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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긴급 대담] '고이즈미 방북 파장과 전망'
 

조선일보 

2002-09-02 

오는 17일로 예정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총리의 평양 방문은 북한 김정일 정권의 개혁 및 대외 개방 의지를 가늠해보는 주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공노명(孔魯明) 전 외무장관(동국대 석좌교수)과 하영선(河英善) 서울대교수(국제정치)는 1일 본사에서 대담을 갖고, 현직 일본 총리의 첫 방북이라는 일본발(發) 태풍의 진로와 파장 등을 짚어봤다./편집자 주


*“日人납치 외에 핵·미사일도 거론할듯”


△공노명=일부에서는 일·북 정상회담 합의를 ‘돌출적 깜짝쇼’라고 평가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올 것이 왔다’고 본다. 일본은 지난 10년간 북한과 국교정상화 교섭을 해오면서 북한 같은 독재체제와의 협상은 수뇌부 간의 담판 없이는 어떤 결론도 쉽게 나오지 않는다는 판단을 하게 됐다. 북한 역시 김대중 대통령, 푸틴 러시아 대통령, 장쩌민(江澤民) 중국 주석 등 외부에서 줄곧 주변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라고 조언한 것을 이번에 받아들인 것 같다.


△하영선=북한이 대단히 ‘흥미로운 선택’을 한 것 같다는 느낌이다. 현재 북한이 당면한 현안은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의 성공 ▲미국의 대(對)테러전쟁에 대한 대응 등 두 가지다. 전자는 북한의 국내 역량 강화와 직결되는 문제이고, 후자는 대외 역량 강화와 관계된 것이다. 두 가지 모두 북한이 추구하는 ‘강성대국’ 또는 북한 체제의 생존과 직결된 과제들이다. 특히 북한은 부시 미국 행정부에 의해 ‘악의 축(軸)’으로 분류돼 있다. 이라크 처리가 완료되면 그 다음 상대가 누구냐 하는 게 모두의 관심거리인데 북한이 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북한은 국제 역량 강화를 통해 미국이 일방적으로 북한문제를 결정짓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북한이 생각하는 21세기 생존전략의 핵심인 국내 역량과 국제 역량 강화를 위해 평양으로 일본 최고지도자를 불러들이기로 결정했다고 본다.


△공노명=일부에서는 ‘고이즈미 총리가 내치(內治)의 어려움을 국제정치로 극복하려는 것 아니냐, 대(對) 중국 견제용이다’라는 관측들을 내놓지만 동의하지 않는다. 이제 정상급에서 서로 대화할 때가 됐다고 느낄 만큼 상황이 무르익은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적 조건이 곧바로 회담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사실 일·북 정상회담에서 다뤄질 사안들은 북한 지도자의 정치적 결심만 있으면 얼마든지 해결 가능한 문제들이다. ▲일본인 납치 ▲과거 청산 ▲미사일·핵 사찰문제 등은 북한이 실리를 우선시하는 입장으로 정리만 한다면 급진전될 수 있다. 일부에서는 회담 성과가 불투명한 가운데도 고이즈미 총리가 결단한 것은 이미 양측간에 상당한 양해가 사전에 이뤄졌기 때문일 것이라고 하지만 아직 속단하기는 어렵다.


△하영선=북한은 현재 과거청산 문제를, 일본은 일본인 납치문제를 가장 우선적인 협의 대상으로 내세우고 있다. 사실 북한이 정치적 결단만 할 수 있다면 좋은 기회다. 현재 일본 내에서 최대 현안이 되고 있는 일본인 납치 문제의 경우 북한이 협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카드이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까지 가서 일본인 납치문제만 거론하고 돌아 올 수는 없는 상황이다. 결국 고이즈미는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거론할 수밖에 없을 텐데 이때 김정일이 말하는 이른바 ‘통 큰 정치’가 어떻게 나타날지 주목된다. 만약 북한이 지난 94년 미·북 제네바 핵 합의 때 같은 패턴을 고집한다면 이같은 안건들을 쪼개고 세분화해서 상황 진전을 질질 끌려고 할 것이다.


