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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조선책략
 

2003-02-28 

세종연구소 간담회


사회자:

 

“21세기의 조선책략” 간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시작하기 전에 먼저 이 콜로키움을 개최하게 된 배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연구소가 발행하고 있는 『국가전략』지의 ‘정책과 전략’에서는 일반 사람들이 읽어서 가볍게 느낄 수 있으면서도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글을 싣고자 합니다. 거의 백 년 전에 나왔던 『조선책략』이 쓰여질 당시의 상황과 지금 우리가 21세기로 들어가면서 맞게 되는 상황이 상당히 유사점도 많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외교적인 장래 그리고 군사 ․ 안보적인 측면, 이런 것들을 이제 종합적으로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를 ‘조선책략’의 내용에 대한 소개와, 그것이 21세기를 맞이하는 지금에 주는 의미 그리고 우리가 어떤 식의 전략적인 사고를 해야 되는가. 이런 것들을 짚어 본다는 취지에서 간담회를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하교수님께서는 실제로 ‘조선책략’을 주제로 강의를 하신 적도 있고, 저도 여러번 말씀하신 것을 들어서, 이쪽 분야에서는 가장 권위 있게 말씀해주실 분으로 사료되어 모셨습니다.

 

하영선:

 

제가 “21세기의 조선책략”이라는 제목으로 얘기를 해 보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런 제목으로 본격적으로 얘기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얼마나 길게 얘기할 수 있을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 “21세기의 조선책략”이란 제목을 붙이게 된 배경에 대해 조금 설명을 한 다음에 본론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제가 만약 ‘19세기의 조선책략’이란 제목으로 얘기를 한다면 당연히 사학자분들의 보다 전문적인 연구들에 비하여 대단히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을 것 입니다. 또 반대로 ‘21세기의 한반도전략’ 또는 ‘21세기의 신한국책략’이란 제목으로 얘기를 한다면, 제가 말씀드리는 것보다 경우에 따라선 세종연구소의 지역이나 안보팀들이 보다 세부적인 검토를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그런 의미에서는 ‘21세기의 신한국책략’도 아니고 ‘19세기의 조선책략’도 아닌 두 개를 섞은 “21세기의 조선책략”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이 조그마한 보탬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9세기의 조선책략’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제가 초보자이고 ‘21세기의 신한국책략’에 대해서도 세부적인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21세기에서 본 ‘조선책략’의 일면에서는 아마 19세기의 ‘조선책략’을 전문하는 분들이 보는 시각보다는 조금 미래지향적인 면에서 ‘조선책략’을 한번 살펴 볼 수 있을는지 모르고, 또 반대로 21세기의 신한국전략을 늘 검토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미래를 내다보는 속에 과거를 좀 품게 하는 생각을 같이 할 기회를 혹시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오늘 얘기의 주제가 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얘기는 19세기의 ‘조선책략’에서 시작해서 21세기의 신한반도전략으로 마무리를 짓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순서에 따라,  우선 ‘조선책략’을 기존의 실증사학적인 연구를 기반으로 19세기와 21세기의 비교사적 시각에서 검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9세기 중반 우리가 전통적인 중국적 세계질서 속에서부터 유럽 중심의 근대 국제질서 속으로 편입되어 들어가는 과정에서, 당시의 조선은 세력균형이라고 하는 새로운 틀 속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했으며, 지금 탈냉전을 맞이하고 냉전의 구도가 서서히 깨져 나가면서 아직 동아시아에서는 유럽과 같이 탈냉전의 지역질서가 이루어지지 않고 21세기의 또 하나의 다른 세력균형의 모습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들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19세기의 세력균형적인 갈등 속에서의 한반도 모습과 21세기 신세력균형적인 갈등 속에서 한반도의 모습은 비교사적인 면에서 우리에게 어떤 시사를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우선 듭니다.


두 번째로는 비교사적인 면의 중요성을 넘어서서 19세기 중반에 우리가 대단히 이질적인 새로운 세계질서 속으로 편입되어 가면서 동아시아의 근대 모습을 처음으로 형성하게 됩니다. 이 기간은 근대국가의 형성이 시작되고 또 동시에 동아시아 나름의 근대 국제질서가 만들어 지기 시작하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동아시아의 근대국가 또는 근대 국제질서의 모습을 형성사적인 차원에서 검토하는 경우에도, 21세기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전개되는 모습의 첫 출발이라는 의미에서 19세기 ‘조선책략’에 대한 이해는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 번째로는,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과거 속의 미래를 또는 미래 속의 과거를 얘기함으로서 과거를 전공하는 분들과 미래를 전공하는 분들에게 혹시 보탬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오늘 주제의 중심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미래사적인 차원에서 ‘조선책략’이 가지는 의미를 우리가 좀 살펴봐야 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동시에 동아시아 내지는 동북아시아에서도 탈냉전적, 더 나아가서는 탈근대적 세계질서, 지역질서의 모색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경우에, 19세기의 근대 국제질서 형성의 모습은 앞으로 전개되는 지역질서의 모습 또는 한반도 입장에서 전개되었으면 하는 동아시아 지역 질서의 모색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이런 세 가지 문제의식을 염두에 두고 우선 ‘조선책략’을 풀어 나가고, 시간의 제약도 있을 테니까 1세기를 뛰어 넘어서 21세기 초 한반도의 신한반도 책략으로 얘기를 끌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21세기 전략은 세종연구소에서 매일 자료를 보고 계시는 전문가들과 깊이있는 의견교환을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선책략’에 대해서는, 제가 실증 사학적으로 상세한 설명을 드릴 위치에 있지도 않고 또 그럴 게재도 아닌 것 같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조선책략』이 쓰여지게 된 시기는 1880년 여름에 김홍집을 대표로 하는 제2차 수신사가 일본을 방문해서 청의 일본주재 외교관이었던 하여장(何如璋)과 황준헌(黃遵憲)을 만났을 때입니다. 7~8월 한 달 가까운 기간을 동경에 머무르면서, 실제 교섭의 주목적은 물론 일본과의 1876년 한 ․ 일 수호조규 이후에 생겨났던 여러 가지 문제들, 즉 무관세 교역의 조정, 미곡 수출의 문제, 추가 개항의 문제 등이 현안문제였었지만, 보다 더 배후에는 아마도 일본에 대한 정보수집이 중요한 목적의 하나 였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수행원의 규모로 봐도 60명 가까운 인원이 2차 수신사 일행으로 따라 갔었습니다. 일본과의 교섭이 진행되면서 당시 청 외교관들과의 면담이 이루어지게 되고, 6차례 필담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일련의 과정에서 하여장이나 황준헌과 당시의 동아시아 질서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또 그 속에서 조선이 어떻게 해야 이 어려운 변화 속에서 살아남을 것인가 하는 얘기를 하게 됩니다. 그 얘기를 끝내 가는 과정에서 황준헌이 대체로 하여장, 황준헌 또 더 넓게는 당시의 청에서 조선이 포함되어 있는 이 지역의 외교, 군사문제를 주관하고 있는 이홍장의 의견을 포함한 것들을 간략하게 적어 준 글을 받아 오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이 글 자체는 그렇게 길지 않습니다만 국내적으로 정부차원에서도 상당한 논란이 있었고, 민간차원에서도 많은 반론과 상소가 계속됩니다. 그중에도 이만손의 영남 만인소를 가장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이 당시 조선의 지역질서 파악과 생존전략 모색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만은 확실합니다.


따라서 이런 배경을 염두에 두고 다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대강 무슨 얘기를 조선책략에서 황준헌이 적고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우리의 생존전략에 관한 글을 남에게서 받아 온다는 것은 답답한 일입니다. 황준헌도 글 마지막 부분에 남의 책략을 대신 써준다는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만, 이것은 당시 1880년대 상황에서 조선이 살아남는 또는 더 나아가서는 번영할 수 있는 책략을 청의 입장에서 검토한 것입니다. 수신사 김홍집이 이 글을 가지고 귀국함에 따라, 국내에서는 상당한 논란이 일게 됩니다. 그래서 그 내용을 아주 간략하게 현대적으로 살펴보는 방향으로 하겠습니다. 우선 글의 처음이 러시아에 대한 서술로 시작됩니다. 러시아는 얼마나 큰 나라인가 또 근대로 들어오면서 얼마나 확대되어졌는가, 즉 공간적으로 지난 삼백년 동안 유럽에서부터 중앙아시아로, 그리고 우리가 포함 되어 있는 동북아시아로 러시아 세력의 확장이 진행되어 온 것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우선 1880년대 당시 동아시아지역에서, 요즘 우리가 표현하는 위협분석의 핵심목표로 방아(防俄)를 삼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에서부터 문제를 풀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당시 동아시아의 핵심위협을 러시아로 요약하는 것은 물론 상당히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과연 당시의 위험분석에서 방아가 가장 정확한 분석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21세기의 생존전략을 구상하고 실천계획을 마련하는 경우에도, 21세기 한반도의 가장 핵심이 되는 위협 또는 위험을 어떻게 분석하느냐 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방아에 동의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서, 당시의 유림들에 의해서 올려진 상소인 영남 만인소에서도 과연 조선이 러시아를 제1위협의 요소로 설정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합니다. 또 우리 경우에 당시 일본과의 관계를 어떻게 평가해야 하느냐 하는 복잡한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방일(防日)도 대단히 중요한 목표일 수 있는데 당시 조선의 안보목표를 방아로만 설정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왜 방아일이 아니라 방아가 되었는가는 보다 구체적인 실증 사학적 검토가 필요하겠습니다만 당시의 동아시아 구조를 지구적 차원에서 본다면, 분명히  아시아지역에 해상으로 들어 왔던 영국과, 대륙을 통해 확장한 러시아와의 장기적인 대결양상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미국이 냉전시기의 주적 개념을 소련으로 잡았던 것처럼, 19세기 영국의 경우에는 줄곧 러시아라는 세력을 동북아에서 주적 개념으로 설정하고 있었고, 당시의 지구적인 정보 네트워크는 대체로 공로(恐露)의식을 강조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당시 청의 입장에서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1876년 조 ․ 일 수교가 이루어지고, 1879년에 일본의 유구점령 사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에 따라서, 사실은 일본의 위협이 상당히 점증하는 분위기였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1880년 여름에 우리에게 써 준 조선책략은 위협의 대상으로 러시아만을 지목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은 단기적으로 현실에 민감한 외교관이 쓴 글이고, 1880년 초 이 지역의 중요한 사건이었던 중앙아시아지역의 이리(伊犁)분규에서 청과 러시아의 갈등이 거의 무력적인 충돌직전까지 갔던  국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청이 러시아의 위협을 위협분석의 핵심목표로 일단 설정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방아가 당시 동아시아질서 또는 조선의 첫 번째 목표가 돼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적어 주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방아를 하려면 친중국(親中國), 결일본(結日本), 그리고 연미국(聯美國)이 바람직하다는 권고를 하면서 그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일 먼저 강조하고 있는 친중국의 경우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1880년대는 이미 유럽 중심의 근대 국제질서가 휘몰아쳐 들어오고 있습니다만, 그 이전에 대단히 오랜 기간 동안 중국적인 세계질서 속에서 사대교린이라는 행동양식의 기반 위에 이루어져 왔던 조선과 중국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이것을 계속 유지, 강화하는 것이 조선의 입장에서도 대단히 바람직한 것이 아니겠는가는 주장입니다.  또 동시에 청이라는 중국세력이 방아를 하기 위해서 조선에게는 중요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에게 관심이 가는 설명은 결일본입니다. 아까도 잠깐 말씀드렸습니다만 당시의 상황에서 조선의 주적으로는 러시아와 일본을 동시에 넣었어야 할지 모릅니다. 경우에 따라선 방일 ․ 아가 됐을는지 방아 ․ 일이 됐을는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청이 우리에게 결일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청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설명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동아시아질서를 분석하고 직접적 위협의 대상으로 러시아를 우선적으로 설정하고, 조금 전에 말씀드린 1879년 유구사건 등으로 일본은 충분히 믿을 만한 세력은 못되지만, 군사전략 또는 국제정치적 책략을 위해서 우선 주적을 설정하고, 그것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일본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 우리에게 결일을 상당히 강하게 설득하고 있습니다.


