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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흔들리는 韓·美공조/"美, 9·11후 對北정책 강경…韓國정부 계속 오판해"
 

조선일보 

2002-02-05 

미국 부시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의 하나로 규정한 후, 한반도 전역에 이상기류가 일고 있다.


정부는 미국의 진의(眞意)를 파악하는 데 부심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에서는 부시 대통령을 비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으며, 북한은 이를 선전포고로 받아들여 강경대응을 다짐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 발언을 둘러싼 논란을 진단하기 위해 4일 이상우(이상우) 서강대 교수, 박건우(朴健雨) 경희대 아태국제대학원 원장(전 주미대사), 하영선(河英善) 서울대 교수를 초빙,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참석자>
*이상우 서강대교수 *박건우 경희대교수 하영선 서울대교수 *사회=김창기 국제부장


▲이상우=부시 대통령이 연두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에 포함시켜서 우리 국민이 긴장하고 있다.


이번 국정연설은 지난해 6월 6일 부시 대통령이 발표한 ‘포괄적 대북접근방안’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데 이를 갑작스럽다고 받아들인 것은 부시의 6월 성명을 잘못 이해했거나, 의도적으로 그것을 가볍게 평가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그때 북한에 대해 대량살상무기 제거, 미사일 수출 중지, 재래식 전력의 감축 및 후방 배치라는 3가지를 미국의 관심사로 내놓았다.


그런데 당시 우리 정부는 ‘북한을 언제 어디서든 조건없이 만나겠다’는 부분만 부각시켰다.


▲박건우=9·11 테러 직후인 11월 제네바에서 열린 생화학무기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미국 국무부의 존 볼튼 국제안보담당 차관도 이번 부시의 국정연설과 같은 맥락의 언급을 했다.


또, 부시 행정부의 단호한 대북 입장을 읽은 뉴욕타임스의 데이비드 생거 기자도 11월 25일 ‘북한을 잊지 말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그 다음날 부시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북한과 이란, 이라크를 함께 언급했었다.새로울 것이 없다.우리 정부가 진작 대책을 세웠어야 했다.


▲하영선=부시의 국정연설 내용은 그런 점에서 놀라울 것이 없지만, 정작 그 이후 놀라운 것이 세 가지다.


첫째, 우리 정부가 국정연설에 대해 놀라는 것이 오히려 놀라운 일이다.


이미 미국은 9·11 테러 이후 세계질서를 악의 축과 선의 축이라는 구도로 다시 보기 시작했는데, 그걸 모르고 있다가 놀라느냐는 것이다.


둘째로는 아직도 우리 정부와 언론이 부시 국정연설의 의미 파악보다 그 수사(修辭)와 표현의 차원에서 이를 보려고 한다는 점이다.


국정연설에서 미국이 테러 조직과 대량무기 개발·수출 국가들을 하나로 묶어 보겠다고 하면서, 거기에 북한을 포함시켰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대북정책을 단순히 동북아정책 차원이 아니고 대(對)테러 정책의 틀 속에서 보겠다는 기본 사고(思考)를 나타낸 것인데, 그 의미에 무관심한 것이 놀랍다.


마지막으로, 지금도 우리 정부가 미·북 관계를 중간에서 조정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는 초보적 발상을 하고 있는 데 놀랐다.


부시 국정연설의 기본구조가 대테러 전쟁이라고 한다면, 이는 우리가 쉽사리 ‘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9·11 테러 이전에 개발한 단순논리로 미국을 설득하겠다는 것은 순진하다.


▲이상우=9·11 테러 이전의 세계질서는 축구시합이었다.


그러나 9·11 이후의 게임은 럭비 시합으로 바뀌어, 게임의 기본 룰이 달라졌다.


정부는 이를 깨달아야 한다.


이는 전세계를 문명세계와 도전세력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문명세계 내에서는 규칙도 지키고 주권도 존중하고 그대로 하지만, 이를 벗어나는 도전 세력에 대해서는 과거의 규칙을 적용하지 않고 따로 간다는 것이다.


북한에 대한 강도만 높아진 것이 아니라, 북한을 다루는 방법이 질적으로 달라졌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와 관련, 이전에는 제네바 합의를 전제로 하고 다뤘다.


그러나 이제는 다 없어졌다.


보상체계가 다 없어지고, 미국은 자신이 정한 기준에 북한이 따라주기를 기대한다.


사찰도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만이 아니라 미국 자신이 만족할 만큼 확인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이 응하지 않으면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인데, 미국이 말하는 응분의 조치에 당장 군사적 대응이 포함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치·경제적인 압력을 가할 것이고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박건우=부시 정부가 ‘악의 축’이라는 말을 9·11 테러 이전에 사용했다면 많은 지탄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지금 이런 것을 따지지 않는다.


클린턴 정부가 북한 문제를 너무 쉽게 봤다.


대량살상무기, 재래식 무기 문제에 대한 제어없이 그냥 넘긴 것에 대해 부시행정부의 불만이 강하다.


그리고 부시의 이번 국정연설이 반드시 북한만 겨냥한 것이냐, 아니면 우리 정부에 대해서도 상당히 함축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점을 센스있게 판단해야 한다.


