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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주국제정치학과 21세기
 

2001-08-21 

東州國際政治學의 출발

東州 李用熙 先生은 자신의 국제정치학에 대한 관심의 출발을 1955년에 출판한 「국제정치원론」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 본래 내가 품게 된 정치학에의 관심은 우리 겨레가 왜 이렇게도 취약하냐 하는 의문을 내놓고는 생각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내 정치학은 내가 살고 있는 고장, 또 내가 그 안에 살게되는 나라의 운명과 무관할 수는 도저히 없었다. 그런데 나는 왜 우리 겨레가 이다지도 취약하냐 하는 문제를 헤하려 보는 동안에, 취약한 것은 우리만이 아니라 동양 전체가 그러하게 되었다는 것을 새삼스러이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까닭을 알려면 불가불 구주에서 발단한 근대정치의 성격과 내용을 알지 않으면 아니 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서는 구주정치 및 그것을 중심으로 한 국제정치의 연구는 곧 우리의 현상을 진실로 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


또 하나의 의문은 …… 종전의 일반 정치학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 역사적인 국제적 불평등 위에 수립된 민주정체와 그것을 유형화하여 엮어놓고 일반 타당적이라고 일컫는 정치학을, 국제적인 피지배지역의 학도들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공부한다는 것은 기막힐 노릇이 아닌가. …… 현실적인 서양정치학은 그것이 내세우는 듯한 사실인식의 효용보다는 오히려 서양적인 정치가치를 체계화하는 효용이 더 크다는 것은 나에게 일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리하여 나는 종래의 연구방법을 다시 고치어, 나대로 '장소의 논리'라고 부르는 새견지를 취하게 되었다. 무엇이냐 하면, 정치학이 성취할 일반유형, 그리고 서양의 정치가치가 개별적 지역에 있어서는 어떠한 변이를 일으키며 또 어떠한 '권위'적 역할을 하느냐 하는 것을 검색하자는 것이었다.」


「一般國際政治學(上)」

東州 李用熙 先生은 이와 같이 독특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자기 나름의 국제정치학을 전개하였으며 이러한 작업은 1962년에 출판한 「일반국제정치학(상)」에서 보다 구체화 되었다. 이 연구는 현재까지 한국국제정치학계에서 이루어진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서, 그 중심 내용을 보면, 첫째, 국제정치학의 학문으로서의 성격과 국제정치의 개념을 검토하고, 둘째, 東州國際政治學의 논리적 기반으로서 국제정치의 권역성과 전파의 문제를 제시하고, 셋째, 근대국제정치의 유형적인 양태를 군사국가, 경제국가, 식민지국가로 설정하고, 넷째, 현대국제정치, 곧 세계정치의 역사적 성격으로 인정되는 몇 가지 양상에 대한 연구와 그것이 점차로 변이해 가는 모습을 추적하고 있다.


1945년 이후 국제정치에 관한 글들이 국내에서 적지 않게 세상에 태어났으나 거의 모두가 단명에 그치는 속에서 이 연구서는 강한 생명력을 보여왔으며, 시간이 갈수록 그 힘은 보다 세어져 가는 느낌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강인한 생명력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를 한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이 연구가 보여주는 문제의식의 중요성이다. 비강대국에서 이루어지는 국제정치학이 압도적으로 강대국의 국제정치학의 소개 내지는 원용의 차원에 머물러 있는 현실에 대해, 이 연구는 정면에서 그 한계를 지적하고, 주체적 입장에서 국제정치학의 이론화 작업에 도전하고 있는 당당함을 보여주고 있다.


둘째로, 저자의 독특한 「場所(Topos)」의 논리에 기반한 國際政治學의 이론의 독창성이다. 저자는 자신의 우리 옛 그림 연구의 출발을 회화권에서 하고 있는 것과 같이 국제정치연구의 출발을 일정한 정치행위의 의미가 보편 타당한 국제정치권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정치권은 항상 강력한 정치세력을 매개로 하여 특정한 정치가 다른 지역, 다른 사회에 전파됨으로써 이루어져 왔음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의 국제정치의 보편성과 특수성, 또는 동질성과 이질성을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던 유교권, 회교권, 기독교권이 19세기이래 근대유럽 국제정치권의 전 세계적 전파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설명함으로써 기존 구미국제정치학계의 한계를 넘어서서 본격적인 「일반국제정치학」의 정립에 성공적으로 접근하는 선구적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셋째로, 오늘의 국제정치의 기본성격을 들어내기 위해서, 이 연구는 근대유럽국제정치권의 기본 단위체로 관념되어 온 근대국가의 역사적 성격을 군사국가, 경제국가, 식민지 국가로 규정하고, 당시 국내의 열악한 연구여건속에 놀랄만한 국제수준의 실증작업을 통해서 이를 설득력 있게 증명하고 있다.


