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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북·일 정상회담 딜레마
 

중앙일보 

2002-09-03 

고이즈미 총리가 9월 17일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러 평양을 방문한다.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 방문이 양국의 관계개선과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게 될는지, 아니면 또 한번의 '일장춘몽'으로 끝날는지에 대해서 국내외의 관심이 집중하고 있다.


***정치·경제문제 동시 노크


9.17 북.일 정상회담의 기본구도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표면적으로는 북한이 강조하는 과거 청산 문제를 포함한 국교 정상화 문제와 일본이 강조하는 인도문제 등 현안의 대치다.


그러나 과거와 다른 것은 7월 31일 외무상회담 공동보도문에서 다른 현안들에 비해 납치문제를 비롯한 인도주의적 현안을 "성의있게 대응해 될수록 조기에 해결하기로 했다"고 밝힌 점이다.


그리고 8월 26일 국장급 회담 공동보도문에서 국교정상화 문제와 현안을 정치적으로 포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가능성의 관건은 이 문제에 대한 북한.일본.미국.한국의 정치적 입장의 갈등을 어떻게 푸느냐에 있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가장 어려운 시기를 맞고 있다. 북한이 이러한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 당면한 최대의 현안은 7.1 경제관리 개선조치의 성공과 미국의 대량살상무기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효율적 대응이다.


7.1 경제조치가 소련이나 동유럽에서처럼 물자부족과 엄청난 인플레이션 때문에 실패의 길을 걷지 않고 성공의 길로 들어서려면 현재의 북한경제로서는 국제경제 역량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한편 미국이 북한을 '악의 축'에서 이라크 다음 가는 국가로 분류해 압박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한 국제적 합의 기반이 형성되지 않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따라서 김정일 위원장은 일본이 최대 현안으로 생각하는 납치문제에 대해 '통 큰 정치'를 구사하는 대신에 북한의 2대 난제인 국내경제 역량강화와 국제정치 역량강화를 동시에 풀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국내정치 및 경제의 어려움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고이즈미 내각은 납치 문제가 북한의 필요에 따라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게 됨에 따라 정상회담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 국교 정상회담을 조기해결할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북.일 정상회담의 목표를 1차적으로 납치문제,2차적으로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핵.미사일문제를 설정하고 북한의 과거청산 요구에 대해서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노력이 사면초가에 부닥칠 위험성도 적지 않다. 북한이 과거처럼 내놓는 카드는 최대한 세분화하고, 요구하는 반대급부는 최대화하는 '양파 벗기기 작전'을 계속하고, 일본 국내여론이 납치문제 해결만을 위한 지나치게 많은 반대급부를 일본식 퍼주기로 비판하고, 미국이 대량살상무기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시각에서 일본에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의 우선적 해결을 강조하고, 한국이 대선 결과에 따라 과거와 달리 전략적 포용정책을 선택하는 경우에 고이즈미 정부는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의 이라크 다음의 중심국가로 분류하고 있으므로 과거와는 달리 북한의 핵사찰, 미사일 개발.수출문제를 미국의 국내 안보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대외정책의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다루면서 이에 대한 국제적 합의 기반을 신중히 모색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북.일 정상회담이 이러한 틀 속에서 진행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한·미 지지 이끌 카드 관건


한국은 북.일 정상회담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한국의 입장에서는 북.일 정상회담이 납치문제와 과거 청산문제를 넘어서서, 북한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걸림돌이 되지 않고, 동시에 경제관리 개선에 성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북.일 정상회담의 성패는 이 회담을 둘러싼 북한.일본.미국.한국의 정치적 갈등을 얼마나 잘 조정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 현실적인 대안은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이 과거와 달리 적어도 국제적 합의에 기반한 '평화의 축'에 설 것을 보여주는 동시에 경제관리 개선을 위한 국제 컨소시엄을 모색하는 것이며 일본.미국.한국은 북한의 진지한 노력을 적극 지원하는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김정일 위원장에게 주어진 마지막 절호의 기회일지 모른다.


河英善(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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