△공노명=일·북 정상회담까지 남은 앞으로의 보름이 중요하다. 실무선에서 각종 어려운 현안들을 어떻게 정리해낼지 주목된다. 일본인 납치문제는 김정일의 결심만 있다면 간단하게 풀릴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이 미사일·핵 문제를 제기한다면 북한은 그 문제는 미국과 해결할 사안이라고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 일본 입장에서 일·북 정상회담이 지역의 평화·안전에 공헌했다고 주장하려면 핵·미사일 문제를 거론할 수밖에 없다. 만약 고이즈미 총리가 납치된 자국민 문제만 해결하고 돌아온다면 일본 정계나 우방들은 이를 진정한 외교적 성과로 간주하지 않을 것이다. 벌써부터 일본의 야당은 물론 여당까지도 고이즈미 총리에게 납치문제에 의연하게 대처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하영선=북·일관계 진전에 있어 고이즈미 총리는 4대 난관에 발목을 잡힐 가능성이 있다. 첫째, 일본이 자국민의 납치문제만 가지고 북한에 대해 일본식 햇볕정책을 펼 경우 얻은 것에 비해 너무 주는 것이 많다는 내부 비판이 발생할 수 있다. 둘째, 국내 정치적 딜레마를 국제 정치를 통해 돌파하겠다는 고이즈미의 의도가 비판받을 수 있다. 셋째,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문제를 놓고 대북 압박을 가하는 부시 정부와의 조율문제가 있다. 넷째, 연말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전략적 또는 선택적 포용정책을 주장하는 후보가 등장할 경우 대북관계에서 또 보폭을 조정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공노명=결국 한·미·일 3국 공조가 중요하다. 오는 6~7일 열리는 3국 대북정책조정그룹회의(TCOG) 등에서 대북 역할 분담문제까지 심도있게 논의되어야 한다. 최근의 남북 경협추진위 회의 등을 보면 북한은 상당히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결국 7·1 경제개혁 조치 이후 북한은 경제 부흥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고, 이를 위해서는 북한도 한반도의 긴장을 원치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대북 지원의 전제조건으로 북한이 선제적인 군사 도발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 즉 일·북 정상회담이 한반도 지역의 평화와 안전에 기여하려면 핵·미사일 문제를 피해갈 수는 없다는 이야기다. 이런 문제에 대한 북한의 전향적인 답변이 나와야 경제 협력이 있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북한 군부가 김정일을 어느 정도 지지할지 관심거리다.


△하영선=이번 일·북 정상회담을 보는 남·북한과 일본·미국 등 4자의 입장에는 어쩔 수 없는 미묘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북한과 일본은 양국 관계의 개선이 우선 과제이고, 미국은 국내 안보적인 대(對)테러정책의 사안으로 북한의 핵 사찰과 미사일 문제를 보고 있다. 한국은 평화가 보장되는 한도 내에서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붕괴되지 않는 쪽으로 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서로 다른 관심사를 충족시키려면 평화와 안정이라는 공통분모에서 과감한 조치를 취하고 다음으로 전진해야 한다. 즉 북한이 미국이 말하는 ‘악의 축’에서 ‘선(善)의 축’으로 이행한 후 경제개혁을 위한 지원을 하는 식이 되어야 한다.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에 가서 이를 진지하게 권유해야 한다.


△공노명=지금 북한은 다른 어느 때보다 긴박한 상태다. 경제개혁을 한다고 가격 통제를 풀었는데, 충분한 공급이 없는 상태다. 또 미국 언론들은 매일 이라크 공격 기사로 가득 차 있다. 다음이 누구인가. 또 오는 12월 한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가 북한에 유리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북한 지도부가 결단할 때가 된 것이다. 만약 이번에도 시간을 허송한다면 체제 자체가 위협받는 길로 접어들 것이다.


△하영선=고이즈미 총리는 김정일과 만나기 전에 9·11 테러 1주기 추모행사 참석 등을 위해 미국을 방문, 부시 대통령과 만나게 돼 있다. 미국은 일본측에 한반도 평화와 안전에 관한 입장을 강력히 입력할 것이다. 미·북 관계는 한반도 상황의 핵심이란 점에서 고이즈미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진행=박두식논설위원 dspark@chosun.com
/정리=조희천기자 hccho@chosun.com
/사진=최순호기자 chois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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