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act    
21세기 미국 군사의 역사적 전망
 

2001-08-21 

1776년 북미주에서 하나의 독립국으로서 등장한 미국은 19세기 중반 남북전쟁을 거친 후 1898년의 미국-스페인 전쟁을 계기로 유럽중심 국제정치의 중심세력의 일원으로서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미국은 20세기 들어서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르고 난 후 20세기 중반이후 전후 냉전 세계질서의 주도국가로서 등장하여 1990년대 초 소련의 해체가 이루어질 때까지 냉전질서를 형성하고 전개하여 왔다.

 

탈냉전의 새로운 변화 속에서, 미국은 20세기에 이어 21세기에도 여전히 새로운 세계질서를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20세기 세계질서를 주도하기 위해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던 미국의 군사적 기반은 21세기에 들어서서 어떠한 모습으로 전개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부딪치게 된다. 이 질문을 역사적 전망 속에서 대답해 보기 위해서 이 들은 우선 미국이 유럽중심 국제질서의 중심세력의 일원으로서 참여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자신의 군사적 기반을 형성하였으며, 다음으로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이후 세계질서의 주도국가로서 성장하면서 어떻게 새로운 군사적 기반을 마련하였는가를 되돌아 본 다음에, 이를 기반으로, 마지막으로 미국이 21세기 신문명을 주도하기 위해 어떠한 군사적 기반을 마련하려고 노력하고 있는가를 추적해 보고자 한다.


미국-스페인 전쟁과 해양력

 

미국은 1776년에 독립한 이래 19세기에 들어서서 착실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며, 남북전쟁 이후 보다 본격적인 경제성장을 맞이하였다.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난 1885년 이후 연평균 5%의 경제성장을 이룩하여 1885년 전후에는 경제규모에서 영국을 능가하고 1886년에는 철강생산에서, 1890년에는 에너지 소비에서 각각 영국을 능가하고 세계 제1위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러한 빠른 경제성장에 힘입어, 미국은 19세기말에 이르러 세계 제1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미국이 19세기말 세계 제1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바이로흐가 작성한 표1. 세계 생산고의 상대적 비율이다. 산업혁명을 상대적으로 먼저 겪은 영국이 1830년대에 전세계 생산고의 10% 수준에 이르고 1860년대부터는 20% 수준에 다달아 세계 제1의 경제대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미국은 19세기에 들어서서, 상대적으로 무리한 군사비의 부담이 적은 속에 자신과 영국의 자본을 기반으로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어서 남북전쟁(1861-1865)이 일어나기 직전인 1860년에는 이미 러시아, 독일 등을 능가하고 프랑스와 비슷한 수준의 상당한 경제강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표1. 세계 생산고의 상대적 비율

 

자료: P. Bairoch, "International Industrialization Levels from 1750 to 1980", Journal of European Economic History II (1982) P.294 .


미국은 남북전쟁이 끝난 후 비옥한 농토, 방대한 자연자원, 근대기술, 사회 및 지리적 제약의 부재, 중요한 대외 위험의 부재, 해외 및 국내자본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1880년에는 이미 독일, 프랑스를 훨씬 뛰어 넘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였다. 미국은 1900년에는 지난 한 세기동안 최대 경제대국이었던 영국을 추월하고 전세계 생산고의 23.6%를 차지하면서 드디어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경제대국 미국은 남북전쟁기간의 예외적 시기를 빼고서는 군사소국의 모습을 오랫동안 유지하였다. 표2. 주요국가의 육해군 병력을 보면, 미국의 병력은 1880년에 30,000명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반면에, 당시 유럽의 6대 강국들은 작게는 이탤리의 20만명 수준에서 많게는 러시아의 80만명 수준을 보여 주고 있어서 눈에 띄게 대조적 이었다.

 

군사소국으로서의 미국의 모습은 표3의 주요국가의 전함톤수에서도 잘 들어나고 있다. 1880년에 미국의 전함톤수는 대체로 영국의 저함톤수의 1/4 수주이었으며, 1900년에도 영구의 1/3 수준을 유지하였다.

 

표2. 주요국가의 육해군 병력


자료: Quincy Wright, A Study of War (Chicago: Chicago University Press, 1942) PP. 670-671


표3. 주요국가의 전함톤수, 1880-1914


자료: Quincy Wright, A Study of War (Chicago: Chicago University Press, 1942) PP. 670-671

 

경제대국이고 군사소국이었던 19세기의 미국은 국제정치적으로도 1880년대까지는 당시 국제질서를 주도하던 유럽의 6대강국-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 이탤리에 비해서는 격이 떨어지는 이류국의 대응을 받았다. 미국이 유럽의 6대 강국에 이어 7대 강국으로서 자리잡게 되는 것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라고 할 수 있다.