넷째로, 이 연구는 국제정치학의 고도의 실천적 성격을 철저히 염두에 두고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하나의 연구서라기보다는 현대세계질서의 역사적 전개과정과 그 속에서 「내」나라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지침서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世界政治二重構造化

「일반국제정치학(상)」에 이어 「일반국제정치학(하)」가 출판되지 않음으로 인해「일반국제정치학(상)」은 미완의 대저로 남게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東州 李用熙 先生의 다른 글들을 통해 「일반국제정치학(상)」의 마지막 장에서 근대국가의 역사적 전개가 점차 자기 모순에 직면하게 되는 한계와 그 대안의 모색을 분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글들 마무리하고 있다.

「이러한 근대국가의 자기모순의 신테제(Synthese)는 아직 무엇인지 모른다. 현재 사람은 「國際社會」라는 말을 빌어, 혹은 국제법에서 혹은 국제정치에서 하나의 세계를 생각하여 보려고 하고 있기는 하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금 개념론이 아니면 국제기구에 대한 기대일 따름이지 강력한 통합원리로서 과거의 유교사회, 기독교사회, 회교사회와 같은 구실을 인간의식에 미치기에는 너무나 앞날이 요원하다. 그런데 그것도 그럴 것이, 비록 근대국가의 모순이 사방에서 터져 나오고 그것을 단위로 한 국제정치의 양상이 마침내 모순의 심화와 더불어 변모하여 간다 하더라도, 그래도 근대국가의 관념은 아직도 강력히 인간의 정치적 행위에 있어서 깊이 뿌리 박고 있으며 국제정치의 근대국가적 양상은 근대적 강국정치로서 상금도 세계를 뒤덮고 있고, 「계급」을 내세우는 정치제도 이러한 환경에 있어서 그 현실정책은 근대국가의 포-즈를 취한다. 근대국가간의 국제정치로서의 면과 초국가적인 국가군대 국가군의 양상은 마치 겹쳐서 박혀 있는 사진관 같이 세계정치에 이중으로 투영되고 있다고 이해된다.」

「세계정치의 이중구조화」는 「일반국제정치학(상)」의 끝맺음인 동시에「일반국제정치학(하)」의 첫시작을 예상케 하는 것이었다. 東州 李用熙 先生은 1967년에 열린 한국국제정치학회의 한국민족주의 대심포지움 기조연설에서 근대국가의 자기모순의 극복을 위한 전개과정에서 단일민족주의에 이어 다민족주의의 등장을 주목하고 있다.


이어서, 東州 李用熙 先生은 1977년의 회갑기념 학술심포지움에서 「민족주의의 개념」이라는 기념강연을 통해 근대국가의 명분체계인 민족주의의 장래를 전망하면서 근대국가의 미래를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검토과정에서, 우선 단일민족주의에 다민족주의의 새로운 명분이 등장함으로써, 첫째, 단일민족주의의 약점이었던 식민지 체제를 지양할 수 있었고, 둘째, 자원과 넓은 국제시장을 보유하게 되었으며, 셋째, 방대한 병력동원 능력과 작전능력을 가지게 된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근대국가의 변화는 군사적 기반, 경제적, 명분적 기반이 첨단무기의 확산에 따른 정부의 강제력 독점의 약화, 자원의 고갈과 다국적기업의 증강, 「個」의 독자성에 대한 욕구 등에 의해 바뀔 수밖에 없을 때 비로서 가능하며, 이러한 변화는 역사의 우여곡절을 감안한다면 반세기 가까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을까 하는 추정을 하고 있다.

「未來의 世界政治」

東州 李用熙 先生이 근대국제정치질서를 다룬「일반국제정치학(상)」에 이어 20세기와 21세기의 현대세계정치질서를 다룰 「일반국제정치학(하)」를 세상에 선보이지는 못하였으나, 그의 21세기 세계정치에 대한 중심 생각은 1993년 봄학기에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과에서 가졌던 아홉번의 특별강의를 책으로 묶은 「미래의 세계정치」에서 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강의의 발단은 필자가 1992년에 세종연구소에서 「탈근대지구정치학」이라는 제목으로 초청 발표를 하는 자리에서 21세기의 세계정치를 행위주체와 활동목표의 복합화로 설명하는 것에 대한 東州 李用熙 先生의 강평이었다. 필자는 先生님에게 강평을 한 학기의 강의형태로 본격화하여 주시기를 요청하여, 최종적으로 21세기 세계정치에 관한 특별강의가 이루어졌다.

東州 李用熙 先生은 「미래의 세계정치」의 책머리에서 자신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짤막하게 얘기하고 있다.