당시 조선과 일본의 역사적인 관계를 짧게 설명하고 조선이 일본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기 대단히 어려울는지 모르지만 지금 동아시아의 역학관계에서는 러시아를 주적으로 잡고 일본과 맺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일의 위험을 불식하기 위해서 황준헌의 글에서는 여러 가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일본이 조선에 대해서 군사적인 위협이나 욕심이 있다하더라도, 당시의 청은 일본을 겉으로는 대단히 강한 세력으로 보이지만 내부적으로는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차원의 문제, 경제적인 어려움의 문제 등으로 외화 내빈한 것이 일본세력이며, 따라서 일본을 너무 겁내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또 만약 사태가 악화되어 1870년대 이래의 일본의 정한론이 현실화되어 일본이 조선을 침범한다고 하더라도 조선이 충분히 그것을 대응해 나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 중요한 이유는, 우선 일본이 쳐들어와도 이길지 질지 모르고, 또 조선이 가지고 있는 끈질긴 힘으로 장기전을 하는 경우엔 일본이 장기적으로 정한정책을 구사할 만한 힘이 없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친중국 하는 상황에선 그렇게 겁낼 일이 아니라는 충고를 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 연미국하라는 충고를 우리에게 하고 있습니다. 조선책략은 결과적으로 조선의 연미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조선책략을 김홍집 일행이 받아 오고 난 직후 고종의 결정에 의해서 대미수교를 위한 모색들이 1880년 하반기에 시작되어 최종적인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은 1882년 5월입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연미론이 국내에서는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입니다.


이러한 연미론에 대해서 조선책략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우선 미국의 국력을 평가하면서, 명실상부하게 전 세계 제일의 부국으로 부르고 있으며, 두 번째는 그동안 동아시아가 겪어 왔던 유럽열강들과 성격이 상당히 다른 대국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당시 중요 유럽열강들에 비해서는 인민이나 영토에 대해서 직접적인 욕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으므로, 연미의 불안을 지나치게 가질 것이 없다고 말하면서 대단히 우호적인 지적들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걱정하리라고 생각하는 서교문제도 그동안 우리에게 흔히 서교로 알려져 있었던 카톨릭과 미국의 신교에 해당하는 아소교는 성격이 많이 다르므로 그렇게 겁낼 것 없다는 등의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조선책략은 조선이 미국과 연하는 것이 살아남는 데 또 하나의 중요한 방책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지적해 줍니다.


따라서 조선책략의 전체 줄거리는 지금 말씀드린 대로 1880년이라고 하는 특정 시기의 동아시아지역 질서가 짜여진 모습을 청 나름대로 위협분석을 하고 난 후, 안보의 중심목표를 방아에 두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의 모색으로 당시의 조선이 가지고 있는 스스로의 힘만으로써 방아를 할 수 없기 때문에 우선 친중국을 새롭게 하고 세력균형의 원칙에 따라서 결일본, 연미국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 권유의 핵심내용이며, 그것에 덧붙여서 동시에 자강책을 모색하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당시엔 세력균형을 균세지법이라고 부르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요약하자면 균세와 자강의 두 가지 권유를 우리에게 합니다. 결국 김홍집은 균세와 자강이 1880년대 조선의 살 길이라는 조선책략과 청나라의 진보적인 지식인인 정관응이 썼던 이언(易言)을 동시에 받아 가지고 돌아오게 됩니다.


이것을 받아 가지고 김홍집이 돌아온 후, 아까 말씀드린 대로 국내에서는 상당한 논란이 관료들과 일반지식인 사이에 벌어졌습니다.  과연 우리의 주적은 러시아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었으며, 또 친중국에 대해서는 그렇게까지 격한 논란이 없었습니다마는, 결일은 바람직한 것인가, 연미는 타당한 것인가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갑론을박이 벌어졌었습니다. 실제 역사의 전개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조선책략이 들어온 이후에 고종에 의해서 연미의 길이 모색되어지고, 일단 1882년 5월 조선은 미국과 수교의 길을 걷게 됩니다. 우선 이런 것들이 전통적인 세계질서 속에서 살아가던 1880년대 상황에서 우리가 근대 유럽 중심의 국제질서를 만나면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는 전환기에 나타났던 책략의 모습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중국적인 세계질서에선 오늘날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략개념 또는 안보개념의 설 땅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중국적인 세계질서는 일차적으로  근대 국제정치 단위의 국가라는 단위개념과는 대단히 다른  천하라는 단위개념에 서 있었고, 그것이 추구하는 목표도 근대 국제질서가 추구하는 부국강병의 목표와는 달리 최소한 명분상으로는 예(禮)라는 목표를 추구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근대 국제질서에서 균세와 자강이라는 기본 행동양식을 갖추지 않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고 한다면, 전통적인 질서 속에서는 사대교린이라는 행태의 모습으로 자기 나름의 삶을 보존하고 유지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지금 읽어 보면 대단히 상식적인 책입니다마는 조선 책략과 관련된 당시 수신사 김홍집의 필담 내용을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가령 하여장이 균세를 설명하자 김홍집이 『만국공법』에서 그 글자는 봤지만 구체적으로 실천적 의미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한 충분한 준비는 없다는 대답을 하게 됩니다. 1840년대에 중국이 영국과 부딪치고, 1850년대에 들어오면서 미국과 일본이 부딪치고, 조선도 1860년대에 들어서면서 병인 ․ 신미양요 같은 외세와의 부딪침을 직접적으로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 할 기본 행동양식의 준거 틀로 흔히 삼았던 균세나 자강이 1880년대의 조선인들에게 그렇게 익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선책략을 받아가지고 와서 우리의 책략에 관한 논란을 하고, 아주 초보적인 틀에서 균세와 자강의 모색이 1880년대에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황 속에서 1884년의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가고, 근대적인 모델을 일단 수용해 보려던 개화를 중심으로 하는 소수의 세력들은 철저하게 제거되는 방향으로 1880년대의 우리 역사는 진행됩니다.


형성사적인 차원에서는 1880년대에 모색되어졌던 생존전략이 우리의 생존을 확보하지 못하고 결국 한반도는 일본의 제국주의의 틀 속에서 살아야 되는 20세기 상반기를 맞이하였으며, 1945년이 되면서 다시 한번 미 ․ 소의 냉전적인 틀 속에서 그 나름의 생존전략을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마련해야 되는 지난 반세기의 기간을 겪게 됩니다. 시간관계로 이 시기를 일단 건너뛰어서 오늘 얘기의 중심이 될 21세기로 와서 조선책략적인 사고를 한다면 어떤 내용이 될 것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9세기 중반에 새로운 유럽중심적인 근대 국제질서 속에서 우리가 살아남는 길을 모색했듯이,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짧게는 아마 탈냉전이라는 새로운 시기의 동아시아적인 상황 에서 우리 나름의 사람의 모색이 필요하고, 보다 장기적으로는 탈근대 지향적인 새로운 질서에서 한반도적인 삶의 모색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19세기의 조선책략이 당시의 대국이었던 청에 의해서 쓰여진 것처럼, 또 한번 21세기의 신한국책략이 미국 또는 일본에 의해서 쓰여진 것을 번역 또는 번안해서 우리의 생존 ․ 번영전략을 마련해야 될 것이냐, 아니면 보다 소박할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나름의 시각에서 21세기 동아시아의 또는 세계전반의 변화를 읽고 그 속에서 책략을 모색해야 하는 절실한 시기가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이러한 목적에서 다음과 같이 얘기를 풀어 보겠습니다. 우선 첫 번째는 조선책략이 위협분석 또는 위험분석으로 시작되고 있는데 오늘의 위협분석을 위해서 한반도가 포함되어 있는 공간을 동아시아로 불러야 할지 동북아로 불러야 할지 아시아 ․ 태평양으로 불러야 할지 하는 것 자체도 아직 불확실합니다. 21세기 한반도의 생존공간의 명칭 자체가 하나의 새로운 언술체계로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마는 일단 잠정적으로는 좀 막연하게 동아시아 내지는 동북아질서라고 하는 경우에, 이 공간에서 무엇을 위협요소로 파악하고, 이러한 위협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이며, 또 어떻게 보다 나은 삶을 창조해 나갈 것인가 하는 질문을 우선적으로 풀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가령 미국 국방부의 연례보고서도 늘 위협분석부터 시작하고 있고, 일본의 방위백서도 일본 나름의 위협이나 위협분석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제 나름으로 21세기 동북아 위협분석을 해본다면, 조선책략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하나의 주적 또는 위협을 설정하고, 그것에 대한 책략을 마련하기는 조금 어렵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한반도의 직접적 생존공간을 동아시아 내지는 동북아시아지역으로 잡는다고 하면 당장 부딪치는 것은 적어도 4대 위협론이며, 우선적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러한 위협론 또는 위험론은 연구소, 학계, 전책결정자, 언론의 차원에서 상당한 논란이 있어야 되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국내에서 아직까지 본격적인 논란이 있는가는 잘 모르겠습니다.