 

경제대국이면서도 정치, 군사적으로는 대국의 대접을 받지 못했던 미국이 명실상부한 대국으로 자리잡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게 되나, 이러한 노력이 본격적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은 국내 정치적으로 행정부의 실권이 의회에 대해 강화되는 19세기말 이었다.

 

이러한 국내외 정치 상황 속에서 해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Alfred Mahan의 영향하에 있던 해군장관 Benjamin Tracy는 1889년의 연례보고서에서 기존의 연안방어와 상업보호 대신에 해양에서 적의 함대를 파괴할 수 있는 전함을 기반으로 한 해양지배의 새로운 독트린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태평양에 8척의 전함, 대서양에 12척의 전함, 60척의 순양함, 20척의 연안방어선을 포함한 100척의 근대 전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밝혔다. 그 이후, Tracy는 의회와의 타협속에 세계유수의 해군력을 건설하기 위한 성공적인 출발을 하게 된다. 이러한 배경속에서 Mchkinley 대통령은 1898년에 스페인과의 전쟁을 치르면서 20세기 미 제국의 탄생을 예고하게 된다. 미국의 해양력은 꾸준히 발전하여 1920년대에 이르러 19세기 국제질서의 주도국가였던 영국의 해양력에 필적하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핵력


제2차 새계대전을 치른 후, 유럽과 아시아의 전승국이나 패전국 모두가 국력의 상대적 위치 약화를 겪는 속에, 전승국 미국은 예외적으로 국력의 상대적 위치강화를 체험하였다. 미국은 전쟁기간 중에 본토가 직접 전재의 피해를 보지 않는 속에 전쟁특수에 힘입어 연 15% 이상의 제조업 증가율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전쟁직후에는 전 세계 국민 총생산의 50%에 육박하는 기록을 세우게 되며, 전세계 군사비의 50%를 차지하게 된다.

 

이러한 속에서, 미국은 종전이후 전시동원체제를 평시 체제로 환원하는 절차를 밟기 시작하여 종전시 1,250만에 달했던 병력을 1/10 가까운 수준으로 줄이는 노력을 기울이게 된다. 그러나 전승국인 미국과 소련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협조보다는 갈등 관계를 형성하기 시작하여 점차 냉전질서를 만들게 된다.

 

이러한 냉전 분위기의 형성과정 속에서 미국의 합동참모본부는 1946년 여름에 Pincher라는 암호명으로 핵무기 사용을 포함하는 전쟁계획을 처음으로 수립하였다. 이 전쟁계획은 1946년 여름부터 1947년 여름 사이에 미·소간에 전쟁이 발생한다면 소련군이 유럽과 중동의 대부분을 점령할 것으로 가정하고, 미국은 통상전과 함께 20개 도시에 핵무기를 투하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 당시 계획을 수행할 수 있는 핵무기의 양을 보유하지 않았으며, 핵무기를 운반할 수단도 준비되지 않았고, 공격목표에 대한 구체적 분석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1947년 8월에는 Pincher에 이어서 Broiler라는 암호명의 전쟁계획이 수립되었다. 이 계획은 Pincher에 비해서 적극적인 핵무기의 사용을 포함하고 있었으며, 산업시설, 군수산업센터, 중요 정치적 목표, 연구소 등을 포함하는 100개의 목표에 400개의 핵무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1948년 가을에는 Halfmoon/fleetwood 라는 암호명의 보다 본격적인 핵무기 사용의 전쟁계획이 수립되어 소련의 공격을 라인강에서 억지하고 전쟁초기에 소련의 70개 도시를 133개의 원자폭탄으로 파괴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속에서 1947년에 창설된 국가 안보 위원회(National Security Council)가 1948년 3월에 전후 공산주의의 위협과 미국의 대응수단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 분석이 NSC-7의 명칭으로 이루어졌다. 이 분석은 지난 몇 년간의 소련의 영향력 증가를 지적하고 미국이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하며 군사적 준비를 강화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분석은 아직까지 핵력 보다는 통상병력에 비중을 두고 있다. 베를린 위기가 발생하고, 원자력의 국제적 통제 노력이 실패하고 원자폭탄의 생산이 증가하는 속에, 미국은 1948년 9월에 NSC-30에서 소련의 군사력 위협에 대한 견제로서 핵무기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1949년에 소련의 핵실험이 성공리에 이루어지고, 중국은 毛澤東이 이끄는 공산당에 의해 통일됨으로써 미국은 1950년에 NSC-68을 마련하게 되고 핵무기는 냉전세계질서의 군사적 기반으로서 확고히 자리잡게 된다.


