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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핵문제와 위기해소방안
 

2003-04-21 

21세기는 문명사 전환의 세기이다. 역사의 주인공이 근대국민국가에서 안과 밖으로 촘촘하게 엮어진 그물망국가로 바뀌고 있다. 역사의 중심무대도 일국 중심의 부국과 강병에서 다자중심의 안보, 번영, 정보, 환경, 문화로 변하고 있다. 새로운 문명표준을 선도하는 세력들은 21역사의 중심세력으로 부상하고 있으며, 과거의 문명표준을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력들은 21세기 역사의 주변세력으로 밀려나고 있다.

  

21세기 한반도는 역사의 결정적 갈림길에서 한반도 핵문제에 발목이 잡혀 있다. 핵문제는 본래 주인공들의 생존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근대국제질서에서 일국 중심 생존경쟁이 만들어 낸 자기부정의 비극이다. 가장 확실한 삶의 담보로서 개발한 핵무기가 죽음의 담보로서 작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핵무기의 역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핵초강대국들은 탈냉전과정과 함께 핵군축의 새로운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반도는 뒤늦게 핵문제에 직면하여 지난 10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인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커다란 어려움을 껶고 있다. 핵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하고, 새로운 문명표준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가지 못하면, 21세기 한반도 역사의 미래는 어둡다.

   

한반도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풀려면, 북측, 미국, 그리고 남측이 당면하고 있는 삼중의 어려움을 동시에 풀 수 있는 해법을 찾아야 한다. 우선, 북측은 북핵문제 대신에 “조선반도핵문제”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조선반도에서 핵문제가 발생하고 정세가 오늘과 같이 극도로 악화되게 된 기본원인은 미국의 뿌리깊은 대조선 적대시정책의 산물인 군사적 위협책동에 있다“(북측외무성 대변인 2003/2/18)라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모든 문제해결방식의 기준점은 우리의 자주권과 생존권에 대한 위협의 제거이다. 이 기준점을 충족시키는데는 협상의 방법도 있을 수 있고 억제력의 방법도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될수록 전자를 바라고 있다.“( 북측외무성 대변인 2002/10/25)라고 밝히고 있다.

  

북측의 해결방안은 삼중의 어려움을 동시에 풀기 어렵다. 북측이 억제력을 위해서 “조선의 배짱”(북측 로동신문 정론 2003/1/9)에 기반한 핵정책을 추진하는 경우에, 남북한의 정치/군사관계는 대단히 불안정해질 것이며, 동아시아는 핵확산의 연쇄반응 가능성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북/미관계는 예측 불가능한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이할 것이다. 동시에, 한국경제는 커다란 타격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라도, 국내외적으로 핵정책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는 없다.

  

북측은 협상의 방법으로 북미간의 불가침조약 체결을 제안하고 있다. 북측은 미국의 핵위협을 실제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법적 구속력을 마련하기 위해 북미불가침조약체결을 강조하고 있으나, 북측이 극도로 불신하고 있는 미국의 법적 담보를, 군사적, 정치적 담보 없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미국은 북측의 이러한 요구를 주한미군철수나 한미군사동맹철폐를 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의 해결방안도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은 한반도 핵문제를 1990년대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군사질서에 불안정을 가져다주는 핵확산 문제로 다루었다. 9.11테러이후 미국은 북한 핵문제를 반(反)대량살상무기 테러전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최근 발표한 “반테러전 국가전략(National Strategy for Combating Terrorism)"(2003/2)은 미국의 이러한 입장을 선명하게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보고서는 21세기 테러조직의 지구 그물망화, 첨단기술화, 대량살상무기 사용가능화의 새로운 변화를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반테러전의 기본전략으로서, 테러조직을 파괴하고, 테러조직의 지원을 막고, 테러가 자라날 수 있는 기반을 약화 시키고, 마지막으로, 미국을 방어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테러조직의 지원을 막기 위해서, 미국은 전세계국가들을 테러지원국, 반테러전 지원국, 그리고 주저하는 국가들로 나누어 새로운 반테러 동맹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특히, 북측은 7대 테러지원국 중의 하나로 분류되고 있다. 

  

따라서, 부시 행정부는 북한문제를 반테러전의 틀에서 다루고 있다. 북한의 핵정책에 대해서 당분간 반테러전의 국제기반을 다지는 외교전을 계속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는 경우에, 미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해 경제제재를 시도하고, 효과가 없는 경우에는 체제변형을 검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수단으로서, 군사제재를 남겨두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한 미국의 주도적 노력이 반테러전의 틀에서 경제제재를 넘어서서 체재변형과 군사제재 가능성의 타진으로 전개되는 경우에, 한반도의 군사적 불안전성은 급속히 심화될 것이다.