「본래 이 강의는 근대 유럽에서 이룩되고 있는 국가연합이 장차는 정치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며, 오늘날의 국민국가(nation-state)를 대치할 것이라는 내 생각을 토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민국가는 한편으로 국가연합으로 확대되면서, 또 한편으로는 지역정치체로 세분화되는 경향도 보인다. 말하자면 근대국가·국민국가는 내부분열을 일으키면서 새로운 정치형태를 조성할 조짐이 보인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그 동안의 국제정치는 몇백년동안 근대국가체제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면이 있었는데, 새로운 국가형태의 가능성과 함께 오랫동안의 과도기를 거쳐서 근대국가의 성격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국제정치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東州 李用熙 先生은 이 강의에서 미래 세계정치의 새로운 국가형태를 전망하기 위해서 국가연합(confederation)과 연방(federation)을 중심으로한 국가연합의 역사와 사상을 검토한 위에 현대의 국가연합으로서 유럽연합을 분석하였다.


「미래의 세계정치」는 기와의「국제정치원론」, 「일반국제정치학(상)」, 「한국민족주의」에서 첨예하게 전개되었던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국제정치원론」부터 「한국민족주의」까지의 저서는 유렵을 중심으로 형성된 독특한 근대국가의 성격위에 이루어진 근대국제정치질서 속에서 우리 민족의 삶의 모습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할 것인가라는 고도의 실천적 질문에 대한 해답의 모색이었다. 「미래의 세계정치」는 비록 「일반국제정치학(하)」에 해당하는 東州思想의 전모를 담고 있지는 않지만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겪고 있는 근대국가의 성격위에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세계정치질서 속에서 우리의 삶은 어떻게 새로워져야 할 것인가라는 핵심적인 질문에 심층적으로 접근함으로써 문제의 설정방식과 논의의 깊이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와 함께, 「미래의 세계정치」는 21세기를 앞두고 현대 세계질서의 혁명적 변화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시사해설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는 초보적인 차원의 전망이 난무하는 속에서 21세기 유럽연합의 의미를 역사적, 그리고 사상사적 접근을 통해 국내외의 어느 연구보다도 깊이있게 분석하고 있다.


「미래의 세계정치」가 특히 질의 응답과정을 통해 제기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의식은 유럽연합과 같은 국가연합의 형태가 21세기 신세계질서의 새로운 행위주체의 모델로서 등장하는 경우에 19세기 중반이래 유럽근대국가의 모델을 수용하여 21세기를 앞두고도 여전히 단일민족주의의 강한 영향력 아래 놓여있는 한반도, 일본, 중국의 동아시아국가들은 어떠한 변화의 가능성과 한계를 맞이할가 하는 것이다.

東州國際政治學의 중요성

「국제정치원론」에서부터 「미래의 세계정치」까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東州國際政治學의 오늘의 국내외 국제정치학에 대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를 마지막으로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국내 국제정치학의 입장에서 보자면, 유길준이 100여년 전에 「서유견문」을 저술한 이후, 우리의 삶을 규제하는 근대국제정치 질서에 대한 적지 않은 논의와 연구가 이루어져 왔으나, 완제품 수입 또는 수입대체산업 수준의 「모방의 국제정치학」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삶의 세계정치적 문제를 우리나름의 시각에서 풀어 나가려는 「창조의 국제정치학」을 땅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東州로 돌아가라」는 구호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서 거꾸로 선 한국국제정치학의 바로 세우기는 가능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東州國際政治學은 한국국제정치학의 진정한 뿌리내림을 위해서 중요할 뿐만 아니라, 구미의 국제정치학이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일반국제정치학」의 정립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잠재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권역과 전파의 이론에 기반하여 하나의 국제 또는 세계 정치권의 형성과정에서 중심기준의 형성, 전파, 변용을 조심스럽게 분석함으로써 국제정치현실의 보편과 특수, 또는 동질성과 이질성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국국제정치학의 본격적 뿌리내림을 위해서, 그리고 구미 국제정치학을 넘어서는 일반국제정치학의 정립을 위해서, 東州國際政治學은 후학들에 의해 보다 본격적으로 계승 발전되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李用熙 「國際政治原論」(章旺社, 1955)
「政治와 政治思想」(一潮閣, 1958)
「一般國際政治學(上)」(博英社, 1962)
「近代韓國外交文書總目(外國編)」(國會圖書館, 1966)
「韓國繒畵小史」(瑞文堂, 1974)
「日本속의 韓畵」(瑞文堂, 1974)
「우리나라의 옛그림」(博英社, 1975)
「韓國民族主義」(瑞文堂, 1977)
「韓國繒畵史論」(열화당, 1987)
「李用熙 著作集-韓國과 世界政治」(民音社, 1987)
「未來이 世界政治」(民音社, 1993)
「우리 옛그림의 아름다움」(시공사, 1996)
李用熙(외) 「韓國의 民族主義」(韓國日報社, 1975)
盧在鳳 편 「韓國民族主義와 國際政治 : 東州 李用熙先生 謝恩 學術 심포지음」(民音社, 1983)
河英善, "解題 : 一般國際政治學(上)" 政經硏究 (1984. 3)
河英善 "韓國國際政治學의 새로운 方向 摸索" 김경동, 안청시 편 「韓國社會科學 方法論의 摸索」(서울大學校 出版部, 1986)
河英善 편 「脫近代地球政治學」(나남,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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