표4. 세계 핵탄두수


*미국(1988년부터) 과 소련/러시아(1986년부터)의 핵탄ㄷ는 현역작전병력의 핵탄두, 해체를 앞두고 배치되지 않은 핵탄두, 예비용 핵탄두들을 포함하고 있다. 구소련/러시아의 최근 추정량은 실전배치되어 있는 것(50%)과 해체예정/예비용(50%)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료 : Rober S. Norris and William M. Arkin of the 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NRDC Nuclear Notebook : Global Nuclear Stockpiles, 1945-2000", in The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Vol. 56, No. 2, (March/April 2000), p.79

 

표 4의 세계핵탄두수에서 보는 바와 같이, 미국은 1945년에 핵무기를 개발한 이후 소련에게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줄 수 있는 200∼400메가톤 수준의 핵력을 보유하게 되는 것은 한국 전쟁이후 였다.

 

195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미국은 대소 억지력 수준의 핵무기를 확보하게 된 반면, 소련의 핵전력은 미국의 주요도시에 결정적 피해를 줄 수 있을 정도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세한 재래식 군사력을 갖춘 소련이 서유럽국가들의 영토를 공격할 경우, 미국은 핵무기를 사용하여 서유럽의 안전을 보장하겠다는 대량보복전략을 추진하였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련의 핵전력은 빠른 속도로 증가하기 시작하여 선제공격시 미국을 억지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대량보복전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미국 케네디 행정부는 확실한 핵파괴능력, 적의 공격에 대한 피해제한 능력과 함께 통상전력을 동시 강화하는 유연반응전략을 채택하였다.

 

1960년대 말, 소련은 핵시대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미국의 대군사목표 선제공격을 받더라도 다시 미국에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가할 수 있는 제2공격력을 확보함으로써, 미국과 소련은 명실상부한 상호억지의 시대를 맞이하고, 전략핵무기 제한 협정논의를 본격화하기 사작하였다. 한편, 이 시기에, 미국 닉슨 행정부는 확실하고도 대등한 보복능력과 유연한 선택능력, 그리고 미·소가 보유한 전략핵무기의 전반적인 양적 균형 등을 요구하는 충분성의 전략을 채택하였다.

 

1970년대말의 아프가니스탄시대와 함께 미·소관계가 다시 차가와지는 속에, 미국 레이건 행정부는 미국의 상대적 국력 약화를 군사력의 증강을 통하여 개선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미 행정부는 핵전력 차원에서는 1970년대의 본질적 대등전략이나 상쇄전략을 넘어서서 우세전략의 가능성을 모색하여 그 구체적인 대안으로서 핵전략증강과 전략방위구상(Strategic Defense Initiative)을 추진하였다. 이와 함께 미국은 1970년대의 1½전쟁개념 대신에 소련의 군사 행동에 대응해서 동시에 여러지역에서 전선을 형성하는 동시다면 전쟁개념을 구상하고, 이에 따라 공세적 방어전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지전 독트린, 해양전략과 같은 적극적 군사정책을 추진하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 소련의 해체와 함께 탈냉전이 본격화함에 따라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급격히 변화하는 새로운 안보환경에 효과적으로 적응하기 위하여 1993년에 재래식전력에 대한 「근본적 검토(Bottom-Up Review)」에 이어서 1994년에 핵전략에 대한 「핵전력 검토(Nuclear Posture Review)」를 행하였다.


이 검토는 미국의 핵전략과 연관해서 다음과 같은 권고를 하고 있다. 첫째, 핵시대의 다른 어느 때보다 현재 핵무기가 미국의 안보를 위해 상대적으로 작은 역할을 하고 있다. 둘째, 미국은 현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훨씬 적은 핵무기를 필요로한다. 따라서, 탈냉전을 맞이하여 미국 핵전력은 극적 감축이 이루어지고 있다.


셋째, 탈냉전이후 안보환경이 극적으로 변화하였지만, 미래에 대한 커다란 불확실성이 아직까지 존재한다. 따라서, 미국은 이러한 불확실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넷째, 미국은 순수히 자국에 대한 억지전력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핵무기고의 억지적 보호를 동맹국들에게 확대하고 있다.,
다섯째, 미국은 핵안전과 안보, 명령과 통제, 사용통제와 민간통제를 위한 최고 국제표준의 담당역할을 계속해서 수행할 것이다.

 

미국의 「핵전력검토」는 최종적으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고 있다. "국방부는 보다 안전한 세계로 인도하는 길과 예상치 못하는 미래에 대한 방지책의 사이에서 신중한 균형을 취하고 있다. 탈냉전환경속에서, 미국은 계속해서 핵 억지를 필요로 하고 있다. 비전략핵전력과 함께 세종류의 핵전력은 미국의 국가안보에서 핵무기의 역할이 감소하는 것에 맞추어서 추려지고 조정되었다. 핵전력의 추가감축과 경비절약이 보다 작고, 안전하고 안정적인 미국 핵전력을 가져오도록 이미 진행되고 있다."