  

북한이 생존권을 명분으로 핵정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마지막 수단까지를 검토하는 경우에, 현재 남측이 제안하고 있는 북측의 핵개발금지와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남측 노무현대통령취임사 2003/2/25)은 서로 모순되기 때문에 삼중의 어려움을 동시에 해결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반도 핵문제의 21세기적 해결방안은 현재와 같은 좁은 의미의  민족적 공조와 국제공조라는 이분법적 갈등을 넘어서서 민족적 국제공조라는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문제의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 국제공조 없는 민족공조는 자신의 자주권와 생존권을  극대화하려는 과정에서, 타자의 자주권과 생존권을 침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제적 규제의 가능성을 높이게 된다. 반면에, 민족공조 없는 국제공조는 한반도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과정에서, 민족의 자주권과 생존권이 충분히 고려되지 않을 위험성이 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현명하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민족공조와 국제공조를 함께 추진하여, 한반도,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의 생존권을 서로 모순되지 않게 확보해야 한다.

  

현재, 북측과 미국이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선핵포기 후대화” 와 북측의 “선불가침조약체결 후핵논의” 이다. 미국은 북측이 제네바 기본합의문(1994) 체결이후에도 최근의 우라늄농축핵프로그램에서 보는바와 같이, 합의를 준수하지 않았으므로, 북측이 우라늄농축 및 핵무기 프로그램을 폐기하고, 플르토늄 프로그램을 재동결하고 폐기하며, 국제원자력기구와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핵확산금지조약과 안전조치협정을 준수할 경우, 북측과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다시 설정하기 위한 대화를 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고 있다.(제임스 켈리 미국무부 동아태담당차관보, 미하원 국제관계위원회청문회, 2003/2/13) 한편, 북측은 “조미기본합의문의 정신을 처음부터 유린하면서 리행을 방해하였고 끝내 파국으로 이끌어 간 것은 미국”이며,“기본합의문과 공동성명 등을 통해 약속한 경수로 제공과 정치, 경제관계 정상화, 핵무기 불사용과 핵위협 중지와 같은 그들의 공식담보가 결국 빈말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오히려 한반도 핵문제의 해결은 불가침조약체결에 있다고 강하게 언급하고 있다.(조선중앙통신 론평, 2003/3/4)

  

북측과 미국이 서로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 또 하나의 문제는 만남의 형식이다. 미국은 핵문제는 북미간에 한한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와 전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이므로 다자회담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제임스 켈리, 미국무부 동아태담당차관보, 미하원 국제관계위원회청문회, 2003/2/13/ 콜린 파우얼 미국무장관, 서울기자회견, 2003/2/25). 한편, 북측은, 미국이 북미직접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책임회피이며, 한반도 핵믄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북미협상이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측과 미국이 보여주고 있는 입장의 차이를 민족적 국제공조를 통해 극복하기 위한 첫단계는 북측과 미국의 동시 개별선언이다. 우선, 북측이 자주권과 생존권을 핵무기가 아닌 21세기적 방안으로 확보할 것을 선언하고, 구체적 표현으로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재확인하고, 국제원자력위원회의 안전보장조치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핵확산금지조약을 준수하며, 이러한 약속들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한편, 미국 및 관련당사국들은 북측이 21세기 문명표준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군사, 경제, 정치적 담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할 것을 선언해야 한다. 북한의 생존권을 21세기적으로 담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불가침선언이나 조약과 같은 법적 담보만으로는 부족하다. 미국이 성실하게 법적 담보를 이행하도록 관련당사국들의 다자 담보가 동시에 필요하다. 경제적 담보는 21세기 아시아판 마샬 플랜 수준의 다자지원을 모색해야한다. 그리고, 핵무기 없는 21세기 문명표준을 추구하는 북측의 정치 주도세력에 대해서는 다자적 정치 담보를 약속해야 한다.

  

북측과 미국 및 관련당사국들이 동시적 일방선언을 하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에 옮기는 다음 단계에 들어서면, 한반도 핵문제 관련 당사국들은 본격적으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만남들을 추진해야 한다. 이러한 만남의 형식은 현재와 같은 양자와 다자의 대립을 넘어서서 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왜냐하면, 한반도 핵문제의 성격자체가 복합적이어서, 양자 또는 다자만으로 해결의 돌파구를 찾기는 어렵다.`

  

해결방안의 구체적 내용은 북측이 21세기 자주권과 생존권을 핵무기가 아닌 21세기 문명표준의 추구로서 추진하겠다는 새로운 정책방향을 국제적으로 공인 받기 위해서, 군사적 이용 가능성이 있는 핵시설 및 물질의 폐기 및 사찰문제를 불가피하게 포함해야 할 것이다. 한편, 미국 및 관련당사국들은 북측의 새로운 정책방향을 현실적으로 돕기 위한 군사, 경제, 정치적인 방안을 구체화해야 할 것이다.

  

한반도,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질서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21세기 기본합의서가 마련되고, 이러한 합의를 관련당사국들이 실천에 옮길 때, 한반도는 21세기 신문명에 합류할 기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한반도 핵문제의 핵심당사국들이 21세기 기본합의서 마련에 실패하고, 핵개발과 반핵제재의 악순환을 계속할 때, 한반도는 21세기 신문명의 변방을 서성거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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