위험의 우선순위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좀더 토론과정에서 생각해 보더라도 첫 번째로 문제되는 것은 미국역할변경론 또는 미국쇠퇴론의 문제입니다. 바꿔 말해서, 미국의 역할이 이 지역에서 바뀌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미국은 탈냉전 이후에 초강대국 소련의 해체에 따라서 외롭게 남은 초강대국의 위치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힘이 약화된 미국이 동아시아 문제를 볼 때는, 미국의 상대적 쇠퇴론이 옳은 것이냐 아니면 최근에 다시 논의되고 있는 미국의 부활론이 옳은 것이냐를 우리 나름으로 평가하는 것이 제가 보기엔 대단히 중요한 숙제인 것 같습니다. 그것에 따라서 동아시아 질서의 세력 재편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힘을 연계시킬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제 개인적인 입장은 미국 자신이 보는 미국도 1980년대가 미국의 상대적 쇠퇴론의 전성기였다고 한다면, 1990년대는 미국의 상대적 부활론이 재등장하여 서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러한 변화와 관련하여,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추구하고 있는 외교정책의 기본명분으로 1994년 대통령의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관여와 확장정책(engagement and enlargement policy)을 구체적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역적 적용으로 1995년 2월 나이(Joseph Nye)가 주관이 된 동아시아 ․ 태평양 전략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나이 보고서는 조금 더 심층 분석되어야 합니다. 특히 정부가 충분히 분석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세종연구소 같은 연구소가 세부적인 검토를 해야 하는 보고서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클린턴이 재선되는 경우에 이 보고서의 기본방향은 1990년대 중후반의 미국의 기본 사고유형으로 그대로 남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냉전시기의 봉쇄정책과 탈냉전의 관여와 확대정책이 가지는 의미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가령 구체적인 예로 최근에 벌어진 중국과 대만의 양안문제를 보면서도  미시적으로 사건을 추적하기보다 미국이 적어도 1994~1995년에 미국의 대외정책, 특히 동아시아정책의 의식적인 또는 잠재의식적인 틀로서 어떤 사고를 하고 있느냐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나이 보고서를 처음 보고 흥미 있게 느낀 것은 관여정책에 포함되어 있는 국가와 확대정책에 포함되어 있는 국가의 구분입니다. 또 거기에 포함 안 된 국가는 뭐냐라는 것입니다. 중국 같은 경우에 일반 확대정책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관여는 기존의 동맹이나 우방 국가들의 관계를 더욱 유지 ․ 강화하는 의미로 쓰고 있습니다. 한편, 확대는 동맹, 우방국관계를 넘어서서 관계를 확대하는 국가군을 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관여정책에 포함되어 있는 국가군으로 우리가 당연히 꼽을 수 있는 것은 일본, 한국, 아세안,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태평양 국가들이며, 확대정책에는 중국, 러시아, 베트남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미국이 탈냉전의 동아시아전략을 기본적으로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가를 연역해 보는 경우에 미국이 중국에 대해서 취하고 있는 입장은 선택적으로 기존의 정치 ․ 경제 ․ 문화적 관계에 관여는 하나 미국의 대중정책 저변에 깔린 것은, 중국은 기본적으로 시장민주주의로 확대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꿔서 얘기하면 시장민주주의적인 전환의 모색이 이루어져야 포괄적 관여가 사실상 가능하다는 것이고 동시에 유사시에는 군사적인 대응조치까지 포함한 소위 삼중의 정책방향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반면에 북한의 경우는 어떻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최근에 인터넷을 통해 볼 수 있는 미국의 친북 연구소의 보고서들은 미국의 대북한정책을 관여와 확대정책의 틀에 맞추어 아주 세련되게 분석하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 국내 연구소의 보고서 중에 북한 문제를 그렇게 치밀하게 관여와 확대정책의 변화에 대응해서 북한이 대화와 협상전략을 모색하고 있다는 지적을 하고 있는 글들을 제가 잘 안 읽어서 그런지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다만, 북한이 미국의 관여와 확장을 틀을 대단히 정확하게 읽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마는, 잘못 읽고 있다고 느끼는 부분은 나이 보고서는 북한과의 관계를 관여와 확대의 구체적 항목에 넣지 않고 또 하나의 다른 항목으로 미국과 북한과의 제네바 합의를 실천해 나가는 것이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중요한 과제로서 따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 얘기는 관여와 확대의 틀에 넣기에는 아직 제네바 합의서의 집행이라는 먼 길이 남아 있다고 하는 것을 의식적으로 또는 잠재의식적으로 미국의 정책담당자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외 일본 경우는 예상대로 관여정책으로 분류되는 국가들중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 요즘 유행하는 지구적 파트너십으로서의 미 ․ 일관계가 강조되고, 얼핏 보면 그것은 대단히 좋은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은 조금 들여다보면  미국의 입장에서는, 비록 미 ․ 일관계가 경제적인 차원에서 갈등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만,  미국의 리더십으로 충분히 일본을 끌고 갈 수 있으므로, 일본을 함께 품고 가는 것에 상당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맥락 속에서 미 ․ 일 관계는 일단 조정돼 나갈 것으로 볼 수있습니다. 따라서 1994년 말에 나온 일본 신방위대강이나 또는 신중기 방위 5년 계획은 미일 동맹관계의 유지, 강화라는 틀 속에서 조정되는 모습으로 일단 파악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아직 자리 잡지 않은 개념입니다마는 차별적 삼각관계가 동아시아지역에서 미국의 리더십이 모색하는 틀일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은 미 ․ 일을 기본 축으로 하고 중국과는 선택적 관여를 유지하면서 시장민주주의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갈등과 긴장관계를 상당히 지속해 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는 경우에 동북아의 새로운 구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느냐는 것이 첫 번째 검토해야 될 과제입니다. 아까  미국의 상대적인 쇠퇴와 부활의 시각이 뒤범벅되어 현실적으로 표현된 것이 관여와 확대정책이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것이 동아시아에서 차별적 삼각관계의 모색으로 투영되는 경우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회와 위험은 무엇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최근에 중국과 대만의 양안관계같은 사태에 있어서도 부분적으론 난처한 면이 있었을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한반도적 또는 한국적인 차원에서 동북아의 차별적 삼각구도에서 어떤 식으로 힘을 연계할 것이냐 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숙제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문제입니다. 19세기의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 책략을 21세기에 맞게 수정하여 친미, 결일, 연중국하면 문제는 해결될 것인가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을 우리에게 하게 만듭니다.


두 번째 위협 또는 위험론은 최근에 많이 논의되는 중국위협론을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하는 문제입니다. 아마도 중국위협론의 논의 자체는 특히 최근에 와서 활성화되는 것 같습니다. 그 이전에도 간헐적인 논의가 있었습니다마는 특히 1970년대 말이래 등소평을 중심으로 한 개혁개방정책으로 1980년대의 고도성장과 1990년대의 지속적 고도성장이 이루어지게 됨에 따라, 주로 경제적 변수를 중시하는 연구 또는 분석틀에 의해서 중국이 21세기 초에 초강대국으로 등장할 것이라는 대단히 낙관적인 미래예측론들이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과 연관되어서 중국위험론이 최근 3~4년 동안 대단히 유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 일본은 처음에는 이 문제를 보수적인 시각에서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요즘은 일본의 대표적 진보 잡지로 알려져 있는 『世界』도 지난 3월에 “중국위협론의 허와 실”을 특집으로 해서 대단히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습니다. 또 우리가 일본이나 미국의 동북아 전문가들을 만났을 때, 왜 유독 한국만 중국위험론에 대한 논의가 없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 흥미 있는 주제 중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토론과정에서 더 얘기가 돼야 하겠습니다마는 제 개인적인 입장에선 중국위험론의 논의중에 조금 더 신중하게 검토해야 할 변수들이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논의 자체가 우선 중국의 경제에서 시작된 것이라면 중국경제의 향후 10년, 20년 또는 50년의 장기전망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중국경제 전문가들이 평가할 문제이지만 상식적인 차원에서도 또는 중국인 스스로도 고도성장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에 대해 여러 가지 부정적인 측면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령 국영기업체의 비효율성 문제, 중앙과 지방간 불평등의 문제, 또는 연안과 내부간 경제성장의 격차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만약 중국이 동북아의 위험 대상국으로 등장하려면, 첫 번째 필요조건은 지금의 고도성장이 상당한 기간 장기화돼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 중요한 문제는 중국 국내체제, 특히 국내 정치체제가 이러한 고도 경제성장을 계속 유지해 나갈 수 있게 밑받침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경제학적인 연구들이 시급하게 다뤄줘야 될 문제입니다. 특히 등소평 사후의 정치체제가 안정성을 가지고 이런 경제적인 활동을 계속 위에서 밀어 줄 수 있는 기반을 유지해 갈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중국과 한국이 쉽사리 비교 가능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우리의 경우에 있어도 1980년대의 상황을 보면 일정한 기간의 권위주의적인 체제 속에서의 고도성장이 어느 시기에 가서는 소위 민주화의 딜레마를 가져다주었으며 보다 구체적으로 광주사태라고 하는 상징적인 사건을 불가피하게 겪었고, 또 그것들을 어느 정도 무마하고, 품어나가는 데는 적어도 10년 또는 15년의 기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중국도 언젠가는 아마도 천안문의 유산을 풀어야 할 시기가 다가올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정치적으로 어떻게 성공적으로 풀어나가느냐하는 것이 두 번째로 대단히 중요한 숙제일 것 같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의 필요조건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충족될 때, 중국은 이 지역에서 보다 중심적인 힘으로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이 과연 패권국가적인 모습으로 등장할 것이냐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숙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저도 미국에서 공부를 했습니다마는 미국의 중국연구가 대단히 한계가 있을는지 모른다는 말씀을 자주 드리는 것은 중국의 생각하는 방식, 행동하는 방식,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낸 제도적인 모습 속에는 지나간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전통적인 세계질서를 보는 눈이 유전인자적으로 아직도 살아남아 있습니다. 19세기 서세동점 이후에 중국은 유럽 중심의 근대 국제질서에 편입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또 하나의 독특한 유럽화라고 할 수 있는 사회주의적인 사고와 행위 및 제도를 동시에 받아들이게 되었고, 마지막으로 오늘의 현실 속에서 힘을 통해 국가의 이익을 추구해 가야 하는 현실주의적인 국제정치의 눈도 동시에 마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약 앞에서 언급한 두 개의 전제가 어느 정도 충족되어져서 지금보다 보다 큰 힘으로서 중국이 이 지역에서 자리 잡게 될 때는, 이러한 전통적 ․ 사회주의적 그리고 현실주의적 사고, 행위 및 제도는 새로운 조화를 모색하게 될 것입니다.