 

미국의 핵무기 보유량은 「핵전력검토」의 방향에 따라 1990년대에 표4에서 보는 것과 같이 20,000개 수준에서 10,000개 수준으로 감소하였다.


걸프전쟁과 정보력

 

소련의 해체에 따른 세계사회주의체제의 붕괴와 함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 함께 냉전질서를 주도하여 왔던 미국은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살아남게 되었다. 이러한 미국이 20세기 후반의 냉전 세계질서를 넘어서서 20세기 신문명질서를 지속적으로 주도하기 위해서는 냉전 세계질서의 군사기반을 새롭게 변용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1991년 초의 걸프전쟁에서 미국주도의 다국적군은 전정의 상대방을 파악하고 효율적인 대응방안을 찾아내어, 상대방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압도적 정보우월성을 최대한 활용하여 최소한의 피해속에서 전쟁을 완벽한 승리로 장식하였다. 전쟁과정에서, 미국은 다음의 세 결정적 분야에서 확실한 기술우위를 보여주었다. 첫째, 다양한 정보, 커뮤니케이션, 운항체제가 미군 야전 사령관에게 아군과 적군의 배치에 대해 보다 정확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의 보다 나은 "상황의식"을 제공했다. 이러한 우세의 대부분은 지도를 위해 자료를 생산하고 군부대를 찾고, 군사체제를 확인하고 이라크의 방위, 명령, 통제 시설을 공격하는데 사용되는 인공위성의 탐사에서 얻어졌다. 지구정지위성도 동시에 전술적 수준에서 정밀운항정보를 제공하였다. 한편 공동정탐 목표공격체제 (Joint Surveillance and Target Attack Radar System) 와 공중경보 통제체제가 (Airborne Warning and Control System) 탱크, 스커드 미사일, 도주하는 이라크항공기와 같은 다양한 목표를 찾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둘째, 스텔스 폭격기, 토마호크 순양미사일, 반방열 미사일들이 중심감지체계와 지휘통제센터를 파괴하는 전술로서 이라크 공중방어체계를 눈멀게 하는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라크 대공포화는 일반적으로 유효사거리 밖에 있는 항공기들에게 맹목적으로 사격할 수 밖에 없었다. 그 결과로서 다국적군의 전투기들은 하루에 한기 이하의 손실을 입으면서 하루에 2,000내지 3,000회의 출격을 할 수 있었다.

 

셋째, 스텔스 폭격기와 정밀유도폭탄의 결합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적은 민간살상을 가져오면서 고도의 효율성을 가지고 폭격을 가능케 했다. 스텔스폭격기로 운반한 2,100개의 목판 가운데 1,700개가 목표 10피트 이내에 떨어진 적으로 추정되었다.

 

이러한 첨단기술의 걸프전쟁은 21세기의 미래전에 대한 본격적 논의를 활발히 불러 일으켰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래전 논의들은 넓게 보자면 「군사혁신」(Revolution in Military Affaires)의 틀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군사혁신」이라는 개념자체는 본래 유럽 군사사 전문가들이 16,17세기 유럽 근대 국가 형성기의 군사기술과 조직, 전략의 변화를 다루면서 사용하였던 것이다. 보다 최근에는 소련의 군사지도자들이 1980년대 초반에 미국의첨단 정보기술에 기반한 정보·공격 복합체의 중요성을 검토하기 위하여 군사-기술 혁신(military-technical revolution)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소련과 핵 대결에서 벗어난 탈냉전의 미국은 1991년 초에 걸프전을 치르면서 첨단정보기술의 위력을 구체적으로 실감하였으며, 이에 따라 21세기 신문명의 군사적 기반을 「군사혁신」의 틀 속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게 되었다. Krepinerich는 걸프전이래 겪고 있는「군사혁신」을 표5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백년전쟁(1337-1453) 시기의 보병혁신, 대포혁신 이래 11번째의 「군사혁신」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군사혁신」들의 특성을 기술변화, 체제발전, 작전혁신, 조직적응의 면에서 검토하고 있다.

