 휩쓴 다음에 불어닥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한반도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1월의 '악의 축' 연설에서 북한을 이라크에 못지 않은 핵심국가로 분류했다.


따라서 북한의 핵사찰과 미사일 개발.수출문제가 가까운 시일 안에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 한 한반도는 1990년대의 영변 위기, 금창리 위기, 대포동 위기에 이은 네번째 위기를 맞이할 위험성이 크다.


*** 시험대 오른 ‘악의 축’解法


이번 위기는 일단 발생하면 과거의 위기와는 전혀 성격을 달리할 것이다.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과거와 같이 지구적 핵확산,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안보, 먼 장래의 미국 안보 문제로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시급한 국내안보 문제의 최우선과제로서 다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90년대의 위기 같이 벼랑끝 외교를 시도하는 경우 미국은 '악의 축'과의 6면전이라는 틀에서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다루게 될 것이다.


9.11 테러의 후유증이 아프가니스탄.이라크를 거쳐 한반도에 밀어닥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3중의 노력이 시급하다. 우선 9.11 테러의 후유증이 이라크 문제의 해결방향에 따라 뒤늦게 한반도에 불어닥칠 수 있는 '탈탈냉전'의 새로운 현실을 직시할 줄 알아야 한다.


다음으로 북한이 9.11 테러 이후 변화한 미국에 대해 새로운 대미정책을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미사일 문제를 미국의 국토방위 문제로 일방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 문제를 함께 고려해 당사국인 한국 및 주변 관련 국가들과 최대한 협의해 복합 해결책을 하루 빨리 찾는 것이다.


하영선(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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