중국위험론과 함께 검토해야 할 것은 우리 경우에  많이 얘기하는 일본위험론, 일본대국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일본을 위협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이미 조선책략에서도 중요하게 논란이 되었으며, 동시에 결일해야 할 것이냐 방일해야 될 것이냐 하는 문제도 조선책략에서 신중히 다뤄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것은 100여 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일본이라는 힘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토론을 위해서 문제를 제기한다면, 일본은 1990년대에 들어서서 계속적인 정치적인 불안정이나 경제적인 불황 속에서 일본 스스로도 이젠 일본의 상대적 쇠퇴론에 대한 불안, 또는 걱정들을 보다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경제대국으로 커 온 일본이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 공간에서 일정한 정도로 종래의 일국 번영주의에서 벗어난 사고나 행동양식, 새로운 제도의 모색을 하지 않고서는 명실상부한 대국이 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을  스스로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일본이 이러한 정책목표를 일사분란하게 달성할 수 있는 것이냐에 대해서는 제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회의적입니다.


나이가 「Bound to Lead」에서 일본이라고 하는 세력을 대단히 한계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내부에서도 그런 얘기를 하는 사학자들이 있습니다. 일본이 19세기에 어설픈 근대국가 형성에 재빠르게 성공했기 때문에 결국 21세기를 실패할 수밖에 없을는지 모르며, 또 한번의 도약에서는 좌절할 수밖에 없을는지 모른다는 것을 다께우찌는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빨리 근대국가 형성에 적응하지 못했던 다른 나라들이 어쩌면 장기적으론 성공의 씨앗일는지 모른다는 얘기를 다께우찌가 상당히 이른 시기에 했습니다. 이러한 평가는 21세기적 차원에서 대단히 시사적이며 또 오늘의 시점에서 일본이 곰곰이 반추해 보아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일본이 경제대국에서 포괄적인 의미의 대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일국번영주의를 벗어날 수 있는 보다 강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복합적인 단위체의 모색이나 새로운 복합적인 목표를 추진할 수 있는 힘을 필요로 하는 데 제 주관적인 느낌으로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잘 모르겠습니다마는 일본이 그런 역량을 충분히 축적하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역시 한반도 문제입니다. 북한체제 불안론일 수도 있고 그것과 연관된 북한위험론이 우리 또는 동아시아를 보는 많은 사람들의 위협분석에 가장 중심 되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북한의 문제에 대해 국내의 합의기반이 쉽사리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체제는 붕괴할 것이냐, 또는 붕괴하지 않을 것이냐라는 질문이나 또 어떤 식으로 북한체제가 전개되어 나갈 것이냐, 또 그것이 한반도 전체를 불안으로 몰고 갈 것이냐 아니냐 하는 질문들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고 주 전공분야도 아니어서 길게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마는 제가 생각하는 시나리오는 대강 이런 것들입니다. 저는 북한이 탈냉전을 맞이하면서 적어도 삼중적으로 생존전략을 모색하는 것 같다는 얘기를 해 왔고 금년도 1월 1일 공동사설문을 읽으면서 북한이 그 용어는 사용하지 않지만 제가 주관적으로 생각했던 북한의 사고나 행동양식의 틀이 현재까지는 그렇게 틀리지 않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탈냉전 삼중전략중에 외세와의 관계개선, 특히 미 ․ 일을 중심으로 하는 선진자본주의 국가와의 관계개선이 탈냉전 이후의 최근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에 나타난 대표적인 변화입니다. 이것과 연관해서 우리식 사회주의에 기반한 국내 역량강화를 위해서 금년 1월 1일 공동사설로 삼대진지강화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로는 대남이나 통일정책에서 현상유지, 또 다른 표현으로 하자면 시간차 개방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이 북한이 현 상황에서 모색하는 목표인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체제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 자본주의적인 시각이나 또는 근대 국제정치적인 시각에서 보면 부정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우리식 사회주의 방식에 의해서 일단 체제가 유지되어 가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정책목표 자체가 지금 북한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풀 수 있도록 설정된 것이냐에 대해서는 전 개인적으로 대단히 회의적입니다. 북한이 현재의 정책목표를 가능한 한 빨리 바꾸지 않으면 북한체제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고, 그 상황에서는 북한의 정치 주도세력이 본격적인 어려움을 맞이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우리식 사회주의체제의 체제유지 방식으로도 유지할 수 없는 딜레마에 부딪치게 될 것입니다. 그 시간은 아마도 지금 강화하려고 하는 국체역량의 기대하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시기쯤 가서 다가올 것으로 보입니다. 그 상황에서 대안으로서, 북한은 대남관계를 개선할 것이냐 아니면 긴장관계를 더 조성할 것이냐 하는 어려운 선택을 맞이하게 될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런 것들이 제가 말하는 일종의 4대 위험론 또는 위협론입니다.


그러면 이런 상황에 동아시아 또는 동북아가 놓여 있다고 하는 경우 우리는 21세기의 생존번영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19세기 황준헌의 조선책략에서는 19세기 생존전략을 균세와 자강으로 짜라고 조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에 또 한번 균세와 자강이라는 목표로 우리가 살아남고 번영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커다란 숙제입니다.


이 숙제를 풀기 위해서는 19세기와 21세기는 같은 것은 무엇이고 다른 것은 무엇이냐에 대한 체계적 검토가 이뤄져야 합니다. 우선 유사성으로 보면 명백히 20세기 말에 불행하게도 동아시아는 또 한번의 세력 재편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유럽과 같이 세력 재편기에 그것을 조적할 수 있는 지역적 질서나 단위체의 동시창출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동아시아에서는 개별단위체들이 각각의 힘을 모색하는 형태로 세력재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1세기의 동아시아 국제관계가 19세기의 세력 각축과 유사할 가능성을 걱정할 필요는 있는 것 같습니다. 단, 세력이 재편되는 힘의 구성내용 면에서 19세기와 21세기는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할 것입니다.


아까 말씀드린대로 미국부터 우선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만, 힘의 구축 전개방향을 보면 보시다시피 소련이 러시아로 해체되면서 이 지역에서 러시아는 하나의 축으로서 작동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할 것입니다. 따라서 짜여지는 기본축은 미 ․ 일을 기조로 하고 아마도 한국이 보조축 정도로 연계된 모습이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현 단계 힘의 면에서는 상대적으로 불균형하지만 중국이라는 또 하나의 축으로 짜여지는 일종의 삼각관계를 우리가 상정해야 될 것입니다. 그 경우에 어떻게 세력균형을 마련할 것인가 하는 것이며, 현실적으로 얘기하자면 친중국으로 설정하기에는 미 ․ 일축의 비중이 단중기적으론 너무 큽니다.


따라서 제 생각에는 미 ․ 일과 일단은 우선적으로 연계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정부가 취하고 있는 대미정책이나 대일정책도 아마 조금 더 신중하게 문제를 검토해야 될 겁니다. 일정한 기간 미 ․ 일의 축을 우리가 중심적으로 활용해야 될 세력이라고 하면, 상황에 따라서 주어지는 단기적 문제를 처리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이것이 중장기적으로 활용해야 될 세력이라는 틀 속에서 그 문제들을 제기해 나가고 풀어야 되는 장기적인 전략구상이나 안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현재까지는 그런 면에서 별로 성공적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또 다른 우리 문제의 딜레마는 중국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19세기의 『조선책략』에서 청나라가 그들의 시각에서 방아를 해라, 방일은 좀 나중에 해도 된다라는 권유를 우리에게 했습니다마는 지금 우리 상황에서는, 미국이 중국을 아까 말씀드린 대로 삼중으로 둘러싸는 일정한 정도의 최소한의 관여와 또 상당한 정도의 확대정책을 강요하고 또 궁극적으로는 군사적인 대응조처까지를 상정한 형태로 대중국정책을 모색한다고 하는 경우에, 한국이 취할 수 있는 대중정책과 미국 그리고 일본의 대중정책은 일정한 편차가 어쩔 수 없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길은 좋은 표현으로 하자면 미 ․ 일을 좀더 꽉 껴안고 동시에 왼팔로는 중국을 품는 것이며, 이러한 행위는 근대적인 윤리로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인지는 모릅니다만 우리가 지금 놓여 있는 현실로서는 양쪽을 다 품어 나가는 방식을 모색하지 않고서는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거기에 덧붙여서 21세기 균세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9세기의 조선책략을 넘어서서 21세기의 신한국책략은 새로 쓰여져야 할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이 쓰여져야 할 부분은 19세기에 우리가 만났던 근대 국제질서와 20세기 말에 동아시아에 지금 통용되고 있는 근대 국제질서의 성격이 같은 점도 있지만 동시에 상이한 부분도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 상이한 부분은 제가 지난 번 세종연구소 콜로키움에서 탈근대 지구정치의 얘기를 했었습니다만 양쪽을 품어 나가는 방식의 균세를 어떻게 마련할 것이냐가 하나의 숙제인 동시에 어쩌면 우리는 동아시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동아시아를 탈출하는 길을 동시에 모색하지 않고서는 동아시아에서 세력균형 딜레마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는 대단히 어려울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까 제가 힘의 영향을 간단히 평가하였다시피 미 ․ 일 ․ 중 ․ 러가 다 우리보다는 훨씬 큰 공간과 인력을 가지고 그 나름의 힘을 축적해 놓은 제국들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우리가 중심 국가가 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습니다. 우리가 21세기 삶의 선행모델이나 모범모델의 역할을 추진할 수는 있지만 근대적 의미의 중심 국가가 되기는 대단히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제국들을 양쪽으로 품으면서 동시에 힘은 또 하나의 다른 곳에서 또는 지구전체에서부터 모아 와야 할 것입니다. 제가 굳이 힘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한 력(力)이라는 의미의 힘이 아니라 기(氣)로 표현될 수 있는 힘까지를 축적하는 방안의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기라고 하면 얼른 듣기에는 엉뚱하게 들립니다마는 만약 우리가 늘 익숙한 서양적인 표현으로 하자면 나이가 구분하고 있는 경성권력(hard power)이 다분히 력에 가깝다고 한다면 연성권력(soft power)적인 측면으로 보이지 않는 또는 드러나는 힘의 이전단계에 있는 힘까지를 우리가 어떻게 모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공간적인 차원에서 유럽이나 동남아나 중남미를 포함한 힘을 어떻게 응축해 나갈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바꿔서 얘기하자면 제가 늘 강조하는 데로 이 지역에서 새로운 단위체를 건설해 나가는 방식에 있어서 한반도가 지구전체의 선행모델이 되려고 한다면 세력균형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개별단위국가를 설정하고 힘의 관계를 서로 비기는 과정이니까 이를 적절히 활용하는 동시에 지역질서나 지구전체적인 차원의 힘을 개별단위인 한반도 내지는 한국과 복합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합단위체의 활동도 군사, 경제적인 영역을 넘어선 보다 복합화된 영역에서 힘의 응축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21세기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신한국 책략이 새롭게 쓰여지고, 실천되어질 때, 한국 또는 한반도는 21세기 신문명의 새로운 기준을 충족시키는 한 단위체로의 모습이 갖춰지지 않겠는가 하는 얘깁니다.