 

21세기를 맞이하면서 겪고 있는 「군사혁신」의 특성을 다양하게 검토할 수 있으나 21세기 미래전쟁연구의 대표적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Arquilla 와 Ronfeldt 는 오늘의 정보혁명의 영향으로 미래전쟁은 네트전쟁(net war) 과 사이버 전쟁 (cyber war)의 모습을 보여주
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표5. 군사혁신의 역사적 전개


자료: Andrew Krepinevich, "Cavalry to Computer: The Pattern of Military Revolutions, "The National Interest 37 (Fall 1994)pp. 30-42


네트전쟁은 국가 또는 사회간의 정보관련 대규모 분쟁을 말한다. 이 전쟁은 목표 대상인들이 알고 있는 것을 혼란케 하거나, 손상하거나, 변형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네트전쟁은 여론과 엘리트 의견을 대상으로 한다. 이 전쟁은 공공외교수단, 선전, 심리전, 정치 및 분화전복, 지방대중매체의 속임, 방해, 컴퓨터 네트워크와 데이터베이스의 침입,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한 이견 또는 반대운동의 진흥노력을 포함할 수 있다. 이러한 네트전쟁은 정부와 정부, 정부와 비정부, 비정부와 비정부간의 다양한 형태로 진행될 수 있다.

 

정보혁명의 방향속에서 현대전쟁의 양상이 정보·통신망간의 싸움이라는 네트전쟁의 일면을 보이기 시작하는 것과 함께, Arquilla 와 Ronfeldt는 사이버전쟁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사이버전쟁은 정보관련원칙에 따라서 군사작전을 수행하는 것을 말하며 상대방의 정보·통신체제를 혼란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전쟁은 적에 관해서는 모든 것을 알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적이 나에 관해서는 많이 알지 못하도록 노력하여 "정보와 지식의 균형"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사이버전쟁은 사이버의 어원이 그리스어의 조정 또는 통지를 의미하는 "kybernan"이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순히 전자전쟁이라는 기술적면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군사조직과 독트린에서도 새로운 면을 보이고 있다. 특히 독트린의 면에서는 기존의 백병전, 밀집전, 기동전과 달리 벌떼전 (Battle swarm) 이라는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미래전쟁연구의 또 하나의 그룹 - George Stein, Richard Szafranski, Owen Jensen - 들은 알라바마의 맥스웰 공군기지에 있는 공군대학교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들의 연구는 주로 정보전쟁에 관한 생각의 온상인 Airpower Journal 에 실려왔다. 이 그룹들의 핵심주장은 정보전쟁의 가장 높은 가능성은 정보자체가 중심이 되고 핵심무기가 되는 전쟁의 새로운 영역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미래전쟁은 이제까지의 전쟁과는 혁명적으로 다른 모습을 띄게 되어 정보전쟁의 전략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새로운 정보기술의 등장이 다양한 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개별 제작된 선전과 가상현실을 공급함으로써 적의 마음을 공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래전쟁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속에서, 미국 국방부는 21세기 신문명의 군사적 기반을 새롭게 조성하기 위하여 1997년 5월에 「4년 주기 국방계획 검토」(The Quadrennial Defense Review)를 발표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국방개혁 추진 보고서」(Defense Reform Initiative Report)를 내어놓았다. 그리고, 필립 오딘(Philip A. Odeen)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방패널(National Defense Panel) 이 1997년 12월에 「4년 주기 국방계획검토」를 심층적으로 검토한 결과인 「변용하는 방위: 21세기의 국가안보」(Transforming Defense: National Security in the 21st Century)를 발표하였다.

 

냉전이 끝난 이후, 1991년의 「기본 군사력 검토」(Base Force Review), 1993년의 「근본적 검토」(Bottom-Up Review), 1995년의 「군사력의 역할과 임무 위원회」(Commission on Roles and Missions of the Armed Forces)에 이어, 네 번째로 4년 주기 국방계획 검토는 미국군사가 이제까지 걸어온 과거와 현재를 검토하고 1997년부터 2015년까지 걷게 될 미래를 포괄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군사가 21세기 상반기에 걷게 될 길을 전망하기 위해서는, 이 보고서를 보다 심층적으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이 보고서의 기본 골격은 클린턴 대통령의 「국가안보전략」(National Security Strategy)의 조성, 대응, 준비 라는 틀을 군사에 적용하여 미국의 국가 이익에 도움이 되는 국제안보환경을 조성하고, 발생하는 전 영역의 위기들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며, 내일과 보다 먼 불확실한 장래의 위협과 위험을 미리 준비하도록 짜여 있다.

 

이 보고서는 우선 보다 바람직한 국제안보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으로서 미국이 현재부터 2015년까지 당면하게 될 중요한 안보의 도전들을 분석하고 있다. 그 결과로서, 미국은 첫째, 이란-이라크, 남북한과 같은 대규모 국경공격과 소말리아나 구 유고와 같이 실패한 국가들의 국내 분쟁을 포함하는 다양한 지역적 위험, 둘째, 핵 및 생화학무기, 미사일, 정보전쟁능력, 첨단 재래식무기, 레이더 회피능력, 무인 항공기, 우주개발능력 등과 같이 잠재적으로 위험한 기술들의 확산, 셋째, 테러, 불법 마약무역, 국제범죄조직, 이민 등과 같은 초국가적 위험, 넷째, 테러, 유도탄, 핵 및 생화학무기, 정보전쟁, 환경파괴 등과 같은 비대칭적 수단의 적대적 사용 등을 들고 있다.

