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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미 정상회담은 기회다
 

중앙일보 

2002-02-19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연설(1월 29일) 이후 뒤늦은 막판 조율을 거쳐 한.미 정상회담이 지난해 3월 정상회담의 악몽을 되풀이하지 않고 최소한의 모양을 갖춰 열리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미 정상회담이 역사적으로 실패한 만남으로 기록되지 않기 위해서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특별히 유의해야 할 일들이 있다.


*** 북측 변화 주시하는 미국


우선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한.미간에 역사적으로 이뤄져온 과거의 정상회담과 비교해 전혀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은 냉전구조 아래서 북한을 주적으로 설정해 왔으며 미국은 소련을 주적으로, 북한을 지역보조적으로 삼아왔었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미국은 대량살상무기의 생산과 판매를 계속하고 있는 북한을 대테러전쟁질서하의 대표적 주적 중의 하나로 설정했다. 반면 우리정부는 2000년 6.15 남북 공동성명 이후 북한을 주적으로 보지 않으려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부시 대통령이 이번 한국방문에서 선과 악의 축 대신 자유와 억압의 축이라는 완화된 표현을 사용하고 金대통령의 햇볕정책의 노력을 지지하더라도 '북한주적론'의 정책방향에 융통성을 보일 가능성은 없다. 부시행정부의 '북한주적론'의 변화는 金대통령의 설득에 의해 가능한 것이 아니라, 북한의 말이 아닌 행동에 의해 비로소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한.미 정상회담의 핵심은 단순히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표현을 완화시키거나 미국의 한국 햇볕정책 지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평화의지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협상방안의 마련에 있다.


남북한은 남북 공동성명(72), 남북 기본합의서(91),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92),6.15 공동성명(2000)의 채택과정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 왔으며 북한과 미국은 제네바 기본합의서(94),북.미 공동코뮈니케(2000)의 채택과정에서 이 문제를 다뤄왔다.


그러나 이번의 논의는 과거와 성격을 달리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9.11테러 이후의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의 생산과 판매를 과거와 같이 미국주도의 세계질서에 대한 간접위협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미국 향토방위의 직접위협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시 외교팀은 미국에 대한 대량살상테러의 위험을 막기 위해 이 문제를 가능한 이른 시일 내에 해결하려 할 것이며, 동시에 외교적 수단이 난관에 봉착하는 경우에 군사적 수단의 동원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을 것이다.


대량살상 테러문제 다음으로 4만명 가까운 주한미군이 배치돼 있는 한반도 평화문제에 대해서도 부시 대통령은 북한 재래식무기의 후방배치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9.11테러 이후 미국의 새로운 변화를 우리 정부보다는 훨씬 예민하게 관찰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런 속에서도 북한은 미국이야말로 '악의 제국'이며, 부시 대통령의 한국방문을 한국전쟁 직전의 덜레스 대통령특사의 방한에 비유하면서 '부시의 남조선 행각은 전쟁행각, 반통일행각'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 햇볕평화론 수정 급해


따라서 미국의 새로운 모색이 한.미간의 긴밀한 공조 아래 추진돼 북한이 협상과정에 들어서더라도 미국의 대테러 전쟁정책과 북한의 주한미군철수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보장체계 정책의 갈등은 쉽사리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위기를 심화시킬 위험성이 크다.


한.미 정상은 이러한 비관적 가능성에 대비해 진정한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는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金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마지막으로 유념해야 할 것은 햇볕평화론에 더 이상 시간적 유예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을 현실적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햇볕평화론이 변화하는 현실에 맞춰 시급히 새로 태어나지 않으면 미국과 북한으로부터 동시에 버림받는 운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미국의 대테러 정전(正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되 동아시아의 경우에 한반도의 평화가 보장되는 한계 내에서 이러한 노력들이 진행되도록 적극 개입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 정부는 북한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21세기의 새로운 대미정책과 대남정책을 추진해 새로운 북한건설로 나설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河英善(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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