그래서 19세기의 조선책략에서 우리에게 권유했던 균세나 자강의 의미의 적실성을 21세기 초에 우리가 다시 받아들이되 힘의 역학관계를 고려하여, 19세기의 친중국, 결일, 연미와는 다른 형태로 균세를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국내적으로는 자강의 모색이 이루어져야 하고, 다른 한편, 동북아를 넘어선 단위체와의 관계 복합화라고 하는 신문명의 표준을 추진하는 신한국전략 또는 신한반도전략이 보다 구체화되고, 책략적인 의미에서 추진될 때, 비로서 우리가 19세기의 조선책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맞이했던 역사적인 비극을 반복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제가 오늘 얘기한 내용에 관해서 본격적으로 글을 써 볼 기회가 없었고, 이 주제로 이렇게 19세기와 21세기를 연결해서 처음 해 보는 얘기였기 때문에 상당히 두서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특히 들으시는 과정에서  21세기 쪽에 관심이 더 있으셨겠지만, 19세기 조선에 대한 설명에 무리한 부분이 상당히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토론과정에서 조금 더 논리적으로 부연설명을 하겠습니다.

 

사회자:

 

감사합니다. 불행히도 오늘 여러 연구위원들이 날짜가 안 좋은지 강의를 나가신 분들도 많고 또 지금 러시아와 중국 전공하시는 분들도 참석을 못하셔서 어느 정도 얘기가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먼저 저의 우문(愚問)으로부터 질문을 시작하겠습니다. 황준헌이 조선책략을 쓰면서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거기서 ‘친’과 ‘결’과 ‘연’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로 어떤 형식으로 구분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하영선:

 

처음부터 모르는 질문으로 시작되는 것 같은데 한국외교사를 뒤늦게 제가 가르치기는 합니다만 제 한문실력이 대단히 초보적입니다. 단지 이 정도는 생각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책략에서 말하는 친중국이라는 의미는 소위 사대관계를 부연설명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작은 나라는 큰 나라를 섬기고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품고 또는 아낀다는 것이 어쩌면 부모 자식간이나 형제자매간의 가족관계에서 볼 수 있는 대단히 친밀한 형태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결일본입니다. 조선이 일본과 사이가 나쁜 것을 중국도 누누이 잘 알고 있었고 청이 파악하고 있는 것보다 우리에게 일본이 훨씬 위협의 대상이었던 것도 확실합니다. 이미 1876년 조 ․ 일 수호조약 때부터도 문제가 됩니다만 청이 왜 결일본을 그래도 권고했을까를 유심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 내부에서도 일본과 수호조약을 맺어야 되냐 말아야 되냐에 대해 많이 논란이 있었습니다. 현실은 국제수준의 힘의 각축이 상대적으로 완화된 속에  청 ․ 일간에 힘의 싸움으로 진행되어 결국 청이 패배하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이런 속에서 조선이 일본과의 관계를 결로 맺으면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때 결이라는 의미는 일단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소위 교린관계의 회복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조선이 현실적으로 자강만으로 일본을 상대하기 어렵고, 청도 자신있게 일본을 견제하기 어려운 속에서 청은 조선으로 하여금 일단 일본과 관계를 정상화하고 구미열광과 조약을 맺어 균세를 모색하기 바랬던 것입니다.


연미의 문제는 성격이 상당히 다릅니다. 연을 맺어야 하는 미국과 유럽세력들은 전통적으로는 사대교린의 기본 행동양식에 따르지 않았던 행위주체들입니다. 조선이 이 국가들과 연한다는 것는 전통적인 친이나 결의 관계와는 상당히 다른 의미에서 현실적인 균세의 필요성때문에 불가피하게 관계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근대적인 국제관계의 연계의 모습을 일단 상정해야 합니다.

 

유한배:

 

아주 재미있는 얘기를 잘 들었습니다. 제가 질문이라기보다는 질문하면서 제 나름의 생각을 말씀드리고 그 다음에 그것에 대해서 comment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다름이 아니고 지금 현재의 동북아 국제관계에 있어서의 위험요인으로서의 일본, 중국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리고 또 힘의 중심 또는 주체로서의 미, 일, 중…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러시아의 요인에 대해서는 구소련이 붕괴된 이후 러시아가 새로운 힘의 주체로서 국제무대에 나타나기는 힘들 것이라는 뜻으로 제가 이해를 했습니다. 선생님뿐만 아니라 국제관계를 분석하는 많은 선생님들이 러시아 요인이란 것을 분석에서 빼고 있습니다. 전혀 없는 것처럼 해 버립니다. 그것에 대해서 나는 아주 의문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과거 러시아가 위험의 요인으로서 인정되고 있을 때 일본 사람들은 무엇을 봤습니까? 경제력을 봤습니까? 경제를 그리 안 봤습니다. 다만 이념과 군사력을 보고 이게 아주 무서운 나라다 이렇게 봤습니다. 즉 안보면에서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러시아가 군사면에 있어서 어떻게 되었느냐? 아직도 핵대국입니다. 러시아가 변했다고 한다면 주로 이념차원에서 외교자세라고 할까 외교 독트린, 이것이 달라졌습니다. 체제변화 과도기에 있어서 대외적으로 적극외교를 한다. 또는 팽창주의적으로 나간다. 이것을 그만 줬으니까는 러시아가 주변에 대해서 힘을 과시 안하기 때문에 힘의 존재로서 인정을 안받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외부에서 러시아를 볼 때 그렇게 보는 것이 과연 옳은 말인가 이게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러시아가 지금 적극외교로 안나간다는 것은 국내의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그것에 손발을 잡혀서 못나가지만, 생각만 달리해도 어느 정도는 적극적으로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아직은 러시아의 국방 독트린도 정리가 안됐고 외교 독트린도 확실히 정리가 안 된 상태이기 때문에 안나오지만, 지금 러시아 국내의 정치사상 동향을 보면 국가주의적경향이 강해지고 있습니다. 구공산당이 작년 총선에서 승리를 했지만 민족파, 우국파, 국가주의적으로 나가는 이런 조류가 지금 강해지고 있고 옐친 외교도 그런 방향으로 지금 더 나아가는 추세입니다. 저쪽에서 만약 어떤 의미에서 “좀 적극적으로 외교를 해야겠다” 이렇게 나오면 동북아에 있어 러시아의 존재라는 것이 좀 더 부각될 겁니다. 지금부터 그렇게 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북한문제에 대해서도 한반도문제에 대해서도 그렇고 중국, 일본에 대해서도 다 그렇습니다. 나는 러시아를 오랫동안 없는 것처럼 무시해 버려도 되는 그런 존재가 아니라 적어도 중 ․ 장기적으로 우리가 국가전략을 생각할 때 러시아도 포함시켜야 된다는 점이 하나의 주장입니다.


다른 하나는 “현재 러시아가 아주 혼란상태에 있고 그렇기 때문에 국력이 약화되어 외부의 위협으로 터져 나올 수 없다. 그래서 안심이다”라는 견해가 있지만 러시아가 긍정적인 요인으로서가 아닌 불안정요인으로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특정국가의 내부 혼란상태에서 파생된 불안정성이란 것도 하나의 위험요인입니다. 한반도에 가까운 러시아의 극동지역이 중앙정부에 대한 불만 때문에 새공화국을 만든다라는 말들은 자꾸 나왔다가 꺼졌다가 이렇지만 잠재적으로는 언제든지 존재합니다. 이 사실은 러시아 전체가 아니라도 러시아 인구로서의 극동지역, 러시아의 일부로서의 극동지역 바로 두만강 동쪽부터 베링해협까지의 육지와 해역이 하나의 불안정의 진원으로 될 때 과연 우리가 그것 무시할 수 있겠습니까? 아직은 직관적인 수준입니다만, 동북아에서 러시아의 존재를 빼버린다거나, 국제관계에서 러시아를 힘의 극으로서 전혀 무시해 버린다. 등의 인식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사회자:

 

예. 감사합니다. 금방 말씀하신 부분이 제가 얼마 전 학회에서 만난 전 CIA국장 콜비의 분석과 비슷한 맥락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미국과 서방의 대러시아 정책이 굉장히 잘못되고 있다라는 얘기를 하면서 금방 말씀하신 불안정 요인으로서 예를 들은 게 “독일이 일차대전이 끝나고 난 후 부흥하는 과정에서의 전승국들의 정책이 결국에는 나치즘으로 귀결되지 않았느냐? 그래서 러시아 내부에서의 그런 국가주의적 경향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나타날 소지를 오히려 지금 서방세계에서 제공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 그것과 같은 맥락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답변하시기 전에 잠깐 말씀드렸습니다.