▲하영선=미국이 대테러 전쟁 2단계를 진행시키면 아미티지 보고서에 언급했던 ‘외교적 단계’의 시간과 조건이 줄어들 수가 있다.


의외로 빨리 놀랄 일이 벌어지는 단계로 나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상우=북한은 부시가 하는 이야기를 정확히 알아들은 것 같은데 정작 우리 정부는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것 같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오히려 우리가 섣불리 북한을 두둔한다고 나서지 말았으면 좋겠다.


북한은 일단 강하게 반발하고 있지만, 수사(修辭) 차원의 반발이다.


미국을 자극하는 행동을 벌이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오히려 우리가 북한을 두둔한다고 미국에 맞서게 되면 한·미 공조관계에 금이 갈까 우려된다.


▲박건우=한·미 공조가 제3의 핵심이다.


일부 언론들이 “미국에 대한 국제 여론이 ‘악의 축’이라는 표현 때문에 나빠졌다”고 보도하고 있는데 우리가 이런 식의 대응으로 미국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말 위험한 발상이다.


미국이 아무런 정보 없이 그 정도까지 나가겠느냐는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최근 공개된 미국 CIA 리포트를 읽어봐도 미국이 ‘악의 축’이라는 표현을 쓸 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하영선=북한 노동신문을 읽어보면 9·11 테러 이후부터 11월 하순까지 노동신문은 미군의 아프카니스탄 진입에 대해 조심스러우면서도 군사작전 차원에서 정밀 분석했다.


12월 들어서부터 북한은 미국의 대테러 작전에 대해 공개적인 비난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미 미국과 북한 사이에 협상을 앞둔 전초전이 시작된 것 아닌가 생각된다.


지금 상황은 곧 미·북의 대화·협상 국면으로 나갈 수도 있다.


다만 종전과 달라진 것은 미국이 이전에는 예비회담에서부터 북한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었는데, 이번에는 단도직입적으로 핵심 현안으로 치고 들어갈 것이라는 점이다.


▲박건우=미국은 채찍 이외에 상당한 액수의 식량원조 등 당근도 제시하면서 나가는 것이 북한을 원하는 방향으로 나가게 하는 수단임을 인식하기 바란다.


▲이상우=우리 정부가 미국의 단호한 입장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시점에서 금강산 민족화합회의를 준비한다거나, 아리랑 축제에 적극적 참여를 고려한다거나, 정부의 고위관리가 북한 미사일은 남한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변명해주는 일 등은 미국이 한국의 대북 인식이 잘못됐다는 의심을 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다가오는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차라리 그동안 계속 강조해왔던 대로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고, 한반도 평화의 의미를 다지는 식으로 끝을 맺었으면 좋겠다.


구체적인 대북문제는 한·미간 공동성명이나 발표문에서 차라리 뺐으면 좋겠다.


우리 정부가 어설프게 북한 편을 드는 모습을 보여 마치 미국과 이견이 있는 것처럼 나타나게 되면 한·미 공조에 흠집을 주고, 우리 국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영선=미국이 표현한 대로 북한이 ‘문명의 룰’ 속으로 들어온다면 그에 상응하는 결정적인 반대급부가 있어야 한다.


이미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이 설명한 대로 수교나 경제 원조와 같은 수단을 동원해 북한의 국가 등급을 올리는 데 미국이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한·미 공조 문제를 잘못 다룰 경우,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황야에 외롭게 혼자 남는 불행을 자초할 위험성이 적지 않다.


▲박건우=미국이 강한 표현을 써서 북한에 신호를 보냈는데 여기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이번에 선언한 것을 즉각 ‘실행’에 옮기는 일이 없도록, 속도조절을 하게 해야 한다.


또, 한·미 정상회담 이후 공동성명이나 기자회견 발표문 등을 통해 한국정부 입장에서 너무 많은 성과를 남기려고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하영선=9·11테러 이전에는 우리 정부가 ‘햇볕정책을 통해 남북관계를 개선하자.


군사적인 방법 말고도 다른 방법을 이용하는 것이 어떠냐’ 하는 식의 논리가 있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더 이상 한국 정부의 그런 논리는 먹히지 않는다는 것을 명백히 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햇볕정책이 큰 효과가 없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대테러 전쟁이라는 미국의 기본 명제는 받아들이면서도, 미국이 성급한 군사적 행동으로 가지 않도록 미국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가 무엇인지 그 점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대테러정책이 한반도 평화를 포함하는 형태로 추구될 수 있도록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가 미국을 설득하는 것보다는 북한을 어떻게 끌어내느냐는 것이 중요하다.


▲박건우=부시 대통령의 국정연설에는 중국에 대한 신호도 포함돼 있다고 본다.


악의 축에 포함된 3국 중 이란과 북한은 중국과 핵문제 등 예민한 무기문제에 관해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보장할 수 없는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이상우=이란·이라크와 달리, 북한은 남한과 마주하고 있는 우리의 분단국가다.


북한 문제에 대해 한국의 의견이 존중돼야 한다는 것을 미국에 강조해야 한다.


/정리=이하원기자 may2@chosun.com


/조희천기자 hcch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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