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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북-미관계 웬 낙관론?
 

동아일보 

2002-02-01 

북한의 신년 공동사설, 김대중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에 이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연두 국정연설을 했다. 김 대통령은 연두기자회견에서 북-미관계는 확실하게 전망하기 어려우나 북한과 미국이 모두 대화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으므로, 미국이 북한의 체면을 세워주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리고 남북관계는 실천과제로 이미 합의한 경의선 복원, 개성공단 건설, 금강산 육로 관광, 이산가족 상봉, 군사적 신뢰구축과 긴장완화의 5대 핵심 과제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과 북한의 금년 한해 국정수행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연두 국정연설과 신년 공동사설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면, 김 대통령의 ‘신중한 낙관론’은 고난의 행군을 치러야 할 가능성이 높다.


▼양국 시각差 뚜렷▼


우선, 부시 대통령의 연두 국정연설을 보자. 이 연설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평시 국정연설이 아니라 전시 국정연설 내용이라는 점이다. 야당인 민주당도 국정연설 논평에서 미국의 전시상황을 인정하고 부시 대통령의 대테러 전쟁에 대해서는 초당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연설에서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단계임을 강조하면서, 전 세계의 테러조직과 함께 이들 테러조직에 대량 살상무기를 생산 수출할 위험성이 있는 북한, 이란, 이라크 등을 주적으로 꼽았다. 그리고 이들을 ‘악의 주축세력’이라고 몰아붙였다.


테러와의 본격적인 전쟁은 대량 살상무기를 사용하는 테러조직과의 싸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는 부시 행정부는 대량 살상무기와 운반수단의 생산 및 수출문제를 대테러 전쟁의 중심과제로 삼음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협상의 폭을 좁히고 있다.


한편 북한은 신년 공동사설에서 기왕에 오랫동안 주장해왔던 내용들을 용어를 달리해 우리수령 제일주의, 우리사상 제일주의, 우리군대 제일주의, 우리제도 제일주의의 4대 제일 주의로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찾자면 6·15 남북공동선언의 구현을 위해서는 외세의존을 배격하고 민족공조를 실현해야 하며, 주적론을 철회하고,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는 과거의 주장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 “반테러의 명목 하에 감행되고 있는 미제와 남조선 호전분자들의 반공화국 반통일 책동으로 말미암아 지금 조선반도에서는 긴장상태가 격화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이 이러한 기본 정책방향 위에 서서 북-미협상을 재개하게 되면, 제2단계의 대테러전을 수행하는 미국이 김 대통령이 희망하는 수준의 북한체면 세우기를 받아들이기는 어렵게 된다. 한편 북한은 언어전쟁, 벼랑끝 외교, 협상타결이라는 기존의 북-미협상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북한과 미국이 신년 공동사설과 연두 국정연설의 입장을 고수하는 한, 2002년 북-미관계는 우리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실질적 개선의 실마리를 쉽게 찾지 못하고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남북한 관계는 5대 핵심과제의 추진보다는 ‘민족공조’와 ‘한미공조’간의 갈등 해소라는 풀기 어려운 숙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김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밝힌 ‘신중한 낙관론’에 입각해 미국과 북한을 읽고, 2002년의 대미 정책과 대북 정책을 추진할 경우 2001년의 실패를 반복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비판론 바탕해 대책을▼


눈앞에 다가온 한미 정상회담에서 지난해의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통령 눈치보기 경쟁의 실무외교 관행을 깰 수 있도록 하는 대통령 스스로의 노력과 외교·통일 전문 실무관료들의 용기가 필요하다. 대통령 중심의 집단적 사고의 맹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비상대책반을 빠른 시일 내에 재구성해 ‘신중한 낙관론’이 아닌 ‘신중한 비관론’의 시각에서 2002년의 미국과 북한 읽기를 새롭게 한 다음에, ‘민족공조’와 ‘한미공조’의 조화 가능성과 한계를 한반도 국익차원에서 냉정하게 분석해 정책대안을 마련하고, 동시에 대통령의 눈과 귀를 밝혀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이 없이는 2002년 대미 외교와 남북한 관계는 2001년보다 더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연말의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에 커다란 부담을 안겨줄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한반도의 장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지도 모른다.
하영선 서울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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