 

하영선:

 

글쎄요. 프로바둑을 아마바둑이 평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 제가 유선생님 커멘트를 커멘트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단지 위협요소를 분석할 때 러시아를 포함하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 지금 선생님이 요약해 주신 대로 두 가지 문제를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선 지역차원에서 본다면 러시아 극동군을 어떻게 평가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단중기적으로  걸려 있습니다. 제가 제한적으로 읽어보는 백서수준의 자료를 중심으로 얘기하자면, 일본 경우는 방위청이 보다 신중하게 이 지역의 러시아 극동군의 군사력을 평가해 온 것으로 보이는데, 작년 말 신방위계획 대강이나 그에 연관된 신중기방위계획을 마련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소련의 위협을 핵심으로 잡는 것은, 일본 내부를 설득하는 데 상당히 어려움들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러시아 군사력의 직접적인 위협 대신에 다양한 위협의 가능성들이 이 지역에 존재하므로 일본군사력을 어떤 식으로 재편, 또는 계속해서 유지,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인가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동북아에서의 역할에 대해서 아마추어적인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이런 생각은 듭니다. 선생님 말씀하신 대로 러시아 극동군이 완전히 해체상태에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군사력이 국제정치에서 본격적으로 힘의 수단으로써 작동하려면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며, 동시에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군사력이 국제정치관계에서 힘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군사력이 효율적으로 유지, 강화되어야 하는데, 빠른 시기에 회복되지 않으면 점차적으로 러시아 극동군은 어려움을 겪게 되리라는 것이 지금 현재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숫자적으로는 적어도 증강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상대적으로는 축소지향적인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시간이 갈수록 상당히 어려움을 겪을 위험성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하나 더 큰 문제는 러시아 군사력이 단중기적으로 이 지역에서 국제정치력으로 전환되기에는 상당히 애로사항이 있다면, 국내정치 문제는 어떻게 진행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유선생님이 두가지 지적을 하셨는데 하나는 중앙과 지방과의 관계, 이 지역의 상대적인 자율성이 더 강화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에 불확실성은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와  중앙 차원에서 러시안 내셔널리즘이나 러시아 국가주의의 부활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사태는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개인 생각으로는 러시아 국가주의의 상대적인 강화가 이루어지고 그것이 군사력을 대외정책의 핵심수단으로 다시 채택하는 경우에 러시아 국가주의의 생명은 대단히 짧아지고 오히려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더 어렵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그렇더라도 그 상황 속에서 대단한 혼란이 오지 않겠는가라고 지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만약 러시아 국가주의가 지금 현재 러시아가 겪고 있는 딜레마를 풀려고 군사력을 대외관계의 핵심수단으로써 다시 채택하고  경제적인 배분이나 그동안 급격히 줄어 들어가는 추세를 보였던 군사비를 대폭 강화하는 형태로 문제를 풀어 나가려는 경우에 문제는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하나  러시아의 동북아 지역이 상대적 자율성을 강화하거나 독립적인 하나의 행동단위 주체로서 등장할 가능성의 문제와 그에 따른 불안정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얘기하기는 어렵습니다. 중국 경우는 등소평 이후 체제에서 중앙과 지방관계에 대해 극단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분리될 가능성을 전망하는 소수 분석도 있습니다마는 러시아의 경우, 중앙과 시베리아와의 관계에서 그 고리가 끊어져서 이 지역이 독자적인 단위체로서 활동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것을 물으셨으나, 러시아 전문가가 아닌 저로서 자신 있게 답변하기는 어렵습니다.

 

박기덕:

 

하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21세기의 조선책략이 미 ․ 일을 축으로 해서 우리가 그들 각각과 연을 하던가 친을 하되 중국도 껴안아야 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9세기의 조선책략이 러시아의 위협을 상정하고 그것을 대처하기 위한 것으로 제시된 것이었다면 21세기의 조선책략은 위협을 주체를 분명하게 상정하지 않은 것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또한 조선책략이 주변 국가들과의 전반적인 것은 아니라 관계에 대한 외교 전략이겠지만, 특히 군사적인 면을 보다 많이 염두에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선생님의 21세기 조선책략은 군사적 위협을 주체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군사적으로는 이제까지 이론상으로만 존재했던 유니트 비토(Unit Veto)시스템의 구축을 모색하거나 특별한 국가와의 연맹이나 동맹 없이 생존할 수 있는 방식, 예를 들면 스위스식의 무장 중립 정책을 추구하고, 동시에 경제적으로는 모든 국가와 전방위적인 연계를 가지는 형태의 조선책략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하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에게 인접한 큰 나라들인 일본, 미국, 중국들을 전부 껴안아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중국과 일본의 군사적인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우리의 상황을 고려할 때 군사적으로는 어느 나라도 자극하지 않도록 동맹에 가입하지 않되 경제적으로는 번영을 하기 위해서 모든 나라들과 연립하거나 협조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가능한지 그리고 그것이 이론적으로 어떻게 뒷받침이 될 수 있는지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강명세:

 

선생님께서 잡은  비교사적 맥락이 19세기 말과 20세기 말 백년간의 차이입니다. 19세기 말은 대체로 서구의 국민국가 완성 시기이나, 저는 아직 그 당시가 그 일본을 제외하고는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동아시아 국가들이 근대적 국민국가 또는 민족국가로서 형성되었던 것인지, 그런 정립의 문제가 저로서는 확인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19세기 열강들의 각축이라는 것이 시장개척을 특색 하는 제국주의의 시대였습니다. 20세기 후반의 지금에서는 지구상의 어느 국가를 가도 아프리카의 몇몇 나라를 빼고는 근대국가가 다 완성된 그런 시점에 와 있습니다. 역으로 중간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세계화가 지금 진행되고 있는데 그런 세계화 진행과 더불어 국민국가들이 완성된 단계와 국민국가가 자기 힘을 시장개척을 통해서 경쟁하는 단계와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세계사적으로 봤을 때 전혀 다른 시점에서 나타났던 현상들이 과연 비교 가능한 것인지에 대해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은 냉전시대의 군사적 대결을 통해 열강과 연합을 모색하기보다는 보다 독자적인, 탈민족국가적인 국가전략이 보다 장기적인 살 길이 아닌가 하는 의문입니다.

 

하영선:

 

우선 상대적으로 쉽게 대답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우선 전달하려고 했던 얘기는, 19세기 중반의 동양 3국들이 전통적인 천하질서부터 유럽 중심의 근대국가 질서를 받아들이게 되는 일련의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근대국가 형성의 완성, 또는 상당한 건설이 이루어진 모습을 말씀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잘 아시다시피 일본의 경우도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에 근대 국민국가의 모델을 받아들이기 위한 역사적인 노력을 하게 됩니다. 구체적인 모델로 얘기하자면 일본의 근대국가 형성과정에서 국가라고 하는 표현을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습니다만 후쿠자와가 얘기하는 국가와 가또오가 얘기하는 국가의 모습이 상당히 다릅니다. 후쿠자와의 경우에 적어도 초기의 글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들을 보면 전형적으로 영국적인 모델의 시민사회 국가를 상정하고 있고, 반대로 가또오의 경우는 프러시아의 국가학에서 다루는 형태의 모델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실제 일본 근대국가 형성의 역사는 초기의 영 ․ 불모델에 가까운 것에서부터 독일모델쪽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우리 조선의 당시 상황을 보면, 대원군 섭정기인 1864년부터 1873년의 십년 동안은 그 나름의 전통적인 질서에서 나타났던 개혁안들, 바꿔서 얘기하자면 후기 실학이 모색했던 개혁안들을 가지고 당시 처해 있었던 대내외적인 위험과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볼 수 없을 것인가 하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그것이 성공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고종 친정이 시작되는 1870년대 중반 무렵부터는 서서히 모델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 초기에는 청의 모델을 따를 것이냐, 일의 모델을 따를 것이냐 하는 싸움이 있었고 개화세력들은 더 이상 청의 모델로는 당시 조선의 문제가 해결 불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청은 아시다시피 1840년 아편전쟁 이후에 양무운동에서부터 본격적인 변법자강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 것은 청 ․ 일전쟁에서 패배하고 서양모델의 아류인 일본에게조차도 더 이상 싸워서 이길 수 없다는 자기 확인을 할 때까지 적어도 50년 동안의 과도기를 겪게 됩니다. 그것에 비해서, 일본은 비교적 빠른 속도로 서양 근대국가 모델을 수용하려는 노력을 시도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지역제국주의 덫에 걸려서 실패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 경우에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사를 본격적으로 쓰려면 상당한 기간 뒤로 가야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19세기의 이러한 모색과 21세기의 새로운 모색을 비교사적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동안 탈근대 지구정치질서를 얘기하다가 비판도 많이 받았습니다만, 최근에 와선 비판하던 분들도 탈근대라는 말을 대체로 다 쓰고 계십니다. 제가 탈근대 지구질서에 관한 세미나를 여기서 하면서 여러분들과 같이 고민을 했던 시절에도 이런 얘기를 했었습니다. 중세의 딜레마에 부딪쳐서 새로운 질서의 사고와 행동양식, 그리고 제도에 대한 모색이 유럽을 중심으로 서서히 전개된 근대 초기의 이삼백년 기간을 살아간 사람들은 사실은 근대가 아닌 중세를 사는 기분으로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역사적 성격을 규정하는 게 대단히 어려운 문제인데, 유럽의 모습과 동아시아의 모습으로 나눠서 본다고 한다면 동아시아나 동북아질서에서는 근대적인 모습이 상당한 시간을 아직도 주도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그중에 일정한 부분은 탈근대적인 요소가 들어오는데 그 비중은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단히 낮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편 근대 국제질서의 노쇠기에 들어선 유럽은,  다시 회춘해 보려는 절실한 몸부림으로 탈근대 지향적인 사고, 행동양식, 제도적인 모색의 구체적 표현인 유럽연합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정말 회춘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반면에 동아시아는 전통적인 중국적인 세계질서 속에서 살다가 뒤늦게 19세기 중반부터 서양의 근대 국민국가나 국제질서를 받아들이기 시작한 이래, 아직도 근대질서의 청년기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상당한 시간 동안 근대국가들의 각축전이 진행된 다음에, 비로소 또 하나의 변모를 모색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질서에서 19세기의 모습과 21세기의 모습에 비교가능한 부분이 존재한다는 얘기입니다.