 

이러한 지속되는 지역적 위험, 첨단 무기와 기술의 확산, 초국가적 위험, 비대칭적 공격의 증가하는 위험과 함께, 이 보고서는 가능성 있는 중요한 안보도전으로서 새로운 기술의 예상치 못한 등장 등과 같은 비상용 각본과 2015년 이후의 지역 강대국이나 지구 동료 경쟁국의 등장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이러한 안보의 도전 속에서, 미국이 자신의 이익에 바람직한 국제안보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지역안정의 증진, 분쟁과 위협의 감소와 방지, 그리고 공격과 강조의 억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고서는 강조하고 있다.

 

국제안보환경을 조성하려는 최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다양한 위기들에 대해서는 미국의 군사력은 국가이익을 보호하기 이해서 적절히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기에 대응하는 첫 번째 단계로서, 미국은 특정국가에 대한 약속의 표시나 해당지역의 전투능력의 증가를 통한 국가이익의 표현을 통해 위기 속의 공격과 강요를 억지 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 실패하는 경우에, 미국은 군사력의 신속한 개입을 통하여 소규모 분쟁들이 커지지 않도록 막겠다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탈냉전 이후의 위기로서 가장 규모가 큰 지역분쟁에 대해서는 미국은 이란-이라크와 남북한과 같은 두 지역에서 동시에 분쟁을 억지하고 방어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향후 15년간의 안보도전을 위와 같이 국제안보환경의 조성과 다양한 위기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통해 풀어나가면서, 동시에 불확실한 미래의 안보도전에 대비하기 위해 미군의 전투능력과 지원구조를 변용하려 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이러한 21세기 변용전략(Transformation Strategy)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집중적 근대화, 군사혁신, 경영혁신, 보험정책을 강조하고 있다.

 

집중적 근대화 노력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구입하여 21세기초에 수명이 다 할 무기체계와 지원 장비들을 대체하는 것이다. 21세기 미 군사력이 다양한 군사작전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대체가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강조하고 있다.


다음으로, 군사혁신은 정보혁명의 시대를 맞이하여 새로운 독트린, 작전개념, 그리고 조직구조를 포함하는 군사력의 능력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대안을 찾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각 군과 미 대서양 사령부가 수행하고 있는 동태적 개념개발과 실험을 핵심적으로 포함하고 있으며, 동시에 국방부의 과학기술 프로그램은 전투와 지원능력을 크게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작전개념에 맞는 핵심기술의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이러한 모색의 구체적인 모습은 군 전체가 추진하고 있는 「통합 전망 2010」 (Joint Vision 2010)과 그 후속 노력인 「미래작전 개념」(Concept for Future Operations), 「통합전망 2020」(Joint Vision 2020)에서 대표적으로 찾아볼 수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각 군별로 보다 세부적인 군사혁신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통합 전망 2010」과 「통합 전망 2020」은 아군에게 전장의 모든 공간에서 끊임없이 정보를 수집해서 공급해 주는 대신에 적군이 같은 일을 할 수 없도록 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우위를 핵심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정보우위를 기반으로 미국의 군사력은 기동력 우위, 정밀개입, 완전한 차원의 보호, 집중 군수지원을 추진하여 어떠한 작전과 상황에서도 유리한 「모든 영역의 우세」(full spectrum dominance)를 장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성공여부는 정보의 수집과 분석, 명령과 통제, 무기체계, 지원요소들을 통합하는 체제들의 체제(system of systems)에 달려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통합전망 2010」과「통합전망 2020」은 각 군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추진되고 있는데, 우선 육군은 탈냉전 이후 「군사력 XXI」(Forces XXI), 「통합육군 2010」(Army 2010), 「다음이후 육군」(Army After Next)을 진행시켜 왔다. 특히 「다음이후 육군」은 2025년의 육군은 빠르게 변화하는 조건에 폭넓게 대응할 수 있는 혼성군(hybrid force)의 편성을 강조하고 있다. 해군은 1992년의 「… 바다로부터」(… From the Sea)에 이어 「앞으로 … 바다로부터」(Forward … From the Sea), 「해군작전 개념」(Navy Operational Concept) 등을 통해 21세기 해군의 새로운 역할을 검토하고 있으며, 해병대도 상륙작전을 넘어서서 적의 심장부를 바다로부터 바로 공격하는 새로운 작전을 「해병대 작전기동」(Marine Corps Operational Maneuver from the Sea)에서 검토하고 있다. 그리고, 공군도 「지구적 범위-지구적 강국」(Global Reach-Global Power)에 이어 「지구적 개입: 21세기 공군전망」에서 21세기 초반 공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군사혁신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서는 이러한 혁신을 효율적으로 재정지원하고 경제적으로 운영하도록 경영혁신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1997년에 국방개혁 추진보고서를 마련하여 이를 실천에 옮기려는 노력을 진행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미국 국방부는 지역 강대국의 조기 출현이나 예측할 없는 각본과 같이 현실화 가능성은 적더라도 잠재적으로 중요한 위협에 대해서 연구 및 개발, 개념연구, 신기술 개발 기업의 활용, 동맹국들과의 협조 등을 통하여 일종의 보험정책으로서의 예비대책을 마련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4년 주기 국방계획 검토」는 위에서 요약한 바람직한 국제안보환경 조성, 위기 대응능력유지,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는 기본전략을 가장 잘 지원할 수 있는 국방계획을 짜기 위해서 단기 수요초점방안과 보다 먼 위협에 대비하는 방안을 검토한 후 최종적으로 현재수요과 불확실한 장래의 균형방안을 선택하고 있다. 단기와 장기의 안보도전에 균형 되게 대응하기 위한 세 번째 방안은 단기적으로는 소규모 작전과 중동과 한반도 지역의 지역적 위협에 간여 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는 지역 강대국의 점진적 등장과 비대칭적 위협들에 대비할 수 있도록 군병력, 무기체계, 및 국방예산을 짜고 있다.

