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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2002년의 육면전
 

중앙일보 

2002-01-01 

임오년의 새해가 밝았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기상도는 어둡다. 지난 연말 미국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1백일을 맞이하면서 2002년이 평화의 해가 되기를 희망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전쟁의 해가 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했다.


*** 테러 지원국에 전쟁 계속


월드컵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들떠 있는 분위기 속에서 이러한 부시 대통령의 전망을 전세계에서 가장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대표적 지역 중의 하나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간과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은 오사마 빈 라덴의 체포 여부와 관계없이 임오년에는 보다 본격적인 2단계의 전쟁으로 접어들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전세계.동북아.한반도에서 어떻게 전개돼 나갈 것인가를 제대로 전망하고 이에 대한 대응책의 모색은 시급하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테러전 질서는 2002년에 들어서 전세계 테러 그물망과 지원국가에 대한 육면전(六面戰)을 본격화할 것이다.


우선 미국 본토를 테러에서부터 보호하려는 향토방위전, 다음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전개하고 있는 '항구적 평화' 작전과 같은 군사전, 그리고 테러의 단서를 찾아내고 위협을 분석하며 용의자들을 체포하는 수사전이 계속될 것이다.


이와 함께 대테러전의 전세계적 정보.병참.군사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외교전, 테러조직의 자산동결, 테러리스터 재정지원 목록작성 등의 경제전, 그리고 아프가니스탄 국민에게 진행되고 있는 인도적 지원의 노력과 같은 인도적 지원전이다.


2002년에 전세계적 차원에서 벌어질 6면전 중에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군사전이 아프가니스탄을 넘어서 얼마나 확전될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동시에 야구를 특별히 좋아하는 부시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처럼 말이 아닌 행동으로 미국 주도의 대테러전을 얼마나 지원하는가를 야구경기 성적 기록하듯이 적고 있다는 외교전의 중요성이다.


2002년의 6면전은 동북아 질서에도 눈에 띄는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동북아 질서는 냉전기에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짜였으며, 탈냉전기를 맞이하면서 미국이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세력들과 연환해 중국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의 미국과 중국은 6면전의 협조 필요성 때문에 예상했던 갈등의 위험성을 상대적으로 완화하고 있다. 한편 일본은 미국의 6면전 추진 과정에서 적극적 역할을 담당해 미.일 관계를 강화하는 동시에 일본의 동아시아 위상 강화를 시도하게 될 것이다.


대테러전 시기의 동북아 질서가 장기적으로 어떤 모습을 갖추게 될는지는 중국이 단순한 경제대국을 넘어서 21세기의 새로운 문명 표준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임오년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의 분위기를 좌우하게 될 관건은 미국의 6면전에 대한 북한의 대응이다. 북한은 9.11 테러 이후 대단히 조심스럽게 모든 형태의 테러와 테러지원을 원칙적으로 반대한다고 밝혔다. 10.7 대테러전쟁이 시작되면서 북한은 테러와 보복의 악순환을 우려하기 시작하고, 미국주도 대신에 유엔 주도를 주장했다.


북한은 12월에 접어들면서 미국의 반테러전쟁이 아프가니스탄을 넘어서 세계로 확산될 가능성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시하고, 북한이 그 대상이 되는 경우에는 정의의 전쟁을 서슴지 않겠다는 언어전쟁의 포화를 열었다.


*** 北.美협상 건설적 대응을


과거 북한의 협상방식은 언어전쟁으로 시작해 행동의 벼랑끝 외교로 최대한의 실리를 확보한 다음 최종적으로 협상을 마무리하는 모양을 취해 왔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2002년 6면전의 수행과정에서 과거 행정부와는 달리 북한의 기존 협상방식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고 강하게 대응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한반도가 2002년에 전쟁과 평화의 갈림길에서 커다란 혼란을 겪지 않으려면 우리 정부가 테러와의 6면전에서는 북한과 미국 사이에서 어설픈 전략적 모호성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에는 대테러전이 정의의 전쟁의 한계 안에서 진행되는 한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노력을 보여줘야 하며, 북한에는 부시 행정부의 대테러 6면전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전쟁이므로 과거의 협상방식 대신 보다 건설적 대응을 모색할 것을 설득해야만 한다.


河英善(서울대 교수 ·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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