냉전의 뚜껑을 벗기니까 나타난 탈냉전의 질서가 유럽에서는 탈근대적인 모습을 품는 일면이 상당히 강하게 표출되어 갈등과 협조가 공존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데 반해서, 동아시아에서는 미 ․ 소가 중심이 되어 형성된 냉전질서의 뚜껑을 벗기고 나타난 질서의 모습은 근대적인 각축의 모습을 그대로 상당부분 가지고 있는 속에서 제한적으로 협조하는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얘깁니다. 그렇게 되는 경우에 훨씬 어려운 질문으로 위협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고 애매하다는 문제가 등장하게 됩니다.


제가 말씀드리려고 했던 것은 19세기의 유럽세력이 군사국가나 경제국가의 모습을 완성하고 식민지 국가의 형태로서 확산되어져서 그것이 드디어 아시아까지 와서 각축을 벌렸던 양상과 성격은 바뀌었지만,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탈냉전질서가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아시아에서는 탈냉전의 모습으로 진행되지 않고 또 하나의 변형된 세력 각축의 위험이 명백히 존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중에 19세기의 분석에서 영국의 영향 속에 청이나 일본들이 방아를 핵심적인 위협으로 삼았던 경우와 대비하여 본다면, 21세기의 세력균형에 따라 어느 세력이 특히 한반도의 상대적인 자율권을 제약하는 힘으로서 작동하게 되겠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됩니다. 이러한 경우에, 어느 한 특정세력 대신에 미국, 일본, 중국이 그 나름의 영향력의 확대를 모색할 위험성이 상당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러시아까지 포함해서, 힘의 각축 상황의 전개가 다가올 위험성이 있다면, 주적이 당장 등장하고 있지 않더라도, 그 속에서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또는 영향력을 상대적으로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 생존번영 전략의 핵심이 돼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경우에 가령 굳이 미 ․ 일축을 보다 강하게 품고 중국을 상대적으로 양하게 품는 형태로 막연하게 설명하기보다 군사적으로는 중립하고, 경제적으로는 상대 국가들을 활용하는 다양한 방안을 상정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21세기의 각축의 모습은 물론 19세기와 비교하면 일정한 차이는 있을 겁니다. 아까 말씀드린대로 “19세기가 20세기 말에 반복된다”는 극단론도 있습니다만 좀더 꼼꼼히 역사적인 전개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도식화하기는 대단히 어렵고 유사성과 이질성들을 조심스럽게 발라내야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 차이는 행위자들의 21세기적 움직임을 유심히 보아야 할 것이고 그런 경우에 이 행위주체들의 움직임은 19세기보다는 훨씬 복잡한 것이 명백합니다. 21세기의 유럽에서는 이중적인 행위주체를 만들어나가려는 모습으로 드러난다고 했는데 불행하게도 동아시아는 일차적으로 개별국가가 상대적으로 눈에 두드러지되, 제한적으로 경제적인 차원의 APEC이나 또는 군사적 차원의 다자안보협력을 강화하자는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단위체의 활동영역도 19세기는 아주 선명하게 다가왔습니다. 식민지 국가가 앞에는 군사력을, 그 뒤에 다시 경제력, 또 이념적인 차원의 것들을 앞세우고 우리에게 들어왔다고 하면, 21세기의 영향력의 갈등이나 쟁패는 과거의 그것보다는 좀더 다양한 복합적인 상황으로 정치 ․ 군사 ․ 경제 ․ 사회 ․ 문화의 전반적인 면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제가 상대방을 품거나, 때로는 활용해야 한다고 말한 군사영역에서 중립이라는 문제도 간단하지는 않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불행하게도 이런 각축의 모습이 탈근대가 아닌 근대적 성격을 지니면서 19세기적인 양상의 유사성이 가시화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점에서 일부 비판론자들은 이미 동아시아는 군비경쟁으로 들어갔다고 말하는데 전 세계적으로 군사비가 상당히 빠른 속도로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비해, 이 지역의 군사비는 다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군사비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일본의 군사비는 현상 유지되는 상황이며, 중국의 군사비는 상당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또한 남북한의 군사비가 모두 증가하는 추세이고, 대만의 군사비는 급격히 늘고 있으며, 심지어 동남아의 군사비도 현상유지 내지 강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우리가 군사적 중립의 길을 통해서 효율적으로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저는 조금 자신이 없습니다. 결국, 제가 자주 쓰는 얘기입니다만 지구 주의적 민족주의, 즉 군사 ․ 경제 ․ 기술 ․ 정보 ․ 환경 ․ 교육 등의 여러 영역에서 자강적인 요소를 갖춰야만 할 것입니다. 내부적인 힘의 기초는 국민이 갖춰야 될 것이고, 가령 군사적인 차원에서만 얘기한다고 하면 국내적으로는 통일 이후의 한반도적인 차원에서 소위 방어적 형태의 군사력을 견실하게 유지, 강화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와 같이 주변 국가들의 군사력이 강화되어 가는 경우에 그것들을 어떻게 상호 견제 시키는 방식으로 운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제가 생각하기로는 주변과 격리되어 힘의 균형을 이루는 중립이 아니라 다자적 안보협력을 통해 주변국가와 상호균형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력 균형적 차원에서 이 문제들을 우리가 효율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쉽지 않으며, 또 단중기적으로 지역 군사적인 차원의 조정방식이 동아시아지역에서 커다란 역할을 하기에는 어려운 일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총체적으로 말씀드리면 지구주의적 민족주의라는 표현은 근대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명백히 모순입니다. 즉, 지구주의는 지구차원의 열린 공간 속에서 자신을 키워 나가려는 개방적 접근방식인데 비해 민족주의는 상대적으로는 배타적 공간을 자기 것으로 갖춰 나가려는 모습이며, 이 두 개념은 서로 상반된 모순에 부딪치게 됩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 지구주의와 민족주의를 양분법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던 것이 근대적 사고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다가오는 시기에 새로운 문명의 기준으로서 등장하는 주도세력의 사고, 행동양식, 제도는 지구주의와 민족주의를 상호 모순 되지 않게 작동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적으로 힘이 약한 우리가 주변국가와의 힘겨루기에 맹목적으로 뛰어들면 중립이 아니라 종속을 결과하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뛰어들면서 동시에 자기 자율성을 획득하는 묘안을 개발하지 않고서는 21세기를 성공적으로 살아가기 어려울 것입니다.


좀 비관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중요한 예로서 한반도의 남북한을 보는 경우에 북한이 적어도 상당기간 추구해 왔던 것은 21세기의 위정척사적인 모색이었습니다. 이러한 북한 위정척사는 그 나름의 명분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경우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북한 나름의 국제화, 세계화라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최근 김정일의 논문들에서도 누누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지만 북한이 직면하고 있는 최대의 고민은 개방을 하면서도 그 부작용을 어떻게 차단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모든 활동 영역에서 북한보다 훨씬 열린 형태로 대외적인 정책방향을 설정하고, 특히 경제적인 차원에서는 WTO 체제하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국제정치의 위상으로 보면 아직까지는 중진국의 취지에 놓여 있는 한국은 일방적으로 개방한 상태에서의 종속적인 위험성을 배제하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북한과는 상당히 다른 정도의 배합률로 민족주의적인 요소를 가미시켜서 동시에 지구주의적인 요소와 어떻게 조화시키느냐 는 것이 21세기 신한국책략이 풀어야 할 최대의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정책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한국의 정치학이나 국제정치학이 당면하고 있는 최대의 화두로 생각합니다만 학계에서  본격적 논의가 이루어지고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자: 감사합니다. 시간문제도 있고 해서 질문 있으시면 한 분만 더 질문을 받겠습니다.

 

이숙종:

 

이 주제에 관련하여 선생님 말씀을 몇 번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논지가 점점 구체화되는 것 같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미 ․ 일을 꽉 껴안고 왼팔로 중국을 품어라 하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19세기 말에 조선책략의 요지가 친중국, 결일본, 연미국이라고 하셨는데 선생님의 말씀은 현 시점의 책략은 친미국, 결일본, 연중국이라고 이해가 됩니다. 그러니까 19세기 책략에서 말하는 친중국의 친이 가족 관계같이 친밀한 것을 문자 그래도 뜻하지만 동시에 주종적인 사대관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9세기 중국과의 사대관계와 오늘날 한 ․ 미 동맹은 기능적인 역할 면에서 본다면 같은 것으로, 그런 기능적인 쌍무관계에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책략이 결국 백 년 전에 친중국, 결일본, 연미했다면 지금 친미국 ․ 결일본 ․ 연중국 할 수 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이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항상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한편으로는 멋있으면서도 한편으로 실천가능성에 대해 의문이 가는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향후 우리가 취해야 할 새로운 전략의 근대적인 측면과 탈근대적인 측면을 동시에 강조하고 계십니다. 근대적인 측면에서 동북아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자강해야 되고 또 부국강병하는 상황이 존재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도 군사적인 것을 포기하거나나 중립적으로 나가기 어렵다.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서 동시에 탈근대적인 요소로서 군사적인 측면을 본다면 하드웨어에서는 다자체제로 나가야 된다. 전략구상의 단위를 복합적으로 동북아에서 탈출하기 위해 탈근대 지구정책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고 또 동시에 소프트웨어 측면에 아까 기(氣)까지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어려운 것이 만약 일본의 전략을 말하라 그러면 ‘보통국가론’과 같이 군사적 ․ 정치적 리더십을 이야기하거나 아니면 ‘질실국가론’과 같이 경제적 ․ 문화적 국제공헌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들 전략은 어느 정도 상호배타적인 선택지이기 때문에 우리가 선택하기 쉬운데 선생님께서는 군사적인 것과 비군사적인 것, 근대적인 것과 탈근대적인 것 모두를 포함하는 전략을 보시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다자체제적인 군사로 나가야 되는 그런 탈근대적인 요소를 지적하시면서도 막상 선생님의 입장을 보면 상당히 현재의 한 ․ 미관계의 기본 틀과 한 ․ 미 ․ 일 공조체제를 공고히 유지하는 게 득이 많다고 보는 현실론적인 입장을 취하고 계십니다.