 

21세기 미국 군사의 기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4년 주기 국방계획 검토」를 미국 국방장관의 의뢰로 심층 검토한 국방패널은 이 보고서를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 후, 다음과 같은 점들을 지적하였다. 첫째, 보고서가 제시하고 있는 전략은 모든 범위의 사태를 다루고 있으며, 탈냉전환경을 보다 잘 이해하도록 해 주고 있다. 프로그램의 결정과 우선 순위가 이러한 전략과 보다 밀접히 연계되어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보고서는 상당한 위기를 조성하지 않고 전체 군사력의 규모와 병력구조를 검토하고 축소하였다. 이 보고서는 동시에 예비구성 군사력의 규모와 역할을 탈냉전현실 시각으로 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패널은 이러한 입장을 지지한다. 셋째, 보고서는 국방부 하부구조의 적절한 변화와 감축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하부구조의 공격적 재구성과 적절한 사업활동의 선택을 위해서는 추가 조치와 법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이 하부구조의 감축과 정교화를 가능케 할 것이며, 이를 제기한 군사력구조와 연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넷째, 보고서가 군사활동을 다루고 있으나 합동과 연합작전개념의 추가 개발을 북돋을 필요가 있다. 미래군사 활동의 성공은 효율적인 활동과 연합작전에 크게 의존할 것이다. 다섯째, 보고서의 전략은 비교적 장기 전망을 취하고 있으나, 보고서의 다른 부분은 2005년까지의 시기에 집중하고 있다. 21세기의 도전에 대응하기 이해서 군사혁신을 실체화하고, 우주에서 수행되는 기능들의 효율성을 증가시키고, 정보능력을 개발하려면 보다 장기적 시각이 필요하다.

 

21세기 미국군사의 장기전망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는 속에 미국의 행정부와 의회의 지원하에 만들어진 21세기 국가안보 미국위원회(The United States Commission on National Security / 21st Century)는 1998년 10월에 첫 모임을 가진 후 미국의 국가안보에 관한 3부작을 준비하여 첫 권인 「다가오는 신세기」(New World Coming)를 1999년에 출판하였다.

 

위원회는 현재부터 2025년까지 변화하는 세계를 검토한 첫 번째 보고서에서 2025년의 군사·안보질서를 다음과 같이 전망하고 있다. 첫째, 국가간 전쟁은 향후 25년 동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선진국들은 상호 전쟁을 원하지 않을 것이나, 1914년의 1차 세계대전발발에서 증명된 것처럼, 상호의존의 유대나 풍요의 욕구도 평화와 안정을 무한정 보장할 수 없다. 둘째, 국내 폭력은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를 수 있다. 종족, 부족, 그리고 종교적 분열에 의해 형성되고 경제적 분열과 인구이동에 의해 악화된 폭력은 다가오는 25년의 기간중에 가장 일상적 형태의 분쟁을 형성할 것이다.