굳이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시점이 왔을 때, 예를 들어서 구체적으로 대만을 쟁점으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상황이 전개된다고 가정했을 때 우리는 군사적으로 아마 미국에 동조해야 될 입장에 처할 것입니다. 지금 동맹체제의 성격상 한쪽으로는 지금 체제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또 한쪽으로는 우리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변화를 모색하려고 하는 것이 요즈음 논의되는 향후 우리 전략의 기본적인 성격 같습니다. 그러나 현 체제의 이득을 취하면서도 위험부담 없이 변화를 동시에 모색한다는 일은 매우 어려운 과제일 것이라는 느낌입니다. 여러 시나리오를 따라 갈 수는 있지만 어떤 장기적인 비전으로서의 전략이랄까 그런 데서는 선생님의 입장은 너무나 모든 것을 끌어안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영선:

 

제가 이런 자리에서 비교적 자유스럽게 한 얘기의 내용들을 꼼꼼히 들으시고 상당히 모순된다고 말씀하시니까 반론할 여지는 별로 없습니다. 다만, 몇 가지 제 나름대로 분명히 할 것은 21세기적인 차원에서 친미라는 개념에 전 별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1980년대 대논쟁에서도 제가 일종의 회색인 비슷한 비난을 받으면서도 친미, 반미의 와중에서 용미(用美)를 하자는 얘기를 계속 해왔고 얼른 보면 친미와 용미가 비슷할 수도 있지만, 미국사람들은 반미보다 용미가 더 다루기 힘들다고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굳이 조선책략적으로 표현한다면 용미 ․ 일 하고 연중하자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근대적인 요소와 탈근대적인 요소 가운데서 왔다갔다해서 대단히 혼란스럽다 는 면은 이런 식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혼란이 바로 우리가 겪고 있는 딜레마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아시아 공간에서 겪고 있는 숙제가 분명히 근대적인 요소와 탈근대적인 요소를 동시적으로 포함하고 있고, 특히 우리 경우에 불행하게도 역사적으로 숙제들이 순차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전통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도 이루어지지 않은 속에서 근대의 숙제를 풀어야 되고, 근대의 숙제를 채 풀지 못한 속에 다시 탈근대적인 숙제가 다가오는 상황에 있기 때문에 삼중적인 숙제를 동시에 풀어야 할 수 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택지를 우리가 마련하는 경우에, 예를 들어서 일본에 대한 논의도 소위 보통국가론 대 지구시민세력론의 논쟁들이 진행되는 속에서 일본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신한국전략을 쓰려면, 보다 장기적인 시간의 축에서 일본의 장래를 전망하고, 그 대응책을 모색해야 합니다. 단중장기 계획에서 근대와 탈근대의 숙제를 풀어가는 비중의 배분에 있어서도 배분율을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나옵니다. 따라서 왜 이중목표를 설정해서 혼란스럽게 만드느냐 하는 것은 지금 시점에 우리가 탈근대적 목표만을 설정하는 경우에 아까 말씀드린 대로 동아시아질서 자체가 근대적 역사의 후유증을 상당기간 거칠 상황이기 때문에, 근대를 넘어서는 목표를 설정하는 동시에 근대적인 문제의 딜레마에 대한 대비가 없이는 미래을 헤쳐나갈 기회가 마련되지 않는 어려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19세기적인 목표를 완성하기 위해 근대국민국가의 부국강병 모델을 신한국책략으로 설정하는 경우, 그것의 완성이 이루어질 즈음에는 아마도 그것 자체의 모순 때문에 나타나는 새로운 목표들을 추구해야 한다는 딜레마를 더 큰 어려움으로 겪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상당히 어려운 얘기입니다만 양눈 중 왼쪽은 근대적인 숙제를, 오른쪽은 탈근대적인 숙제를 바라보는 일종의 사팔뜨기가 될 수밖에 없는 어려움 속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으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안문제에 대해서 입장을 취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요즘은 제가 신문에 글을 자주 쓰지 않으니까 정부정책에 대해서 비판할 기회가 별로 없습니다만 제가 답답해하는 것은 일본이나 미국이나 중국과 연관된 이슈가 제기될 때 과연 우리가 장기전략 구상이 있는가. 동아시아의 세력판도가 어느 쪽으로 짜여져 간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 보다 장기적으로는 근대와 탈근대의 숙제가 뒤범벅이 된 속에서 어떤 식으로 주변의 힘들을 활용하고, 미국 ․ 일본 ․ 중국을 다루고 있는 것이냐 하는 면에서는 여러 가지 정리할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령 국내 논의 중에 정리해야 할 것을 예로 든다면 한동안 우리 국내에서도 미 ․ 중 대등 등거리외교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고 적지 않게 중국 붐이라고 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그에 대해서 제가 좀 부정적인 코멘트를 해서 친미로 보일 수도 있는데,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단중기적인 시간축으로 보면 중국을 노골적으로 꽉 품는 경우에, 우리가 미 ․ 일과 연계되어 있는 근대, 탈근대의 공간에서 미 ․ 일을 활용할 영역에서 상당한 타격을 받을 위험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단중기적으로는 동시에 미 ․ 일과 중국을 품도록 노력하되, 적절한 불균형이 필요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품음의 강도를 판단하는 데에는 연구소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21세기의 미국, 중국, 일본 그리고 러시아에 대한 우리 나름의 조심스러운 평가가 필요하고 그에 따라서 조심스럽게 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현안문제로 시끄러운 일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발언이나 독도문제를 다뤄 나가는 과정에서 어느 선까지 일본을 몰 것이냐,  그것에 의해서 일본에게 앞에서 이기고 뒤에서 지는 사태에 대한 준비가 얼마나 되어 있는가, 또 일본과의 관계를 중장기적으로 어떤 구도하에 설정할 것이냐 하는 고민을 깊이 있게 해야 합니다. 버르장머리를 고칠 것이냐 아니냐 하는 식의 감정적 대응보다는 한 ․ 일관계의 중장기적 구상을 염두에 두고 문제발언이나 독도문제를 대응하는 방식이 동일하게 비판적으로 문제를 끌고 가더라도 훨씬 효과적일 것입니다. 대미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아마 대미관계는 점점 복잡한 문제가, 특히 남북한 문제와 연관되어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까 말씀드린대로 북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대단히 적극적으로 관여와 확장정책의 틀에 북한을 이미 포함시킨 것으로 읽고 있는 것 같고 따라서 북한의 유연성에 따라 대단히 빠른 형태로 관계개선의 모색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낙관적 상황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북한은 주한미군문제를 선행조건에서 병행조건으로 또는 조건부 병행 내지는 후행조건으로 전환시키는 대신에, 미국과의 경제관계나 정치관계 더 나아가서는 군사관계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보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 ․ 미관계의 갈등이 생기는 경우에 미국을 어떻게 다룰 것이냐의 판단은, 단기적으로 다가오는 문제만으로 다루어질 것이 아니라 미국이 중장기적으로 동아시아지역에서 어떤 역할을 행사할 것이냐라는 보다 장기적 전망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추상적인 대답인지는 모르지만 최근 진행되는 우리 외교의 2차원적 사고의 수준에서 한 ․ 미 관계를 단기적인 양자관계의 문제로서 늘 대응하려는데에서 오는 한계를 넘어서서, 한 ․ 미관계의 문제를 지역공간의 장기적이고 동태적인 틀의 한 작은 부분으로서 보아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지구 전체적인 공간의 틀 속에서 파악해야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얘기를 하나 더하면 일본의 상대적인 쇠퇴논의와 연관하여 일본이 겪고 있는 최근 어려움들의 중요한 하나는 19세기의 표면적 성공이 21세기에 부담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특히 저에게 재미있게 들리는 얘기 중의 하나가 국제화나 세계화와 연관되어서 ‘하는 국제화’와 ‘되는 국제화’ 바꿔 말해서 ‘이끄는 국제화’와 ‘따라가는 국제화’의 갈림길에서 일본은 이미 ‘이끄는 국제화’, ‘만드는 국제화’를 추진해야 할 단계에 직면했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지역적 또는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모델을 일본 스스로가 발상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단순한 경제력이나 군사력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창조적인 상상력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창조력의 상상력의 공간에서 일본이 최고 선진국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우리 경우는 아직은 모델을 따라가는 의미로서의 국제화, 세계화를 주로 논의하고 있습니다. 19세기의 국제화라고 하는 것도 단순한 지리적인 확대개념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전통적 세계질서에서는 야만으로 불렀던 삶의 모습을 근대 문명, 바꿔말자면 밝은 문화라고 부르고 그것을 모델로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지금 21세기를 맞이하면서 또 한번 새로운 문명이 어디엔가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따라가 보려는 세계화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한반도도 언젠가는 새로운 문명의 기준을 만들려는 노력을 본격화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새로운 문명의 기준을 만드는 과정에서는 역사적인 현실이 근대와 탈근대로 쉽사리 구분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대단히 근대적인 접근이기 때문에 근대적인 모습과 탈근대적인 모습의 목표를 동시에 설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될 수 있다면, 우리의 생각하는 방식, 행동하는 모습, 그리고 제도적인 모습이 지구적 차원에서 보편적 문명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언젠가 제가 세종연구소에서 또 얘기할 기회가 있으면 현재와 같이 따라가는 세계화를 넘어선 다음에 우리에게 다가올 숙제라고 할 수 있는 문명의 국제정치학에 관한 얘기를 조금 더 자세히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회자:

 

장시간 동안 감사합니다. 오늘 여러 가지 제기하신 문제들, 또 토론에서 제기된 문제들에 대한 논의가 앞으로도 계속 있어야 할 것이고, 『국가전략』지에 출판되어 학계에서 이런 관심과 논의가 계속 이루어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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