 

셋째, 2000년대에는 보다 질 나쁜 폭력인 파국적 테러리즘의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 미래의 테러리스트들은 현재와 비교하여 보다 덜 위게적으로 조직되고 보다 네트워크화 될 것으로 보인다. 넷째, 대부분의 첨단 재래식무기 체계들은 현재부터 2025년 사이에 보다 광범위하게 확산될 것이다. 국내 정치 및 경제적 자극이 첨단 항공기, 현대 지상전투차량, 그리고 새로운 해군무기체제들을 전세계로 확산시킬 것이다. 다만 최신무기체계들의 확산은 억지될 것이다.

 

다섯째, 핵, 생물, 화학무기들이 개발되고 사용되는 정도는 다양한 요소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핵 물질과 기술은 얻을 수는 있으나, 탐지될 위험이 높기 때문에 핵무기 생산비용은 높을 것이다. 화학무기는 핵무기에 비해 훨씬 쉽게 생산할 수 있으며, 생물무기가 21세기 불만 국가나 집단들의 가장 그럴듯한 수단의 선택이 될 것이다. 여섯째, 미사일 위협은 계속해서 확산될 것이다. 미사일 기술통제체제(MTCR)는 계속해서 강화될 수 있으나, MTCR에입하지 않는 국가들이 미사일 생산에 필요한 기술을 보다 쉽게 배우게 될 것이다.

 

일곱째, 대량살상의 "전통" 무기에 덧 부쳐서, 새로운 형태의 전략정보전쟁(Strategic Information Warfare)이 개발되어 새로운 형태의 공격전쟁으로 사용될 것이다. 전략정보전쟁은 중요 국가 명령체제와 군사관련 작전체제에 대한 사이버 공격을 포함한다. 여덟째, 사이버 공간과 함께 우주가 전쟁공간이 될 것이다. 우주에 기반한 체제들이 국제상업 및 군사능력에 점차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21세기 초 까지는 우주기반 체제들이 대단히 값진 이점을 제공하게 될 것이므로, 우주에의 지속적 접근은 국가안보와 같은 뜻으로 여겨질 것이다.

 

아홉째, 재래식억지와 핵 억지는 21세기에서도 우선적으로 추구될 것이나, 과거에 비하여 훨씬 획득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21세기의 억지는 행위자와 파괴능력이 넓게 확산된 속에서 추구되어야 하며, 동시에 강대국의 억지력에 못지 않게 비 강대국의 역 억지력의 가능성 속에서 얻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열째, 놀랄만한 정보혁명 속에서도 우리는 전략적으로 그리고 전술적으로 놀랄 것을 예상하고 있어야 한다. 역사는 많은 경우에 그러한 놀라움의 행진일 뿐이다.

 

열 한번째, 새로운 행위자와 새로운 무기가 21세기 분쟁의 성격을 변화시킬 것이나, 전쟁의 핵심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국가, 국가내 그룹, 비 국가조직들은 정치, 경제,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여전히 폭력 또는 폭력의 위협에 의존할 것이다. 그리고, 전례 없는 수준의 정보기술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공포, 불확실성, 위험, 그리고 애매성은 계속해서 분쟁을 성격 지울 것이다. 궁극적으로, 과거와 마찬가지로, 미래분쟁의 성격과 행동은 누가 누구와 어떻게 무엇에 대해서 싸우는 가에 영향받게 될 것이다.

 

열 두번째, 전진 주둔과 전진배치병역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의 군사전략은 다가오는 미래에 분명히 새로운 도전에 직면할 것이다. 미국 군사력의 해외 영구주둔은 점점 유지하기 어려워 질 것이다. 미국 군사력의 영구 전진주둔에 대한 압력은 미국의 전략, 군사력 해외 이동능력, 동맹관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제까지의 논의와 정책방향을 종합하여 보면, 미국은 21세기 신문명의 군사적 기반으로서 행양력과 핵력에 이어서 정보력을 주목하고, 이에 따라 병력체계, 무기체계, 그리고 군사독트린의 혁신을 모색하고 있는 모습을 부여주고 있다.

 

맺는말

 

20세기에 이어 21세기를 다시 한번 "미국의 세기"로 만들고져 노력하고 있는 미국은 21세기 새로운 군사적 기반으로서 19세기 미국-스페인 전쟁이후 해양력의 추구, 20세기 제2차세계대전이후 핵력의 추구에 이어서 걸프전쟁이후 정보력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속에서, 21세기 미국군사의 전개방향은 19세기와 20세기의 전개방향과 단절되어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미국은 근대전, 핵전 그리고 탈근대전을 동시에 품는 복합전에 대비할 수 있는 복합전력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21세기의 지속적 정보혁명의 추세속에서 정보력의 강화가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며, 이러한 추세는 21세기 군사적 기반의 새로운 세계표준으로서 전세계적으로 전파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list